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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혜평론:남아공화국에서 청부업자를 고용하여 살인하는 것과 대륙에서 마음대로 총을 쏘는 것

【명혜망 2004년 6월 29일】(명혜기자 쑤징[蘇晶]보도)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를 적극적으로 뒤따르는 쩡칭훙(曾慶紅)과 바오시라이(薄熙來)는 2004년 6월 26일 저녁 남아공에 도착하여 4일간의 방문을 진행하였다. 6월 28일, 호주 法輪功(파룬궁) 수련생 9명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남아공의 파룬궁 수련생들과 함께 평화적인 청원을 준비하였다. 아울러 법률적 경로를 찾아 박해에 책임이 있는 쩡칭훙과 바오시라이를 기소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수련생들은 차 두 대에 각각 나누어 탄 후에 남아공의 수도인 프레토리아(Pretoria)의 총통 영빈관(Presidential Guest House)으로 향할 때, 검은 총의 습격을 받았다. 수련생 한 명이 총에 맞아 한쪽 발이 분쇄성 골절이 되었고 차량은 엄중하게 손상되었다. 선명한 겨냥성이 있는 이번 청부업자 고용 살인사건은 즉시 광범위한 주목을 일으켰다.

이는 장씨 집단이 해외의 파룬궁 수련생을 겨냥한 첫 총격 사건으로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기 위하여 이미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만약 중국 대륙을 한번 본다면 우리는 또 이러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즉, 마음대로 총을 쏘는 것은 이미 장씨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방식 중의 한 가지이다. 이 한 차례 남아공의 총격 사건은 장씨 망나니집단이 중국 국내에서 실시한 공포주의가 해외로 뻗어나간 것이다.

* “총을 쏘아 죽일 수 있다”란 명령을 내리다

명혜망 보도에 따르면, 2002년 2월 구정 전야에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의 주요한 공범자이자 610의 두목인 류징(劉京)이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 난후(南湖)호텔에서 파룬궁 박해를 배치하는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류징은 회의에서 지린성의 일처리가 힘이 없다고 펄쩍 뛰면서 비평하였고, 파룬궁을 “철저히 제거하라”는 사명령(死命令)을 내렸다. 손에 무기 하나 없는 파룬궁 군중에게 “총을 쏘아 죽일 수 있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번 회의에서 배치한 것이었다.

그 후 창춘시는 공포 속에 빠졌다. 2002년 구정 전야에 창춘시 공안국은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연속 몇 일 동안 밤에 대 수색을 감행하였는데, 그 당시 내린 명령이 바로 파룬궁 인원이 표어를 붙이고 현수막을 거는 것을 발견하면 총을 쏘아 죽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에 명혜망에서 보도한 적이 있는데, 헤이룽장(黑龍江)성 미산(密山)시와 랴오닝(遼寧)성 안산(鞍山)시에서 이미 파룬궁 수련생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였다. 그 중에는 2002년 2월 16일(음력 정월 초닷새)에 랴오닝 안산시의 경찰이 파룬궁 수련생 세 명을 불법으로 체포하는 과정에서 권총으로 파룬궁 수련생에게 총격을 가하였고, 한 경찰이 연속 4발을 쏘아 한 수련생의 다리 부위를 맞힌 것이 있다. 아울러 랴오닝성 미산시의 경찰 두융산(杜永山)은 새해 초하루 새벽 2시경에 파룬궁 수련생 장훙루(姜洪祿)가 파룬궁 진상자료를 붙였다는 이유로 뜻밖에 총을 쏘아 다리를 부러뜨렸다. 장훙루는 후에 불법으로 14년 형을 받았다.

* 수갑과 족쇄가 이미 채워져 있는 류청쥔(劉成軍)의 다리를 향하여 두 번의 총격을 가하다

2002년 3월 5일 창춘(長春)시 쑹위안(松原)시에서 《法輪大法(파룬따파)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다》, 《분신자살인가 아니면 사기극인가》등의 파룬궁 진상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후, 놀라고 진노한 장××은 히스테리적으로 “마구 죽여라”란 밀령을 내렸다. 아울러 전국 각지에서 사망자 명단을 작성하였다. 중앙 “610사무실”의 우두머리 류징 등은 창춘에 가서 “기한 내에 사건을 해결하라”고 지휘하였다. 창춘 지역만 해도 5000여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잡혔다. 납치당하고 형벌로 자백을 강요받던 중에, 많은 사람들이 구타당하여 사망하였다. 삽입 방송에 직접 참여한 파룬궁 수련생들은 불법으로 납치된 후, 모두 혹형의 시달림을 받았으며 불법으로 중형을 받았는바, 가장 긴 형기는 20년이었다. 이번 텔레비전 삽입 방송 행동의 주요 인사였던 류청쥔이 납치당할 때, 이미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있었지만 경찰은 그의 다리를 향하여 두 번의 총격을 가하였다. 류청쥔은 그 후 불법으로 판결 받고 지린 감옥에 수감되었는데 갖은 혹형의 시달림을 받음으로써 21개월 후인 2003년 12월 26일 박해로 사망하였다.

* 여러 성(省)과 시(市에)서 파룬궁 수련생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이 모두 나타나다

파룬따파 뉴스센터의 보도에 의하면, 2002년 2월경부터 창춘시 공안이 파룬궁 수련생을 향하여 총을 쏘라는 명령을 받은 후, 랴오닝 진저우(錦州)시 공안도 6월말 밀령을 받았는바, 야밤에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한 파룬궁 수련생에게 총을 쏘아 죽였다고 한다. 그리고 5월경에는 파룬궁 박해가 가장 심한 성(省) 중의 하나였던 산둥(山東)성에서도 밤중에 경찰이 수련생을 향해 총격을 가한 폭력 행위가 발생했다.

랴오닝 진저우시의 소식에 따르면, 진저우시 공안은 2002년 6월 27일과 28일 사이에 상부의 비밀명령회의(密令會議) 방침을 받았는바, 파룬궁 수련생을 모두 체포하거나, 망을 보며 감시하다가 밤중에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자를 보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총을 쏘아 죽일 수 있다고 하였다. 기자가 진저우시의 한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이 일을 확인하였는데, 그 파출소의 소장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당신이 총을 쏜 그 일을 알려고 하는데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겐 감히 알려줄 수 없다”

산둥의 다른 한 소식에 의하면, 라이시(萊西)시 뎬부(店埠)진 파출소의 경찰은 2002년 5월 12일 저녁, 파룬궁 수련생 장샤오천(張曉臣)과 장보(張波)를 체포하기 위하여 총격을 가하였다고 한다. 내막을 아는 사람이 폭로하기를, 이 파룬궁 수련생 두 명은 파룬궁 현수막을 걸 때, 망을 보던 경찰에게 발견되었다고 하였다. 경찰은 그들이 운전하는 오토바이를 추격하는 과정에 총격을 가하였고, 또한 경찰차로 두 사람이 차와 함께 구덩이에 빠지게 하였는바, 장샤오천은 입과 코에서 피가 났으며 체포되었다. 장보는 포위공격을 당하는 과정 중에 벗어나 다른 마을의 한 수련생의 집에 갔지만 이 수련생의 집이 갑자기 수색당하는 바람에 장보도 체포되었다.

명혜망의 다른 소식에 의하면, 2003년 5월 25일 랴오닝 판진(盤錦)시의 파룬궁 수련생 류더쥔(劉德俊)과 다른 한 수련생은 집에서 악경에 의해 4, 5방의 총격을 당했다고 한다. 류더쥔은 총격을 당한 후, 납치되어 3년간 노동교양을 받았으며 그해 7월 11일 박해로 사망하였다.

* 610 지령 : 파룬궁 수련생을 마음대로 총살하라

명혜망 2003년 6월 30일 보도인 믿을 만한 소식에 의하면, 2003년 4월 상반기 무렵, 중국 대륙의 610총사령부는 소속된 각 610조직에 새로운 규정을 내려 보냈다고 한다. 규정에는 파룬궁 자료를 배포하고 집회를 갖는 파룬궁 수련생이 체포를 거절하는 정황 하에서, 610조직 성원은 공포탄을 쏘아 경고할 필요 없이 직접 총격을 가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아울러 이 규정 이전에는 반드시 공포탄을 쏘아 경고하며 만약 체포를 거절하면 비로소 사람을 향하여 총격을 가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하나의 규정은 610 사악의 무리들이 파룬궁 수련생에게 마음대로 총격을 가할 수 있고, 사후(事后)에는 체포를 거절했다고 말하기만 하면 됨을 의미한다.

대륙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에서, 장씨 망나니집단이 파룬궁 수련생에게 법률을 전혀 이야기한 적이 없으며 시종일관 국가공포주의를 취하였음을 볼 수 있다. 박해자들은 국내에서 파룬궁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총을 쏘며, 해외에서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기소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에 청부업자를 고용하여 살인한다. 허나 이런 비열한 악행들은 갈수록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장씨 망나니집단의 진실한 면모를 똑똑히 알게 하고 다 함께 이번의 잔혹하고 이유가 없는 박해를 반대하도록 할 뿐이다.

문장완성:2004년 6월 29일

문장발표:2004년 6월 29일
문장갱신:2004년 6월 29일 6:36:42 AM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6/29/78275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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