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노 H.(Arnaud H.)
[밍후이왕] (전편에 이어) 오늘날 사람들이 그리스 신화에 대한 이해는 대부분 호머(Homer)와 헤시오도스(Hesiodos)가 전한 서사에서 비롯됐다. 그들은 그리스 신화 중 상대적으로 융합되기 쉬운 두 가지 체계였다. 사실 서로 다른 근원마다 하나의 단독 버전이기에 내용 면에서 모순되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학술적인 면에서 볼 때 그리스에는 상술한 두 사람의 버전 외에 시나리오작가 소포클레스(Sophocles), 서정시인 핀다로스(Pindar), 비극 시인 아이스킬로스(Aeschylus) 등 다수의 문학가가 주제를 재창작했는데, 각종 버전 사이에 모순 상황도 더 심해졌다.
또한, 고대 그리스 올림포스 주류 신앙 외 일부 기타 신앙단체, 예를 들면 오르페우스교(Orphism), 엘레우시스 제전(Eleusinian Mysteries) 등 일정한 영향력을 가진 파벌이 있었다. 교리의 원인으로 인해 일정한 범위에서 서로 다른 신화 버전이 형성돼 그리스 신화 체계가 더 방대하고 복잡해졌다.
많은 중국인 독자들은 서양 신화에 대해 잘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여기에서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아테나와 아폴로를 예로 들고자 한다.
대다수 사람이 알고 있듯이 아테나는 팔라스 아테나(Pallas Athena)라고도 부른다. 광범위하게 전해진 버전에 따르면 아테나가 가까운 선녀 친구 – 팔라스와 격투 연습을 하다가 부주의로 팔라스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큰 슬픔에 빠진 아테나는 세상을 뜬 절친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팔라스 아테나’로 개명했다.
하지만 다른 버전에서 아테나가 죽인 팔라스는 남성 거인(Giant)인데, 그가 제우스의 통치를 반대했기에 기간토마키아(Gigantomachy) 전쟁에서 아테나가 그를 죽였다고 한다.
또 다른 버전에서는 아테나가 죽인 것이 ‘팔라스’라 불리는 티탄신(Titan, 타이탄이라 번역하기도 하는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래된 신족임)이고, 기간토마키아 전쟁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
물론 그리스 신화에는 더 많은 설이 있다. 전해져 내려온 데에 따르면 아테나는 원래 ‘팔라스’라 불렸지만, 아테네 사람들이 이 여신을 널리 숭배하면서 그녀 이름도 ‘팔라스·아테나’로 변했다고 한다. 뜻인즉 아테네의 팔라스이고 다른 사람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포이보스 아폴로(Phoebus Apollo)라 불리는 문예의 신, 광명의 신, 태양신은 헷갈릴 정도로 이름이 다양하다. 게다가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신 이 신분에도 여러 인물이 존재하기에 이런 복잡 다양한 버전들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12 티탄신 시대에 대지의 신 가이아(Gaia)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의 아들 히페리온(Hyperion)은 원래 광명과 태양을 관리하는 신령(神靈)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 헬리오스(Helios)가 신화에 나타나자 사람들은 양자를 동일시했다. 헬리오스가 매일 태양 차를 몰고 하늘을 가로질러 세계에 광명을 주었기에 그도 태양신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러 버전이 끊임없이 겹쳤기에 사람들은 헬리오스와 제우스의 아들 아폴로를 헷갈렸다……
만약 이런 혼란스러운 신화 버전이 조성한 폐단이 누가 누군지 모르는 데에만 그쳤다면, 인류 도덕에 그렇게 심각한 손상을 입힐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문인과 민중들이 개인 취향에 따라 제멋대로 이야기를 집필하면서 문화는 더욱 위험한 구렁텅이로 떨어졌다.
기원전 7세기 말에 이르러 그리스 신화 중 여러 버전의 인물들이 점점 쌓이면서 혼란스럽고 번잡한 체계가 형성되었고, 이야기 속 인물 간의 연계와 작용이 더 밀접해졌다. 그중 남성 신과 남성 영웅 사이에 서로 작용하는 신화가 끊임없이 나타나면서 원래 순수한 우정과 존경을 담아냈던 이야기가 차츰 맛이 변했다. 도덕적 패괴(敗壞)와 병적인 자극을 추구하는 심리로 인해 남성 동성애 기풍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기풍은 고대 올림픽과도 연관이 있다. 당시 올림픽은 남성만 참가할 수 있고, 경기 규칙상 운동선수의 장착을 금지했다. 또한, 대중들이 남성의 신체적 아름다움에 대해 평가하도록 장려했다. 고대 그리스 제전의 주요 의식 중 하나인 올림픽은 민중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남성 나체미를 감상하는데 점점 익숙해졌다. 인간의 욕망이 강해지고 도덕성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사람들은 본말을 전도해 힘과 인체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서 동성애로 발전하는 구실을 찾게 됐다.
당시 사회에 레즈비언도 있었지만,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비교적 낮았기에 여성 동성애는 큰 파란을 일으키지 못했다.
사회에서 남성 동성애자의 수량이 일정한 비례에 이르자 문예 종사자들은 자극을 추구하는 민중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이와 관련된 내용을 끊임없이 이야기 속에 편집해 넣었다. 기원전 5세기 문학과 예술작품을 보면 많은 남신 옆에 청년 남성 파트너가 적어도 한 명 있었고, 이야기 속의 많은 영웅에게도 이와 비슷한 남성 파트너가 나타났다.
황당해 보이는 이런 상황은 현재 일부 사회현상과 흡사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사회는 상당히 개방되었지만, 동성애를 말할 때면 그래도 모두 부도덕한 행위라고 말했다. 하지만 몇십 년 후의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경쟁적으로 ‘동성 결혼’이 합법적이라 선포했다. 많은 정계인사는 동성애를 혐오하면서도 여론과 정치 압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공개적으로 ‘동성 결혼’을 지지하고 있다. 문예 종사자들도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 시대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고, 영화와 TV, 문학, 예술영역에서도 이런 것들을 거침없이 선전하고 있다……
두 가지를 비교해보면 왜곡된 그리스 신화는 사실 고대의 ‘현대파’ 사상과 비슷하고 진정한 전통이 아니라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인류문명을 유지하려면 시종일관 일정한 도덕 규범을 따라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멸망한다. 이는 신의 의지이자 역사의 규율이며 사회의 필연성이자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의 바람이기도 하다. 패괴 하기 그지없는 ‘문화’가 인류에 대한 자극은 일시적일 뿐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기원전 5~6세기 때 전성기였던 고대 그리스는 백여 년의 번창만 유지하고 각종 부정적인 생각들의 영향 아래에 차츰 몰락으로 나아갔다.
외부 표현에서 볼 때 사람 마음이 나쁘게 변해 간사함을 총명과 영광으로 여길 때, 정직을 어리석음과 치욕으로 여길 때 수많은 모순이 나타날 것이다. 끊이지 않는 내전이 그리스 각 도시의 실력을 계속 약화하고 로마가 급부상하면서 결국 그리스는 기원전 2세기에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났다.
(계속)
원문발표: 2021년 6월 4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6/4/4264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