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2004년4월13일]명혜기자 : 메이제 (梅洁)
제60회 유엔인권회의 기간, 중국 인권은 또 한번 세계의 초점으로 되었다. 해외 분석가들은 파룬궁(法輪功) 인권문제는 사실상 중국인권문제의 중추라고 말하였다. 만일 파룬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기타 중국의 인권사항은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없기 때문이다.사실상 파룬궁에 대한 이 한차례의 박해는 수련자들뿐만 아니라 각 계층과 연령,지역의 13억 중국인의 인권이 모두 엄중하게 상처 받은 것이다.
(1)생명과 신념 사이에서의 선택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쩐싼런에 따라 수련하도록 가르친다. 수많은 중국 백성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쩐싼런에 대한 실천을 통하여 건강한 신체와 도덕의 승화를 만끽하게 되었다. 비틀어진 집념과 질투심의 이끌림 속에서 장씨는 천백만 수련군중에 대한 잔혹한 탄압을 감행하였다.
명혜망 최근 정보에 의하면 민간 경로를 통해 확인 바로는 2004년 4월 11일까지 박해 받아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은 이미 939명인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박해 받아 사망한 수는 80명이고 그 중 27명은 올해 1월1일부터 4월10일 3개월 남짓한 시간에 사망한 것이다.
5년 남짓한 박해 속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명예상에서 더럽히고 경제적으로 무너뜨리고 육체적으로 소멸하라”, ”때려 죽이면 자살로 꾸며라”등 단체 멸종 정책은 파룬궁 수련생 개개인이 생명과 신념 둘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도록 하였다. 명혜망 4월2일 보도에서 허베이(河北) 허화컹(荷花坑) 노교소(勞敎所) 악경 가오융징(高永敬)은 수업할 때마다 “나는 전 성에서 이름난, 골회암만 전향시키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떠벌였다. 이 말의 뜻인즉, 대법제자가 학대 받아 죽어 골회로 되면 전향 시킬수 없는 기타 사람은 혹형으로 박해하여 반드시 “전향”시킨다는 것이다.
2003년11월14일의 보도를 보면: 지린(吉林)성 일부 회사에 상급의 비밀 문서가 전달되었다. 주요 내용은 재직중인 대법제자에 대하여 상세한 “처치계획”을 작성하라는 것이다. 즉, 당원은 당적을 말소, 교사는 수업자격을 취소하고 노동자는 노동합동을 해지하고 직책과 직무평가자격을 취소하며 석×박사 학위 연수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등이다.기획 중에는 2003년 말까지 50—70%, 2005년까지는 95%의 “전향률”을 달성해야 하며 회사에서 못하겠으면 세뇌반에 강제로 보내라는 것이다.
비록 중국 관리당국은 박해의 잔혹성을 덮어 감추고 혹독한 고문을 감행한 것을 줄곧 부정하며 국제 사회에 파룬궁에 대한 정책은 휴머니즘이고 “다뜻한 배려”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상 중국에서 전해져 나온 혹독한 고문 방법은 백여종에 달하고 사용대상자들 가운데 부녀자와 노인들도 상당한 비례를 차지하는데 참으로 소름이 끼친다. 어떠한 방식을 통하여 사람의 사상과 신념(信仰)을 강제로 개변시키려는 것은 모두 휴머니즘이 아니며 인류 기본권리에 대한 유린이다.
(2)국제인권 관찰의 맹점 : 중국 일반 국민들이 받았던 인권 상해가 우선이다
이번 박해의 성질을 반 인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박해중에서 사용한 거짓말과 폭력 등 수단은 도덕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박해과정 중에서 장쩌민은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도덕기초와 장벽을 망가뜨렸다는 것이다. 5년 남짓한 박해속에서 파룬궁을 제거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장씨는 중국 국가기구, 국가정책, 매체, 사법기구, 국가자원을 이용하였고 또한 무고한 중국민을 이용하였다. 이번 박해는 비록 파룬궁을 겨냥한 것이지만 13억 중국민이 받은 상해는 더욱 처참한바, 이런 상해는 피해 받은 자 본인과 국제사회의 충분한 중시를 일으키지 못하였을 뿐이다.
아래에 박해를 실시한 수단을 토대로 중국 보통 국민들이 받은 도덕과 인권상해를 분석해 본다.
□ 진실은 버리고 거짓만 남기다(去真存伪)
중화민족이 역사적으로 제창했던 “언필신(言必信)”, “일언구정(一言九鼎)”,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남기라(去伪存真)”, ”성의로 상호 대하라(以诚相待)”등 미덕은 대규모로 파룬궁을 탄압하는 과정인 이 몇 년 사이에 종래로 없던 도전을 받게 되었다. 전국적으로 분포된 수많은 언론 매체와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박해 시초에 ”파룬궁을 반면 보도하라”는 장씨와 각급 610의 지시를 받았다. 국제 추적에서 제공한 증거를 보면 1999년 7월, 파룬궁을 탄압한 초기, 대륙 정부에서 통제한 매체에서 정신병, 자살, 약을 먹지 않아 발생한 ”1400개 사망사례”, ”돈을 긁어모았다”, ”호화주택”등 선전은 장씨가 공개적으로 말한 “610사무실”에 규정한 선전 ”화음”에 완전히 부합되었다. 5년간 박해는 끊이지 않았고 관영매체의 거짓말도 그칠 줄 몰랐다. 가장 전형적인 사건은 2001년초 장씨 집단이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을 조작하여 파룬궁에 죄를 뒤집어 씌운 것으로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을 선동해 파룬궁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장씨집단은 적개심(仇恨)을 불러 일으킨 선전을 이용하여 중국 국민의 지정권(知情权)을 엄중히 유린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국가매체에 대한 신임을 악용하여 전국인민을 세뇌시키고 적개심을 선동하였다. 이런 적개심을 일으킨 선전은 각 급 정부, 당 단위, 교육계, 문화계, 소위 일컫는 “반사교협회”, 공회(노동조합), 부녀연합회 등을 통하여 전반 사회에로 밀고 나갔고 외교수단으로 세계로 퍼져나갔다.
국제추적에서 제공한 정보에서 교육계를 예로 들면, 2001년 2월 6일 하루 사이에 중앙 ”610”사무실 주임 왕마오린(王茂林), 공청단 중앙 서기처 제1서기 저우챵(周强),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 자오융(趙勇) 등의 직접적인 지휘하에, 전국 100여개 대, 중 도시의 근 천개의 사회지역구의 800만 청소년들이 파룬궁을 반대하는 선전활동에 직접 이용되었다. 이날 선전 포스터 500만 부를 붙였고, 선전자료 천만부를 나눠주었으며 집회만 200여곳에서 진행하였다. 2001년 2월 전국 100여개 대,중 도시의 1500여개 청년사회지역구에서 진상도 모르고 압력으로 이용당한 청소년 학생들의 이끌림 속에서 1200여만명의 사회 지역구 주민들이 “믿지 않고 전하지 않으며 제지한다”는 보증서에 서명하였으며 청소년들을 이용하여 파룬궁 반대 위풍과 기세를 사회에로 밀고 나갔다.
워싱턴 포스트의 2001년 8월 5일자의 보도에는 어느 중국 관리가 한 말을 인용하였다.(탄압은 효과가 있는가 의 질문에 대하여)세가지 구성요소: 폭력,선전과 세뇌로 결정되며 고압 선전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중국사회에서 파룬궁을 반대하는 쪽으로 기울어 질 때 수련자들로 하여금 신념을 포기하라는 압력은 커지게 되고 정부에서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 수련자들한테 폭력을 사용하기가 더 쉬워진다고 말했다.
거짓말을 만들어 냄과 더불어 장쩌민과 각급 610은 파룬궁 진상이 전파되는 것을 극력 봉쇄하고 막았다. 탄압 초기 장씨 집단은 파룬궁 관련서적과 음향자료를 대량으로 소각하여 사람들이 파룬궁을 직접적으로 요해하지 못하게끔 했다. 탄압이 시작된 후, 장씨는 사이버 경찰들을 대량으로 고용하여 사이버 감시와 통제를 감행하였고 또한 해외 파룬궁 사이트를 봉쇄하였다. 사람들은 친척 친구들에게 파룬궁에 관한 이메일을 보냈다가 투옥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캐나다 주민 장리(張麗)의 남편 허리즈(何立志)가 사람들에게 쩐싼런 글자가 씌여진 신년카드를 나눠주었다가 혹독하게 매 맞아 사망하기도 하고(예로 헤이룽장(黑龍江) 파룬궁 수련생 류제(劉傑), 텔레비전 스폿방송으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린 수련생이 혹형과 학대 받아 사망하거나 (예로 류청쥔(劉成軍)10년 혹은 20년 불법 판결을 받았다.
흑백을 전도한 피비린내 나는 선전과 전 국민에 대한 세뇌는 중국 국민에게 엄중한 피해를 가져다 주었다.
□선을 억제하고 악을 제창하다( 抑善扬恶 )
박해 중에서 인간의 악한 일면이 충분한 격려를 받았다. 정치적인 고압정책과 이익을 미끼로 수많은 중국 사람들은 정의와 이익중에서 후자를 선택하고 박해에 참여하였다. 예를 들면 파룬궁 수련생들의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는 것을 얼마나 유효 적절하게 막았는가가 각급정부관리들의 정치성과를 평가하는 표준이 되었다. 만일 속한 회사에서 파룬궁 수련생 한명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면 이 회사의 각급 담당지도자가 즉각 해임 당하였다. 장씨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수시로 탄압하라고 명령하였다. ”신문자유 선도보”의 보도를 보기로 하자. 중앙에서는 전국 당정 기관에 파룬궁 활동을 통제하는 것을 사업의 중점으로 두라고 명령하였고, 파룬궁 문제에 대한 처리 상황을 각급 지방관리들의 사업표현을 평가하는 하나의 중요한 항목으로 여겼다. 파룬궁 수련생들이 대대적으로 베이징에서 청원한 후 중앙에서는 성급 지방 간부들을 베이징에 모집하여 매번 회의때마다 각 지역의 베이징에 청원하러 온 파룬궁 수련생 인원수를 통보하고 1, 2, 3위를 차지한 지역은 지명하고 비평 받았다.
국제 추적의 조사결과, 2001년 9월 초 뤄간(羅幹) 이 직접 지휘한 “610 사무실”은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을 발견하면 비밀리에 체포하고 감금할 수 있고 경찰이 만일 발견하고도 체포하지 않으면 경찰공직을 취소하고 호구를 말소하라고 명령하였다. “610 사무실”이 내려 보낸 파룬궁을 탄압하는 데 대한 각종 비밀 명령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박해 받아 사망한 숫자가 급속 상승하게 하였다.
동시에 파룬궁 수련생들을 핍박하여 신념을 포기하는 “전향지표”를 기층 단위와 노교소 등지에 내려 보냈다. 이런 압력 앞에서 성, 시, 현, 각 노교소, 파출소, 세뇌반은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층층으로 압력을 가하고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하여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잔혹한 박해를 감행하였다.
파룬궁 수련생을 적극적으로 탄압한 각 급 정부 관리는 승진하였고(예를 들면 뤄간(羅幹), 저우융캉(周永康), 우관정(吳官正) 등) 노교소의 옥경과 파출소의 경찰들은 “영웅”으로 추대 받고 표창과 장려를 받았으며(예로 마싼자 노교소의 쑤징(蘇境), 베이징 공안국 천안문지역 분국 정위 천여우(陳友)) 노교소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학대하는데 이용당한 죄수들도 감형을 받았다.
국제 추적의 조사 결과, 2002년 5월 장(江),뤄(羅)는 내부”지표”를 내려 보내어 보안인원들이 파룬궁 수련생을 체포하도록 금전으로 자극하였다. 광둥성에서 온 소식에서 각 회사의 보안계통에 문서가 전달되었는데 문서에서는 “아직도 파룬궁을 연마하는”사람을 체포하면 일인당 3000위안씩 장려한다고 말하였다. 명혜망의 소식으로는 2004년 4월 10일까지 광둥에서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은 이미 26명인 것으로 확인 되었다.
파룬궁 수련생들이 베이징에 청원하어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기차역, 부두의 입구 바닥에 파룬궁 창시자의 사진을 펼쳐 놓고 사람들더러 밟고 지나가게 하였고 지나던 승객더러 파룬궁과 창시자를 욕하게 하였고,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파룬궁 수련생으로 간주하고 즉석에서 체포하였다. 지린성(吉林省) 철도계통에서는 기차표의 뒷면에 파룬궁을 모독하는 글을 인쇄하여 검표구를 지나는 사람마다 이 글을 읽게 하였다.
일부 파룬궁 수련생들은 사회와 심리적인 거대한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소위 일컫는 강제 “전향” 된 후, 자신의 신체 건강과 도덕을 승화시켜준,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신념과 무한히 존경했던 사부님을 모독하는 글을 썼을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과 신문에 반드시 공개적으로 태도 표명을 해야 하고 노교소의 잔혹한 학대를 미화하고 “칭송”하여야 했다. 일부 쩐싼런을 배반한 사람들은 노교소의 기타 파룬궁 수련생을 “전향”시키는데 이용되었다. 후에 깨달아 돌아온 많은 사람들은 좋은 사람으로부터 악한 사람으로 “전향”된 이 특수한 인생 경력을 회억할 때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인간성은 극한으로 왜곡되었고 존엄성은 극한까지 꺾어졌다.
이번 박해의 실질은 좋은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악한 자를 더 악하게 만든 것이었다.
□적개심을 심어놓다
1999년7월 탄압이 시작된 후, 중국 관영 신문은 전면기사로 파룬궁을 모독하는 동시에 장씨의 “세개 대표이론”을 크게 부각시켰다. 이처럼 선양하고 통제하는 분명한 선전은 백성들의 사상을 “세개 대표”사상에 통일시켰는지는 몰라도 장씨의 질투심이 신문에까지 반영된 것만은 사실이었다. 바로 이런 질투로 야기되었기에 장씨는 시작부터 의식형태중의 신념 차이를 적아 모순으로 선을 그은 것이다.
질투에서 파생한 쟁투심과 증오심리는 중국 사회에 인위적으로 확산되고 깊어져 갔다.”분신 자살사건”사기극이 나타난 후 파룬궁에 대한 비판은 규탄으로 변해 갔다. 증오 선전은 라디오 방송, 신문, 텔레비전방송으로 중국 대지의 구석까지 전해졌다. 관영보도에서는 수많은 규탄 “좌담회”에서 파룬궁에 대한 탄압을 엄숙한 한차례의 정치투쟁으로 간주하고 사상적으로 절대로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되며 정부에 진일보로 파룬궁에 대한 타격력을 가할 것을 요구하였다고 떠벌였다. 사람들의 피 속에 흐르는 적개심은 갈수록 짙어지기만 하였다.
자 장씨집단은 어느 중국사람이나 놓치지 않고 개개인마다 파룬궁에 대한 태도를 표명하게 하였다. 파룬궁을 동정하고 지지하는 사람은 실업과 학교에서 쫓겨나거나, 심하면체포되고 감금 당하였다. 국제추적의 조사결과, 화둥(華東)사범대학 2003년 석사 연구생 모집 시험의 방법중에서 명확히 규정하였는데 수험생은 일부 중대한 정치사건(예하면 “파룬궁”문제 등)에 대한 태도와 인식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또 명혜망에서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는 여대생이 납치되었는데 이유는 “그녀가 파룬궁을 동정하는 자”였기 때문이라고 보도하였다.
동시에 파룬궁에 대한 증오심을 학생들의 교재에 써넣었고 각 급 시험에 편입하였다.예를 들면 2001년 석사 연구생 시험 정치 이론시험 문제와 해답의 두번째 문제(선택문제)의 제18번째와 22번 작은 문제에서 시험문제와 답안은 파룬궁 수련생들의 사상과 행위를 이상하고 위험하다고 왜곡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2001년 전국에서 연구생 수험생수가 처음으로 50만을 돌파하였다고 한다.)
파룬궁 박해에 대한 국제 사회의 질책을 회피하고 국제사회를 우롱하기 위하여 장씨집단은 선동한 군중들을 부추겨 전국 범위에서 “백만명 서명”을 감행하였다. 국제추적의 보고를 보면: 2001년 1월11일, 백만명 군중 서명활동이 베이징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3월 중순에 “사교반대협회”에서 제네바 유엔인권회의에 100권의 서명 포목을 가져갔는데 무게는 1톤이나 되였으며 주최측은 150만명이 서명하였는데 전국인구 비례의 천분의 일이라고 설명하였다. 당시 중국정부는 성을 기준으로 초월하는 민간 단체활동은 금지하였다. 이 서명운동이 전국 주요 도시에서 전개 될 수 있었던 것은 관리당국의 조직적인 힘에 의거한 것이라고 이 보도에서 분석한다. 예로 톈진시는 공청단시위(团市委)에서 조직하였고 장시(江西)의 서명 지점은 성정부 앞 광장에서 진행되었다. 또, 각 고등학부의 서명은 교육부와 각 지역 교육위원회에서 통일로 배치하였다.
원한선전은 사람들이 이성을 잃게 했고 냉정한 사고를 못하도록 하였으며 진정으로 선을 향하여 수련하는 군중들은 사회의 존중과 이해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멸시를 받았다.
□정신적으로 격리시키다
증오 선전외에도 주련제, 고발제 사이트감시, 통제 등 수단으로 파룬궁 수련생들을 고립된 상태에 빠지게 했다.파룬궁 수련생들은 노교소 혹은 세뇌반에 갇히지 않아도 가정이나 가도 위원회나 직장 상사,그 지역 파출소 등 여러 방면에서 사회의 감시와 세뇌의 압력을 받았다. (창춘(長春)과 다롄(大連) 등 지역 일부 가도위원회에서 실행한 “5보1″제 등이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쩐싼런을 믿는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적대시를 받았고 격리당하고 및 사회와 동 떨어지게 하였다.
장씨집단은 ××당이 실시했던 95%의 군중으로 5%의 “적”을 대하는 군중 운동의 일관된 수법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국가 공포주의의 위협을 충분히 체험하게 하였다. “안전”한 95%의 진영에 들어서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은 부득불 영혼을 팔아 먹었고 심지어는 친구에게도 서슴없이 해를 끼쳤다(落井下石). 중앙 610두목 류징(劉京)은 중국의 노교제도를 자찬하는 어느 공개 담화에서 아내가 남편을 노교소로 보냈다고 지껄였다.의외로, 이는 이번 박해의 반인류의 본성을 폭로한 것이었다.
(3) 기초도덕을 짓밟아 조성한 사회적 손상은 헤아릴 수 없다
구이저우(貴州)의 어느 한 관리가 파룬궁 수련생을 세뇌 할 때,중국은 현재로서는 쩐싼런을 제창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파룬궁을 탄압한 몇 년 사이, 장씨와 610 두목 뤄간은 살인 방화를 관계하지 않더라도 파룬궁만은 틀어쥐라고 제기하였다. 이런 정책 밑에서 중국의 사회치안상황은 뚜렷하게 나빠졌고 탐오부패는 갈수록 성행하였다.
누구나 알다시피 성의로 믿고, 착하고, 상호 돕고, 관용과 이해는 사회의 안정과 안전의 보증이다. 그러나 이런 미덕에 대한 부정은 한 나라, 민족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사람들이, 심지어 가장 성의로 믿음 규칙을 지켜야 할 대중매체가 거짓말에 대하여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며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해칠 때에도 전혀 수치감을 느끼지 못하고 “때려도 맞받아 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 원칙을 비웃고 머리속에는 증오와 쟁투심으로 가득찼다면, 이러한 군중단체가 사회에 어떤 잠재적 위기를 가져오는지 누가 예측할 수 있을까? 파룬궁을 탄압함과 더불어 장씨집단은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인간성과 도덕을 파괴하였다.
일부 해외의 지식인들이 말한 것처럼 현재 해외와 국내를 망라하여 사회의 수많은 사람들은 이미 박해의 존재와 잔혹성을 다 알고 있다. 압력이 없고 이익을 도모하지 않는 하나의 환경 속에서 그들은 모두 자신이 파룬궁 박해를 반대한다고 표명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위”와 일치하지 않으면 직장을 잃게 되고 명예적으로 손실을 입게 되며 당신을 “반중국세력”으로 간주하여 중국에서의 사업기회를 놓친다는 등등으로 그들이 위협 받을 때면 사람들은 말을 바꾸며 인권박해와 신념의 박해의 만연됨과 지속됨을 아랑곳 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은 심지어 악행을 돕는다. 이토록 개인이 받았던 정신적 손상과 사회 양지(良知)의 손실은 숫자와 금전으로 따질 방법이 없는 것이다.
문장완성:2004년 4월 12일
문장발표 : 2004년 4월 13일
문장갱신:2004년 4월 13일 10:05:25 AM
문장분류 : [기사논평]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4/13/722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