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색욕은 사람의 영혼을 가장 잘 움직일 수 있고, 심신의 건강과 행복을 가장 크게 해칠 수 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름난 관리와 선비들이 색과 탐욕을 멀리하고 순결을 유지한 이야기는 줄곧 후세의 칭찬 속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
서한(西漢)의 김일비(金日碑)는 황제가 하사한 궁녀 앞에서도 마치 황제 옆에 있는 것처럼 규범을 지킬 수 있었다. 남조(南朝) 유송(劉宋) 시기의 저연(儲淵)은 체격이 장대하고 용모가 수려했는데, 산양(山陽) 공주가 그를 서상각(西上閣)에서 자도록 하고 잇달아 열흘 동안 집적거렸지만, 예전처럼 아주 공손한 태도로 저녁부터 아침까지 서 있었고, 밤을 새우면서도 마음이 고인 물과 같았다.
이런 이름난 신하들의 대쪽같은 절개와 풍모는 사람들이 다투어 모방하는 본보기가 되었다. 고대의 민간에서는 이렇게 색에 물들지 않고 높은 인격과 곧은 절개를 지킨 이야기가 아주 많은데,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감탄하고 탄복하게 한다.
음행을 거부한 하징에게 하늘이 관록을 하사
북송(北宋) 선화(宣和) 시기의 하징(何澄)이라는 사람은 의술에 정통해 명성이 높았다. 현성(縣城)에 사는 손(孫) 선비가 병에 걸렸는데, 오래도록 낫지 않자 하징의 의술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그가 있는 곳을 백방으로 수소문해 집으로 왕진을 요청했다
손 선비의 부인은 아주 곱게 자라 젊고 용모가 아름다웠다. 그녀가 하징에게 살짝 말했다. “저희 집 남편이 오래도록 아팠는데, 병 치료를 하느라 집안의 값나가는 물건을 모두 맡기고 돈으로 바꿨지만, 아직도 병을 못 고쳤습니다. 선생께서 왕진을 오신 것은 사실 감사하지만, 진찰비와 약값을 낼 돈이 없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소녀가 몸으로써 사례하고자 합니다.”
하징이 그 말을 듣고 정색하며 말했다. “부인은 어찌 그런 그릇된 말씀을 하십니까? 귀댁이 곤궁하다고 하나, 제가 병을 고쳐 사람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 어떻게 사람이 위급한 틈을 타 해를 입힐 수 있겠습니까? 제가 부인의 남편을 정성껏 치료하고 약을 쓰겠지만, 돈은 조금도 받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청컨대 부인께서는 자중하시어 자신을 망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손 선비의 부인은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움과 감격을 그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하징이 꿈속에서 한 사람에게 이끌려 넓고도 환한 관아에 도착하니 법정의 관리가 그에게 말했다. “그대는 의원으로서 덕행이 무거우며, 특히 난에 처한 사람을 이용하지 않았고, 부녀자의 정절을 함부로 더럽히지 않았고, 지조가 고결하고 갸륵하여 천지신명을 감동케 했으니 특별히 옥황상제의 뜻을 받들어 관직을 하사하고 5만 전을 상으로 주겠다.” 그는 깨어난 후에 단지 하나의 꿈을 꾸었을 뿐인데, 시골 의원이 어떻게 복록을 얻겠느냐며 더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
반년 후, 동궁의 태자가 병에 걸려 황궁의 어의가 치료했지만, 효과가 없자 민간의 고명한 의사를 구한다는 고시문이 곳곳에 붙었다. 하징이 천자의 명에 따르자 황제는 그를 입궁하게 했다. 태자는 하징의 약을 두 제만 먹고도 완치됐다. 그러자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의관 직위와 상금 5만 전을 하사했다. 그때 갑자기 하징의 머리에 꿈속의 일이 떠올랐다. 과연 천지신명의 말이 헛되지 않은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유이순(劉理順)이 3년 동안 한방에 있으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다
유이순은 명나라 시기 허난(河南) 치현(杞縣) 사람인데, 청년기에 한 부유한 사람의 초청을 받아 가정교사를 했다. 부자는 특별히 젊고 아름다운 하녀를 시켜 유이순의 음식과 생활을 도맡아 보살피게 함으로써 그에게 신임과 존경을 표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 흘렀다. 유이순은 고향을 떠나 회시(會試) 시험에 참가하려고 부자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식구들을 가르친 공로에 크게 감사했던 주인은 그가 떠나려는 결심을 굳힌 것을 보고 총명하고 아름다운 하녀를 그에게 주어 집으로 돌아가 첩으로 삼게 함으로써 감사를 표하려 했다.
유이순이 대답했다. “주인의 보살핌과 후한 대우를 받았고, 귀댁에서 제공해 주신 하녀가 총명하고 영리해 3년 동안이나 저의 생활과 음식을 보살펴주어 미천한 사람에게 커다란 감격을 주었습니다. 비록 아침저녁으로 한방에 있었으나, 종래로 수년 동안 그녀를 무모하게 범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성현의 글을 읽는 사람인데, 어찌 예법을 위반해 가며 정실도 없이 첩부터 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유이순은 부자 주인의 위로를 거절하면서 일생의 대사를 그르칠 수 없으니 배우자를 골라 하녀를 시집보내라고 제안했다.
부자는 유이순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외로운 남녀가 3년을 넘게 한방에 있었는데, 사람이 목석이 아닌 이상 누가 감정이 없겠는가? 유 선생이 과연 3년을 넘게 옥처럼 정절을 지켰을까?’
부자는 부인을 시켜 조용히 하녀의 상태를 물어보게 했다. 하녀가 말했다. “유 선생은 평소 몹시 빈틈없고 정중한 사람이라 희롱하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고, 지나친 행동을 하신 적이 없었사옵니다. 설사 노비가 간혹 몸에 붙어 시중을 들어도 분수에 맞지 않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으셨고, 저를 한 번도 건드린 적이 없사옵니다.”
이후 여러 방면의 검증을 거쳐 부자는 하녀의 말을 믿게 되었다. 부자는 곧 유 선생이 확실히 도덕이 고상하고 정직한 군자라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학문이 해박할 뿐 아니라 인격도 고고했다! 3년 동안 남녀관계가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너무나 순결했으니 성현과 같은 정결함에 탄복을 금치 못했다.
한 시인은 이렇게 격찬했다. “요염하고 아름답고 총명한 사람 드문데, 삼 년 동안 그대를 따라 한방에서 잠들었네. 생활이 지극히 단정한 진정한 군자라, 이제야 버드나무 아래에서 빈말이 아님을 알겠노라.”
명나라 숭정제 7년에 유이순은 상경해 시험을 쳤고, 합격자 명단에 장원급제로 이름을 올렸다. 나중에 유이순은 학문적으로 커다란 성취를 이루어 이학(理學)의 명사가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유이순이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결백한 품행을 가져 하늘이 그에게 상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1. ‘옥력보초(玉歷寶鈔), 부록 자료’2. 청나라 하륜(夏綸) : ‘각세편주증(覺世篇注證)’
원문발표: 2019년 8월 11일
문장분류: 천인사이>문사만담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9/8/11/3913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