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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파룬궁수련자들, 단체 연공하며 사부님께 새해 인사 올려

글/ 태국 파룬궁수련자

[명혜망] 2024년 12월 22일, 태국 파룬궁수련자들이 방콕 룸피니 공원에서 단체 연공을 하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창시자이신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 감사를 전했다. 사부님께서 전하신 불가의 고덕대법(高德大法)은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크나큰 불은(佛恩) 속에서 심성을 끊임없이 정화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이끌고 있다.

일요일 아침 6시, 고요한 새벽 공원에 연공 음악이 울려 퍼졌다. 자비롭고 평화로운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했으며, 음악 속에서 울려 나오는 리훙쯔 사부님의 연공 구령에 맞춰 수련자들은 간단하고 우아한 네 가지 동공(動功)을 마친 뒤 정공(靜功) 수련에 들어갔다. 연공장에서는 강한 에너지장이 형성돼 사람들에게 평화롭고 편안한 감정을 전했다.

연공을 마친 후, 수련자들은 단체로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며 파룬따파 창시자이신 리훙쯔 사부님께 새해 인사를 올렸다.

'图1:泰国部份法轮功学员恭祝师尊新年快乐。'
태국 일부 파룬궁수련자들이 사부님께 새해 인사를 올리는 모습
'图2:法轮功学员们在集体炼功。'
파룬궁수련자들의 단체 연공 모습

안안(安安)은 태국 화교다. 피부가 고와 윤기가 돌아 전혀 42세로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친척이 파룬궁을 수련한 후 건강해지고 일도 수월하게 해내는 것을 보고 여동생에게 소개했다. 여동생은 대법이 좋다는 것을 깨닫고 안안에게도 대법을 전했다. 2014년 어머니날, 안안은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고, 이후 그녀의 가족 네 명도 차례로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안안은 집안의 맏이로서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대법을 수련하면서 정말 행복해졌고, 많은 일이 스스로 풀리더라고요.” 대법 경서를 읽고 사람됨의 도리를 배우면서 가족 관계가 개선됐다. 자매 간의 관계도 수련 후 좋아졌다.

그녀는 대법을 배우면서 부모님과 동생들의 의견을 먼저 듣는 법을 익히고, 독단적이고 제멋대로인 성격을 고쳤다. 지금은 매일 몸과 마음이 가벼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수련 전에는 괴로움에 빠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술을 마셨다. 중독 증세가 심각해 술을 마시지 않으면 손이 떨렸지만 매일 술을 마셨다. 대법을 배운 후 술을 끊었고 도박도 하지 않게 됐다. 사부님 말씀을 따라 나쁜 습관을 버린 것이다.

중국 정부의 파룬궁 탄압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탄압이 매우 잔혹합니다. 진선인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안타깝습니다. 대법은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데 말이죠.” 그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중국인과 태국인들에게 대법의 진상을 설명하며, 중공의 거짓 선전을 폭로하고 탄압을 중단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의와 양심을 굳게 지키다

명혜망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파룬궁수련자들은 25년간 중공의 잔혹한 탄압을 받아왔다. 하지만 신앙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전 세계 파룬궁수련자들은 평화롭고 이성적으로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탄압을 저지하고 중생을 구하고 있다.

명절이 올 때마다 가족 생각이 더욱 간절한데, 중국에는 중공의 탄압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집이 파괴되어 목숨을 잃은 파룬궁수련자들이 많다. 이들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마리(馬麗, 가명)는 1992년생으로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파룬궁을 수련했다. 그녀의 회상에 따르면 가정이 늘 행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탄압이 시작된 지 약 2년 만에 아버지가 박해로 세상을 떠났고, 이는 가족 전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녀는 중공이 학생들에게 탄압에 대한 거짓말을 주입하고 파룬궁과 거리를 두겠다는 입장 표명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 정치 수업 중에 일어나 ‘천안문 분신’ 날조극에 대한 진상을 밝혔는데, 정치 교사가 웃으며 자리에 앉으라고 했을 뿐 더는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이 이 일을 화제로 삼았고, 몇몇은 제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용기를 북돋아주었죠.”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는 모든 학생이 서약서에 서명해야 했다. 파룬궁을 수련하거나 전파하지 않겠다는 것, 또는 단호히 반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대학 입학 시 이런 서약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만, 지혜롭게 서명을 피할 수 있었다.

몇 년 후, 어머니가 중공의 탄압을 받자 마리는 친족 변호인이 됐다. 올해 9월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처음에는 공안, 검찰, 법원, 사법부 직원들이 그녀를 위협했지만, 그녀가 정념으로 대하자 상황이 달라졌다고 한다. 마리는 “그들은 매우 불안해했어요. 파룬궁 탄압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그들도 알고 있었죠”라고 말했다.

9월에 감옥으로 어머니를 면회 갔을 때, 어머니가 탄압으로 거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는 해당 감옥을 고발했다. 얼마 후 한 여성이 전화를 걸어 그녀의 신분증 번호를 물으며 “나는 정법위 소속인데 당신에게 불리한 일을 할 겁니다”라고 위협했다.

그 후 경찰이 미행하는 것을 발견했고, 보이지 않는 압박이 늘 따라다녔다. 마리는 “매일이 두려움의 연속이었죠”라고 했다. 올해 10월 그녀는 태국으로 왔다. 그녀는 어머니를 걱정하고 있으며 구출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26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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