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리리핑(李立平)
【명혜망 2004년 6월 29일】국제 반혹형(反酷刑)의 날에 파룬궁 수련생들은 세계 각지에서 혹형전을 하였다. 퍼포먼스 형식으로 짱쩌민 정권이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혹형과 참해를 재현시켰다. 무거운 음악소리 속에서 혹형전의 사실감은 문자와 그림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해외의 민중들은 진실하게 장XX정권의 피비린내 나는 독해를 보았다.
호응이 대단했던 이번 혹형전에서 장씨 집단의 어용 문인은 “반화(反華)세력에 합세했다”라는 정치적 입장에서의 비판을 또 다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은 “집안 허물은 밖으로 전하지 않는다”는 말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용히 생각해보면 한 가지 결론을 얻게 된다. 바로 장쩌민의 죄행을 폭로해야만 진정으로 나의 중화를 사랑하는 것이다.
장쩌민과 그 한 무리들은 근본적으로 중화민족을 대표하지 못하고, 중국인민을 대표하지 못한다. 심지어 중국 정부중의 각급 공무원과 중공의 몇 천만 보통 당원도 대표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 무리의 “권력을 탈취한 범죄 집단“이다. 그들이 무고한 백성에 대한 야만적인 박해와 혹형으로 짓밟은 것은 인류문명에 대한 모욕이고 중화 민족에 대한 모욕이다. 그들의 박해하는 것은 “진,선,인 (眞,善,忍)”을 따르는 파룬궁 수련생 뿐만 아니라, 지하 기독교회의 신도, 그리고 집을 빼앗긴 “청원하는” 항의 민중, 또한 인터넷에 비판문장을 발표하여 판결 받은 두다오빈(杜導斌), 잠시 거주증이 없다고 산채로 때려죽인 쑨즈강(孫志剛), 중국 미래를 탐구한다고 감옥에 갇힌 신청년 4군자이다. 그리고 작년 전염병 사스를 적발하고 6.4운동의 명예회복을 외치다 감금된 장옌융 (蔣彦勇)이다. 이런 박해를 받은 사람과 가능하게 박해를 받을 사람이 진정으로 중국인민을 대표한다. 그들은 각계 각층에서 왔고, 장 씨로부터 박해를 받은 사람은 가능하게 우리의 부모 자식이고 가능하게 우리의 형제 자매이다. 우리가 장씨 집단의 죄악을 폭로하는 것은 그들의 죄악을 제지하는 첫 발자국이다. 그들의 죄악을 제지해야만 이런 잔인한 박해와 혹형이 기타 중국의 민중에게 떨어지지 아니하고 우리의 친척 친구에게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장씨 집단이 이렇게 잔인한 박해를 하는 것은 중국인을 자기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소위 “안정은 일체를 압도한다. 일체 불안정한 요소를 맹아상태에서부터 소멸한다” 이 “안정”은 근본적으로 민중 생활의 안정이 아니다. 장씨 집단과 그에 동조하는 부패 관리와 악덕상인(貪官奸商) 그리고 이익을 얻은 자의 안정이다. 이런 안정하에서 대량의 국가자산이 점유당하고 거액의 은행예금이 도둑맞았다. 장쩌민의 아들은 이런 과정 중에서 억만장자가 되었다. 이것은 어떤 죄악의 안정인가? 이런 안정은 박해와 혹형의 기초에서 건립한 것이기에 이런 안정은 중화민족을 상해하는 것이다. 이런 안정 아래의 박해를 폭로해야만 진정으로 중화에 도움이 된다. 혹형을 폭로하는 것은 마치 집에 뛰어 들어온 악당이나 도적을 경찰에 신고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우리의 생명 재산과 존엄을 수호하는 것이지 집안의 허물을 밖에 내놓는 것이 아니다.
장쩌민은 중국인민을 대표하지 않는다. 이것은 히틀러가 독일국민을 대표하지 않고 후세인이 이라크인을 대표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은 히틀러의 통치 하에서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였고 민중의 민족주의는 고조에 달하였다. 동시에 나치스 집단은 유태인을 가둔 수용소를 위장한 뒤 기자들을 초청하여 참관 시켰고, 세계 여론을 기만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6백만의 유태인들이 학살당했고, 독일민중도 전쟁 중에서 많은 죽음을 당하고 화목한 가정이 폐허로 변했다. 2차 세계 대전 후 나치스를 전승한 영미각국은 히틀러 나치스의 폭행을 천하에 폭로하였다. 세계가 실감하고 독일 민중이 각성하게 되었다. 어느 한 독일 사람도 히틀러의 죄행 폭로는 “반독(反獨) 세력” 또는 “집안의 허물을 밖에 내놓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반대로 사람들은 인식하기를 만약 이런 죄악을 즉시 폭로하고 제지했다면, 각국 정부가 일찌기 강하게 사악을 제지했다면 이러한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장씨 집단 역시 한 방면은 태평을 외치고 또 다른 방면으로는 민족주의를 외친다. 그리고 나치스가 수용소을 그럴 듯 하게 위장하는 방법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노교소를 휴가촌으로 꾸며 세계를 기만하고 있다. 장씨의 탐욕 잔인한 통치는 실제상에서 중화 민족을 깊은 심연으로 끌어가고 있다. 파룬궁 수련생들이 장씨 집단의 죄악을 폭로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중화민족에게 닥칠 비극을 피면하는 것이다.
서방의 문명사회에서 정부관리의 일거일동은 각 야당, 신문매체, 민간단체의 엄밀한 감시를 받는다. 왜냐하면 정부 관리 들은 세금으로 살아가고 국민의 고용인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관리가 조금이라도 과실이 있으면 신문매체들은 전면적인 보도를 할 것이고 폭로하고 질책할 것이다. 만약 국민이 정부정책에 어떤 불만이 있으면 거리에 나가 항의하고 비판할 것이다. 전 미국 대통령 클린턴의 성추문이 매체에 대량으로 보도될 때 누구도 이 매체들이 ” 반미”하고 집안의 허물을 밖에 퍼뜨린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클린턴도 “안정이 일체를 압도한다”는 이유로 기자를 감옥에 가두지 않았다. 권력자들의 이런 불안정이 미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안정을 보장하였고 이 국가의 3백년 동안의 장기적인 안정을 가져왔다. 서방 정치인들의 과실과 비하면 장씨 집단의 죄악은 동일한 말로 비교할 수가 없다. 이런 죄악을 무슨 이유로 보고도 못 본 체 할 수 있는가?
작년 사스가 휩쓸 때 장씨의 위생부장은 태평을 위장하고, 장쩌민은 상해로 달아나 숨어있었다. 만약 장옌융 의사가 일어나서 거짓말을 폭로하지 않았으면 얼마의 중국인이 사스에 의해 죽었을까?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진정으로 반화(反華)하는 것은 장씨 사람들이고 거짓말을 폭로하는 것이 중화를 사랑하는 것이다. 장씨의 잔학한 통치와 우민(愚民)에 대한 거짓말은 급성 전염병보다 더한 것이다. 우리가 장씨의 죄악을 세계에 폭로하는 것이 진정으로 나의 중화를 사랑하는 것이다.
문장완성 : 2004 년 6월 28일
문장발표 : 2004년 6월 29일
문장갱신 : 2004년 6월 29일
문장분류 : 여럿이 말하다[大家談]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4/6/29/782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