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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가 분명하고, 수단이 냉혹하다. 남아공 파룬궁 수련생 총격사건은 불온한 패턴에 부합한다.

(구멍성 2004년 7월 13일 3:39)

글 / 구멍성

정말로 여기까지 온 것인가? 중국 부주석이자 독재자 장쩌민의 부하인, 쩡칭훙이 자기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남아공에서 저격수를 고용한 것일까? 암살- 즉, 그의 방문을 불리하게 만들 지도 모를 평화적이며, 비무장 한 시위자들을 살인하기 위해서인가?

사건 발생 일주일 후 보도된 파룬궁 사망자 숫자는 (중국에서 감금 중 받은 고문과 학대로) 1,000 명에 달했고 (보도), 남아공에서 다섯 명에게 가해졌던 냉혹한 시도(뉴스), 주변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실들은, 참으로 쩡과 장쩌민 도당은 그렇게까지 심한 짓을 하고자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했다.

차문을 관통한 AK-47 총알이 데이비드 량의 발에 남겨놓은 피묻은 구멍들은,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 근절” 캠페인을 어디까지 끌고 가려는가 하는 것을 확실히 말해 주고 있다. 협박 전술이나 심지어 폭력을 쓰는 행위, 만행과 차를 폭파시키고 육체적인 공격을 가하는 범죄는 이미 파룬궁 수련생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일들임에도, 중국 공산당(CCP)이 중국 국경 밖인 남아공에서 총격사건을 자행한 것은 수련생들도 놀랄만한 박해정책의 강화로 보여 진다.

그러나 왜 지금 시점에, 다른 곳을 놓아두고 왜 아프리카에서? 그리고 왜 쩡칭훙인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전에 우선 배경지식으로 몇가지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파룬궁 수련생인, 데이비드 량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다른 8명과 함께 남아공에 갔다. 그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파룬궁 수련생이자, 중국에서 박해받는 파룬궁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가라는 점이다. 그리고, 량씨는, 전에도 중공의 공격 표적이 되어왔다. 량의 차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반복적으로 파괴되었고, 그의 이름은 중공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으며, 그가 홍콩에 가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다른 일행도 비슷한 만행의 희생자였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 두 차례 협박전화를 받기도 했다. 그들은 남아공에서 쩡칭훙과 보시라이를 반인류죄로 제소하고 중국에서의 파룬궁 박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남아공으로 갔던 것이다.

6월 28일 남아공에 도착한 후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대략 2시간의 휴식을 하는 동안, 그들은 줄곧 가까운 거리에 수상한 사람이 한 명 있는 것을 알았고, 어쩌면 그들을 미행하고 있음을 인지했다. 프레토리아로 향하는 고속도로로 진입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현지 시간으로 대략 저녁 8:30 경에, 세 명의 흑인 승객을 태운 흰색 차가 두 대의 자동차 중 량이 운전하는 자동차 가까이 접근해 왔다. 량은 일행 중에 유일하게 파룬궁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 다음 흰색 차에 있던 저격수가 량이 탄 자동차에 총격을 퍼부었고, 바퀴가 정통으로 맞아 차를 서행하도록 만들었다. 차는 70마일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 다음 정체불명의 차는 평행으로 달리면서 다시금 총을 쏘았고, 이번에는 차체에 다섯 발을 맞추었으며, 량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히고 차를 차도 밖으로 벗어나게 했다. 저격수들은 차를 몇 초 동안 정지시켜 량과 일행이 차도를 벗어나는 것을 지켜 본 다음, 쏜살같이 달아났다.

남아공 경찰 강력반은 이번 사건을 살인미수로 조사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환경으로 보아 사건은 분명히 강도 범행이 아니며 우발적인 폭력행위도 아니다.

왜냐하면 첫째, 파룬궁 수련생들은 그 나라에 방금 도착을 했고, 누구에게도 불만을 사지 않았다. 더구나, 총격이 일어난 장소는, 경찰에 의하면, 범죄율이 높은 곳도 아니고 중국인에 대한 폭력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한다.

두 번째로, 만약 이것이 강도행위였다면, 저격수들이 총을 쏜 후에 그렇게 즉시 달아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차량을 정지시켜서 못 쓰게 만들었으며, 잘 무장된 상태였고, 비무장의 부상당하고 무기력한 여행객들을 의도적으로 쳐다보기까지 했다. 여기에는 A-47으로 인한 과잉살상(Overkill)을 걱정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역주: 만약 강도라면 사람을 죽이기 보다는 재물을 강탈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사람이 크게 부상당했을 때 염려하거나 걱정하는 눈빛이라도 있을텐데 그들은 전혀 없었다.)

세 째로, 무기 전문가에 의하면, AK-47 수동 사격과 관련해서, 총을 쏘는 패턴이 3~5 발 중에서 두 발의 빠르고, 정확한, 단발 사격은 결정적으로 그들이 훈련받은 저격수라는 것을 암시한다. 초보자는 그런 통제를 하기 어렵고 탄창에 있는 30발을 의식적으로 적게 쏘려고 해도 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고도로 훈련된 사수(射手)가 고속도로를 여행하는 다섯 명의 중국인들에게 닥치는 대로 총격을 가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왜 다만 차량과 일부 승객만을 공격했을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장씨 집단의 파룬궁 탄압에 대한 배경을 알아야한다.

파룬궁을 표적하는 협박 전술망이 중국의 국경 너머까지 펼쳐진 것을 고려한다면, 남아공의 살인 미수는 거의 새롭고, 더욱 놀라운 폭력 패턴으로 보인다 (보도). 샌프란시스코에서 깡패를 고용하여 파룬궁 수련생들을 때린 것이나 캔버라에서 자동차 타이어를 난도질 한 목적은 항상 파룬궁 활동가들을 겁주고, 침묵시키고 중지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총격사건은 장씨 집단의 정책과 일치한다.

두 번째 중요한 특색은 남아공을 방문한 중국 인사는, 중국 내에서 “흑면 살수”라는 별명을 가진 쩡칭훙이라는 점이다.

그는 중국 비밀경찰을 감독했으며, 파룬궁 탄압으로 악명이 높고 파룬궁 파괴의 임무를 맡은 기관인 “6-10 사무실”을 설립하는데 장쩌민과 공동으로 일했다. 쩡의 명령으로 수천 명이 불법적인 체포, 구류, 고문, 그리고 노예가 되는 고통을 당했다.

그렇다면, 쩡이 남아공에서 암살자를 고용하여 수련생들을 공격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집단학살 소송이란 불명예로부터 자신을 구제하려고 했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장쩌민과 다른 중공 고위 관리들에게 그러한 폭력이나 격렬한 수단을 쓰는 것은, 생각해보면 별 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의 때 맞춰, 마치 우리에게 어떤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듯, 남아공 주재 중국 대사관은 신속하게 이번 공격에 대해 – 사실 중국 사람에 대한 공격임에도 – 인간적인 반응대신, 정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동정이나 희생자에 대한 염려 대신에, 파룬궁 비난으로 나아갔다.

파룬궁 정보센터는 비슷한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서 이 잔학한 행동을 가능한 가장 강한 용어로 비난하는데 국제사회가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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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 2004년 7월 13일
法輪大法(파룬따파) 정보 센터,www.faluninfo.net
http://www.faluninfo.net/displayAnArticle.asp?ID=8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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