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토론토 보도) 중국의 추석인 중추절에 사람들은 달을 보고 월병을 먹으며 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이맘때면 사랑하는 가족을 더욱 그리워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바로 중국공산당(중공)의 파룬궁 박해로 인해 부모가 감옥에 갇혀 만날 수 없는 젊은 파룬궁 수련자들(대법제자들)이다.
이 젊은 수련자들은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서서히 성장했다. 그들은 수련 과정에서 큰 시련을 겪을 때 심성을 수련하며 침착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 2023년 9월, 중추절 기간 그들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역경 속에서도 강인하고 바른 젊은이로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창시자의 인도와 가르침에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혼탁한 세상에 맑은 물줄기가 되고 싶습니다”

1994년생인 스테이시는 어려서 몸이 허약하고 고열이 자주 나서 병원을 드나들며 주사와 약을 달고 살았다. 스테이시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는 일해야 해서 그녀는 이모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 스테이시가 7살이었을 때, 이모가 중병에 걸려 그녀를 돌볼 수 없게 됐다. 그때 이모는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수련으로 건강을 되찾아 다시 스테이시를 키울 수 있었다. 스테이시를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이모는 그녀에게 엄마 같은 존재였다.
매일 밤 스테이시는 이모 옆에서 자면서 이모가 읽는 파룬궁 수련서 ‘전법륜(轉法輪)’을 들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저는 말을 안 듣고 고집이 센 편이었는데, ‘전법륜’을 배운 후에는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 착해졌습니다. 저는 다른 아이들과 책을 공유했고 이모의 집안일을 기꺼이 도왔습니다. 게다가 저는 더는 허약하지도, 아프지도 않게 되었고, 몸은 매우 건강해졌습니다.”
스테이시가 13살이던 어느 날 밤, 다음 날 기말고사 때문에 그녀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상자와 캐비닛을 뒤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어요. 눈을 떠보니 이모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그 뒤에는 경찰 두 명이 서 있었어요. 너무 무서웠던 저는 조용히 울기 시작했어요.”
“이모는 납치됐습니다. 저는 경찰이 원망스러웠고, 이모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사람들이라서 벌을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수련을 시작하면서 사부님은 마음속에 선(善)을 품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저는 증오를 버리고 담담하게 이 박해에 저항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반 친구들에게 파룬궁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고 그들이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진상 자료와 CD를 배포하고 진상 스티커도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스테이시는 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제 룸메이트는 태도가 냉랭하고 말투가 거칠어 가까워지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수련자로서 다른 사람에게 선하게 대해야 하므로 마음으로부터 그녀를 잘 대해 줘 우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룸메이트의 성격은 스테이시만큼 명랑하고 협조적으로 변했다.
룸메이트는 스테이시에게 자신이 어렸을 때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성격이 공격적으로 됐는데, 스테이시의 선량함에 자신도 모르게 변화됐다며 기뻐했다.
“파룬따파 수련을 통해 저는 다른 사람을 선의로 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 자신이 가진 선의 힘이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깨닫고, 파룬따파를 수련하겠다는 결심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20년 넘게 파룬따파를 수련해온 젊은 제자인 스테이시는 “사부님의 크신 자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혼탁한 세상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이 표류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물살을 거슬러 헤엄쳐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 맑은 물줄기가 되고 싶습니다.”
“사부님, 제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학생인 한나는 부모 모두 파룬따파를 수련했기에 태어날 때부터 수련 환경에서 성장했다.
한나는 유치원에 다닐 때 처음으로 잔혹한 박해를 경험했다. “제가 어렸을 때 갑자기 집에 공안이 침입해 집을 뒤지는 바람에 바닥이 어지러웠고, 언니는 울고, 어머니는 아무 힘도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강제로 경찰에게 집 밖으로 끌려 나갈 때, 아버지는 얇은 옷에 신발조차 신지 못했습니다.”
한나가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그 기간 어머니는 아버지의 일로 여기저기 뛰어다녔고, 한나와 여동생은 각각 이모와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다.
아버지가 노동 수용소에서 석방된 후에도 경찰은 한나의 집에 대한 감시를 조금도 완화하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끊임없이 주시하는 감시자, 엘리베이터의 카메라, 우리가 외출하고 돌아올 때마다 우리를 심문하는 거주위원회는 우리에게 박해와 탄압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켰습니다.”
국내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한나의 부모는 한나와 그녀의 여동생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했다. 한나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그녀의 어머니는 두 자매를 데리고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중공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아버지에게 여권을 발급해 주지 않았고, 한나는 거의 8년 동안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태어날 때부터 수련 환경에서 자란 젊은 제자인 한나는 줄곧 대법이 바르다고 믿었다. 그녀는 부모의 말씀과 가르침에서뿐만 아니라 몸소 대법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체험했다.
“8학년 때 저는 워털루 대학교에서 열리는 가우스 수학 경시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당시 오타와에서 열린 파룬따파의 날 축하 행사에 참석하고 밤새 토론토로 돌아와서 저는 졸린 상태로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시험지에 나온 마지막 몇 문제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시험에서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마음속으로 9자진언(九字真言)을 외우고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로 저는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고 경시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놀랍게도 저는 1위를 차지했습니다.”
끝으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저는 계속 수련의 길을 갈 것이며 대법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추절을 맞이해 망망한 인간 세상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주신 사부님의 자비와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은 저를 밝고 긍정적으로 만들었습니다”

1996년에 태어난 길버트가 겨우 한 살이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사부님의 비디오 강의를 들었다. 길버트는 세 살 때 읽기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매우 어려웠고, 반복해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길버트에게 사부님의 ‘전법륜’을 읽도록 가르쳤을 때 그는 비상한 지혜를 보였다. 어린 나이에 길버트는 ‘전법륜’ 책 전체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99년 7월부터 중공은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길버트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네 살이었을 때 어머니는 TV 뉴스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정부에 알리기 위해 저를 데리고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습니다. 파룬궁 수련자는 마음을 닦아 선해지게 하므로 마땅히 억압받아서는 안 되며 수련 환경이 마련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와 저는 불법 체포됐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강제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경찰은 저를 아버지의 사업장으로 데려갔고, 어머니는 계속 베이징에 구금됐습니다.”
“그 후 저는 어머니가 집으로 풀려났다가 다시 체포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겪었습니다. 경찰이나 거주위원회 사람들이 자주 와서 괴롭혔는데, 그런 분들을 보면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친척 집에서 살게 했습니다. 제 곁에는 부모님이 안 계셨고, 어머니가 걱정됐습니다.”
길버트는 계속 당시를 회상하며 얘기했다. “제가 여덟 살이었을 때, 어머니는 불법 체포에 저항해 구치소에서 단식했습니다. 어머니는 생명이 위급한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더욱 우울해졌습니다. 박해가 무서웠지만, 어렸을 때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한 저는 이미 사람이 인간 세상에 온 의의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코 수련을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항상 사부님과 대법을 믿었습니다.”
12세가 된 길버트는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 자료를 만드는 자료점에 기술적 지원을 담당했는데, 어린 나이 비해 매우 큰 책임을 맡았다. 노인 수련생들에게 컴퓨터 지식을 가르치는 일은 지루하고 시간이 많이 들었다. 그만두고 싶을 때 그는 안으로 찾아 집착을 버리고 심성을 지키라는 사부의 가르침을 기억했다. “저는 더 이상 밖을 보며 다른 수련자들의 건망증과 느림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고 오히려 저에게 조급함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을성을 키우며 노인들을 진지하게 가르쳤고, 그 과정에서 제 성격을 단련했습니다.”
19세에 길버트는 공부를 위해 캐나다로 왔다. 작년에 그는 매체에서 진상을 알리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제 마음은 더 충만해졌습니다. 매체를 하는 수련생들은 서로 협력하며 다투지 않기 때문에 저는 수련하는 환경만이 정토임을 점점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제 또래의 젊은 수련생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순정하고 쾌활합니다. 저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인식했습니다.”
“예전에 저를 알던 사람들이 저를 다시 보면 못 알아볼 거예요. 예전에는 저는 슬픈 얼굴이었는데 이제는 웃을 수 있게 됐어요. 이제 저는 수련자의 심성 기준을 지키기 때문에 더는 마음이 우울하거나 괴롭지 않습니다. 성격도 유순해졌고 사람을 대할 때 친절하고 쾌활합니다.”
마지막으로 길버트는 그동안 자비롭게 보호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를 표했다. 그는 한때 자신이 수련을 느슨하게 했지만, 사부님은 항상 자신을 보살펴주셨다면서 “사부님, 중추절 잘 보내십시오! 저는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정진하는 수련자가 되겠습니다”라고 인사드렸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23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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