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범중엄 “어떤 일이 좋다고 기뻐하지 말며, 내 일로 슬픔에 빠지지도 말아야 한다”

글/ 쉰전(尋真)

[밍후이왕] 북송 명신 범중엄(範仲淹)은 어려서부터 공부에 열중하여 ‘시경(詩經)’, ‘상서(尚書)’, ‘예기(禮記)’, ‘춘추(春秋)’ 등 유가 경전을 배웠고, 후에는 또 불가사상의 영향을 받아 신불(神佛)을 공경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벼슬을 하면서 검소하게 살았다. 재상에 있을 때도 변변한 저택 한 채도 짓지 않아 누군가 그를 위해 새 집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그는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도덕과 정의이다. 한 사람이 만약 마음속에 도덕과 정의가 있다면 몸이 어디에 있든 마음은 모두 기쁠 것이다.”라고 말했다.

범중엄은 자손을 위해 땅과 집을 장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모은 돈으로 학교를 꾸리고, 구제용 토지를 마련하여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그는 평생 정의(正義)를 위해 바른말을 하여 여러 차례 좌천되었지만, 개인적 처지로 인해 슬퍼하지 않았다. 일찍이 세 번이나 경관(京官)을 지냈고, 또 세 번이나 경외관리로 좌천되었다.

천성(天聖) 7년, 막 상경하여 비각교리(秘閣校理, 황실 도서 및 도서관리 책임자)에 임명된 범중엄은 황태후의 겉치레 낭비에 대해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경성에서 좌천되었다. 이것이 일진일출(一進一出) 즉 첫 번째 좌천이다.

명도(明道) 2년, 우사간(右司諫, 조정 일을 전문적으로 논평하는 언관 자리)으로 임명된 그는 남을 위해 공정한 처리를 해 달라고 고집하다 황제에 의해 목주(睦州)로 좌천되었다. 이것이 이진이출(二進二出) 즉 두 번째 좌천이다.

경우(景祐) 2년, 범중엄은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郎)으로 승진했다. 당시 재상인 여이간(呂夷簡)은 범중엄의 직간을 막기 위해 황제에게 범중엄을 개봉지부(開封知府)로 위임할 것을 건의하고, 범중엄에게는 “언관(言官)이 아니니 쓸데없이 국사를 논하지 말라.”고 전했다. 이것이 삼진삼출(三進三出) 즉 세 번째 좌천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일을 당하면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 이것저것 궁리하다 보면 머릿속에 부정적인 모습들이 많이 떠오르게 될 것인데 ‘상유심생(相由心生)이란 이런 의미를 말한다, 그러나 범중엄의 마음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개인의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평상심으로 인생의 기복을 대하는 것은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인간 세상의 진실한 상황을 지적했다. ‘흥성흥성한 것은 모두 이익을 위함이다.’ 즉 인간 세상의 상당수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바삐 뛰어다닌다고 했다. 도덕과 인의(仁義)는 일종의 이상(理想)으로 할 수 있지만, 결정적인 시점에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타인을 위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옛사람이 말하는 군자(君子)는 고상하지만 도달하기 어려운 일종의 경지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도 지나치게 기뻐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것을 잃어도 애간장을 태우지 않는다.

‘기쁨(喜)’과 ‘슬픔(悲)’은 모두 수련인이 버려야 할 집착심이다. 또한 그것들은 비교적 은폐되어 있어 안으로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기쁨’이 그렇지만 ‘기쁨’과 ‘슬픔’, 이런 집착심은 수련인이 또 반드시 버려야 한다.

범중엄은 ‘악양루기(嶽陽樓記)’에서 “어떤 일이 좋다고 기뻐하지 말며, 내 일로써 슬픔에 빠지지도 말아야 한다(不以物喜,不以己悲).”고 썼는데 바로 이런 경지이다. 옛사람은 도를 닦지 않아도 이미 도중(道中)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악양루기’ 중의 또 다른 천고의 명구 “천하 사람들보다 앞서 걱정하고, 천하 사람들이 기뻐하고 난 후에 기뻐한다(先天下之憂而憂,後天下之樂而樂)”를 보았을 때 범중엄의 흉금을 느낄 수 있다.

 

원문발표: 2019년 1월 13일
문장분류: 천인사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3/3803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