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서한(西漢) 말년, 허난(河南)에 채순(蔡順)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왕망(王莽)이 전란을 일으키자 채순과 어머니는 선젠(椹澗)으로 피신했다. 누가 알았으랴. 그곳에도 해마다 전란이 몰아쳐 토지는 황폐해지고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자연히 두 모자의 생활도 몹시 어려워졌다. 살기 위해 채순은 어머니를 집에 남겨두고 날마다 구걸하러 다녔는데, 음식을 제법 얻으면 집으로 가져와 어머니에게 드리고 자신은 산나물로 쑨 죽만 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후에 번숭(樊崇)이 거느리는 적미군(赤眉軍)이 쉬창(許昌)에 도착하자 당시 백성들은 군대의 약탈을 두려워해 달아나거나 숨어버렸다. 동냥하며 살던 채순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고, 늘 먼 곳으로 뛰어다녔지만, 한 사람이 먹을 것도 구할 수 없었다. 해가 산으로 넘어가도 채순은 여전히 집으로 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마을 어귀에 앉아 아들을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젠향 차이위안(菜園)촌 서쪽 언덕 위에는 지금도 등자사(等子寺, 아들을 기다리는 절)의 유적이 있다.
다시 일 년이 지나고 춘궁기가 왔을 때 채순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오후까지 뛰어다녔지만, 여전히 먹을 것을 얻지 못했다. 갑자기 그의 눈에 뽕나무 숲이 가득히 들어왔다. 땅에 적지 않게 떨어진 오디가 보였고, 그는 보물을 얻은 것처럼 서둘러 주웠다. 그는 흑자색과 청홍색의 오디를 구분하여 바구니에 담아 희희낙락하며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던 중에 뜻밖에도 한패의 적미군을 만났는데, 병사들이 그의 바구니 안에 오디가 색깔 별로 나뉘어 담긴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 이유를 물었다. 채순이 말했다. “흑자색은 익은 열매고, 단맛이 나는데, 집에 가져가서 어머니께 드릴 겁니다. 청홍색은 시큼해서 제가 먹으려고 남겨둔 겁니다. 어머니는 연세가 있고 눈이 좋지 않아서 잘 집으시도록 구분한 겁니다.”
좋은 사람은 결국 복을 받는다. 적미군은 사람이 좋고 마음이 성실한 채순에게 연민을 느껴 그를 해치지 않았고, 약탈한 쌀, 곡식, 소, 양 등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채순은 시비를 분명히 구별해 의롭지 않은 것을 조금도 받지 않았다. 슝얼산(熊耳山) 위에 주둔하던 적미군 병사들은 이처럼 어머니를 섬기는 채순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고향의 가족을 그리워했고, 모두 싸움에 져서 일찍 고향의 부모 곁으로 돌아가 마음껏 효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병영 옆의 작은 개울가에서 눈썹에 칠한 빨간색을 지우고 기쁘게 집으로 돌아갔다. 이런 이유로 현지 주민들은 이 하천을 시메이허(洗眉河, 눈썹을 씻는 하천)라고 불렀다.
도적이 평정된 후, 생활은 안정됐지만, 오히려 채순의 어머니는 불행히 세상을 떠났다. 누가 알았으랴. 상도 치르기 전에 이웃집에 불이 났다. 불길이 다가오자 초조해진 채순은 어머니의 관을 끌어안고 대성통곡했다. 결국 화염은 뜻밖에도 그의 집을 비켜 갔다. 그것은 효자가 천지를 감동하게 한 증거였다!
어머니가 생전에 천둥을 무서워했으므로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칠 때마다 채순은 묘지로 달려가 묘비를 끌어안고 울면서 말했다. “아들이 여기 있으니 어머니는 무서워하지 마세요.”
채순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효도했을 뿐 아니라 돌아가신 후에도 여전히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것처럼 행동했다. 확실히 “돌아가신 분을 살아계시는 듯”이 모셨다.
원문발표: 2019년 6월 20일
문장분류: 천인사이>문사만담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9/6/20/3783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