글 / 캐나다 밴쿠버 수련생들
[명혜망] (제1부, 제2부, 제3부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잔혹한 박해 정황 하에서도 대선대인(大善大忍)의 마음으로 세인들에게 파룬궁에 대한 진상을 지속해왔다. 그들은 평화적으로 사람 마음속의 선념과 양심을 일깨웠다. 박해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일부 사람들은 중공의 거짓 선전을 믿었다. 그들은 파룬궁 수련생들의 평화 항의를 이해하지 못했고, 일부는 항의를 반대하기까지 했다. 밴쿠버 중국영사관 앞에서 벌이는 파룬궁수련생들의 지속적인 항의는 지나가는 많은 행인들의 가슴에 감동을 주었다. 더욱더 많은 밴쿠버 사람들이 파룬궁 수련생들을 이해하고 지지하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 일부 사람들은 수련생들을 위해 항의 장소로 뜨거운 커피, 빵 그리고 겨울코트까지 가져왔다. 일부는 박해 종식 호소를 도왔고, 일부는 파룬궁 수련생들 구출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 결코 정신을 돈으로 살 수 없다
수련생들을 보면서 일부 행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에 이러한 수련생들이 돈을 받고 (조용히 앉아서 하는 항의를) 한다고 들었지만 지금 나는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 당신이 살을 에이는 날씨에 온밤을 여기에 앉아 있어보라. 만약 이것이 하늘처럼 큰 불공정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얼마나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그런 정신적 헌신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 진정으로 당신을 존경합니다
정여사는 1999년 “4.25” 때 중난하이에서 평화적으로 청원한 만 명의 수련생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지금도 종종 손자를 데리고 중국영사관 앞에서 평화 항의를 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초가을 비오는 날이면 날씨가 꽤 춥다. 나는 남색 작은 오두막 안에서 명상을 했다. 한 젊은 숙녀가 브로드웨이 커피숍에서 따뜻한 커피를 오두막까지 가져와 내게 주었다. 그녀는 따뜻하게 나를 대해주면서, 그녀가 종종 이 지역을 지나다니면서 우리의 현수막과 진열대의 정보를 읽고 있었고 우리를 많이 동정해왔다고 했다. 그 날 그녀가 그곳을 지나면서 날씨가 매우 추웠기 때문에 내게 커피 한 잔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선량함에 감동을 받았다.”
다른 날은, 정여사가 연공을 하고 있었는데, 중년의 남자가 오더니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나는 늘 이곳을 운전하고 다니지만, 오늘은 내가 당신을 매우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어 이곳으로 걸어왔습니다.”
* 세인들의 지지와 축원
수련생들 중 나이가 많은 장여사는 70세에 가깝다.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아주 많은 병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것들은 폐기종, 심근에 보급되는 피가 부족한 현상, 고혈압,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 만성 방광염, 간지방과다와 목디스크, 탈장을 포함했다. 그녀가 파룬궁을 수련한 후, 이 모든 것들이 다 사라졌다. 그녀는 (은퇴한) 교사로써, 부지런하고 건강하며 眞-善-忍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그녀는 파룬궁을 청원하러 갔다가 세 번이나 체포되었다. 장여사는 매주 중국영사관으로 항의하러 온다. 그녀가 머물렀던 최장 시간은 14시간이었다. 그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어떤 것인지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2001년 7월, 뜨거운 태양열 아래에서, 나는 현수막을 들고 보도에 서 있었다. 얼굴이 타들어갔고 땀이 뺨을 타고 흘렀다. 한 신사가 자전거에서 내려와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는 내게 10불짜리 한 장을 꺼내더니 내게 우산을 하나 살 것을 주장했다. 나는 친절하게 그의 돈을 거절하면서 그의 친절함을 내 가슴속에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또 한번은 내가 매우 목말라 있을 때 한 금발 소녀가 내게 붉은 사과 하나를 주었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내가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하고 있을 때, 한 신사가 진상자료를 더 인쇄하라며 내게 5불을 꺼내주었다…”
2003년 5월 어느 날 아침, 리여사가 영사관 앞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데 차 한대가 그녀 옆에 조용히 정차하더니 30분을 기다렸다. 그녀가 명상을 끝내자, 한 여인이 차에서 나오더니 물 한 병과 약간의 음식을 건네주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인디안 진달래가 담긴 꽃병을 꺼내 이것을 전시대 가까이에 놓았다. 그녀는 일부 자갈, 한 조각의 편물, 그리고 솜을 넣은 원숭이를 꺼냈다. 그녀는 손짓으로 내게 이 물건들은 “순리”, “평안” 그리고 “행운”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 내가 이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왕여사는 차이나타운에서 사업을 경영한다. 그녀는 중국 정권의 TV 방송을 줄곧 믿었고, 파룬궁 수련생들이 “분신”을 하고 정부에 반대했다고 믿었다. 5년 전 리여사는 왕여사에게서 집을 세내었다. 그 때 이후로 그녀는 종종 리여사가 파룬궁 수련하는 것을 보았고 리여사가 들려주는 파룬궁 이야기를 들었다. 왕 여사는 파룬궁에 대한 그녀의 관점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眞-善-忍이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느낀다. 나는 캐나다에서 10년 이상을 살았으며, 신앙의 자유를 지지한다.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중공의 박해는 지극히 잔혹하다. 매 해 수련생들이 박해 결속 서명운동 카드를 건네줄 때마다, 나는 내 친구들에게 서명하라며 20, 30장씩을 가져간다. 나는 내가 최선을 다해 이 파룬궁 수련생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 한 여행 가이드가 파룬궁을 대변하다
밴쿠버의 한 여행가이드가 내게 말했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비록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지는 않지만 나는 신앙의 자유를 지지한다. 나는 종종 중국영사관 앞에서 속력을 늦추고 손님들에게 파룬궁 정보 보도판을 보게 하고 그곳에 평화롭게 앉아 있는 수련생들을 관찰한다. 보통 중국 관광객들은 그 장면을 보고는 놀라서 ‘왜 중국영사관에서 저런 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가? 왜 캐나다 경찰은 그들을 체포하지 않는가?’ 라고 묻는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은 지금 캐나다에 와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진정으로 기본적인 인권과 신앙의 자유를 존중합니다. 수련생들이 법을 어기지 않는데, 경찰이 왜 그들을 체포합니까?’ 나는 또 그들에게 말해준다. ‘나는 캐나다 헌법이 인권과 종교 신앙을 보호한다고 들었다. 이에 따르면 중국에서 박해받고 있는 파룬궁 수련생들에게는 이민자격이 승인되어 캐나다에 올 수 있다.’ 이를 들으면 관광객들 중 정부 관리들과 비즈니스 매니저들은 놀라움으로 조용해지면서 생각에 잠긴다.”
* 버스기사가 영사관 앞에서 평화롭게 명상하는 수련생들을 지지하다
매일 많은 대중버스들이 영사관 앞을 지나간다. 일부 운전사들은 지지한다는 표시로 부드럽게 경적을 울리며 수련생들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리여사는 종종 저녁버스를 타고 영사관으로 오는데, 운전사들은 두 정거장 사이에 위치한 영사관 바로 앞에 버스를 세우고 그녀를 내려준다. 때로 그녀가 한밤중에 집을 가야하는 때에는, 버스운전사가 그녀의 집까지 그녀를 데려다준다. 어느날, 한밤중에 리여사가 버스터미널로 급히 갔지만 마지막 버스가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영사관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터미널에 있던 한 운전사가 대략 7마일 거리인, 리치몬드에서 밴쿠버 중국영사관까지 그녀 한 사람을 태워 데려다주기도 했다.
* 캐나다 경찰들이 파룬궁 수련생들의 안전을 보호해주다
경찰들은 수련생들의 안전을 보살펴준다. 정쥔여사는 낮에 일하기 때문에, 보통 저녁시간에 항의팀에 참가한다. 그녀가 말했다. “처음에는 순찰경찰이 지나다가 잠시 앉아 박해상황에 대해 묻는다. 때로는 우리와 환담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우리가 두렵거나 춥지는 않은지, 항의를 얼마나 오래 지속할 것인지, 그리고 우리의 가족원들을 구출하기 위한 우리의 계획이 어떠한지 묻는다. 한번은 내가 영사관 앞 길옆에 차를 세웠다. 내 차가 검은 색이고 언덕에 세워졌기 때문에, 한 경찰은 다른 차들이 내 차를 들이박지 않을까 걱정되어 내게 차를 안전한 장소에 세우라고 제안했다. 그가 제안한대로 내가 하는 것을 보고나서야 그는 안심하고 떠났다.
정쥔여사가 말했다. “우리가 처음 이곳에 앉아 있기 시작했을 때에는, 오두막이 없었다. 한번은 비가 심하게 왔기 때문에 차를 영사관 앞에 세워놓고 그 안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갑자기 깨어났을 때 나는 경찰차 한 대가 내 뒤에 있는 것을 보았다. 경찰이 얼마나 오래 그곳에 있었는지 몰라 나는 약간 걱정이 되어 차 밖으로 나가 그에게 물었다. 경찰이 차창을 내리면서 말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비가 오고 있기 때문에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지금 날씨가 개였군요. 이제 됐습니다.” 그런 다음 그가 떠났다. 나는 경찰이 여러 시간 동안 나를 보호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 眞-善-忍이 당신과 함께 하기를
2001년, “아델”이라는 한 청년이 파룬궁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영사관으로 왔다. 그와 그의 여자친구는 중국영사관에 편지를 썼고 캐나다 수상에게 방해 제지를 호소했다. 그는 또 파룬궁 수련생들과 함께 일주일에 걸친 “캐나다 횡단 SOS 걷기”에도 참가했다. 그는 다리가 부어 절룩거리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이것은 중국 수련생들이 매일 감당해야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아델”은 또 걷기에 대한 노래도 지었다. 가사는, “나의 친애하는 그리고 절친한 친구들, 당신들은 용감하고 선량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당신이 캐나다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을 주리라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들의 길을 잘 걷으십시오. 평화가 당신과 함께 할 것이고, 眞-善-忍이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
* 나는 파룬궁을 선택하겠다
한 주요 매체의 특별기고가가 중국영사관을 종종 지나다녔다. 2002년 그는 과연 무슨 힘이 그들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그곳에서 항의하게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영사관 앞에서 파룬궁 수련생들과 이틀 밤을 지내기로 결정했다. 일부 수련생들을 인터뷰한 다음, 그는 브리티쉬 콜롬비아 성 신문에 이렇게 기사를 썼다. “중국영사관은 영사관을 쇄신하기 위해 큰돈을 들였다. 일체를 콘크리트로 만들어 아주 견고해 보인다. 반면에 파룬궁 수련생들은 영사관 밖에 간단한 오두막을 세우고 그들의 항의를 지속해가려는 생각이다. 만약 당신이 내게 어느 쪽이 더 견고하고 오래 견딜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파룬궁을 선택하겠다!”
* 우리 모두는 박해 제지를 위해 도와야 한다
2004년 8월 20일, 밴쿠버 선은 그날 저녁 파룬궁이 3주년 평화 항의를 기념하는 촛불행사를 가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를 읽고, 에드워드라고 부르는 누나와 남동생이 파룬궁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이 수련생들로 하여금 각종 험악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3년 동안 평화 항의를 계속해나갈 수 있게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 장소를 찾아왔다.
수련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그들은 깊이 감동되었다. 누나는 간호사인데, 그녀는 수백 명의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아왔다. 그녀는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했고 한 사람이 잔혹하게 고문을 받아 사망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 눈물을 참으려 애쓰며 그녀가 박해 받고 있는 수련생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녀는 그녀의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파룬궁을 지지하고 가해자들을 감옥에 넣도록 부탁하는 편지를 쓰겠다고 약속했다.
남동생은 프린스 조지 시의 신문기자이다. 그는 그가 신문에 파룬궁 이야기를 발표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에 대해서 그리고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알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누나와 남동생은 보드판 위에 쓰여진 “眞-善-忍” 영어 세 글자를 눈여겨보며 논평했다. “세 글자를 보는 것으로 나는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겠다. 이 세상은 바로 眞-善-忍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박해 제지를 위해 도와야 한다.”
그들은 오랫동안 머물면서 많은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떠나기 전, 누나는 수련생들을 꼭 껴안으며 그들이 견지해나갈 것을 격려했다.
다음 날 그들은 다시 와서 수련생들과 두 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동생은 파룬궁에 대한 출판물을 한 더미 가져가면서 혼자 집에서 수련을 시작하겠다고 말하고, 친구들에게도 파룬궁을 시작해보라고 말하겠다고 했다.
* 우리 모두가 함께 박해 제지를 위해 일해야 한다
어느 날, 전 밴쿠버 상원의원인 시마 홀트가 오타와에서 막 돌아오면서 비행장에서 곧바로 영사관으로 운전해왔다. 그녀는 수련생들에게 인사하면서 말했다. “중국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이 살인을 당하고 있다. 그들의 장기가 적출되고 매매되기까지 한다. 이 잔학행위가 대양 저 쪽 끝에서 일어나고 있다. 모든 해외중국인들이 나와서 수련생들을 지지해야 한다. 모든 단체들 역시 나와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함께 박해의 제지하기 위해 호소해야 한다.”
항의를 얼마나 오래 계속할 것이냐고 물으면, 거의 모든 수련생들이 중국영사관 앞에서의 항의는 박해가 계속되는 한 계속될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세상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자비는 가장 강력한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도 眞-善-忍에 대한 바른 믿음을 파괴시킬 수 없다. 그들은 계속 평화롭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인류의 양심을 향해 박해 정지를 호소할 것이다. 거짓과 폭력은 오래 갈 수 없고 최후에는 정의가 사악을 이길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마음에 원한을 품지 않는다.
발표일자 : 2007년 8월14일
원문일자 : 2007년 8월14일
문장분류 : [해외소식]
중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7/20/159002.html
영문위치 :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7/8/14/885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