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과거에 성(省) 불교협회 이사로 활약했던 나는 삼귀(三 ), 오계(五戒)도 받고 제일 높은 대계(大戒)–보살계(菩薩戒)까지 받은 경건한 불교신자였다. 나의 집은 7세대를 내려오면서 공불(供佛), 념불(念佛), 수불(修佛)하였다. 조대(朝代)가 바뀌고 험난한 세월을 지나오면서 7대를 모셔온 동불상(銅佛像)을 보존하고 있다. 올해 69세인 나는 한 평생 불교를 믿어 왔고 불교 중의 경(經), 율(律), 론(論), 불교와 도교, 유교 등 각종저서들을 연구해 왔으며 집안에 있는 불교서적이 만 부 되는데 매부 책마다 적어도 3-5번은 읽었으며 어떤 불경은 외울 수 있었다. 나는 또 4대 명산, 많은 옛적의 사찰, 석가모니의 사리(舍利子), 그리고 불교 중의 비밀보물 등을 참배하였다. 마음 속으로는 언제나 부처가 제일 높은 것으로 느껴졌고 걸음을 걷거나 누워있거나 혹은 하는 이야기마다 부처를 떠날 수 없었으며 심지어는 꿈을 꾸어도 불국세계에서 부처를 모시는 꿈이었다. 나의 아내도 역시 경건한 불교신자였다. 나는 스스로 명(名), 리(利), 색(色), 정(情)을 모두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다.
1997년 8월 나와 아내는 다행스럽게도 >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때 당시 나의 마음은 값진 보배를 얻은 것처럼 몹시 격동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목마른 사람이 물 마시듯이 >을 읽기 시작했는데 온 마음은 모두 대법 속에 젖어 있어 읽을수록 손에서 놓기 아쉬웠고 읽을수록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와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내포(內含)에 대해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것은 한 부의 우주대법이라고 인식한 나는 하루 동안에 책 한 권을 몽땅 읽었다. 대법은 직접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直指人心) 것으로서 사람이 되는 목적인 반본귀진의 도리를 지적하셨다. 이 한 대법 중 참신한 내용과 심오한 법리에 심심히 탄복한 나는 자신과 불교를 새롭게 인식하고 자신이 평생 수련하고 수련하여도 실제로는 진정으로 수련의 문에 들어서지 못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말법시기에 불교의 수련방법은 매우 혼잡하고 전일(專一)하지 못하며 아울러 불교는 이미 명, 리, 색, 정 등에 오염되어 더는 정토(淨土)가 아니다. 오직 이 선생님의 대법만이 사람을 제도할 수 있다. 법륜대법은 과거에 굳어버렸던 나의 관념을 개변하였고 나로 하여금 진정으로 수련의 길에 들어서게 하였다.
법공부 심도가 깊어짐에 따라 수련은 전일(專一)해야 하다는 이치와 불이불문(不二法門) 등 도리에 대해 좀 인식했지만 구체적으로 실제 문제에서 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예를 들면 불교 책은 나에게 있어서 떨어질 수 없는 귀중한 존재였다. 그때 당시 밤잠을 이룰 수 없던 나는 불교 책을 보며 눈물이 줄줄 쏟아져 나왔다. 나는 사흘 간 깊은 고민 속에 빠졌고 아내는 목숨을 걸고 불교 책을 보호하고 있어 가정 모순이 급격히 악화되어 그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 한 고비를 넘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나의 인생전환의 중대한 문제였다. 바로 이때에 보도소 보도원이 여러 차례 집에 찾아와 보도도 해주고 배려도 해주었는데 그들의 진지한 마음은 나를 깊이 감동시켰으며 진정으로 이 선생님대법의 위력과 대법제자의 진지하면서도 사람을 감동시키는 정신을 체현하였다. 또한 대법학습을 통해 “전일”(專一)의 법리를 더 한 걸음 깨달음으로서 집착심을 제거하고 대법수련의 결심을 확고히 하였다. 나중에 나와 아내는 결단을 내리고 만 부나 되는 불교 책을 모두 정리하였고(淸理) 기타 기공 책들도 모두 없애버렸는데 큰 리어카로 세 차나 실어 냈다. 나는 불교 책을 실어 낸 후 사흘이 지나서 허리에 통증이 심하게 와 허리를 펼 수 없었고 걷거나 앉거나 모두 힘들었고 잠자기도 힘들었으며 게다가 하루에 설사까지 6-7차 했는데 이것은 나의 일생 중에서 종래 있어본 적이 없던 큰 시달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대법학습을 통해 나는 하나의 대법제자이고 수련자이며 이것은 병이 아니라 이 선생님께서 나를 도와 업력을 제거하고 신체를 정화시켜주고 있다고 인식했다. 몸이 고통스러울수록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였는데 나흘이 지나서부터 나는 허리를 펼 수 있게 되었고 활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며 설사도 멎고 온 몸에 힘이 생겼다. 이날 나는 콩기름 15kg, 밀가루 25kg을 사서 2층으로 메고 올라갔는데 조금도 힘든 줄을 몰랐다. 나와 아내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대법의 위력을 깊이 느꼈다. 어느 하루 나는 버스를 10번 타게되었다. 버스에 오를 때 갑자기 차 문이 닫치면서 나를 끼워놓았다가 또 갑자기 차 문이 열리면서 나를 차안에 넘어뜨렸는데 안경도 깨졌다. 그 당시 이 광경을 보고 몹시 놀란 버스 승무원은 한편으로 부축하고 한편으로 사과하면서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부추겨 일어난 나는 어디도 아프지 않았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사부님의 법신이 나를 보호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괜찮네” 란 말만 남기고는 차에서 내렸다. 버스 운전기사와 승무원은 나에게 직장이 어디냐 고 물었을 때 나는 법륜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며 나의 사부님은 이홍지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 법륜대법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1998년 음력설을 몇 일 앞두고 성(省) 불교협회에서 연말 총결 자료를 부탁하려고 열 명의 사람이 나를 찾아왔는데 집안에 들어서자 왜 불교 책이 보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법륜대법을 수련하고 있는데 수련은 전일(專一)해야 하기 때문에 정리하였다고 대답했다. 열 사람 중 아홉 사람은 나의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아까워라, 아까워라, 너무도 아까워라! 죄로다, 죄로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행히도 연분이 있어 만년에도 만나기 어려운 대법을 만났기에 너무 너무 행운이다! 불교는 이미 말법 시기에 이르렀기에 사람을 제도할 수 없으며 오직 이 선생님만이 진정으로 사람을 제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 다음 날, 성 불교협회에서는 또 두 사람을 보내어 설을 쇠라고 3천 원을 내놓으면서 나더러 성으로 한번 다녀가자고 요청했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나는 돈도 받지 않고 성에도 가지 않는다. 나는 대법을 스승으로 모시며 금전과 명예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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