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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리둥(孫立東)이「지쳐 죽다」와 류청쥔(劉成軍)、류하이버(劉海波)가 맞아 죽다.(사진)

【명혜망 2004년 7월 9일】2004년 4월 29일,지린(吉林)성 장춘(長春)시 콴청(寬城)구 공안국 형사경찰대장(刑警大隊) 쑨리둥은 「뇌출혈로 죽었다」. 신화 사이트의 보도에서는 쑨리둥이 장기적으로 과중한 일을 하여「일터에서 지쳐 죽었다」고 했다. 대기원뉴스 사이트의 보도에 의하면, 그가 입원하고 있는 기간에 장춘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인 탠중린(田中林)은 이를 매우 중시하여 전력을 다해 쑨리둥을 응급 구조하라고 관련 부문에 지시했으며, 당조직(党組) 부서기, 부국장 취완천(曲萬臣)은 쑨리둥을 위해 특별히 3만 위안을 보냈다. 시신을 화장터로 내보낼 때, 탠중린(田中林)은 시 당조직(党組)의 전체 구성원과 성(省) 공안청, 사법청. 검찰원, 법원의 지도자들을 데리고 현지로 왔다.

그가 왜 지도자들로부터 이렇게 “중시”를 받았는가? 아마 그가 法輪功(파룬궁)을 박해하는데 힘을 기울인 것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장춘텔레비전 삽입방송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 장춘 텔레비전 삽입방송 사건
2002년 3월 5일 밤 8시경, 장춘시 유선 텔레비전 네트워크 8개 채널에서 >, > 등 法輪功(파룬궁) 진상 프로그램을 삽입 방송하였는데 30만 가구에 백만이 넘는 시청자가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아주 많은 민중들로 하여금 法輪功(파룬궁)이 모함을 받아 박해를 당하고 있는 진상을 알게 하였는데 민중들 중에서 거대한 진동을 일으켰다.

명혜망 보도에 의하면, 장춘 텔레비전 삽입방송사건이 발생한 후, 장쩌민은 암암리에 라는 비밀지령을 내려 장춘지역에서 60,00여명의 경찰이 대 체포작전에 참여하여 5,000여명의 수련생들을 체포하였다. 텔레비전 삽입방송에 직접 참여함으로서 학살당한 사람이 적어도 8명이고, 15명이 불법적으로 4년 내지 20년 형 판결을 받았다.

장쩌민의 法輪功(파룬궁)에 대한 탄압은 천 명 이상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박해 받아 치사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장쩌민이 전국의 각 텔레비전 방송국과 기타 모든 선전도구를 이용하여 사실을 왜곡하고, 파룬궁을 모함하고, 중국인민을 기만하고 독해하고, 아울러 소식을 봉쇄하여 민중들이 사실을 알 권리를 박탈하였다고 본다. 이처럼 파룬궁에 대하여 법률도 없고, 공정함을 말할 수도 없는 정황 하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릎 쓰고 삽입방송을 하여 인민들에게 진상을 알려준 것은 전적으로 정의로운 행동이다.

◆ 쑨리둥은 류하이버를 때려죽인 직접적인 책임자이다
명혜망 자료에 의하면, 삽입방송에 참여한 法輪功(파룬궁) 수련생 류하이버는 남자이고 34세이며 장춘시 뤼위안(綠園)구 병원 컴퓨터단층촬영(CT)검사실 의사이다. 2002년 3월 11일 밤, 류하이버는 집에서 장춘시 콴청구 공안분국의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혹형 고문을 받다가 13일 밤, 불과 이틀만에 박해 받아 치사하였다. 경찰은 류하이버의 심장이 멎자 비로소 손을 멈췄다. 목격자의 말에 의하면, 류하이버는 쑨리둥의 눈앞에서 무참하게 맞아죽었다. 2002년 3월 13일 밤, 7시 경, 목격자는 형사경찰대에서 몇 몇 경찰이 류하이버에게 형벌을 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류하이버는 몸에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은 채로 호랑이 걸상에 엎어져 있었으며 머리는 꿇은 자세였다. 두 경찰이 고압 전기봉을 들고 그의 항문에 힘주어 감전하였으며 옆에는 동강난 나무토막들이 있었고 류의 몸은 넓은 부위가 벌겋게 부어 있었다.

좀 지나 류하이버는 숨을 거두었다. 목격자는 쑨리둥이 죽은 류하이버에게 옷을 입히라고 사람들에게 시키고, 아울러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서는 안 된다고 말한 후 자신은 즉각 상부에 보고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 고 했다.

류하이버의 시체는 그날 밤으로 콴청구 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는데 외부에 말하기는 류하이버가 심장병으로 사망했다고 하였다. 아울러 류하이버의 시체를 극비로 화장하고 소문을 엄밀하게 봉쇄하였다. 그리하여 류하이버의 가족이 1년이나 수소문하여 알아보았지만 소식을 조금도 얻지 못했다.

◆ 장춘시위 서기- 法輪功(파룬궁) 대함에 있어 피가 흐르고 사람이 죽어도 두려워하지 말라.
류하이버가 박해 받아 치사한 후, 장춘시위 제1부서기 창샤오핑(常小平)이 콴청 공안분국에 와서 류하이버를 때려죽인 경찰을 위로하였으며, 콴청 공안분국 국장 등에게 다음과 같은 3가지 지시를 하였다.
1. 파룬궁에 대한 것은 하나의 어렵고도 막중한 정치임무이므로 피가 흐르고 사람이 죽어도 두려워하지 말라.
2. 비밀을 잘 지켜야하며 비밀이 누설되어 국제적인 영향을 조성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3. 각급 기율검사(紀檢), 감찰부문에서는 파룬궁 수련생이 맞아죽은 일에 대해 조사 하지 말라.”

“국제 추적조사위원회”가 확인한 것에 의하면, 1999년 7월 20일, 장쩌민 범죄집단이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한 이래, 뚜쇠팡(杜學芳, 장춘시위 서기), 창샤오핑(常小平, 장춘시위 부서기, 610사무실을 책임졌음), 멍더시(孟德喜, 장춘시 인대 부주임, 전 장춘시위 조직부장), 탠중린(田中林, 장춘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 인리눙(殷麗儂, 장춘시 상무위원, 장춘시위 선전부 부장), 류웬쮠(劉元俊, 장춘시 부시장, 시위 정법위원회 서기), 안리(安莉, 장춘시 부시장), 짠웨창(戰月昌, 장춘시 정협 부주석, 전 장춘시위 부서기), 판신조우(范新早, 장춘시 정협 부주석, 시위 통전부 부장), 쑨완썽(孫萬勝, 장춘시 중급인민법원 원장), 미펑쥔(米鳳君, 전 장춘시위 서기, 시 인대주임), 등이 직접 길림성 장춘시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조종하고 지휘하여 장춘시가 전국에서 파룬궁 탄압이 가장 극심한 도시의 하나로 되게 하였다.

2004년 7월 8일까지, 장춘시에서 박해 받아 죽은 파룬궁 수련생이 적어도 22명 되는바, 전국에서 파룬궁 박해가 가장 엄중한 도시의 하나로 되었다.

◆ 생전에 류청쥔은 “호랑이 걸상”을 52일이나 앉아 있었다.

중신 사이트(中新罔) 2002년 4월 1일 사진 장면. 심한 고통을 받은
류청쥔은 이미 자연스럽게 앉은 자세를 유지할 힘도 없다.
이 사진은 장(江)씨 집단의 폭행을 일관성 있게 꾸며온
신화 사이트(新華罔)가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류청쥔이 고통을 받은 실제 상황은 보다 더 엄중하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사진설명:
류청쥔은 텔레비전 삽입방송사건에서 주요 인물로 인정되어 2002년 3월 24일 오후에 체포되었다. 당시 사람은 이미 벌겋게 온 몸이 상처투성이었다. 5, 60명의 경찰이 팔뚝 같은 몽둥이로 죽도록 때렸으며, 수갑을 채운 후, 이씨 성의 경찰이 또 그의 다리에 총을 두 방 쏘았다. 나중에 류청쥔을 경찰차 트렁크에 실었다.

쑹웬(松原)에서 장춘으로 가는 도중에 차가 부딪친 사고가 일어나 류청쥔에게 총을 쏜 이씨 성 경찰은 늑골이 7개나 부러졌다. 신문보도에서는 도리어 류청쥔이 경찰을 습격하여 차를 뒤집었다고 모함하였다.

류청쥔은 감금되어 있는 동안 “호랑이 걸상”에 52일이나 앉았으며 후에 또 수갑으로 “사인상(死人床)”에 채워졌다. 그는 그를 만나로 온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감금된 후······, 두 손이 한데 모여진 적이 없었고 다리는 맞아서 이미 불구로 되어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다.”고 했다.

2002년 9월 18일, 이른바 개정심판에서, 장춘시 중급인민법원은 15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을 법원독방에 끌어 넣은 후 미친 듯이 때리고 전기봉으로 충격을 가하였는데 천옌메이(陳艶梅)와 경찰의 총을 맞아 다리에 부상을 입은 류청쥔이 혹독한 매를 오래도록 맞았다. 류청쥔은 텔레비전 진상 프로그램을 삽입방송한 이유로 19년 판결을 받았으며, 후에 길림시 제 2 감옥에 감금되어 계속 시달림을 받았다.

2003년 12월 25일, 류청쥔의 부모가 통지를 받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류청쥔은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고 몸에 열이 39도를 넘었으며 잔등에는 온통 검붉은 어혈이 들었다. 26일 새벽 4시 30분, 그는 억울함을 품고 세상을 떠났는데 죽어도 눈을 감을 수가 없다. 가족이 그에게 옷을 입힐 때, 귀와 코, 입에서 많은 피가 흘렀으며, 허벅지에도 상처가 있었는데 피가 계속 흘렀다. 하지만 사악은 죄상을 덮어 감추기 위해, 가족의 반대도 불구하고 그날 오전 10시 40분에 강제로 시체를 화장하였다.

◆ 적어도 8명이 맞아 죽었다
류청쥔, 류하이버 이외에 적어도 6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장춘 텔레비전 삽입방송으로 인해 맞아 죽었다.

장춘시 파룬궁 여 수련생 리룽(李容, 발음대로 썼음)은 2002년 3월, 텔레비전 삽입방송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현지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리룽은 3월 말에서 4월 초의 아주 짧은 기간에 박해 받아 죽었다.

2002년 3월 6일 – 34세의 길림대학 응용 수학과 교사인 선짼리(沈劍利)는 2002년 3월 6일 체포되어 2002년 4월 하순 현지 공안에 의해 박해 받아 죽었다.

2002년 3월 16일 – 한 30대의 남성 파룬궁 수련생이 장춘 진청(錦程) 공안분국 형사경찰대대에 의해 무참하게 맞아 죽었다. 이 파룬궁 수련생은 몸 여러 곳에 상처가 있었고 맞아서 내장 몇 곳이 파열되었으며, 신체가 이미 엄중하게 변형되었다.

2002년 3월 18일 – 파룬궁 수련생, 34세인 류이(劉義)는 장춘시 뤼위안(綠園)구 공안분국 형사경찰대에 의해 형사경찰대대 사무실에서 맞아 죽었다.

2003년 3월 20일 – 54세에 나는 여 수련생 리수친(李淑芹)은 창쥬루(長久路) 파출소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장춘시 제 3 간수소에서 고통을 받다가 사망하였다.

35세인 허우밍카이(侯明凱)는 2002년 3월 파룬궁진상 삽입방송에 참여한 이유로 ‘610“으로부터 5만원 현상금 및 두 직급 승진 미끼가 내걸렸다. 2002년 8월 21일에 체포되어 박해 받아 이틀 사이에 사망했으며 2002년 8월 23, 비밀리에 화장하였다.

국제대사면위원회에서는 2002년 3월 15일, 4월 11일, 두 차례나 호소를 발표하여(문건 색인번호: ASA 17/011/2002 UA 81/02) 긴급히 행동을 취해 장춘 파룬궁 수련생들의 인신 안전을 보장할 것을 호소했다.

◆ 쑨리둥의 죽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깊은 사색에 빠지게 하였다.
신화 사이트가 보도하기를 쑨리둥은 장기적으로 과중한 일을 하여 일터에서 지쳐 쓰러졌으며, 22일 후 병원에서 사망하였다고 했다.

어떤 평론에서 말하기를 사건처리는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보아야 한다고 했다. 만약 장(江)씨 집단의 민중(老百姓)을 모함한 억울한 사건이라면, 사건 처리를 많이 할수록 죄업이 크다. 장춘이 소재하는 길림성은 法輪功(파룬궁)을 박해함에 있어서 최선봉이다. 5년 이래 이미 127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 받아 치사하였는바 흑룡강성에 버금가는 전국에서 파룬궁 박해로 치사한 사람이 가장 많은 성(省)으로 되었다.

쑨리둥의 죽음은 아마 장(江)씨를 위해 목숨 걸고 일하는 악인들에게 하나의 경고 일 것이다.

류청쥔의 부친이 법집행기관에 보내는 호소문에서 말하기를, 선과 악에 보답이 있는 것은 천리(天理)인바, 살인하였으면 목숨으로 갚아야 하고, 빚을 졌으면 돈으로 갚아야 하는데 이것은 자고 이래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천리(天理)는 공정한 것으로, 법의 그물은 크고 엉성하지만 악인은 그물에서 도망칠 수 없으며,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나쁜 사람과 흉수는 절대로 천리(天理)의 징벌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였다.

“나라를 위해 힘을 다하여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다.” 라는 아름다운 이름은 인민들의 이익을 위해 분골쇄신도 결코 마다하지 않는 악비, 문천상 같은 민족 영웅들에게 남겨 주는 것이지, 장(江)씨 집단을 대신해 목숨을 걸고 좋은 사람을 박해하여 “지쳐 죽은” 사람에게 남기는 것이 아니다.

문장완성: 2004년 7월 8일

문장발표: 2004년 7월 9일
문장갱신: 2004년 7월 9일

문장분류: [시사논평]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7/9/789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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