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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 화제 시리즈: 금전으로 인심을 살 수 있는가?

글 / 화윈(華雲)

【명혜망 2004년 7월 23일】99년 7월 20일 이래 파룬궁 수련생들은 줄곧 이 한차례의 박해를 반대했다. 일부 해외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마트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중국영사관 앞에서 정좌(靜坐)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은 와서 묻는다. “당신들이 이렇게 하는 데는 돈을 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닌가?”

만약 당신의 친인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 당신은 그에게 돈을 요구하는가? 만약에 당신의 형제 자매가 국내에서 난을 겪고 있다면 당신이 여기서 그들을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호소할 때 당신은 보수를 요구하겠는가? 당연히 그러지 않을 것이다. 국내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우리들 여기에서도 같이 감수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자매이며 우리가 그들을 위해 호소하고 장쩌민 집단의 폭행에 항의하고 있는데 우리들이 어찌 돈을 요구할 수 있는가?

기독교의 초기에 그 신도들은 투우장(鬪獸場)에 던져 넣어져 사자(獅子)에게 물려 죽으면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래 이것이 어떤 사람이 그들에게 돈을 주기 때문이었는가? 국내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잡히고, 혹형으로 핍박하려 공술(供述)하게 하고, 감옥에 들어가고, 심지어는 박해로 죽을 위험까지 무릅쓰며 베이징에 청원하고, 민중에게 전단지를 나누어주는데 이것을 또 어떻게 금전으로 가늠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에게 얼마만한 돈을 주면 감옥에 들어가 혹형과 시달림을 받겠는가?

사실상 매우 많은 일들은 금전으로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 부부지간의 감정, 이러한 것은 모두 금전으로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군자는 올바른 도리를 말하고, 소인은 이익을 말한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의(義)를 혹자는 양심이라고도 하는데, 매 사람에게 모두 있다. 우리는 국내의 파룬궁 동수들이 박해를 받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며 거의 매일 박해 받아 치사한 사건들이 전해 오는데 우리가 만약 가서 박해를 질책하지 않고 각 계층에 박해를 제지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양심은 편안치 않을 것이다. 이것은 절대로 금전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만약 한 사람의 신념 중에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모두 보수를 따진다면, 이 신념은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名利場)으로 될 것이며 이 신념을 다시는 믿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때문에 만약 파룬궁 수련생들이 돈을 위해 이 모든 것을 하고 있다면 그들이 근본적으로 오늘까지 견지해 올 수 없다. 또한 우리는 근본적으로 어떠한 경비(經費)도 없으며 일체의 활동은 모두가 파룬궁 수련생들 자신이 부담하고 있다. 장쩌민을 대변하는 매스컴에서는 미국정부가 파룬궁에 돈을 지급했다고 거짓말을 날조하고 있는데 사실 미국정부의 돈은 납세자들의 돈이며, 중국에서 하는 것처럼 관리들이 마음대로 국민의 피땀을 함부로 써버리는 것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돈을 어디에 써도 모두 기록이 있으며 근본 파룬궁에 돈을 지급한 일이 없다. 장쩌민 집단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바로 중국민중이 파룬궁에 대한 증오를 일으키려는 것이며 죄를 뒤집어 씌워 모함하는 것의 일부분이다.

문장완성: 2004년 7월 17일

문장발표: 2004년 7월 23일
문장갱신: 2004년 7월 22일 4:11:32 PM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7/23/79694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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