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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20년간 한결같이 중국영사관 앞에 선 이유

글/ 한국 파룬궁수련생

[밍후이왕]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20년을 한결같이 중국 내 파룬궁 탄압 실상을 알려온 남금랑(77세, 부산 남구)씨. 그녀는 백전노장, 중국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중국공산당에 세뇌된 중국인들에게 파룬궁의 진실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다.

'图1:驻釜山中国总领事馆对面,南女士每天在固定的地点挂好真相横幅,向中国人发放真相资料。'
부산 주재 중국총영사관 건너편, 남금랑씨는 매일 같은 자리에 현수막을 걸고 중국인들에게 자료를 나눠준다. 현수막에는 중국공산당 3대 조직을 탈퇴한 숫자와 함께 “중국은 중공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파룬궁 수련과 중공의 박해

남 씨가 파룬궁과 인연이 된 것은 21년 전이다. 등산을 즐기던 남 씨는 매일 아침 산에 올랐고, 등산로에서 가부좌 자세로 눈을 감고 수련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파룬궁이었다. 한참 동안 조용히 지켜보던 남 씨는 매우 좋다고 느꼈고, 바로 배우기 시작했다. 수련을 시작한 뒤 신체는 건강해졌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파룬궁은 리훙쯔(李洪志) 선생이 창시한 불가의 상승(上乘) 수련대법으로, 1992년 중국 지린성 창춘(長春)시에서 처음 공개했다. 수련 지침서인 ‘전법륜(轉法輪)’을 읽으며 생활 속에서 ‘진선인(真·善·忍)’을 실천하고 다섯 가지 공법으로 신체를 연마한다. 비용을 받지 않고 배우기 쉬운 데다 심신 건강 효과가 탁월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파룬궁은 90년대 중국에서 수련자가 7년 만에 약 1억 명으로 빠르게 늘었다.

그러나 수련한 지 얼마 후, 그녀는 중국에 있는 파룬궁수련생들이 중국공산당으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처음 몇 년간 파룬궁을 적극 권장하던 중국공산당 정권은 몇 년 사이에 파룬궁수련자 수가 당시 공산당원수를 훨씬 초월하자 1999년 7월 20일부터 전면적인 탄압을 감행한 것이다.

“수련을 배우기 시작한 뒤, 파룬궁 수련이 심신 건강에 매우 좋다는 것을 단번에 알았어요. 그런데 이런 좋은 공법을 왜 박해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죠. 너무 안타까워 박해 소식을 듣고 저도 모르게 끊임없이 눈물이 나왔어요.”

‘1인 집회’ 20년

남 씨는 파룬궁의 진실을 중국인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부산 파룬궁수련생들과 함께 부산 주재 중국총영사관(이하 영사관)에 가서, 영사관 맞은편에 박해 중지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걸고 영사관을 방문하는 중국인들에게 자료를 나눠주었다. 그녀가 만난 많은 중국인은 중국에서 보도된 내용과 완전히 다른 사실을 알고 놀라는 모습이었다. 중국에서 접해온 것은 공산당이 통제한 매체에서 쏟아내는 거짓 선전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활동을 시작하자 영사관의 방해도 이어졌다. 영사관 직원들이 수시로 나와 한국어로 심하게 욕하며 남 씨 주변에 물을 끼얹기도 했다. 그들은 ‘수상한 사람들이 영사관 앞에 있다’면서 쉴 새 없이 경찰에 신고해 경찰도 자주 출동해야 했다.

“진상을 알리려면 합법적으로 1인 집회를 해야 했어요. 이를 못마땅해하는 영사관 측에 경찰은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도 1인 집회를 간섭할 수 없다’라며 선을 그었죠. 그 뒤로 영사관 측에서도 잠잠했어요. 한국 경찰은 우리에게 우호적이었어요.”

중국 관광객 버스 창문 너머 보낸 ‘엄지척’

2005년경, 중국 관광객이 대거 한국을 방문했다. 부산 용두산 공원에는 중국인을 실은 관광차가 하루에도 수십 대씩 몰려왔다. 남 씨는 중국인들에게 진실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동료 수련생과 함께 용두산 공원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진실을 접한 중국인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중국인들은 우리에게 삿대질하며 보란 듯이 나쁜 말을 내뱉었어요. 중국공산당의 선동에 세뇌된 데다 신변 안전을 위해 욕한 거겠죠. 그러나 관광차 뒷좌석에 앉은 몇몇 중국인은 창문 너머 우리를 향해 소리 없이 손뼉을 치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어요. 그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죠. 우리는 관광차가 공원을 빠져나가는 순간까지 진상을 알리는 현수막을 높이 들었어요.”

현수막을 보며 몰래 눈물을 훔치던 중국인도 있었다. 남 씨는 그 중국인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장쩌민의 명령 하나로 좋은 사람이 일순간에 박해대상이 된 상황을 많은 중국인이 공포와 무력감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남 씨는 중국인이 흘린 눈물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중국인 남성 두 명이 눈물을 흘리며 우리 쪽으로 걸어오더군요. 가입했던 중국공산당 3대 조직(공산당, 공청단, 소선대)에서 탈퇴하겠다면서 자료를 받아 갔어요.”

무고한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20년간 쉬지 않고 진상을 알려온 남 씨. 그녀에게 강인한 의지와 내공이 엿보였다.

 

원문발표: 2021년 8월 19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8/19/4297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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