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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이 여색을 경계(戒)한 감언(鑒言)

[밍후이왕] ‘예기·예운’에 “인간에게는 음식과 색에 큰 욕망이 있다”라고 적혀있으며, 유가에서도 욕망을 억제할 것을 주장하는 등 음식과 색에 대한 욕망을 절제하는 일은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현들이 가장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문제였다.

도가에서는 음식과 색에 대한 욕망을 금할 수 있으면 천수를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여색을 탐하면 몸의 진기(眞氣)를 상실할 뿐만 아니라 수명이 감소할 수 있고, 복이 줄어들며 학문이 상스럽게 된다. 도를 닦는 사람이 욕망을 끊을 수 없으면 악한 업력이 몸에 쌓여 하늘에 오를 수 없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옛사람들은 색을 경계하고 욕망을 끊는 방면에서 보편적으로 현대인보다 자율(自律)적이었다. 명나라 불교 거사 용준(龍遵)이 저술한 ‘식색신언(食色紳言)’에 많은 옛사람이 음식과 색욕을 대하는 견해와 방법을 기록해 욕망을 끊도록 격려했다. 아래에 절욕 일부를 선택해 적어본다.

1. 제왕이 색을 경계하다

양무제(梁武帝) 소연(蕭衍)은 평생 부처를 매우 신봉했는데 어사중승(禦史中丞) 하침(賀琛)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짐이 동침을 안 한 지 30여 년, 여인과 동침하지 않고 잠을 잔 지 30여 년이다.” 양무제는 85세로 장수했다.

원나라 우재상(右宰相) 아스부카(阿沙不花)는 원무종(元武宗) 보르지긴 카이샨[孛兒只斤·海山(원나라 제3대 황제)]의 안색이 날로 초췌해지는 것을 보고 간언했다. “곰 발 등 8종 진귀품을 드실 줄 모르고, 만금보다 귀한 몸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며, 오직 술을 즐기고 여색에 빠졌으니 이는 마치 두 자루의 도끼로 홀로 선 나무를 찍는 격이라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이듬해 원무종이 죽었는데 30세밖에 안 되었다.

예전에 한 국왕이 여색을 좋아해 늘 방종한 정욕으로 자신의 정을 낭비했다. 이에 한 스님이 게자(偈子)로 간언했다. “눈은 눈곱을 저장하는 구멍으로 됐고, 코는 더러운 콧물을 담는 주머니가 됐으며, 입은 가래를 담는 타구(가래통)로 됐고, 배는 똥과 오줌을 저장하는 창고로 됐습니다. 대왕께서는 한 쌍의 혜안도 없이 여색에 빠져 조정을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혐오하기 때문에 출가하여 승가의 몸이 됐습니다.”

기녀를 묘사한 시구가 있다. “인피로 골육과 똥오줌을 감싸고 / 요염한 자태로 미친 듯이 남자를 미혹하는구나 / 천고의 영웅들 모두 이것에 착오를 범해 / 백 년 뒤 함께 땅속에 먼지로 묻혔다네.”

2. 문인이 색을 경계하다

명나라 예부상서 설문청(薛文清)이 말했다. “주색 같은 것은 사람의 기개를 심하게 취해 고갈되게 하므로, 생명을 상하게 하고 패덕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속되게 이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면 결과를 알 수 없는데 즐겁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오직 심청과욕(心清欲寡)해야 기가 고르고 살이 오를 수 있는 것으로 그 즐거움을 알 수 있도다!”

북송 철학가 정이(程頤)가 말했다. “욕망의 마음이 싹터 오르면 예의를 떠올려 이겨내야 한다.” 남송 주희(朱熹)는 사람의 욕망을 소택(沼澤, 늪)이라 형용해 말했다. “소택의 형상을 관찰하여 색욕의 마음을 억제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색욕은 더러운 소택과 같으며 모두 더러운 흙과 혼탁한 물이다. 더러운 것은 쉽게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어 마땅히 메우고 막아버려야 한다.”

명나라 초 대 유학자 방효유(方孝儒)가 말했다. “참! 식탐과 욕망의 염두는 예리한 칼날보다 훨씬 무섭다. 사람들은 단지 차고 뜨거운 것이 자신에게 해롭다며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식욕과 색욕으로 일어날 재앙에 대해서는 방비를 고려하지 않는다.”

북송 후기 진사 류원성(劉元城)이 말했다. “내가 여색을 끊은 지 30년, 기색과 의식이 당년과 다를 바 없어 온종일 선비와 친구를 만나고 그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며,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이튿날 아침이 돼도 정신이 여전히 예전과 같다.” 그때 사람들이 그에 대해 모두 찬탄한 바 있다. “류원성의 학문에서 ‘성(誠)’을 보아낼 수 있는데, 역시 그가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은 데 원인이 있다.”고 했다.

시인 양만리(楊萬裏)는 호색한에 대해 해학적으로 말했다. “염라대왕이 아직 부른 적이 없는데 스스로 지옥에 도착하다니, 어찌 된 일인가?”

송나라 사람이며 정문(程門)의 4명 학자 중 한 사람인 사량좌(謝良佐)가 말했다. “내가 색욕을 단절한 지 이미 20여 년이 됐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이뤄내려면 반드시 몸이 건강하고 웅장해야 능히 승임할 수 있기에 색욕을 단절했다.”

오대 후촉 대신 이호(李昊)가 말했다. “예전에 색을 탐하고 욕망을 방종해 귀신에게 모욕을 당했다. 내가 색욕을 단절한 지 매우 오래됐기에 귀신이 감히 나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지 무슨 술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황제내경·소문’에서 말했다. “사리사욕 없이 고요한 마음으로 세상의 덧없음을 깨치면 참 기운이 몸을 채워 병이 일어나지 못한다. 바라는 바를 적게 하여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마음이 편안하여 두려운 일이 없을 것이고, 욕망을 좋아하는 것으로 눈을 수고롭게 할 수 없으며, 음란하고 삿된 것이 그 마음을 유혹하게 할 수 없기에 100세가 되어도 동작이 쇠약해지지 않는 것이며, 그 덕이 온전하여 위태롭지 않기 때문이다.”

명나라 의학자 왕문모(王文謨)는 자신의 저작 ‘쇄금록(碎金錄)’에서 말했다. “내가 인간 세상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총망히 죽음에 이르는 사람은 마치 강물이 모여 바다로 흘러가는 것과 같았다. 그들의 죽음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었다. 하나는 명예와 지위를 탐해 일어난 화이고, 다른 하나는 침대 머리에서 여색을 탐한 위험의 길이었다. 능히 그렇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만 명 중에 한두 명뿐이었다.”

3. 수련자의 색계(戒色)

진(晉)나라 장안 고승 외(嵬)는, 자칭 선녀가 속세에 내려왔으니 하룻밤 묵어가겠다고 말하는 여인을 만났다. “고승의 도덕이 높기에 고무 격려의 뜻으로 하늘이 저를 파견한 것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의지가 확고한 고승 외는 그런 말에 움직이지 않았다. “저의 마음은 이미 죽어서 재가 된 거나 다름없습니다. 당신의 그 썩은 가죽으로 저를 시탐하지 마세요.” 이 말에 그 여자는 구름을 타고 하늘로 사라졌다. 그것은 떠날 때 머리를 돌려 말했다. “바닷물도 움직임이 있고 금강의 보좌도 넘어뜨릴 수 있으나 저 큰 스님의 마음은 확고하여 움직일 수 없다.”

당 고종 때 온주(溫州)에 유명한 고승 영가(永嘉)가 이런 말을 남겼다. “정욕의 일은 오직 고통만 따를 뿐 즐거움이 없다. 더러운 껍질 속에 담은 것은 변(糞)이고 쌓인 것은 피고름이다. 표면에 바른 것은 향기로운 연지지만 속에는 오직 극도로 더러운 것뿐으로 깨끗하지 못한 것이 밖으로 흘러나오는데 그건 구더기가 사는 곳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것에서 멀리해야 하는데 마치 도적을 미워하는 그런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그 때문에 총명한 사람이 그것을 봤을 때 독사(毒蛇)와 같은 것인데, (진짜) 독사를 가까이할지언정 여색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

원나라의 유명한 도인 상양자(上陽子)가 말했다. “오직 음욕(淫欲)은 수많은 악업(惡業)의 시초로서 수행하는 사람은 우선 마땅히 그것을 경계하고 제거해야 한다.” 장춘(長春)의 진인(眞人)이 황상께 아뢰기를, “첫 번째로 마땅히 음욕을 경계하고 제거해야 한다.”고 했고, ‘태미영서(太微靈書)’에 음욕이 십패(十敗)의 시초라고 적혀있다. “도를 배우고 수행하는 자에게는 다른 것이 없다. 오직 능히 진실하고 진실하게 음욕을 단절(斷絕)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기타의 것은 모두 매우 쉬운 일이다.”

상양자는 또 이런 말을 남겼다. “세상 사람들은 음욕을 단절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고 여기나 이는 매우 어리석은 견해이다. 수행을 처음으로 배우는 사람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가히 이렇게 시험해볼 수 있다. 단독으로 행동하고, 단독으로 잠을 자며, 또 음주를 경계하며, 낮에는 늘 연단하는 경서를 보며, 밤에는 청정한 심적 경지를 유지하고, 눈앞의 환경이 아늑하고 조용하다면 일체 헛된 생각이 모두 존재하지 않게 되고, 외부의 마가 설치한 일부 장애가 있더라도 그것은 오히려 더욱 그의 신념을 확고하게 할 수 있다.”

송나라 진사 소계자(邵桂子)가 한 화상에게 이런 말을 했다. “수행하는 사람이 만약 음욕의 마음을 단절하지 못하면 영적 뿌리가 견고하지 못하기에 정력(精力)이 희박해지고 원기(元氣)의 산생도 하루하루 감소해 점차 고갈되어 결국 사망에 이른다.” 참선하는 화상이 이에 화답했다. “만약 음욕을 단절하지 않고 선의 이치를 깨달으려 한다면 모래를 익혀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은 것으로 비록 천백 겁의 시간이 지나더라도 단지 익힌 모래라고 할 수 있을 뿐 밥이 될 수 없다. 한편 이 일은 반드시 청심절욕(清心絕欲)할 수 있게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남송 진사 왕창수(汪昌壽)가 욕념지심(欲念之心)에 있어서 그것이 싹틀 때 능히 강제로 통제할 수 있으나 지속할 수 없었다. 이에 육구연(陸九淵)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단지 표면적으로는 통제할 수 있다고 해도 내부의 뿌리에서 원인을 파낼 수 없다면 그건 수양의 경지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마음에서 어떻게 해야 정당한 것인가를 명백히 할 수 있다면 강제로 통제할 필요가 있겠는가. 만약 이곳에서 홀연히 미녀가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아우는 반드시 여색을 탐하는 마음이 없을 것이다. 만약 능히 늘 이런 심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자신에 대해 강제로 억제할 필요가 있겠는가.” 육구연이 덧붙여 말했다. “엄숙하고 신중하게 경건한 마음으로 상제(上帝)에 대해 공경하여 받들면 상제께서 자네 앞에 강림할 것이며 자네는 곧 한 마음으로 경외(敬畏)할 것인데, 그때 어떻게 기타의 것을 돌볼 겨를이 있겠는가?”

4. 현대인은 반성하는 거울로 삼아야 한다

고서에서는 또 여색을 탐하고 욕망에 방종하는 사람의 몸에는 한 가닥의 더러운 기(氣)가 있다고 말했다. 만약 수신(修身)과 마음을 닦는 사람을 만나면 마땅히 즉시 비켜서야 하는 것으로 그의 진기(眞氣)를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재난을 초래한다. 불경에서 말했다. “호정계자(護淨戒者)는 색욕을 단절했다. 그가 길을 가든, 서 있든, 단좌(端坐)하든, 누워있든 간에 그가 지나간 곳은 모두 매우 상서로울 것이다.”

도에 길이 있으므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이 나아가지 않으면 떠내려간다. 현대사회는 환경, 특히 공산주의, 진화론, 무신론의 배경 하에 난무하는 성 해방으로 가무와 여색을 제멋대로 즐기는 일을 일종 유행의 흐름과 문화로 포장했다. 세상 사람이 만약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결을 지키고 유지하려면 욕망을 절제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관념에서 그것을 명확히 분별하고 부정하며 전통으로 되돌아가 정통적인 것을 숭상해야 비로소 그릇된 견해를 바로잡아 근본에서 철저히 고칠 수 있다.

수련자는 더욱 마땅히 역류하여 거슬러 올라가야 하며,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고 큰 뜻을 지켜야 하며, 진흙에서 나왔으되 그것에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

 

원문발표: 2019년 7월 8일
문장분류: 천인사이>문사만담(文史漫談)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8/3897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