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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연(善緣) – 런던의 주영(駐英) 중국대사관 맞은 편에서 발생한 일

[명혜망] 2000년 10월부터 런던의 대법제자들은 매 공작일을 아침과 매주 목요일 저녁 모두 주영(駐英) 중국대사관 맞은 편에서 연공하여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작년 여름부터 매일(주말 포함) 오후마다 또 몇 시간의 진상을 알리는 시간이 증가되었다. 그 외에, 우리는 매 주말 저녁에 또 대사관 맞은 편에서 연공하고 법공부하며 발정념하였다. 바람이 불든 비가 오든 날씨가 춥든지 덥든지를 막론하고 모두다 조금도 해이됨이 없이 하였다. 우리의 행동은 세인들에게 대법의 평온함과 상서로움을 펼쳤고 오고가는 행인들을 감동시켰다. 더욱 많은 세인들의 동정과 지지를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중국 국내의 대법제자들을 성원하기 위하여, 독일에서 장(江)XX에게 근거리 발정념하는 대법제자들을 성원하기 위하여, 일부 각종 원인으로 독일에 갈 수 없었던 런던과 기타 지역에서 온 제자들은 금년 4월 3일부터 주영중국대사관 맞은 편에서 23일 간의 릴레이식 단식을 시작하였다. 단식은 이번 달 25일에 결속된다. 아래는 대사관 맞은 편에서 발생한 몇 가지 작은 이야기들이다.

1. “저에게 자료를 좀 더 주세요. 저는 제 주위의 사람들에게 배포하여 그들에게 이 일을 알게 할 것입니다.”

릴레이식 단식의 어느 날 점심, 한 흑인 여사가 대사관의 맞은 편에 왔다. 우리는 그녀와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황색의 대법 옷을 입은 작은 제자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는 공원에서 나왔는데 (대사관 부근에 아주 큰 공원 하나가 있다)이 아이들이 이 황색 옷을 입고 거리에서 다니며 위에는 무슨 법륜공을 적은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아주 좋다고 느끼고 그를 따라 왔습니다. 이 아이의 옷이 저를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그녀에게 대법이 중국 내외에서의 대체적인 상황을 소개하였고 또 그녀의 몇 가지 물음에 대답하였다. 나중에 그녀는 법륜공 박해를 멈추라는 서명표에 서명을 하였고 아울러 우리에게 말했다. “저에게 자료를 좀 더 주세요. 저는 제 주위의 사람들에게 배포하여 그들에게 이 일을 알게 할 것입니다.”

2. 대사관 앞의 수위경찰

대사관 앞의 수위경찰은 근무 기간에 항상 대사관 앞에서 우리의 이 쪽으로 걸어와 우리와 담화한다. (허가에 따라 우리는 대사관 맞은 편의 거리에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한 경찰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그와 인사한 후 그에게 우리의 자료를 보았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저는 이미 몇 종료의 판본을 보았습니다. 저의 일부 동료가 자료를 사무실로 가져와 휴게실에 놓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어서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경찰로서 대사관 앞에서 근무하지만 우리는 모두 당신들을 동정합니다. 당신들의 행운을 빕니다!”

3. 영국황실 건축원

영국황실 건축원은 주영 중국대사관 맞은 편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가 활동을 하면 그들의 문 앞에서 한다. 건축원의 일꾼들은 줄곧 우리에 대해 아주 우호적이고 지지하였다. 우리의 편의를 위하여 그들은 작은 창고의 일부분을 비워 우리가 활동할 때 사용하는 전시대. 깃발과 자료 등을 보관하게 하였다. 겨울에 날씨가 춥자 그들은 어떤 때 또 열정적으로 뜨거운 차와 과자 등을 우리 손에 보냈다. 더욱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작년 여름의 어느 날, 그 당시 한 명의 여자 수련생이 대사관 앞에서 연공하고 있었다. 갑자기 큰 비가 쏟아졌다. 그녀가 아직 전시대와 자료를 덮을 겨를이 없었는데 건축원에서 두 명의 여성 일꾼들이 날듯이 달려와 모든 물건들을 대청으로 옮겼다. 이 수련생이 그녀들을 찾아 감사를 드리려고 했을 때 그녀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에게 물었더니 모두다 누가 한 일인지 주의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나중에 우리는 할 수 없이 한 통의 공개 편지를 써서 건축원에 붙혔다. 여기서 우리는 건축원의 모든 선량한 사람들에게 진실한 감사를 드린다.

4. “아가씨, 힘내세요.” (2000년 4월 17일)

오늘 아침 나는 가부좌하고 있었는데 한 목소리가 조용히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아가씨, 당신께서는 보통 말을 할 줄 아세요?” 내가 눈을 뜨자 학생차림을 한 한 젊은 중국 남자청년을 보게 되었다. “아가씨, 힘내세요! 당신들은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너무 쉽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유롭게 연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쉽지 않은 것은 중국대륙의 수련생들입니다.” 그는 또 말했다. “이러한 탄압은 너무나 잔혹합니다.” 후에 그는 떠나기 전에 일부 자료와 우리 연공장의 주소를 가져갔다.

5. “모두들 와서 클락션을 울려요.”

어느 날 우리가 막 연공을 끝마쳤을 때 차 한대가 갑자기 길옆에 멈췄다. 기사는 끊임없이 클락션을 울렸다. 나는 이상하다고 여겨 다가갔다. 기사는 차 창문을 내리고 우리에게 말했다. “저는 당신들을 지지합니다! 당신들은 마땅히 하나의 표시판을 만들고 위에 ‘모두들 와서 클락션을 울려 법륜공을 지지하세요’라고 써야 합니다.” 그는 또 우리에게, 부근에서 살고 있으며 그는 매일 차를 몰고 이 곳을 지나간다고 하였다. 우리에게 전시대와 자료 등 물품을 보관할 곳이 필요한가 하고 물었다. 우리는 그에게 건축원에서 이미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알려주었으며 아울러 그의 호의에 감사를 드렸다.

6. “당신들은 이것이 필요합니다.”

또 어느 날의 아침, 한 중년의 백인 남성이 우리의 곁을 지나면서 몇 개의 과일과 음식물을 꺼내어 우리의 손에 밀어 넣었다. 나는, “감사합니다. 남겨뒀다가 당신께서 드세요” 라고 말했다. 그는 집요하게 우리가 받을 것을 요구하면서 또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일찍이 당신들은 집에서 나왔는데 꼭 아침식사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이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할 수 없이 받았고 그에게 감사를 드렸다. 후에 또 여러 차례 우리가 눈을 감고 연공할 때 명함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이 꽃과 음식물을 우리에게 주었다.

후기 : 사람을 감동시키는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으며 단식 역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여기서 써낸 것은 단지 봉모린각(鳳毛鱗角)일 뿐이다. 탄압이 하루라도 멈추지 않으면 중국대사관 앞에서의 평화적인 항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선과 악의 대비에서 매 사람마다 행동으로 그들 미래의 생명위치를 바로 놓고 있다.

轉載 : 정견망 (2002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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