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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지 않는 마음으로 일체를 대한다

글/대법대자

[명혜망]어느 한번, 동수의 한마디 말이 나의 마음을 좀 괴롭게 하였다. 집에 돌아온후 나는 자세히 자신을 찾았는데 원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잘 대해 주는데는 순정한 마음이 아니였다, 늘 다른 사람을 잘 대해주어 자신도 무엇을 얻을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어찌 될말인가? 이 마음을 나는 아주 깊이 감추었다. 후에 나는 자비는 완전히 다른사람을 위한것이며 뿐만 아니라 자신은 그 중에서 하나도 얻지않는 순정하고 무사(無私)한 경지라는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수련은 선천적인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이것은 곧 한점 한방울로 부터 원래의 순진한 경지에로 도달하는 것이다, 우리 몸은 이 만장 속세의 먼지중에서 어떻게 진정으로 철처하게 대법을 실증하는데 도달할수 있는가 하는 이것은 바로 우리가 제일 순정한 마음으로 일체를 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어떤때 우리는 왜 마음이 조금 괴로운가? 여전히 자신이 지불한데 대해서 오히려 ” 응당 있어야할” 보답과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는다는 것이 아닌가? 이래가지고 어찌 제일 순정한 상태에 도달할수 있는가?

어떤때 우리는 각양각색의 “정(情)”중에서 지나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은 왜인가? “미혹”과”사(私)”를 돌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로지 중생을 위해 한 막을 연출한 것이라네”(>) 선천적인 “나”는 어디이렇게 많은 변이와 순정치못한가? 선천적인 나는 투명하고 자재 자유로웠고 지혜는 무궁하고 법력은 무한한 것이다, 사부님은 우리를 제도하기 위해 일체를 다 소모하셨는데 사부님은 무엇을 위해 그러하셨는가? 우리의 생존을 더욱 좋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우리가 동수들을 위해도 좋고 중생을 위해도 좋고 왜 진정하게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자비롭게 그들을 대하지 못하는가? 이것 본신이 각자 경지의 체현인가? 이런 표준에 도달하면 어떤 사람이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할수 있겠는가?

망망한 우주의 일체는 모두 법이다, 우리는 모두 이 법중에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완전히 법에 동화된 새 생명이 되어야 새로운 우주중에 존재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법에 동화된 생명은 자연적으로 대법이 그 층차에서 개척한 무량한 복을 향수할 수 있다 속세와 일체 관련된 것을 다 내려놓아야만 무사하고 당당하게 일체 중생을 마음에 담고 우리의 정념으로 푸른 하늘을 개척하여 공동히 법정인간의 아름다운 내일을 맞이하자.

개인체험이니 다만 참고로 하기 바란다.

발고:2003-2-25
분장분류:[학원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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