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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혜평론:장(江)씨의 혹형——사망을 종점으로 하지 않는 음험한 학살

글 / 리리핑(李立平)

[명혜망 2004년 6월 30일] 전에 어느 한 우연한 기회에 사형을 묘사한 고금중외의 책을 읽었는데 정말로 소름이 끼쳤다. 이런 잔인무도한 사형은 중국의 능지처참과 서방의 십자가 등등의 학살 형벌을 포함하는데, 학살당한 아주 많은 피해자들은 모두 종교를 신앙하는 무고한 민중들이었다. 예를 들어 조기의 기독교도와 후기의 기독교의 위그노(胡格納) 파들이다. 이런 형벌과 죽음 앞에서 공포를 이겨낸 신앙인들은 나로 하여금 오늘날의 法輪功(파룬궁) 민중들을 생각하게 하였다. 그들의 조우도 보기에는 그 당시의 기독교처럼 그렇게 참혹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감당한 거대한 고통은 후자에 못지않으며 심지어 후자를 초월한다.

예를 들어 내막을 아는 사람이 폭로한 속박의(約束衣) 혹형은 허난(河南) 쉬창(許昌) 제3남자 노교소에서 전해져 나왔고, 허난성 스바리허(十八里河) 여자 노교소에서는 2003년 4월부터 단호히 굴하지 않는 파룬궁 수련생에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 옷을 앞몸에 입힌 후 뒷등에서 매듭을 매는바, 옷소매는 팔보다 약 25cm가 길고 옷소매에는 띠가 있는데 이 옷은 올이 가는 캔버스로 제작되었다. 경찰은 이 옷을 단호히 굴하지 않는 파룬궁 수련생에게 강제로 입힌다. 그의 팔을 뒷등으로 당겨 두 팔을 교차시켜 묶는다. 그 다음 두 팔을 당겨서 어깨 너머의 가슴 앞으로 가게하고 다시 두 다리와 묶은 후 철창 위 허공에 매단다. 귀에는 이어폰을 끼워 파룬궁을 모함하는 언론을 끊임없이 듣게 하고 입은 천으로 틀어막는다. 목격자의 말에 의하면, 이 형벌을 받은 사람은 우선 어깨, 팔꿈치, 손목, 팔목의 근육이 끊어지며 뼈가 골절되고 두 팔은 즉시 불구가 되는데 이런 형벌을 오래 받은 사람은 척추가 전부 끊어진다고 한다!

또 예를 들면, 충칭(重慶) 마오자산(茅家山) 여자 노교소에는, 소위 이 “문명 노교소”에는 빈대, 벼룩, 이, 모기, 파리가 아주 많다. 파룬궁 수련생은 오랜 시간동안 어두운 감방에 갇혀 툭하면 혹독한 매질을 당하거나 수갑에 채워지며 또한 어둡고 습한 감금실에 갇힌다. 그래서 아주 많은 수련생들의 몸이 붉게 부어오르며 습진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 노교소는 “인도주의”라는 명목 하에 “병치료”란 이름으로 박해를 가중하였다. 즉 모든 파룬궁 수련생의 몸에 조금이라도 가렵거나 붉은 부스럼, 궤양이 생기면 경찰은 마약중독 재소자들을 시켜 강제로 “약을 바르게 하였다”. 어쩔 때 경찰은 마약중독 재소자 6~7명이 파룬궁 수련생 한 명을 대처하게 하거나 혹은 파룬궁 수련생을 운동장에 끌고 가 전신을 위, 아래 발가벗긴 후 몇몇 마약중독자들로 하여금 사람을 바닥에 누르게 하며 장갑을 끼고 유황크림을 한 웅큼씩 잡아 몸에 마구 문지르게 하였다. 그들의 장갑에 농혈과 먼지가 가득 묻어도 바꾸지 않고 계속 다른 파룬궁 수련생의 몸에 문질렀다. 단호하게 반항하는 파룬궁 수련생은 크림을 문지르고 난 후에 또 수갑을 채워 매달았다. 몸에 약을 다 문지른 파룬궁 수련생들의 온몸에는 먼지가 묻어 어느 곳에 농혈이 있고 어느 곳에 약이 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파룬궁 수련생은 약이 발라진 후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전신이 붉게 부어오르며 옴이 생긴 면적이 더 커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미 나아진 이들은 또 악화되어 심지어 화농 등의 상태에 이르렀는데 아주 극심하게 고통스러워했다. 이는 이미 일상적인 정신적 괴롭힘의 일부분이 되었다.

전국 각지의 노교소에서 불법으로 수감되고 일체 권리를 박탈당한 파룬궁 수련생들은 단식의 방식으로 박해에 항의하고 있다. “음식물주입”이란 명목으로 단식자의 고통을 더 가중시키고 “전향률”을 높임에 있어서 경찰의 일종 “상식적인 수단”이 되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은 사건 중에서 몇 사람, 심지어 십여 명의 경찰 혹은 노교인원(의료인원이 아님)들이 굵고 딱딱한 고무호스나 플라스틱 호스(의료용품이 아니며, 윤활제 혹은 윤활분말을 전혀 바르지 않음)를 구강 혹은 코를 통해 흉악하게 식도로 밀어 넣는다. 그 다음 큰 바가지에 있는 농도를 초과한 소금물(소금이 많고 물이 적음)을 부어 넣는데 어떤 이는 익지 않은 옥수수가루에 물과 고춧가루 물을 섞으며 심지어 소주(주:중국의 소주는 알코올 도수가 아주 높음)나 자극성적인 약물을 섞어서 부어 넣는다. 단식으로 온 몸에 힘이 없는 파룬궁 수련생을 빨리 굴복시키기 위하여 경찰과 노교인원들은 고무호스를 수련생의 구강, 코, 식도 안으로 밀어 넣고 마구 휘젓거나 호스를 여러 번 반복하여 뽑아낸다. 모든 파룬궁 수련생은 음식물주입을 당한 후, 입과 코에서 피를 흘렸고 복부가 심하게 부었으며 위 속이 아주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어떤 수련생은 고무호스가 폐 속에 밀어 넣어져 극심하게 기침을 함으로써 질식하였으며, 어떤 수련생은 주입당한 후에 피를 대량으로 토하였다. 지적해야 할 것은 이런 음식물주입은 중복성적인데 사람이 죽지 않으면 계속 주입시킨다. 일부 단식자들은 이런 끝없는 잔인한 괴롭힘을 이겨내지 못하여 단식을 멈추었다.

옛날에 그 형벌의 목적은 피해자들로 하여금 길고도 극심한 고통을 받게 하려고 한 것인데, 사망을 종점으로 하였다. 더 오래 걸려도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우리는 고통의 정도를 정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무고한자들이 당한 고통은 전부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컸기 때문인데, 필자는 여기서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중국의 장쩌민 정권은 감옥, 노교소, 이른 바 “전향반”에 납치되어 온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혹형, 고문을 사망을 종점으로 하지 않았다. 그것의 종점은 파룬궁 수련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고 아울러 모함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한 불교도에게 석가모니를 욕하라고 강요하거나 한 기독교도에게 예수를 욕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 성실한 신앙자들을 놓고 말할 때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씨 정권이 조종하는 경찰과 소위 “법집행원”들은 각종 혹형을 생각해내어 납치한 파룬궁 수련생을 괴롭힘으로써 목적에 도달하려 한다.

장씨 정부는 한 방면으론 이른바 “전향률”을 간경(干警)의 직위, 보너스와 연결시키고 다른 한 방면으론 소위 “사망자 인원수”를 약속하였다. 그래서 이 간경들은 자기 마음대로 파룬궁 수련생에게 혹형을 가하고 짓밟음을 마구 행하였다. 비록 괴롭혀서 사망시킬지라도 죄에 대한 책임을 감당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혹형의 종점은 사망이 아니라 소위 “전향”이었다. 그래서 혹형의 유일한 목적이 바로 길고도 거대한 고통을 만들어 피해자로 하여금 굴복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되었다. 이런 고통은 절대로 며칠 내의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반복되고 다달이 반복되며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고통은 사망보다 더 고통스러운, 즉 사람들이 말하는 “사는 것이 죽기보다 못하다” 이다. 사는 것이 죽기보다 못한 이러한 혹형의 괴롭힘 하에서 확실히 개별적인 파룬궁 수련생들이 거대한 고통을 감당할 방법이 없어 죽음을 선택하였지만 이런 방법은 파룬궁의 가르침으로 놓고 말할 때 몹시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장씨 집단의 죄악이 조성한 것이다. 그러나 징씨 집단의 대변자인 매스컴은 오히려 허위를 날조하여 상대방을 무고[反咬, 주:피고가 원고. 고발인. 증인 등을 공범이라고 무고(고발)하다]한다. 사람을 핍박하여 사망하게 하고는 오히려 자살하였다고 파룬궁에 더 한층 먹칠한다. 정말로 천량(天良)을 모조리 잃었다고 할 수 있다.

파룬궁 수련생이 당한 혹형과 옛날의 잔혹한 학살과 또 다른 곳이 있다. 옛날의 잔혹한 학살은 야만적인 집권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하여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진행하였는바, 죄악을 가리는 어떠한 것도 없었다. 반대로 그가 추구한 것은 바로 공포적으로 진감시키는 효과였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 신앙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이미 보편적인 공식으로 되었고 심지어 중국의 헌법마저 허락하였다. 하여 장씨 집단의 모든 죄악은 모두 배후에서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것의 목적은 잔혹한 죽음으로 민중으로 놀라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신앙자의 사상을 개변함으로써, 신앙자로 하여금 텔레비전에서 자신의 신념을 모함하여 민중에 대하여 세뇌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장씨 집단은 사는 것이 죽기보다 못한 고통을 만드는 동시에 또한 온 힘을 다하여 죄악을 덮어 감추고 자신을 위하여 위장을 하고자 하는 바, 피비린내 나는 시달림을 “봄바람과 비”같은 “교육”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그 당시 나치가 수용소를 위장하는 방법을 모방하여 해외의 기자들더러 휴가촌처럼 분장시킨 노교소를 참관시킴으로써 세계의 여론을 기만하였다. 마침 죄악에 대한 은폐 때문에 죄악으로 하여금 제멋대로 날뛰게 하였다.

우리는 반드시 장씨 집단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반드시 대중들로 하여금 장씨 집단의 잔혹함과 혹독함을 알게 해야 하며, 우리는 반드시 더 전면적으로 계통적으로 심도 있게 장씨 집단의 죄악을 고발해야 하는 바, 이는 우리가 혹형 학살을 제지할 수 있는 필요한 한 발자국이다. 파룬궁 수련생들이 세계 각지의 혹형전시를 불같이 독을 해독하듯이 진행해 나가고 계속 완벽화시켜 기타 각종 진상을 알리는 형식과 협조하면서 장씨와 그것의 집단의 죄악을 만천하에 알리기 바란다.

문장완성:2004년 6월 28일

문장발표:2004년 6월 30일
문장갱신:2004년 6월 30일 2:27:18 PM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6/30/78221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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