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부터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비는 안와야 될텐데 라는 마음으로 진양호로 향했다.
12시가 되자 한방울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홍 동장님과 함께 매표소 입구에 법륜대법 프래카드를 설치하고 나서 행사장으로 향했다. 일기예보는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고 하였지만 이제와서 행사를 연기할 수는 없었다. 비가 와서인지 사람들은 진양호를 계속 빠져 나가고 있었다. 각지에서 동수들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데 행사를 계속 하는지 물었다. 이제와서 행사를 연기할 수는 없다고 대답하였다.
오후 1시가 지나자 대구분들이 장비를 싣고 도착하였다. 뒤이어 멀리 경북지방 동수들, 부산 경남 각지에서 동수들이 도착하였다. 40여분의 동수들이 온 것 같앗다. 모두들 한마음으로 이번 행사에 참가하였다는 생각을 하자 행사를 더는 뒤로 미룰 수는 없었다. 비록 날씨는 우리의 행사를 방해하였지만 동수들의 대법에 대한 마음은 꺽을 수는 없었다. 임소장님과 장소를 둘러보았는데 그런데로 우약정 정자에서 행사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10평 남짓되는 공간이지만 비를 피할 수는 있었다.
차에서 장비를 내리고 30미터 위 우약정까지 날랐다. 비가와서 비록 고생스럽지만 모두 밝은 얼굴로 장비를 나르고 행사를 준비하였다. 아무도 싫어하거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동수들의 그런 숭고한 마음을 보고 내 자신의 마음도 비추어 보았다. 과연 나는 여기에 무엇하러 왔는가? 지금 중국 동수들은 사악에 맞서서 자기의 일체를 바쳐가면서 정의와 올바른 믿음을 수호하고 있는데……
행사전에 먼저 연공을 하였다. 이제까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던 비는 연공을 시작하자 갑자기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정자에서의 연공음악은 비소리를 뚫고 멀리 메아리쳐 진양호로 퍼져 나갔다. 비록 보는 사람은 얼마 없었지만 동수들의 연공모습은 주위 경치와 어우려져 한폭의 그림같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연공동작을 보았지만 오늘의 장면은 또다른 모습으로 가슴에 다가왔다. 이따금 우약정을 찾는 사람들은 멈추어서서 연공동작을 보고 있었다. 이름모를 뭇새 두 마리가 나뭇가지에서 왔다갔다하며 연공음악에 맞추어 노래하고 있었다.
연공후 장쩌민 모의재판이 시작되었다. 대구 경북 동수분들의 배려로 부산경남 동수분들이 배역을 맡아 진행하였다. 지금 중국에서는 파룬궁을 박해하지만 여기에서의 우렁찬 사자후는 충분히 사악을 질식시키고 있었다. 한마디 한마디의 장쩌민을 질타하는 고함 소리는 진양호에 메아리쳤다. 비가 내려서인지 두꺼비 한 마리가 정자 앞에서 왔다갔다 하였다. 모두들 우약정을 둘러싸고 자리를 떠나지 않은체 모의재판을 보고 있었다. 많은 동수분들은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한체 조용히 듣고 있었고, 또 어떤 동수분은 입장한체 사악을 질식시키고 있었다.
그런데로 비속이지만 행사는 마칠 수 있었다. 비록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우리 수련은 평탄하지만은 아니할 것이다. 굽은길도 있고 가시밭길도 있지만 우리는 헤쳐나갈 것이다. 오늘 비속에서 여러 동수들의 모습과 대법에 대한 견정한 마음을 보면서 정체의 힘은 대단하고 역시 대법의 힘은 대단하다고 느꼈다. 모든 면에서 힘든 조건이었지만 오히려 더 많이 참석하였고 상화한 분위기였다. 동수들의 그런 숭고한 마음과 대법에 대한 일편단심은 나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사실 어제부터 오늘 비가 올 것이라고 모두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많은 동수들이 참석하였다. 비록 어려운 조건에서 행한 행사이지만 모두의 마음은 대법으로 이어져 있었고 이런 마음이 확대된다면 대법이 한국에서 찬란히 꽃피우게 될 날도 머지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멀리서 행사에 참석한 경북,대구 동수분들과 부산 경남 동수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사부님의 고도(苦度)로 글을 맺고자 한다
“재난이 오기 전에 법의 배를 몰고 오니
억만 험난 층층이 막아서누나
산산이 조각난 건곤을 싣고
한번 꾼 꿈 만년이라 끝내 대안에 도착하네”
2004년 5월 2일
진주수련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