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LA 파룬궁수련자
[밍후이왕] 지난 6월 6일, 로스앤젤레스 주재 중공영사관 앞에서 파룬궁 수련을 이유로 불법 감금된 가족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정식 명칭이 파룬따파(法輪大法)인 파룬궁은 1999년부터 중국공산당 정권으로부터 무고하게 탄압받고 있는 심신 수련법이다.
이날 집회에서 미국 시민 카렌 캉(Karen Kang)은 여동생과 조카 두 명의 즉각적인 석방을 중공 당국에 촉구하며, 국제사회와 인권 단체에 가족의 구출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캉 씨의 여동생 캉수메이(康淑梅.60), 조카 장자(張嘏.33, 캉수메이의 아들), 조카 허우리쥔(侯利軍.52)은 중국 산시(山西)성 타이위안시 주민으로 현재 중공에 납치돼 불법 감금된 상태다.
2022년 10월 31일, 장자와 그의 어머니 캉수메이가 공안에 납치됐다. 자동차, 컴퓨터, 프린터 등 그들의 개인 물품도 불법 압수됐다.
캉수메이는 현재 구자오시 제4구치소에, 장 씨는 타이위안시 제1구치소에 감금돼 있다. 이들은 모두 가족 면회가 금지된 상태다. 이들의 납치 감금 때문에 보살핌이 필요한 캉 씨 자매의 연로한 아버지(94)는 생활이 몹시 힘든 지경에 처했다.
두 사람이 납치되고 6개월 후인 2023년 4월 25일, 허우 씨가 납치돼 타이위안시 제1구치소에 감금됐다. 그는 박해를 피해 20년간 여러 곳으로 떠돌다 끝내 납치되고 말았다.
납치된 후 허우 씨는 곧바로 단식을 시작했고 6월 13일은 단식 48일째가 되는 날이다. 그는 매일 강제 음식물 주입 고문을 당했다. 그의 체중은 25kg 이상 감소했으며 현재 아주 위험한 상태다.
판사 가오아이핑은 허우 씨가 납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허우 씨는 타이위안시 중급법원에 항소했으나 원심이 유지됐다. 그는 치현 감옥으로 이송됐고 그곳에서 박해에 항의하며 단식을 계속했다.
카렌 씨는 집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조카 허우리쥔을 납치한 샤오징위 경찰서를 강력히 규탄합니다. 저는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석방을 요구합니다. 또 구자오시 경찰서에도 역시 조건 없이 즉각적으로 여동생 캉수메이와 그의 아들 장자를 석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카렌은 허우 씨가 납치된 후 지역 경찰이 납치, 감금, 가족 면회에 대한 어떠한 공식 문서도 발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타이위안시 제1구치소 경찰들이 허우 씨에게 매일 세 차례 강제 음식물 주입을 시키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녀는 극도로 잔인한 음식물 주입 고문으로 고통받고 있을 조카의 안전이 매우 걱정스럽다며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했다.
허우 씨가 당한 박해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후, 많은 수련자와 가족이 끊임없는 납치, 괴롭힘, 감금, 고문을 당해왔다. 캉 씨 가족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타이위안 산업경제은행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허우 씨는 파룬궁 수련의 권리를 청원하기 위해 성 정부에 가던 1999년 7월 21일, 첫 번째 납치를 당했다. 그는 베이청구 구치소에 감금됐다. 허우 씨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던 2000년 1월에 다시 납치됐다. 그는 타이위안으로 끌려와 난청구 구치소에 1달간 감금된 후 강제노동 2년을 선고받았다.
노동수용소 감시원들은 강제로 파룬궁을 포기시키려고 허우 씨에게 매일 밤 2시간만 재우며 재소자들이 그를 감시하게 했다. 욕설과 폭행을 퍼부었으며 과중한 강제노동을 시켰다. 며칠 만에 그는 몰라보게 쇠약해졌다.
2002년 10월 1일, 허우 씨와 어머니 캉수친(康淑琴)은 지역 수련자들 64명이 집단 납치될 때 다시 납치됐다. 그들 중 23명이 불법적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나머지 대부분은 강제노동을 처분받았다. 캉수친은 징역 11년 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그녀와 수련자 5명은 박해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2002년 10월 20일, 완보린(萬柏林) 경찰서의 량즈펑과 친펑은 아침에 경찰서로 허우 씨를 끌고 왔다. 경찰들은 등 뒤로 수갑을 채운 그를 들어 올렸다가 콘크리트 바닥으로 세게 내동댕이쳤다.
2002년 10월 20일, 허우 씨는 단식을 시작했다. 6일 후 경찰관 정융성, 창빈리, 장장강이 그에게 18만 볼트 전압의 전기봉으로 장시간 고문했는데, 완보린 경찰서의 쉬푸궈도 고문에 참여했다.
카렌은 강조했다. “경찰들은 제 조카의 옷을 찢고, 그를 콘크리트 바닥에 누르고는 의자 3개로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했습니다. 그러고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 구석구석에 끊임없이 전기충격을 가했습니다. 경찰 량즈창은 이렇게 소리쳤죠. ‘눈도 전기 충격해 장님으로 만들어!’”
전기충격 고문의 결과, 허우 씨의 머리와 얼굴은 큰 물집들로 뒤덮였다. 머리의 상처에서는 피가 흘렀다. 얼굴 왼쪽은 심각하게 탔으며 며칠간 노란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는 너무나 쇠약해져 일어설 수 없었고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 방 전체가 살이 탄 냄새로 가득했다.
날이 어두워진 후 경찰은 허우 씨의 손발을 철제의자에 결박했고, 한밤중에 그를 완보린구 구치소로 끌고 갔다. 구치소는 심각한 상태인 그를 보고 입소를 거부했지만, 경찰은 구치소 측에 건강 상태 기록에서 부상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허우 씨가 감방으로 끌려갔을 때 재소자들은 그의 심각한 부상을 보고 모두 충격을 받았다.
카렌은 “조카는 그때 이후로 신장에 심한 통증이 발생했습니다. 의사는 심부전과 신부전이 발생했으며 심각한 상태라고 진단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단식 105일 후, 허우 씨는 구사일생으로 구치소를 나오게 됐고 최근 납치 전까지 20년을 떠돌며 생활했다.
캉수친의 죽음
허우 씨의 어머니 캉수친은 타이위안시 제45중학교의 교사였다. 그녀는 여가에는 타이위안 연공장 보도원으로 활동했다. 박해가 시작된 후 마지막 납치인 2002년 10월까지, 그녀는 세 차례 감금됐고 1년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2002년 허우 씨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 캉수친은 산시성 여자감옥에서 징역 11년 형을 선고받았고 그곳에서 전기충격, 수면 박탈, 유해성 약물 투여 등 고문을 당했다.
장기간의 고문으로 그녀의 다리는 심하게 부어올라 굽힐 수 없었고 보행이 매우 어려웠다. 재소자들은 겨울에 일부러 창문을 열어 그녀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그녀는 또한 장기간 굶주림에 시달렸다.
지옥 같은 11년을 보낸 캉수친이 마침내 살아서 풀려났을 때, 경찰은 계속 그녀를 감시했다. 그들은 그녀를 감시하기 위해 주민위원회 사람들을 동원했고 집에 도청기를 설치하기도 했다.
타이위안시 제45중학교 교장 쑨춘옌과 학교 감독관 장샤오빈은 캉수친의 연금을 10년 이상 동결해 그녀와 가족들이 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했다.
박해로 건강이 무너진 캉수친은 2020년에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죽음은 남편에게 큰 충격이 됐고 남편 역시 뇌졸중으로 고생하며 극도로 쇠약해졌다.
카렌은 말했다. “역사적으로 정의는 항상 승리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은 조만간 정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중국의 모든 경찰과 재판부에 즉시 박해 참여를 중단하고 제 가족 세 명을 즉각 석방할 것을 촉구합니다!”
박해자 연락처:
양춘성(楊春生), 진저우 감옥 15동 책임자: +86-15303545699
장즈밍(張志明), 진저우 감옥 정치비서
가오아이핑(高愛平), 완보린구 법원 판사: +86-13835853588
(역주: 상세한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3년 6월 15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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