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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파룬궁 보도원이 중공의 반인류 범죄를 입증하다

[밍후이 기자 잉쯔 캐나다 보도] 전 난징(南京) 펑황제(鳳凰街)의 파룬궁 연공장 보도원 리어잉(李娥英)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중국 공산당이 지난 20여 년간 파룬궁수련생들에게 가한 박해를 자신의 체험으로 전했다.

'图1:在法轮功学员反迫害22周年之际,原南京凤凰街法轮功炼功点辅导员李娥英在加拿大中使馆前参加反迫害集会,集体炼功。'
파룬궁수련생들의 반박해(反迫害) 22주년을 맞아, 전 난징(南京) 펑황제(鳳凰街)의 파룬궁 연공장 보도원 리어잉이 캐나다 중국 대사관 앞에서 반박해 집회에 참여하여 단체 연공을 하고 있다

리어잉은 1966년 대학 캠퍼스에서 파룬궁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신념이 바로 그녀가 찾으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 후로 어잉은 매일 단체로 법을 배우고 공을 연마하며, 진선인에 비추어 자신에게 요구했다. 그때 난징 한중먼(漢中門) 연공장의 사람이 날로 많아지면서, 일부가 펑황제(鳳凰街)로 옮겨 펑황제 연공장을 설립했다. 어잉은 여러 사람의 법학습과 연공 그리고 대법을 전파하는 일을 잘 이끌었기에 이 연공장의 보도원이 되었다.

어잉은, 3년 후 중국 공산당이 박해를 일으켰을 때 믿음을 견지하고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핵심 인물로 파악되어 중공의 주요 박해대상이 될 줄은 몰랐다. 어잉은 이 박해로 중국 공산당 반인류 범죄의 피해자이자 산증인이 되었다.

임신 중에 핍박으로 떠돌다

1999년 7월, 중국 공산당을 대변하는 나팔수 매체의 증오 가득한 선전이 천지를 뒤덮었다. 경찰은 그림자처럼 추적, 감시하고, 재산을 압류했다. 어잉은 그 당시 엄청난 사고(思考)의 혼란을 겪었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수련하는지 자문했다. 파룬궁은 텔레비전에서 말한 것처럼 그런가? 마침내 그녀는 중국 공산당의 선전이 완전히 조작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3년 동안의 심신 변화가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정법(正法)이라는 것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어잉은 내면의 진실한 느낌에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수련의 길을 걸어가며 결단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때 난징의 일부 보도소장은 불법적으로 수감되었다. 어잉은 현지 수련생과 함께 장쑤성 정부에 문제해결을 요구하러 갔다. “모두 매우 평화로웠고 저쪽으로 서 있었기에 시끄러운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30분도 안 되어 경찰이 많이 왔습니다. 한 차의 진압 경찰이 와서 우리를 모두 잡아갔지요. 그곳에 온 파룬궁수련생이 특히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중학교에 가두었습니다. 경찰은 거칠게 사람을 차에 태웠어요. 당시 내 손도 그들에게 잡혀 다쳤습니다. 중학교 교실에서는 경찰이 모든 사람의 사진을 찍었고, 성명과 주소를 제공해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모든 문명사회에서는 임신, 출산, 수유기의 여성은 전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 돌본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중국 공산당 장쩌민 집단의 파룬궁 말살 정책으로 임산부조차 마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잉은 임신 기간에 늘 현지 경찰의 괴롭힘과 재산 압류를 당했다. 경찰은 부르는 대로 오라고 강요했으며, 파출소에 와서 훈시를 들으라고 소리 지르는 등 태도가 매우 불량했다.

“그들은 낮에 소란을 피웠을 뿐만 아니라, 새벽 2, 3시에도 전화를 걸어 소란을 피웠습니다. 전화를 받으면 그들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으나, 간담이 서늘했으며,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괴성이 들렸지요. 출산을 기다리는 동안 경찰은 병원에까지 따라와서 감시했으며, 아이를 낳은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계속 소란을 피웠습니다.” “출산을 앞두고서는 주민위원회(주: 우리나라의 행정자치센터에 해당) 관계자들이 매일 찾아와 소란을 피워댔고, 병원에 아이를 낳으러 갔을 때는 경찰과 주민위원회 관계자가 따라와서 감시하였기에 자유라고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집으로 돌아오자 주민위원회는 바로 찾아와 소란을 피우고 협박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기도 전에 경찰은 집주인에게 어잉을 내쫓으라고 협박했다. 주민위원회 관계자와 경찰은 매일 번갈아 가며 사람을 몰아쳤다. 집주인은 어쩔 수 없이 어잉에게 “나는 당신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방법이 없어요. 만약 내가 당신들을 살게 한다면, 우리 자신도 지켜내기가 어렵습니다. 제발 빨리 이사 가주세요”라고 했다.

어잉은 당시 환경에서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누구도 감히 집을 빌려주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아이를 안고 이사 갈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마음씨 좋은 친구가 남은 집 한 채를 우리에게 빌려주려고 했기에 임시로 거주할 곳이 생겼다.”

“아이가 두 살 때인 2002년 8월, 진상 자료를 나눠주려고 나갔다가 납치됐습니다. 열흘 정도 지나, 해외에서 돌아온 오빠가 친구에게 저를 위해 보증을 서달라고 부탁하고 나서야 저는 나왔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경찰이 우리 집에서 보름 넘게 살았는데, 집에 있는 프린터와 컴퓨터 그리고 많은 대법 서적을 빼앗아 갔습니다. 가족 모두 외출이 허용되지 않아서 보모가 장을 보러 나가도 경찰이 미행했지요. 당시 수련하지 않던 남편도 잡혔습니다.”

강제로 채혈되다

2014년 10월, 어잉의 중학교 2학년 딸이 학교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선생님의 고발로 학교로 온 국안(중국 국가안전부의 약칭)의 위협을 받았다. 일주일 후에 어잉은 우시(無錫)시 둥장(東絳)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되었다.

그날 아침 그녀가 딸을 학교에 보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경찰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재산을 압류했다. “당시 우시(無錫)시 공안국과 빈후(濱湖)구 ‘610’의 국보(國保) 경찰이 와서 제게 형(刑) 선고받을 준비를 하라면서 또 파출소로 납치했습니다.”

파출소에 도착하자 경찰은 어잉의 혈액을 채취한 후, 혈액 샘플을 문서의 그녀 이름 아래에 붙였다. 어잉은 경찰 그곳에 파룬궁수련생들의 자료 창고가 있는데, 거기에 모든 사람의 상세한 개인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고 회상했다. 먼 친척들의 정보를 포함하여 모두 분명하게 기록되어 언제든지 조회할 수 있었다.

어잉이 출국한 후 2019년 12월경, 후난(湖南)성 쯔싱(資興)시의 국안 경찰이 어잉의 가족에게 쯔싱에 있는 집을 몰수하고 그곳에 남겨진 물건을 압수하겠다고 협박하고, 또 해외에 있는 그녀의 연락처를 제공하라는 협박을 했다고 어잉이 말했다.

채혈을 당한 후에 어잉이 눈여겨본 또 다른 것은 잡혀 온 사람이 파룬궁수련생이 아니면 아무도 채혈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뜬금없이 사라진 일가족 세 명

2019년 3월, 어잉은 우시에서 택시를 타고 상하이로 가서 일을 처리했다. 30대 초반의 기사가 도중에 자신은 안후이(安徽)에서 왔다고 했다. 그의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도 파룬궁을 연마했다. 이 학우는 당시 열 살쯤 되었고,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파룬궁을 연마했다. 그러나 1999년에 박해가 시작된 후 어느 날, 학교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이 남자아이가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압박이 너무 커서 자퇴했다고 했다.

택시 기사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중국에서 부모는 아이 학업을 매우 중시하잖아요. 부모는 아이를 교육받을 나이에 퇴학시킬 수 없고, 아이도 압박이 크다고 학교에 가지 않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 가족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들이 살던 집은 다시는 돌아와 사는 사람이 없었고, 일가족 셋이 모두 사라졌어요.”

어잉은 기자에게 중국 공산당이 살아있는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적출하는 것에 관한 보도를 해외에 나와서 많이 보았다고 했다. 그녀는 이 일가족도 뜻밖의 사고를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图二:陆树恒的举报内容涉及参与活摘器官的亲戚'
루수헝(陸樹恒)의 신고 내용은 생체장기 적출에 가담한 친척과 관련된다

밍후이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실내장식업에 종사하는 중국인 루수헝은 생질(누나의 아들) 추이자오성(崔照生)이 상하이 쉬후이(徐滙)구의 경찰 보조원(協警)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2013년에 추이자오성은 루수헝에게 파출소로 보내진 파룬궁 수련생은 바로 푸둥(浦東)으로 보낸다고 했다. 파룬궁수련생 한 명을 보낼 때마다 현금 500위안(약 9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추이자오성은 “나는 1년에 적어도 몇 번은, 잡혀 온 파룬궁수련생을 직접 푸둥으로 보내야 한다”라고 했다.

루수헝 형수(周玉)의 언니 저우칭(周淸)도 살아있는 파룬궁수련생들의 장기 적출에 가담했다. 저우칭의 진술에 따르면 생체장기를 적출할 때 파룬궁수련생들이 처음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쳤는데, 나중에는 필사적으로 고통스럽게 외치며 비명을 질렀다…… 생체장기를 적출할 때는 옆에 무장 경찰이 보초를 서고, 군부대 의사를 포함하여 모두 서너 명이나 네다섯 명이 현장에 있었다.

어잉은 중국 농촌에 사는 파룬궁수련생들이 장기적출 대상이 되기 쉽다고 했다. 돈도 없고 세력도 없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할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배경:

2019년 6월 17일, 재판장 조프리 니스가 주재한 영국의 ‘독립시민법정’은 몇 달 동안 ‘중국에서 살아있는 양심수의 장기를 떼어 내는 문제’에 대한 조사를 거친 후에, 런던에서 다음과 같이 선고했다. “중국(중공)이 살아있는 양심수에게서 장기를 강제로 적출했으며, 사건에 연루된 시간이 아주 길고 관련 피해자가 몹시 많다는 것이 법정 구성원들의 한결같은 확신이며 의심할 여지가 없다.” “파룬궁수련생이 장기 공급체의 가장 주요한 원천이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반인류 범죄와 가혹한 형벌을 가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2020년 3월 1일, 독립시민법정은 처음으로 160쪽에 달하는 판결보고서 전문을 발표했고, 300쪽의 증인 증언과 진술을 부록으로 별첨했다. 재판을 주재한 재판장 조프리 니스는 법정의 판결이 처음 선고된 이후 지금까지 세부 사항에 대해 반박하거나 질의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원문발표: 2021년 8월 3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8/3/4290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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