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 ―”홍콩 민중들이 승리하다”
2003년 9월 10일
중국은 전 세계에–특히 대만을 향하여–어떻게 “일국이체제(一國二體制)”가 작동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 홍콩을 하나의 모범답안으로 제시하면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최근에 중국국내의 엄중한 보안법을 홍콩의 지도자들이 내동댕이쳐 버리도록 만든 홍콩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강경한 시위를 중국은 아마 슬쩍 지나쳐버리려 할지 모른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볼 때 그보다 더 훌륭한 시위는 없을 것이다. 만약 ‘자유법안(measure of freedom)’이 홍콩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이것은 홍콩민중들이 이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중히 여기는 시민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항의했다. 놀랍게도 홍콩 정부는 마지못해 항복을 했고 북경은, 적어도 겉으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6년 전 영국이 통치권을 양도한 이래, 홍콩을 중국의 특수 행정지역으로 통치해온 홍콩의 기본법에서는 국내 보안법을 받아들이도록 되어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행시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되어있지 않았다.
홍콩의 행정수반, 둥젠화(Tung Chee-hwa)는 이번 여름에 인기가 전혀 없는 보안법을 전격적으로 통과시키려했다. 이번에 제안되었던 법은 홍콩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자유로운 언론, 자유로운 결사와 홍콩의 언론자유를 위협했으며, 영장 없는 수색권을 포함해서 전면적인 권력을 정부에 부여하였다.
이것은 홍콩정부가 중국본토에서 금지된 조직들과 관련된 지방 그룹들을 추방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중요한 예로 중국에서는 금지되었지만 홍콩에서는 자유로운 파룬궁이 있다.
홍콩시민들은 거리로 나갔다. 전인구의 약 10%에 달하는 50 만 명의 홍콩 시민들이 7월 1일 집회에 참석했다. 이것은 천안문 광장에서 있었던 민주화 운동–결국은 짓밟혔지만–이래 가장 큰 모임이었다.
그 한 달 동안 다른 많은 집회들도 있었다. 민중들의 거센 반대에 직면하여 처음에 정부는 원래 안을 약간 수정한 반-파괴분자 법(anti-subversive law)을 만들어보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민중들의 뜻에 머리를 숙이고 이것마저도 철회했다.
전투가 끝나기에는 아직 멀었다. 둥젠화가 반-파괴분자 법안을 철회시키는 결정은 대다수의 뜻에 따른 것이었지만 이것은 또한 전술적인 움직임이기도 했다. 그의 인기는 법안 때문에 바닥에 떨어졌고 또 내년 여름에는 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보안법은 어떤 형식이로든 다시 표면에 부상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있었던 홍콩의 여름시위사태와 홍콩 당국 및 북경에 있는 중국정부의 반응은 앞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인구대국인 중국에서 진행될 역사적이면서 민감한 변화(transformation)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지난 25년 간 중국에서 일어난 경제적 자유화는 국민들의 생활 수준을 높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자유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게 했다. 공산당 지도자이기도 한 중국의 새 국가주석 후진타오(Hu Jintao)는 당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되 또 점증하는 민중들의 기대를 만족시켜야하는 어려운 과제에 당면해 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는 아마 공존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하지만 홍콩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더 밝은 미래를 가지고 있다고 확고하게 선포했다.
http://www/chicagotribune.com/news/opinion/chi-0309100060sep10,1,361922.story
(2) 시애틀 타임즈(The Seattle Times)― 홍콩 민중들의 외침과 승리
논설 (2003년 9월 10일)
북경정부로부터 임명된 홍콩의 행정수반이, 7월 1일 즉각적으로 50 만명의 시민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던 국가 보안법(National Security Ordinance)을 철회했다. 이 철회는 6백 만 홍콩 시민들의 승리이자 장기적으로 본다면, 중국민중들에게도 승리다.
이 법안은 반역, 파괴, 탈퇴, 선동, 선동적 자료의 출판을 금지시켰다. 이러한 범죄가 적용된다고 믿어지면 경찰은 영장 없이도 시민들의 집을 수색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법은 만약 중국에서 금지된 그룹에 “속”해 있거나 그들과 “연계”되어 있다면 홍콩에서도 금지하도록 규정하였다.
이 부분은 분명히 중국에서 금지된 신앙 집단인 파룬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중국에서 자유롭지 못한 천주교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걱정하도록 만들었다.
홍콩 당국은 이 법이 합리적인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주장을 했다. 그러나 사실 어떤 부분은 그렇고 어떤 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이 일이 있기 전에 홍콩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스스로를 옹호해 본 적이 없었다. 영국이 통치하고 있던 대부분의 기간 동안 민중 선거도 정치적인 당도 그들에게는 없었다. 1989년에, 중국이 북경에서 학생 시위자들을 징계할 때, 홍콩 사람들도 거대한 시위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들의 정부를 반대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금년에 그들은 스스로를 옹호했으며 통치자들이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도록 요구했다. 물론 당국이 고개를 숙이는 일은 체면을 차리기 위한 두 달간의 지체를 거치고 나서야 일어난 일이다.
아마 미국인들 중에서 이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쯤 수억의 중국 사람들은 들었을 것이다. 이것은 21세기를 위한 좋은 징조이다.
문장분류: 뉴스와 매체보도
영문위치: 1) 시카고: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3/9/12/40188.html
2) 시애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