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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따파의 혜택 속에서 하루하루 성장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자녀 정둥(征冬)

[밍후이왕] 나는 올해 29살의 남성이며 중졸로 직업이 없는 외아들이다. 나의 부모는 파룬따파(法輪大法) 제자다. 나의 가장 큰 유감은 지금까지 정법시기 사부님의 대법제자가 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법의 은혜를 받으며 하루하루 자랐고 대법 사부님의 크나큰 불은(佛恩) 속에서 한번 또 한 번 대법의 신기함을 보았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써 중국에서 부모님이 대법을 수련하여 박해받아 고난을 겪는 사람들을 격려하고자 한다. 내가 대법에서 혜택 본 신기한 경험을 여러분과 교류하겠다.

운 좋은 유년기

내가 좀 큰 후에야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알았다. 어머니에게는 여러 가지 병이 있어 곳곳에 다니며 치료했지만, 효과가 없었고 집에는 빚이 산더미 같았고 앞길이 막막했다. 어머니는 본인이 얼마 더 살지 몰라 아버지와 나에게 새어머니를 찾으라 하고 혼자 병 있는 몸을 끌고 집을 나갔다. 그때가 1998년이었다.

그때부터 나와 아버지는 함께 생활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를 키우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직장이 불경기여서 아버지는 곳곳에 다니며 일해야 했기에 나를 돌볼 수 없어 나를 농촌에 있는 외할머니 집에 데려다주었다. 나는 외할머니 집에서 살았다.

몇 달 후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왔다. 야! 어떻게 다른 사람으로 변했지? 원래 마르고 누렇던 얼굴이 불그레했고 성격도 많이 온화해졌다. 어머니는 파룬궁(法輪功)을 연마하여 온몸의 병이 나았다면서 지금 아무 병도 없다고 말했다. 나와 아버지는 기뻐 어쩔 줄 몰랐고 우리 가정은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어머니가 연공할 때 어머니는 그때 반가부좌밖에 하지 못했는데 나는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살며시 결가부좌하고 어머니 뒤에 앉았다. 어머니가 다리를 내려놓지 않아 나도 내려놓지 않았다. 반 시간 음악이 끝났을 때 내가 다리가 아파 엉엉 울어서야 어머니는 뒤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기쁘기도 하고 마음 아파하기도 했다. 그해 나는 9살이었다.

그 후부터 나는 감히 어머니를 따라 연공하지 못했고 그 후 어머니가 나의 손에 세 번 ‘전법륜(轉法輪)’을 쥐여주었지만 연공할 때 다리가 아픈 것이 두려워 더 보지 않았다. 하지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가 어린 마음에 깊이 박혔다.

혼란함과 고난의 나날

그러나 평온한 생활은 얼마 가지 않았다. 장쩌민의 사악한 집단이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공사다망해졌다. 사람들에게 파룬따파는 정법이고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한 것은 잘못됐으며 대법과 대법 사부님은 억울함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어머니는 늘 전단을 찍고 전단을 배포했다. 어머니는 나의 손을 잡고 저녁에 도시 온 거리 골목에 진상 스티커를 붙일 때가 많았다. 사람들이 찢지 못하게 하려고 어머니는 나를 어머니 어깨에 타게 하고 나에게 진상 스티커를 전봇대 높은 곳에 붙이게 했다. 이러면 전단이 그곳에 오래 붙어있을 수 있다. 이런 일을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오랫동안 했다.

13살 되던 해 어머니는 사악한 경찰에게 납치되었고 아버지는 실업자가 되어 나는 학교 다닐 돈이 없었다. 나도 학교 다닐 생각이 없었다. 어머니는 집에서 500km 떨어져 있는 성 소재지에 갇혀 2년 동안 박해를 받았다. 어머니가 없으니 아버지는 기분 나빠 매일 술을 마셨고 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나는 학교를 이탈했다. 나는 고삐 없는 야생마처럼 사회의 큰 아이들을 따라 도둑질, 소매치기 등 무엇이든 다 했다. 경찰은 곳곳에서 나를 붙잡으려 했고 집안은 정말 고난이 잇따랐다! 그 후 나는 정말 공안에 체포되어 다른 현(縣)에 갇혔다. 내가 만 14세가 되지 않았기에 7일 동안 구류하고 돌려보냈다. 그러나 몇몇 큰 아이는 모두 소년범 교도소에 갇혔다.

유치장에서 나는 북방의 한 할머니를 만났다. 그녀는 나에게 왜 이렇게 어린 나이에 여기에 갇혔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할머니는 왜 이렇게 늙으신 데 여기에 오셨어요?”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인데 친척집에 방문 갔다가 납치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나의 어머니도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성 소재지에 갇혔다고 알려주었다. 할머니는 듣더니 말했다. “얘야, 너의 어머니와 나는 다 좋은 사람이다. 어머니는 아주 빨리 너의 옆으로 갈 것이다. 이곳은 네가 올 곳이 아니다. 너 꼭 좋은 아이가 되어야 한다!”

지금 회고해 보면 사실 사부님께서 줄곧 나를 보호해주셨다는 것을 깊이 알게 됐다.

2년의 박해를 겪고 어머니는 마침내 돌아왔다. 이번에 돌아왔을 때도 어머니는 변화가 매우 컸다. 59㎏이었던 몸이 40㎏이 되었고 머리는 매우짧아졌으며 많이 희어 박해받기 전과 비하면 다른 사람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마귀 소굴에서 어떤 고난을 겪었기에 이 모양으로 변했는지…. 일주일 후 어머니 직장에서 어머니에게 출근하라고 했다. 월급은 원래 매달 2000여 위안에서 1200위안으로 낮췄다. 어머니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나도 식수 배달하는 일을 했다. 그때 나는 이미 16살이었다.

대법은 나에게 많은 재난을 피하게 하다

어머니의 수련 상태를 보고 나는 내가 성장한 과정을 돌이켜보고서야 내가 대법에서 많은 혜택을 보아 각종 신기함이 나타났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여기에서 몇 가지 예를 들어 여러분과 교류하려 한다.

어머니와 주 1회밖에 만날 수 없어 나는 줄곧 외할머니와 살았다. 한번은 나의 발이 유리에 베어 살이 매우 크게 벌어졌다. 나는 외할머니에게 감히 알리지 못하고 어머니가 나에게 여러 번 알려준 말을 생각했다. “엄마가 너의 옆에 있지 않지만, 사부님과 대법이 너를 보호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아프지 않았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가 아물었다. 또 한 번은 내가 좋지 않은 일을 했더니 결과 심하게 넘어져 입이 많이 부어올랐다. 사흘 뒤에도 입의 부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이때 어머니가 돌아와 부드럽게 나에게 물었다. “일을 잘못한 거지? 얼른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해야지.” 내가 즉시 속으로 사부님께 잘못했다고 말했더니 3분도 되지 않아 부었던 입이 다 나았다. 어머니는 나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오토바이에서 두 번 떨어졌는데 뼈는 다치지 않았지만, 찰과상을 입었다. 그러나 매우 아팠고 교훈이 깊었다.

내가 불미스러운 일을 하면 교통사고가 났다. 식수를 배달하던 기간 어머니는 늘 나에게 진심으로 공손하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라고 당부했다.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자연스럽게 기억하여 어머니가 귀띔하지 않아도 되었다. 한번은 내가 물통 두 개를 끌고 길에서 뛰고 있는데 나와 나이 비슷한 한 젊은이가 내가 식수 배달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죽으라고 나를 쫓아와 나를 놀려주었다. 경찰은 보고 그를 뒤쫓았다. 앞에 손가락 굵기만 한 작은 나무가 있어 나는 넘어지면서 나뭇가지를 안았다. 나무는 부딪혀 휘기까지 했지만 나는 상처를 입지 않았고 손수레, 물도 손실 없었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심하게 넘어졌고 경찰에게 뺨을 한 대 맞았다. 또 한 번은 내가 물 한 수레 싣고 끌고 가는데 맞은쪽에서 중형 승합차 한 대가 왔다. 길이 좁아 오른쪽에 좁은 갈림길밖에 없었다. 나는 돌아갈 여지가 없어 속으로 이제 끝장이구나 생각하고 즉시 눈을 감았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두 손은 손수레를 꽉 잡고 두 발은 좁은 갈림길에 서 멈춰있었다.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누가 나를 돌려놓은 걸까?” 나는 즉시 사부님께서 나를 구해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합장하고 끊임없이 사부님께서 감사드렸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2012년 나는 한 회사에 출근했다. 월급은 매달 5000~6000위안 정도였다. 이 회사에서 나는 어머니가 나에게 가르친 대로 대법의 ‘진선인’의 표준으로 일을 했다.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았고 일에 부딪히면 참고 선량하게 동료들과 지내며 꾀를 부리지 않았다. 하루는 한 동료와 말다툼을 하다가 싸웠다. 그는 나의 얼굴을 한 대 힘껏 쳤다. 나는 매우 아파 반격하고 싶었지만 나는 대법에서 혜택을 본 사람이고 사부님께서 나를 상관하신다는 것을 생각하고 참았다. 그리고 상대방 앞에 걸어가 낮은 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이보게, 동생, 너무 세게 친 거 아니야? 나의 얼굴이 멍이 들었잖아.” 뜻밖에 그는 털썩 꿇어앉으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형, 내가 잘못했습니다. 나를 용서하세요!” 이렇게 우리 둘은 이 원한을 풀었다.

하루는 내가 공사 차량의 조수석 자리에 앉자마자 직장의 한 여직원이 나에게 내리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나에게 볼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나와 장난친 것이었다. 내가 다시 다른 한 공사 차를 타고 강가에 왔을 때 앞에 그 차량이 뒤집혀 강에 빠져 조수석에 앉은 그 사람은 상처를 입었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서 또 한 번 나에게 고난을 피하게 해주신 것임을 알았다.

어머니는 대법을 수련한 지 20년이 넘는다. 자비로운 사부님은 이렇게 오랜 세월 나를 자비롭게 보호하셨다. 신기한 일을 다 예로 들 수 없다. 오늘 대법제자의 교류의 장을 빌려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말을 사부님께 한마디 올리겠습니다. “사부님, 중생을 위해 노고 많으십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악의 박해는 계속되고 있다. 경찰이 매번 우리 집에 엄마에게 소란을 피우러 올 때면 기만 수단으로 나를 다른 현에 보내고 아버지를 속여서 떠나게 했다. 그 후 어머니는 나에게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어머니를 박해하는 범죄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들의 행위를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비열한 수단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도 장쩌민을 따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악인은 외골수로 나아가지 말고 빨리 각성하길 충고한다. 본인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하루빨리 나쁜 세력과 단절하고 광명을 찾길 바란다. 대재난이 곧 올 것이니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의 기연을 놓치지 말길 바란다!

여기에서 부모님의 대법 수련으로 고난을 받는 동년배에게 문안 인사드립니다! 우리는 반드시 대법을 굳게 믿고 불법(佛法)이 끝없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견정하게 부모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단호하게 부모님을 지지하여 공동으로 다가오는 아름다운 미래를 맞이합시다!

다시 한번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허스

지식수준이 제한되어 있어 적당하지 않은 점은 이해하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0년 1월 3일
문장분류: 천인사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3/3974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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