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스베틀라나
[밍후이왕] 히틀러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 수(특히 민간인 사망자 수)를 기록한 전쟁이었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은 잊혀질 수 없는 커다란 고통이었다.
특히 히틀러의 만(卍) 자가 나치의 상징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전 세계를 뒤덮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이 만 자를 두려운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만 자 부호는 정말 히틀러와 나치의 것일까? 히틀러는 오늘날까지 살아도 겨우 132세에 불과하지만, 만 자 부호는 최소 수만 년 동안 인간 사회에 존재해 왔다.
6천 년에서 만 년에 이르는 역사 속에서 만(卍) 자 부호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을까? 동양에서든 서양에서든, 궁전에서든 오두막에서든, 만 자 부호는 왜 특별한 주목을 받았을까?
오늘날 난세를 사는 우리에게 만 자 부호는 어떤 상서로움을 가져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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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부: 최소 6천 년 전부터 인류에게 알려진 상서로운 도형
제2부: 호피의 예언에 나오는 만 자 부호
제3부: 신께서는 이미 돌아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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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1889년 4월에 태어났다. 독일 정치인이자 나치당의 지도자였던 그는 1939년 9월 폴란드와의 전쟁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히틀러는 패전을 목전에 둔 1945년 4월 30일, 포로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히틀러는 유대인 대학살(1941~1945)의 주요 기획자이자 발기인 중 한 명이다. 그의 지도로 나치는 최소 550만 명의 유대인 남녀노소와 심신 장애자를 학살했다. 그와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에서 2930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했고, 인류 전쟁 역사상 가장 많은 민간인 사망자를 초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전쟁이 됐다.
그것은 인류에게 잊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며 절대 반복하고 싶지 않은 깊은 고통이었다. 동시에 히틀러가 남긴 개인적인 매력과 연설, 선전 재능 등에 대한 인상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히틀러가 강탈해 도용한 만(卍) 자 부호다.
현재는 유대인 대학살의 생존자가 많지 않지만 서구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만 자 부호를 보면 겁을 먹는다. 다시 말해 히틀러는 ‘만 자 부호가 나치에 속한다’는 개념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고, 만 자 부호는 재난이 끝난 지 8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검은색을 연상시킨다.
만 자 부호가 정말 나치에 속하는 것일까? 절대 아니다. 히틀러가 오늘날(2021년)까지 살아도 132세에 불과하지만, 만 자 부호는 6천 년에서 만 년을 넘는 시간 동안 인간 사회에서 추앙을 받아 왔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오래된 인디언 부족인 호피족이 살고 있다. 호피 보호구역 근처에는 진귀한 ‘예언의 돌’이 있다. ‘예언의 돌’에는 만 년을 넘는 역사를 가진 호피족의 중요한 예언이 많이 그려져 있는데, 그 그림 속에는 내포가 대단히 중요한 만 자 부호가 새겨져 있다.
18개월 동안 산발적으로 지속된 전염병도 아마도 종식될 것이며, 인류와 역사의 마지막 수수께끼는 곧 풀리게 될 것이다. 우주의 중요한 정보를 품고 있을 만 자 도형을 앞에 두고 오늘 우리가 역사의 바다에서 함께 몇 분 정도 할애하는 것은 괜찮을 것이다.
제1부: 최소 6천 년 전부터 인류에게 알려진 상서로운 도형
만(卍) 자 부호는 산스크리트어로는 스리바차(Srivatsa), 영어로는 스와스티카(Swastika), 중국어로는 완쯔푸(萬字符), 일본어로는 만지(萬字)로 불린다. 고대 산스크리트어로는 ‘상서로운 바다 구름 모양’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부처님 가슴에 있는 만 자 부호가 바로 ‘상서로운 바다 구름 모양’이다. 상서로움과 우주의 바른 에너지를 대표하는 이 부호는 동서양 고대 문명에서 자주 등장했다.
어떤 사람은 가장 오래된 만 자 부호가 기원전 2500년경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1933년 한 연구에 의하면 만 자 부호는 기원전 1000년에 인도로부터 페르시아와 소아시아(서아시아)를 거쳐 그리스에 들어온 다음 이탈리아를 거쳐 독일로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독일 베를린 서아시아 박물관은 이라크에서 출토된 사마라 접시(Samarra Plate)를 소장하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 채색 도기 접시의 제조 시기를 기원전 약 5000년, 즉 지금으로부터 7천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 접시 중앙에는 만 자 도형이 하나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메소포타미아 도자기 그릇을 소장하고 있다. 6천 년 전의 이 도자기 그릇에도 만 자 도형이 그려져 있다.
‘메소포타미아’는 두 개의 강 유역에 대한 고대 그리스의 명칭이다. 이 두 개의 강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가리킨다. 두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평원에서 출현하고 발전한 고대 문명을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칭한다. 위치는 대략 오늘날의 이라크이며, 인류 최초의 문명 중 하나다.
기원전 3200년경 수메르인이 발명한 쐐기 문자, 2600여 년 전 진흙판 2만4000여 점을 보관하고 있던 아슈르바니팔 도서관, 서문과 맺음말, 282조의 본문으로 구성된 ‘함무라비 법전’, 고대 바빌로니아인의 삼각함수 연산, 기원전 747년 바빌로니아인의 일식과 월식에 대한 정확한 예측 등등은 모두 오래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속한다.
중국에서는 간쑤(甘肅)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마자야오(馬家窯) 채색 도기 항아리의 주요 문양도 만 자 부호인데, 이 고대 유물은 약 5천 년 역사를 갖고 있다.
잉글랜드 요크셔에서는 약 4천 년 전의 만 자 부호가 새겨진 바위가 발견됐다.
고대 그리스(기원전 800년)에서는 만 자 부호가 널리 사용됐다. 신전 건물과 제기에 만 자 도형이 있으며, 채색된 도자기 그릇에도 늘 만 자가 그려져 있었다.
예를 들면, 그리스에서는 대략 기원전 700년에 만들어진 곡물 항아리가 출토됐다. 윗면에는 아르테미스(달과 사냥의 여신으로도 알려짐) 도안이 그려져 있고, 주변을 만 자 도형이 둘러싸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은 만 자 도형으로 신성한 힘을 표현한 것일까?
또 다른 예는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의 소장품인 테라섬의 암포라(Amphora)로, 기원전 900년경의 유명한 트로이 전투가 묘사되어 있고, 말(馬) 위에 세 개의 만 자 부호가 그려져 있다. 이 고대 그리스의 만 자 부호는 약 3천 년 된 것이다.
고대 로마(기원전 753~476년)의 제단 등 건축물에 표시된 만 자 부호도 약 3천 년 이상 된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신과 연관된 만 자 도형은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 ‘만(卍) 자’는 초기 기독교에서도 아주 흔히 볼 수 있었으며, 사람들의 사랑과 신도들의 추앙을 받았다. 후기에 와서는 집과 용품 장식에 더욱 일상적으로 사용됐다.
고대 인도, 티베트, 일본, 한국 등 불교 수행을 중시하는 지역에서는 만 자 도안이 훨씬 더 일반적이었다. 중국인과 동남아인에게 만 자 도형은 부처와 연관돼 있었다. 수많은 고대 부처 조각상이나, 초상화 속 부처 가슴에는 모두 만 자 표기가 있었다.
이스라엘의 고대 도시 맘시트(Mamshit) 유적에서도 서기 4세기의 만 자가 새겨진 모자이크 바닥 타일이 발견됐다. 전통과 내구성을 가진 모자이크는 로마 제국의 비잔틴 시대(서기 395~1453)와 중세(서기 476~1492)에 상당히 성행했다.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만 자 도형 모자이크 바닥 타일은 사람들에게 만 자 부호가 반유대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깨닫게 한다.
불행한 것은 수천 년 전 인류가 만 자 부호에 호의를 보인 것과 달리 히틀러가 검은색 만 자 부호를 나치의 상징으로 내세워 선전함으로써 사람들의 감각기관과 신경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히틀러의 의도가 무엇이든, 인류가 나치에게 만 자 도형이라는 ‘상서로운 바다 구름 문양’을 부여하기를 거부한다면 히틀러는 그것을 계속 강탈할 수 없다.
(계속)
원문발표: 2021년 7월 9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1/7/9/4279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