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 진상 후기
내장산은 단풍과 기암괴봉으로 호남의 금강으로 불리며, 대한 8경의 하나이다. 백양사는 내장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사찰로서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주변지역 교통이 마비될 정도이다.
전날 동수들과 9시쯤 백양사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터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는데도 백양사를 가려고 내장산 입구에 도착하니 벌써 도로는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돌아서 가는 길을 선택하여 무사히 백양사에 도착하게 되었다
주차장 여러 곳을 지나쳐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사찰 입구쯤 사람들이 훤히 볼 수 있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진상사진, 혹형사진, 진상자료대, 고성녀 구명을 위한 서명 안내 파넬과 서명대, 수련생 3명으로 효과 있게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를 하였다. 그날 단풍구경인파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사진을 미처 다 전시하기도 전에 진상사진 앞에는 계속하여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어떤 때는 진상사진 앞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들어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었지만 가끔씩 지나가는 사찰로 진입하는 차량이 지체될 정도여서 한편으론 미안한 감도 들었다. 그동안 진상을 해오면서도 오늘처럼 보람 있게 해보기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다.
진상사진들을 보면서 “지금 세상에도 이런 일이 있느냐며 흥분하는 사람, 진상내용을 조용하게 듣고 공감하는 사람, 진상을 알고서 어린이가 엄마한테‘왜? 저렇게 됐어, 왜? 때렸어’하면서 부모님과 진상에 대한 대화를 하는 사람, 진상내용을 보고 고성녀 구명을 위한 서명대에 와서 자발적으로 서명하는 사람…….”
많은 사람들이 박해사진을 보고 옆의 서명대로 가서 바로 서명을 했는데 그분은 고성녀 구명 서명인지도 모르고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박해가 너무 심하다고 느껴 마음의 지지를 보내는 서명을 했다. 대구말씨를 쓰는 어떤 분은 서명을 하고서 같이 온 동료들을 모두 불러 서명을 하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서울,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전국 각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파룬궁에 대해서 알고 있다, 우리동네 공원에서도 연공을 하고 있다, 서명을 부산에서도 했다……, 파룬궁에 대해서 그리고 파룬궁이 중국에서 탄압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파룬궁에 대한 내용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상대 앞에는 사람이 그칠 줄 모르고 모여들었는데 우리는 진상을 설명하고 질문에 답하고 서명을 받느라 점심시간에는 함께 점심을 먹을 수도 없어서 교대로 식사를 했다. 중간에 자료가 부족하여 주차해 둔 차에 가서 남은 모든 진상자료를 가져와야 했다.
가지고 간 진상자료가 모두 바닥이 날 즈음 고개를 들어보니 해가 막 산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도 계속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지만 아쉬움을 남긴 채 우리는 자료를 정리하고 행사를 마쳤다.
사부님께서 “한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개인의 해탈은 수련의 목적이 아니다. 중생을 구도함이 비로소 당신들이 올 적의 큰 소원(大願)과 정법 중에서 역사가 당신들에게 부여한 책임과 사명이다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세인을 구도하자-라고 말씀하셨다.
진상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다는 것은 우리 수련생들의 책임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 절실했으며 중생구도를 위해 정체적으로 진상활동에 참가해야 함을 통감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