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예하오(葉浩)
[명혜망 2005년 2월 17일] 대기원시보의 사설 ‘9평공산당’은 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함으로써 공산당원인 나로 하여금 몇 십 년 동안 걸어온 이른바 ‘전인류의 꿈을 위해 분투’한 삶을 돌이켜 보게 했다. 사실 나는 1997년에 탈당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이탈하지는 못했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된 오늘, 정식 탈당함을 성명하여 공산당과 결별하려고 한다.
1937년에 출생한 나는 어릴 때부터 공산당이 체계적으로 조작해낸 거짓과 황당한 이론의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1956년 소련 공산당 제20회 대회에서 스탈린의 죄행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당시 중국 공산당의 세뇌로 인하여 도리어 중공만이 전세계 공산운동의 지주라고 믿게 되었고, 중공은 위대하고 광명하며 바르다고 여겼으며, 공산주의야말로 인류가 바라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리라 결심하고 공산당에 가입했다.
1957년, 전국적으로 지식인을 탄압하는 반우파투쟁이 일어났다. 나를 가르쳐주고 도와주었으며 꿈이 있고 진리를 추구하던 선생님들과 선배 그리고 동학들이 모두 우파가 되었다. 게다가 내가 나서서 비판하고 타도해야만 했다. 나는 그러한 고통을 정말 견디기 힘들었고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사람들이 ‘인류의 꿈’이며 ‘위대하고 광명하며 정확하다’고 칭송하는 중공이 왜 스탈린의 피비린 통치와 다를 바 없는 잔혹한 탄압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압력과 공포로 인해 나는 자신의 사상을 개조함으로써 악당이 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진리를 추구하고 꿈이 있는 지식인들을 죽음에로 몰아넣는 현실은 민족의 미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겨우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모두 무지하게 속임수에 넘어간 사람들이거나 영혼을 팔아먹은 사상이 비뚤어진 사람들이라 할 수 있었다. 이처럼 놀라운 불합리에 대해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희망을 잃은 채 고통에 시달렸다.
뒤이어 일어난 ‘사상해방’과 ‘대약진(大躍進)’ 운동은 비극으로 인해 생긴 상처에 광적으로 마취제를 주입했다. 나 역시 ‘20년을 적게 살더라도 공산주의사회에 달음박질하여 들어가는’ 운동에 열광적으로 뛰어들어 마음에 입은 상처에 보상을 받으려 했다. 만언(萬言)의 충고를 하여 탄압받은 펑더화이(彭德懷)의 사건과 3년 동안에 몇 천만 백성이 굶어죽은 뼈아픈 현실도 우리를 깨어나지 못하게 했다. 굶주림 때문에 온 몸이 붓고 병마에 시달렸지만 우리는 중국이 세계혁명의 중심에 서서 전세계를 구원하고 있다는 환상을 하며 여전히 밤낮없이 분투했다.
10년 동안의 문화혁명, 전국적인 무장투쟁은 중국의 전통문화와 정상적인 사회구조를 철저하게 훼멸함으로써 경제를 마비상태에 처하게 했고 중국을 뒷걸음질치게 했다. 겉으로는 ‘네 가지 위대함’과 ‘세 가지 열애’를 높이 외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우리의 민족과 조국이 이미 만회할 수 없는 훼멸의 길을 걷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당시 중국은 어디 가나 재난이었으며 황막하기 그지없었다. 20년 동안의 굴곡적인 삶을 통해 나는 점차 공산당의 본질을 똑똑히 볼 수 있게 되었고 생명의 의의와 가치에 대해 다시 사고하기 시작했다.
사인방(四人幇)이 무너진 후에 진행된 개혁개방은 이미 철저하게 파괴된 이상적인 문화와 도덕을 만회할 수는 없었지만 그나마 출로라고는 할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혼란스럽게 끝없는 투쟁을 하기보다는 나은 것이다. 얼어붙었던 나의 마음속에도 일말의 희망적인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상처로 얼룩진 과거의 고통을 잊기로 하고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조국에 바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89년의 탱크는 또다시 나의 모든 꿈을 짓눌러 버렸다. 공산당의 사악함과 잔혹함은 남김없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그 몇 년간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간고하게 창조해낸 성과들은 악당이 힘없는 평민들을 진압하는데 이용되었다. 이미 15년이 지났지만 나는 그 때의 처참한 장면들은 여전히 머릿속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의 민족과 조국은 정말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러던 1992년, 나는 연분이 있어 행운스럽게 우주의 높은 이치를 알게 되었고 그제야 마음속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되었다. 도덕이 고상한 좋은 사람이 되며 생명의 완미한 경지로 승화되게 하는 ‘진선인(眞善忍)’의 신념은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
그러나 장쩌민은 좋은 사람이 되려하는 파룬궁을 용납하지 못했다. 전부의 국가기구를 이용하여 3개월에 파룬궁을 소멸하려했던 그는 지금 전세계적인 공개심판대에 오르는 신세를 피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장쩌민의 눈에 가시인 파룬궁은 탄압하면 할수록 더 장대해져 5년 동안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다.
나와 같은 연령층의 사람들, 나처럼 자신을 인류의 위대한 업적에 바치려 했던 사람들은 모두 같은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같은 고통과 사색의 과정을 겪었고 같은 무거운 대가를 치렀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이 ‘9평공산당’을 읽고 자신이 직접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기 바란다. 이 기회에 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을 똑똑히 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 탈당함을 정중히 성명하는 바이다.
북미에서 예하오(葉浩)
2004년 12월 16일 초고
2005년 2월 15일 완성
문장완성: 2005년 2월 15일
문장발표: 2005년 2월 17일
문장갱신: 2005년 2월 17일 10:54:45
문장분류: [해외소식]
문장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5/2/17/9568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