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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중한 순간, 영원한 추억

글 / 중국대륙 수련생

[명혜망] 1994년 7월에, 나는 광저우에서 사부님의 법강의에 참석하는 대단한 행운을 가졌다. 그 기간의 시간은 대단히 귀중했으며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정법을 전하니 만 마가 가로 막네…” > 광저우에서 설법하시는 동안 장소가 끊임없이 바뀌는 것으로 보아 그것은 이미 분명했다. 처음에는, 장소가 광저우 일반 노동 조합의 강당으로 잡혀있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강의 장소가 다른 곳으로 바뀌었고, 둘째 날에도 강의 장소가 다시 바뀌어서, 링관시(Lingyuanxi)도로에 있는 군대 강당에서 열렸다. 나중에 내가 이를 회고했을 때, 나는 사부님이 법륜대법을 소개하시는 동안에 만났던 어려움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법 강의를 하실 때, 그분은 항상 일찍 강의 장에 도착하셨다. 내가 강의에 참가했을 때, 청중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이층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어느 날 내가 미리 강당에 도착하게 되었고, 아직 강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밖으로 나가서 현관 위 이층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 순간 나는 내 일생에서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기쁘게 놀랐다. “사부님이 오셨다!”라고 생각하고 그곳에 서서 망연히 쳐다보면서도, 아래층으로 내려가 사부님을 맞이하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사부님이 혼자서 걸어오시는 장면이 내 가슴에 대단한 충격을 주었다. 왜? 나의 기공에 대한 흥미는 1984인가 1985년에 시작되었고, 점점 더 흥미를 갖게 되었다. 나는 항상 높은 공력과 높은 도덕성을 가진 사부님을 찾기를 희망했었다. 80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기공은 중국에서 고조되었고, 많은 기공 마스터들과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중국 전역에서 나타났다. 나는 그때 대학에 있었고 그들 몇 명에게 편지를 썼었지만 한 번도 답장을 받지 못했다. 나는 겨울과 여름 방학 동안 그들을 찾으려고 갔었지만 허사였다. 1998년에, 내가 다니는 대학에 기공협회가 세워졌다. 협회는 몇 명의 지역 마스터들을 초청해서 기공 공연을 하도록 했다. 그들은 항상 차를 타고 대학으로 오고 갔으며, 일반적인 대학생들은 그들 가까이도 접근하지 못했었다. 내가 사부님을 만났을 때는 그분은 이미 전국적으로 이름이 나있었다; 하지만, 그는 차를 타고 오지도 않았으며 호위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강의를 하시기 위해서 그냥 자연스럽게 그리고 온후하게 강당으로 견정하게 걸어오셨다. 그분의 특별한 태도는 그의 온화함에서 체현되었다.

나는 사부님을 직접 보았던 모든 수련생들이 사부님의 매 한 말씀과 행동에서 감동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문장, 미소, 또는 그가 손을 흔드는 것, 모든 것이 대각자의 광대한 자비와 무아를 체현해낸다. 이 모든 것들은 모든 인간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인상을 남기게 될 것이고 가장 귀중한 것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문장발표: 2004년 5월 6일

문장완성: 2004년 5월 6일

문장분류: [개인수련]

중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4/24/73036.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4/5/6/477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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