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도척(盜蹠)과 소정묘(少正卯)는 역사상의부정적인인물이다. 평판이 너무 나빠 2천 5백 년 이래 누구도 감히 그들을 위해 한 마디라도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1949년 이후에 이르러 이 두 사람은 중공(중국공산당)이 높이 추켜올리는 인물이 되었다.
이 두 사람은공자가 혐오했던 자들이다. 도척은 살인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잡아먹기까지 하는데도 중공은 가장 부유한 혁명적인 농민봉기 지도자로 선전하였다. 문화대혁명 이후 중공 교과서에서 도척은 여전히 역사의 진보를 추진하는 쟁쟁한 인물이 되어 중학교 국어책에 나올 정도였다. ‘두아원(竇娥寃)’에 “천지시여, 맑고 탁한 것을 가려 주셔야지, 어쩌자고 도척과 안연(顏淵, 공자의 제자)을 혼동하시나이까?”라는 구절이 등장할 때, 세뇌된 많은 학생은 과연 맑고 탁한 것을 구분하기 어려워 도리어 도척과 대비되는 안연을 몹시 나쁜 사람으로 보았다.
중공은 소정묘를 ‘언론자유’를 위해 헌신한 선구자, ‘복벽광(復辟狂)’ 공자에 감히 도전한 용사, 공자와 제자를 쟁탈하다 살해당한 교육가, 문자옥(文字獄, 글로 인한 화)의 희생양이 된 원귀(冤鬼, 원통하게 죽어 한을 품고 있는 귀신)라고 사실을 왜곡해서 선전하는 반면 공자는 도리어 문자옥의 나쁜 선례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했다.
오늘 우리는 똑똑히 볼 수 있어야 한다. 공산홍마(共產紅魔)가 언론자유를 선동하는 것은 사람들을 부추겨서 도덕적으로 금기시되는 화제를 끊임없이 타파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생억지와 그릇된 주장을 유포하는 자유를 줄 뿐 감히 진실한 말을 하는 자유는 종래로 주지 않는다. 그리고 중공이 대대적으로 ‘문자옥’을 비난하는 것은 이른바 만악(萬惡)이라는 봉건사회를 성토하기 위해서인데 모두 보편적 가치 중의 인권, 자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도척과 소정묘는 서로 다른 정도와 성질의 두 가지 ‘악(惡)’을 대표한다. 두 사람의 차이를 옛사람들이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진서(晉書)’ 열전 제58 중에 동진(東晉)의 광록대부(光祿大夫) 안함(顏含)의 논술 한 단락에 기재되어 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소정묘와 도척 중 누구의 악행이 더 심한지를 논의했다. 어떤 사람이 “소정묘는 비록 악하지만, 도척처럼 살인하고 인육을 먹는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니 당연히 도척의 악행이 더 심합니다.”라고 하자 안함은 “드러내 놓고 악행을 저지르는 자는 죽어 마땅하다고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 간악함을 아주 깊이 감추고 있는 자는 오직 성인(聖人)만이 알아차리고 그 악을 철저하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말하자면 소정묘의 악행이 더 심합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뭇사람은 그의 논리를 꺾을 수 없었다.
안함의 주장에 따르면 도척은 죄악의 무리로, 그의 악행은 일반 사람들이 알아차리고, 판단하고, 피하고, 방비할 수 있지만, 간사함을 아주 깊이 감추고 있는 소정묘 같은 자는 일반 사람들이 상세하게 파악할 수 없고 오직 성인만이 그 ‘사악’한 악을 알아차리고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기재에 따르면 공자는 법 집행을 담당하는 대사구(大司寇)라는 관직에 취임한 지 7일 만에 공개적으로 소정묘를 주살(誅殺)했다. 성격이 솔직한 제자 자공(子貢) 단목사(端木賜)가 공자에게 “소정묘는 노(魯)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선생님께서 정치를 맡자마자 그를 죽였으니 적절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사(賜)야 내 말을 들어라. 대악지인(大惡之人)은 다섯 가지 종류가 있는데 크고 작은 도적은 모두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첫째는 마음이 반역하고자 하는 음험한 생각을 하는 것이고, 둘째는 행실이 편벽되고 고집스러운 것이고, 셋째는 거짓된 말을 하고 변론을 잘하는 것이다. 넷째는 가볍고 추한 것만 기억하고 잡다하게 아는 것이고, 다섯째는 그릇된 일만 따르면서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사람이 이 다섯 가지 중 하나만 범해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인데 소정묘는 이 다섯 가지 죄를 모두 저질렀으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그는 어디를 가든 떼를 지어 무리를 이루고, 그릇된 설을 퍼뜨려 인심을 현혹하며, 바른 것을 배척하고 그릇된 것을 바른 것으로 삼아 자기의 말을 그럴듯하게 꾸며댄다. 이런 자는 소인 중의 걸웅(桀雄)이니 제거해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탕왕은 윤해(尹諧)를, 문왕(文王)은 반지(潘止)를, 주공(周公)은 관숙(管叔)을, 태공(太公)은 화사(華仕)를, 관중(管仲)은 부리을(付裏乙)을, 자산(子產)은 등석(鄧析)과 사부(史付)를 주살한 것이다. 이 7명은 서로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지만, 모두 마음이 음험하고 잔인하여 가히 처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시경(詩經)’에서 ‘마음속에 근심이 가득하니, 하찮은 무리의 원망을 듣는구나(憂心悄悄,慍於群小)’라고 하였다. 품행이 단정치 못한 사람들이 성과를 이루는 것이 가장 걱정되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공자가 나라를 다스린 지 겨우 3개월 만에 노나라 백성들은 안정된 생활을 누렸고,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았으며, 백성들이 소송을 일으키는 일이 없었다.
공자가 묘사한 다섯 종류의 대악지인(大惡之人)에서 우리는 마치 소정묘와 같은 자들이 오늘날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는 것 같다. “어디를 가든 떼를 지어 무리를 이루고, 그릇된 설을 퍼뜨려 인심을 현혹하고, 바른 것을 배척하고, 그릇된 것을 바른 것으로 삼아 자기의 말을 그럴듯하게 꾸며댄다.”라고 할 정도인데 이것은 거의 당 문화에서 나온 생명의 특징이다.
원문발표: 2018년 7월 12일
문장분류: 천인지간(天人之間)>문사만담(文史漫談)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7/12/3708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