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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니 치프카 여사가 북경에 가서 대법을 실증한 과정을 자술하다

[명혜망] 나는 캉니 치프카(Connie Chipkar)라고 부른다. 올해 61살 반이며 법륜공을 연마한 지 이미 4년이 되었다. 나의 아들 죠 치푸카(Joel Chipkar)는 작년 11월에 북경에 가서 법을 실증하고 천안문에서 촬영한 필름을 집에 가지고 왔다. 나는 깊은 계발을 받았고, 법륜대법진상여행의 일원으로서 보행을 하였다. 나는 예전에 캐나다 북부, 유럽 포도야와 토이기를 가로질렀으며, 중국의 법륜공 수련자 박해에 대한 SOS긴급구호를 호소하였다. 우리가 보행하면서 얻은 정면적인 반응은 나의 몸과 마음을 충만시켰다. 아울러 나는 이런 지지와 고무격려, 아름다운 축복을 가지고 가서, 나의 중국에 있는 동수들과 함께 나누려고 하였으며, 가서 우리의 관심을 표시하려고 하였다.

나는 중국에 도착하자 천안문광장에 갔다. 날씨는 아주 따사롭고 주위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햇살은 눈부셨으며 나는 내가 마치 아주 큰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 사람들은 자세를 갖추고 나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하였다. 또 수많은 아이들이 나의 서명을 얻으려고 하였다. 이는 오후 1시 30분이었는데, 나의 본래 계획은 줄곧 2시까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현수막을 펼칠 때를 기다려 행동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아이들이 그러한 정황 하에 연루될까봐 걱정하였다. 나는 수습하고 나의 겉옷을 벗었다. 속에는 내가 지닌, 옷 위에 바느질한 현수막인데 앞에는 “법륜대법(法輪大法) 진상보행(眞相步行)”이고 뒤에는 “SOS”라고 씌여 있었다. 내가 이것을 하려고 할 때 경호원들이 교대하고 있었다. 나는 큰 소리로 법륜대법의 노래를 불렀는데, 마치 하나의 해양(海洋)과도 같은 중국인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을테지만 아무 것도 발생하지 않았다. 한 사복경찰이 나를 향하여 걸어왔다. “오! 법륜대법!” 그는 큰 소리로 외치면서 난폭하게 나의 왼쪽 팔을 붙잡았다. 그는 기념비를 향하여 나를 잡아끌기 시작하였다. 그 때 다른 한 경찰이 개입되어 나의 옷에서 현수막을 찢기 시작하였다.

이는 그들에게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게 하였는데, 이 과정중에 나는 줄곧 법륜대법의 노래를 불렀다. 아울러 모든 중국인들이 줄곧 보고 있었으며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문이 막혔다. 그들은 나를 끌고 아주 크게 한바퀴 돌면서 경찰차 한 대를 찾으려고 하였다. 큰 녹색 외투를 입은 젊은 경찰이 뒤에서 따라왔는데, 얼굴에는 미혹된 표정이었다. 아이들은 많은 중국인들과 함께 시종 보고 있었으며 나는 여전히 법륜대법이 좋다고 노래하였다. 경찰은 나의 어깨를 아래로 잡아당기려고 하였지만 그들은 오히려 공중에 떴으며, 나는 계속 노래를 불렀다. 경찰의 시도는 허사였다. 그는 난폭하게 나를 경찰차로 밀어 넣었다. 나의 무릎은 조금 상했지만 나는 이미 육체적 학대를 받을 수 있다는 데에 대하여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경찰은 경찰차를 운전하여 광장에서 빙빙 돌더니, 방향을 바꾸어 갑자기 큰 카메라를 가지고 한창 사진을 찍고 있는 어떤 여자를 피해갔다. 그들은 그녀의 어떤 신분 카드를 가져갔다. 그들은 나를 데리고 천안문광장 경찰국으로 데려갔다. 나는 한 파란색의 의자에 앉아 있었으며 10명의 경찰이 나를 에워쌌다. 그들은 나에게 중국어르 말할 수 있는가 하고 말했으며 나는 법륜대법 진상보행 중에서 배운 간단한 단어로 말했다. “법륜대법은 좋다.(法輪大法好)” 그들은 내 사투리의 중문을 알아듣기 아주 어려워하였다. 오히려 나에게 많은 사진을 찍어주었으며 아울러 나의 현수막도 바닥에 놓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사진 찍으려면 당신은 그것을 주으시오! 그들은 현수막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들은 아주 많은 시간을 들여 현수막의 내용을 알아보려고 하였다. 그것은 영문으로 씌여졌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압송상태로 여관에 가서 나의 짐을 가져왔다. 여관의 일꾼들은 아주 불안해하였는데 경찰이 나를 따라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법륜대법은 좋다고 말하였지만, 그들은 마치 어찌된 일인지를 아는 듯 하였다. 짐을 가지고 나는 차에 태워져서 북경성(北京城)에서 제일 허름한 부분을 지나 한 큰 경찰국에 데려가졌다. 그들은 나로 하여금 큰 테이블에 앉게 하였으며, 또 나에게 음식물과 음료수를 가져다 주었다. 나는, 당신(경찰)들이 내가 중국의 동포들에게 동정을 표시 하는 것을 금지하면 나는 먹거나 마실 수 없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내게 문제를 묻기 시작하였는데, 나는 그것이 경찰국의 관례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들이 나에게 문제를 물으려면 그럼 내가 체포되어 있는 기간동안 국제변호사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당신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므로 기만을 당할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에게 내가 아직 체포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였다. 그들이 다음에는 어찌해야 하는가를 상의할 때, 나는 책상 위에서 나의 >을 읽었다.

그리고 한 중국 여경찰이 영어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그는 일종 부드러운 방식으로 나를 오도(誤導)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단지 몇 가지 일만 말하려고 한다. 당신으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이 아니며, 단지 당신에게 당신은 중국에서 범한 죄로써 당신은 이미 법을 범하였다. 마치 캐나다처럼 당신은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나는 대답하였다. “만약 당신이 범죄를 논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법륜대법을 암시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겠다.” 이리하여 그녀는 계속 나와 캐나다를 이야기하였으며 나의 아들에 대해 물었다. 나는 그녀가 그녀의 거짓으로 나를 해하려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튿날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행한 경찰국에서의 전반 과정은 모두 가만히 녹화되었던 것이다.) 담화 이후 나는 차에 태워져 경찰여관의 방안으로 갔다. 여기가 바로 밤을 지내야 할 곳이었다. 두 명의 경위가 나를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고 따라다녔다. 그 여경찰은 심지어 내가 화장실을 사용할 때도 떠나지 않았다. 나는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권리가 없었다. 나를 감독하는 수위는 온밤 텔레비젼을 보았다. 매 프로마다 모두 법륜공을 모함하거나 혹은 “분신자살” 연출이었는데 그들은 나에게 정말이라고 알려주려고 하였다. 나는 말했다. “당신 정부의 녹화장면에서 분신자살의 거짓말이 조작임을 스스로 폭로하였다. 당신이 테이프의 속도를 느리게 돌릴 때 그 여자가 머리를 맞는 장면이 아주 똑똑히 나온다. 인권조직, 예를 들어 국제특사조직은 중국에서 무엇이 발생하고 있는 지를 알고 있다. 인권변호사는 이 범죄사건에 착수하여 제기하려고 있다.” 그리고 나는 방법을 다하여 온밤 >을 읽으려고 하였다. 책을 읽음으로써 나는 그다지도 즐겁고 평온함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한시간 혹은 한시간 반 동안 잠을 자고 정력을 회복하였다. 나는 법을 위하여 변호할 수 있었고 나는 법륜공수련자에 대한 박해에 대해 소송을 걸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대법은 직지인심(直指人心)의 법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이튿날 경찰은 나를 끌고 한바퀴 또 한바퀴 돌았는데, 나는 그들이 나로 하여금 방향감을 잃게 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중에 나는 북경 비행장에 도착하였으며, 아울러 빈으로 가는 비행기에 보내졌다. 비행 도중에 시스뤄공항에 멈추어서 나는 나의 아들의 소식을 얻었는데 나에게 캐나다로 가는 항공편을 타라고 하였다. 나는 출구의 3번째 통로에서 한 기자와 4명의 촬영팀을 만났다. 그들도 나와 함께 사람들 속에서 걸어갔다. 한 기자가 나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게 하였고 나는 즉시 그에게 대답하였다. “그들은(중국정부) 기만과 거짓을 행하는 고수들(大師)이다.”

나중에 나는 3명의 영국 수련자를 만났는데 나를 도와 짐을 꺼내주고 나의 캐나다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도와 캐나다로 가는 항공편으로 보냈으며 밤 9시에 떠났다.

(大紀元報社 기자 하이룬 기록, 번역)
2002년 1월 26일,
문장분류 / 海外護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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