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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파룬궁 박해자 업보 사례 종합(2)

[밍후이왕](앞 문장에 이어)

3) 중병, 암

중병이나 암 발병으로 업보 받은 숫자는 45명이다. 베이징 1명[정시란(鄭希蘭)], 구이저우 1명[선웨이(沈魏)], 허베이 4명[장스위(張石餘), 양싱쿠이(楊興奎), 양싱궈(楊興國)의 처, 웨이융성(魏永生)], 헤이룽장 2명[장싱궈(張興國), 차이닝(察寧)의 부(夫)], 후베이 4명[취선(屈申), 리샹청(李祥成), 왕보타오(王柏壽), 장후이룽(張會龍)], 후난 6명[우즈창(吳志強)의 자, 팡위안모(方緣模), 쉬자오판(徐教凡), 쉬둥하이(徐東海), 정핑위안(曾平源), 저우후광(周虎光)의 자녀], 지린 5명[둥치밍(董其明)의 처, 리쯔무(李子木), 녜창지(聶長吉), 리쉐원(李學文), 한청(韓成)], 랴오닝 5명[왕광샹(王廣祥), 셰훙쥔(謝洪軍), 장융차이(江永才), 쉬서우량(徐守良), 장칭쥔(張慶軍)], 네이멍구 3명[류웨이민(劉偉民), 탄징유(譚景友), 류솬(劉栓)], 닝샤 1명[저우야화(周亞華)], 산둥 2명[쑹슈민(宋秀敏), 왕쉐궁(王學功)], 산시 1명[왕쉐궁(王學功)의 모], 쓰촨 7명[쩡주훙(曾組洪), 쩡웨이궈(曾衛國), 푸화원(付華文), 랴오밍충(廖明聰), 랴오밍쑹(廖明松), 룽리췬(龍裏群), 위싱구이(餘興貴)의 처], 신장 2명[마이(馬毅) 부부], 충칭 1명[저우허우쥔(周厚均)]이다.

(1) 스자좡시 공안국 부국장 장스위

장스위(張石餘, 성)는 2002년 스자좡시 공안국 부국장에 임명돼 2009년 퇴직했다. 재직 기간 파룬궁 박해를 주관했다.

2002년부터 몇 년간은 파룬궁 박해가 가장 극심했다. 스자좡에서도 파룬궁수련자들이 잇달아 불법적인 체포, 구금, 판결을 받았다. 2004년 1~7월에만 60여 명을 납치했고, 2005년에는 동시에 11명을 납치했다. 파룬궁수련자가 박해로 사망한 사례도 대부분 그 시기다. 파룬궁수련자 자오원위(趙文瑜), 왕훙빈(王宏斌)이 박해로 사망했다. 파룬궁수련자를 불법 체포할 때마다 수련자 가정에 끝없는 고통과 상처를 남겼다.

장스위는 60대이나 80대처럼 연로해보이며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 심장승모판 수술을 했고 지방간, 간 낭종, 갑상선 결절, 동서맥, 대변 잠혈, 경동맥 플라크 등이 발병했다. 극악무도한 장쩌민 파를 따라 파룬궁을 박해한 업보이다.

(2) 헤이룽장 이춘시 진산툰 장싱궈

헤이룽장 이춘(伊春)시 진산툰(金山屯)구 전 정보(政保)과 장싱궈(張興國)는 부자가 모두 610에 근무했고 현재 두 명 모두 업보를 받았다. 장싱궈는 수차례 불법적으로 파룬궁수련자를 감금하고 재물을 갈취했다. 결국 비리로 해임됐고 나중에는 두 눈이 실명됐다. 파룬궁수련자가 진상을 알린 뒤 양심의 가책을 다소 느꼈고, 이후에 눈 상태가 다소 나아졌다.

(3) 후베이성 스옌시 공안국 국보 대대장 리샹청

리샹청(李祥成)은 전 후베이성 스옌(十堰)시 공안국 국보 대대장이다. 장기간 이곳에 근무하면서 중국공산당의 불법조직인 610의 지시를 따라 스옌 지역 파룬궁수련자를 대거 박해, 납치했다. 2003년 취커정(瞿柯政), 천리화(陳立華) 등을 비롯한 파룬궁수련자 여러 명이 박해당했고, 취커정은 이 때문에 장기간 유랑하며 심신에 큰 상해를 입었다. 리샹청은 박해를 가함으로써 크나큰 죄업을 지어 현재 엄중한 심장 질병으로 몇 년 일찍 퇴직해 자택에서 요양 중이다.

(4) 후난성 천저우시 우커창

우커창(吳志強)은 전 후난성 천저우(郴州)시 공안국 베이후(北湖)지국 국보 책임자다. 파룬궁수련자에 대해 수차례 갈취, 납치, 체포, 감금, 구타, 노동교양처분 등 박해를 가했다. 그는 난폭하고 오만방자한 성격을 보였으며 천저우에서 파룬궁 박해자로서 악명이 자자하다.

그는 주로 위협, 회유, 고문, 재물 갈취, 유치장·구치소·교도소 감금 등 수단으로 박해했다. 그는 늘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석방하고 싶으면 현금을 가져오라”고 말했으며, 가택 수색 시마다 늘 현금과 금은 장신구를 강탈했다.

파룬궁수련자가 그에게 선악에 보응이 있으니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고 수차례 경고했지만 그는 매번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내가 그만두면 아들이 계속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중국공산당을 위해 양심을 팔고 “내가 하지 않으면 아들이 계속 할 것”이라고 외치던 사람은 현재 자신이 지은 막대한 죄업을 외아들에게 남겼다. 40여 세 되는 그의 아들은 근래 갑자기 반신불수가 되어 종일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각종 수단으로 갈취한 파룬궁수련자의 재물과 박해에 가담해 받은 각종 ‘상여금’은 아들의 병 치료에 모두 쓰였다. 두손에 파룬궁수련인의 피를 가득 묻힌 그는 퇴직 몇 년 후 생계 유지를 위해 도처에 다니며 용역할 곳을 알아보고 있다.

(5) 지린성 수란시 국보 대대장 둥치밍

둥치밍(董其明, 남, 약 50세)은 전 수란(舒蘭)시 향(鄉) 파출소 소장이으로, 2009년 공안국 법제과에 근무하다 2014년부터 국보 대대장에 임명됐다. 그때부터 더욱 잔인하게 현지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해 수많은 사람이 납치, 감금, 노동교양처분, 판결을 당했다.

악행을 너무 많이 하면 결국 죽음을 자초하게 된다. 파룬궁수련자들은 그에게 수차례에 걸쳐 각종 방식으로 ‘파룬따파는 불법(佛法)이며, 예로부터 수련인을 박해하면 자신과 가족에게 업보를 초래한다’고 진상을 알렸지만 그는 듣지도, 믿지도 않았고 줄곧 자기 고집대로 했다. 2017년 설 이후 둥치밍의 악행은 그 화가 아내에게 미쳤다. 아내는 유선암 말기로 현재 치료 방법이 없는 상태다.

(6) 랴오닝 다롄시 톈진가 파출소 부소장 왕광샹

왕광샹(王廣祥)은 1972년 생이다. 1994년 7월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해 2015년 8월 다롄시 공안국 중산(中山)지국 톈진가 파출소 부소장이 됐다. 경찰이 된 후 그는 줄곧 톈진가 파출소에서 치안·순찰을 맡았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 그는 파룬궁수련자 박해에 적극 동참했다. 그는 다롄 파룬궁수련자 구췬(顧群)의 죽음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

2017년 3월 26일, 그는 희귀병인 소분자 폐암 판정알 받고 수술하지 못한 채 화학 약물 치료 중이다.

(7) 전 네이멍구 츠펑시 위안바오산구 국보 대장 류웨이민

류웨이민(劉偉民, 남, 50대)은 전 네이멍구 츠펑(赤峰)시 공안국 위안바오산(元寶山)구 공안지국 국보 대장이다. 1999년 중국공산당 장쩌민 파가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뒤로 그는 츠펑 위안바오산구에서 최소 8년간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했다. 도농을 막론하고 대부분 현장에 직접 참여해 수시로 파룬궁수련자를 구타하고 욕하며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박해 제1선에서 활동하면서 수많은 파룬궁수련자를 납치, 노동교양처분, 판결받게 했고 어떤 가정은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자녀가 고아가 됐다. 무고한 형제자매, 해당 지역 어르신과 주민 모두가 그의 박해대상이었다.

현재 류웨이민은 업보 받아 심장 우회수술을 했고 혼자 생활하지 못하는 상태다. 내막을 아는 현지 공안 관계자에 따르면 류 씨는 현재 전문 간병인이 보살펴야 하는 등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8) 네이멍구 모치 국내안전보위대대 대장 탄징유

네이멍구 모리다와치(莫力達瓦旗, 모치) 국보 대대장 탄징유(譚景友)는 쿠이레이허(奎勒河)진(전 자루무타이(紮如木台)향) 펀더우(奮鬥)촌 출신이다. 훙옌(紅彥)진 파출소 소장이었다가 2016년 모치 국보 장보밍(張柏明)에 이어 대대장을 맡았다. 줄곧 장쩌민 파를 따라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했고, 법에 의거해 장쩌민을 고소한 파룬궁수련자의 자택에서 수차례 소란을 피웠다. 탄징유는 현재 전신근육이 위축돼 재활치료로 통증을 완화하고 있다.

(9) 산둥 웨이하이시 원덩구 구치소 부소장 쑹슈민

산둥성 웨이하이(威海)시 원덩(文登)구 구치소 부소장 쑹슈민(宋秀敏)은 수년간 구치소 주임으로 재직하면서 수차례 파룬궁수련자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우고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실시했으며, 단식하는 파룬궁수련자에게 야근을 강요했다. 그녀는 난폭하고 질투심이 심했으며, 현재 업보로 유선암이 발병했다.

2015년 2월 16일, 파룬궁수련자 톈리사(田麗莎)가 불법으로 원덩구치소에 감금됐는데, 같은 해 3월 3일부터 오후면 부소장 쑹슈민에게 끌려가 의무실에서 강제 음식물 주입(灌食: 본래는 스스로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는 중환자에게 관을 삽입하여 음식을 주입하는 의료수단이나, 중국에서는 멀쩡한 사람에게 강제로 음식을 주입하는 고문 수단으로 변질됨)을 실시, 고농도 소금물과 야채국을 강제 주입했다. 톈리사가 무죄석방을 호소하며 식사를 거부하자 구치소는 줄곧 이렇게 할 것이라고 협박했으며, 매일 톈 씨에게 고농도 소금물을 강제 주입했다.

(10) 닝샤 인촨시 진펑구 황허둥로 파출소 경찰 저우야화

저우야화(周亞華, 여, 40대)는 전 닝샤(寧夏) 인촨(銀川)시 진펑(金鳳)구 황허둥(黃河東)로 파출소 경찰이다. 수년간 관할지역 파룬궁수련자 장구이팡(張桂芳), 장팡(張芳) 등에게 소란을 피우고 박해했다. 이후 진펑구 만청베이가(滿城北街) 파출소로 전임돼 관할지역 파룬궁수련자 왕샹천(王相臣), 뤄신핑(羅新平), 수이쉐팡(水雪芳) 등을 박해했다. 그는 줄곧 전화 또는 자택에 난입해 소란을 피우고 협박을 일삼았다.

파룬궁수련자 여러 명이 저우야화에게 진상을 알리고 박해에 가담하지 말 것을 권했지만, 그는 줄곧 멈추지 않았다. 이후 업보로 유선암이 발병했고 2015년 겨울에는 출근도 할 수 없어 해당지역 경찰 왕웨이빙(王偉兵)이 저우 씨를 대신했다. 2016년 6월경 저우야화는 입원해 화학 약물 치료를 받았고 통증으로 삶의 의욕을 잃을 정도가 됐다. 화학치료 후 안색이 어둡고 신체가 극도로 허약해진 상태다.

(11) 신장 허징현 국보 소속 마이, 업보로 부부가 암 발병

마이(馬毅, 54세)는 신장 허징(和靜)현 국보 교도원이다. 재직 기간 파룬궁수련자 박해에 적극 참여해 현재 업보로 장암을 앓고 있다. 가족에게도 화가 미쳐 50세 되는 아내가 유선암에 걸렸다.

밍후이왕에 따르면 2009년 6월 18일부터 신장 쿠얼러(庫爾勒)시 허징(和靜)현 공안국 국보 소속인 마이는 파커수(八棵樹)파출소, 23단파출소, 후광탕장(湖光糖廠)파출소 경찰들을 대동해 파룬궁수련자 장위메이(張玉梅)의 자택에 쳐들어갔다. 파룬궁수련자 장위메이(張玉梅)와 자오즈핑(嬌治萍), 수련자가 아닌 시민 6명을 납치했으며, 그 중 초등학생 1명도 있었다.

그는 늘 파룬궁수련자에게 소란을 피우고 가택수색과 납치를 해왔다. 심지어 폭력을 써서 고문하기도 했다. 파룬궁수련자들이 수차례 선(善)을 권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현재는 그 자신이 업보를 받았을 뿐더러, 화가 아내에게도 미쳐 부부 모두 암이 발병했다.

(12) 산둥 라이양시 비서장 왕쉐궁

왕쉐궁(王學功, 55세)은 1999년 공산당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을 때 라이양(萊陽)시 비서장이었다. 박해 발생 후 베이징 주재 라이양 사무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그는 승진을 위해 인정과 의리가 없이 미친듯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인을 박해했다. 베이징에 청원하러 간 파룬궁수련자에 대해 발광하듯 신발 바닥으로 뺨을 구타해 수련자의 얼굴이 붓다 못해 변형됐고, 인력을 동원해 몸에 지닌 금전도 강탈했다. 2017년 신년경 그는 후두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암세포가 이미 온몸에 전이됐다고 전해졌다. 지난(濟南)에서 성대 절제 수술을 했으며 힘겹게 연명하고 있다.

4) 업보로 인한 조사처분, 판결

업보로 인해 조사처분 또는 판결받은 숫자는 145명이다. 안후이 1명[천수룽(陳樹隆) ], 베이징 1명[우아이잉(吳愛英)], 간쑤 8명[왕둬런(王多仁), 주원녠(祝文年), 친화(秦華), 장즈취안(張智全), 왕첸(王謙), 비서(성명 미확인), 장샹밍(張向明), 롼커쥔(欒克軍)], 광둥 14명[저우전훙(周鎮宏), 허수즈(何樹志), 모더푸(莫德富), 천훙핑(陳弘平), 마웨이링(馬偉靈), 천위컹(陳宇鏗), 량이민(梁毅民), 탄톈주(譚天柱), 덩다룽(鄧大榮), 라이이청(賴益成), 니쥔슝(倪俊雄), 저우궈위안(鄒國源), 부하이쉬안(蔔海宣), 주밍궈(朱明國)], 허베이 8명[왕이팡(王義芳), 왕원화(王文華), 왕쥔잉(王俊英), 쑨이허(孫義合), 장천량(張臣良), 위안위칭(袁餘慶), 주즈밍(朱志明), 둥원창(董文昌)], 허난 1명[쉐싱궈(薛興國)], 헤이룽장 9명[왕셴쿠이(王憲魁), 후푸몐(胡福綿), 양환닝(楊煥寧), 좡친이(莊欽義), 허차이화(賀彩華), 쑹훙메이(宋紅梅), 자오광후이(趙光輝), 자수원(賈樹文), 장춘성(張春生)], 후베이 30명[류친쉐(劉勤學), 장쥔(張軍), 룽젠(榮健), 가오위치(高玉奇), 쉬허무(徐和木), 덩치린(鄧崎琳), 허자톄(賀家鐵), 장쉐망(張學忙), 퉁진보(童金波), 왕젠화(王建華), 양융왕(楊永旺), 슝웨이(熊偉), 펑윈차오(馮雲喬), 판가오펑(潘高峰), 주가오원(朱高文), 펑웨이궈(馮衛國), 뤄즈린(羅芝林), 양융(陽勇), 장셴(張弦), 수춘밍(舒春明), 왕다오성(汪道勝), 리쑹인(李頌銀), 녜리쥔(聶利軍), 리런전(李仁真), 저우지퉁(周紀童), 친진젠(秦金建), 뤄즈린(羅芝林), 저우핑(鄒平), 진바오밍(金保明, 음차), 우화진(吳華金)], 후난 11명[가오윈샹(高雲祥), 리쥐추(李菊初), 녜쉐원(聶學文), 탕궈둥(唐國棟), 장샹타오(張湘濤), 랴오젠화(廖建華), 천젠핑(陳建平), 뤄칭화(羅清華), 장젠룽(張健龍), 저우창차이(周常彩), 후즈궈(胡志國)], 지린 4명[류펑샤(劉鳳霞), 리푸(李富), 리웨이(李偉), 장더유(張德友)], 장시 2명[인젠예(尹建業), 인메이건(殷美根)], 랴오닝 14명[양펑(楊峰), 쥐촨자이(鞠傳再), 쑤훙장(蘇宏章), 친스룽(秦世龍), 주량(朱良), 챠오강(喬剛), 차오아이화(曹愛華), 왕언라이(王恩來), 리더펑(李德鵬), 창황핑(長黃萍), 류겅(劉庚), 진징자오(金京釗), 리원커(李文科), 우예쑹(吳野松)], 네이멍구 1명[모젠청(莫建成)], 닝샤 2명[자펀챵(賈奮強), 쉐하이보(薛海波)], 산둥 12명[린셴하오(林先好), 후샤오화(胡孝華), 리쉐하이(李學海), 양루위(楊魯豫), 우쥔후(吳俊虎), 왕푸카오(王福考), 롼시하이(欒希海), 장팅후이(張廷輝), 쉬저잉(許澤英), 왕융훙(王永江), 왕원야오(汪文耀), 장징타오(張敬濤)], 산시 6명[두산쉐(杜善學), 녜춘위(聶春玉), 닝쉐펑(丁雪峰), 리량썬(李良森), 왕화이칭(王懷清), 리잔하이(李占海)], 상하이 4명[천쉬(陳旭) 부부와 자(子), 제(弟)], 산시 6명[610사무실 책임자(부청장급), 부책임자, 멤버 4명], 쓰촨 4명[중정밍(鍾正明), 장둔제(江敦傑), 탕리중(唐禮忠), 류차오(劉超)], 톈진 1명[뤄푸라이(羅福來)], 윈난 3명[두민(杜敏) 모자와 제], 저장 1명[왕이이(王一義)], 충칭 2명[허팅(何挺), 쑨정차이(孫政才)]이다.

(1) 간쑤 진창시 사법국 국장 왕둬런, 닝위안바오진 서기 주원녠

진창(金昌)시 사법국 서기 겸 국장인 왕둬런(王多仁)은 뇌물수수죄로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진촨(金川)구 닝위안바오(寧遠堡)진 서기 주원녠(祝文年, 부현장급)은 엄중한 기율 위반 혐의로 현재 조사 중이다.

사법국과 사법기관은 현재까지 사법국의 감독 하에 정기적으로 파룬궁 비방 선전을 실시했으며, 관할지역 변호사 사무소에 공문을 하달해 ‘파룬궁에 대해서는 유죄변호만 가능’이라고 명시했다. 변호사가 파룬궁 모함 관련 안건을 접수하지 못하게 위협하고, 타지 변호사가 변호할 때도 각종 수법을 써서 가로막았다.

표면적으로 왕둬런과 주원녠은 부정부패로 낙마했으나 실질적 원인은 파룬따파를 박해한 업보이다.

(2) 전 광둥성 통전부 부장 저우전훙

저우전훙(周鎮宏, 남)은 광둥 푸닝(普寧) 출신으로 2002년 4월 마오밍(茂名)시위원회 서기와 시(市)인민대표대회 당조직 서기를 맡았고, 2002년 11월 마오밍시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주임을 겸임했다. 2007년 5월 광둥성 위원회 상무위원, 통전부(統戰部) 부장으로 승진했다. 2012년 1월 16일 조사받기 시작해 2014년 2월 28일 부정부패로 사형 집행유예 선고, 재산몰수 처분을 받았다.

표면적으로는 직무상 편의를 이용한 부정부패로 사형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것이나, 심층원인은 마오밍에서 재임 기간 장쩌민을 따라 선량한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해 업보를 초래한 것이다.

(3) 광둥 제양시 재임 시위원회 서기 천훙핑

천훙핑(陳弘平, 남, 1954년 9월 생, 한족)은 광둥 제양(揭陽) 출신이다. 심사·처리 결과 2004~2011년 제양시 시장대리, 시장, 중국공산당 제양 시위원회 서기 등이었을 때 직무상 편의로 타인에게 혜택을 제공한단 명분으로 1억3991만6780위안(약 242억)에 달하는 뇌물을 수수했다. 광둥성 포산(佛山)시 중급법원은 전 제양 시위원회 서기 천훙핑에게 뇌물수수죄로 사형,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평생 정치생명이 박탈되고 재산이 몰수됐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후 2004년 10월까지 천훙핑은 제양시 부시장, 시(市)정법위 부서기, 시위원회 부서기, 시위원회 당교 교장으로 재직했다. 2004년 10월~2011년 10월은 제양시 시장대리, 시장, 시위원회 서기,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주임 등이었다. 장쩌민이 주도한 파룬궁 박해에 가담해 고속승진을 했으나 오늘날 그 대가로 업보를 받았다.

(4) 광둥 610책임자 마웨이링, 전 산웨이시 공안국 부국장 천위컹

광둥성 공안청 전 610사무실 부주임 마웨이링(馬偉靈)은 2016년 5월 20일 징역 10년형 및 100만 위안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부하였던 전 산웨이시 공안국 부국장 천위컹(陳宇鏗)도 2015년 업보를 받아, 징역 8년에 벌금 10만 위안을 선고받았다.

마웨이링(남, 1963년 8월생)은 광둥 산터우(汕頭)시 차오양(潮陽) 출신이다. 2001년 4월~2004년 2월 광둥성 공안청 610사무실 부주임을, 2010년 5월~2013년 6월 산웨이시 정법위 서기, 시(市)공안국 국장, 당위원회 서기로 재직했다. 2013년부터 피조사 전까지 광둥성 공안청 교통관리국 정치법률위원이었다.

천위컹(남, 1973년 11월생)은 광둥(廣東)성 제양(揭陽)시 제둥(揭東)현 출신이다. 2008년 8월~피조사 전까지 산웨이(汕尾)시 공안국 당위원회 부서기, 부국장이었다. 2009년 9월~2011년 9월 루펑(陸豐)시 정법위 서기, 공안국 당위원회 서기, 국장을 겸직했다. 2015년 포산시 중급법원은 조사를 거쳐 그가 재직기간 직무 편의를 이용해 관직을 매매하고, 마약 범죄자가 법적 제재에서 벗어나게 보호하고, 뇌물 250만4000위안(약 4억3200만 원)과 94만 홍콩달러(약 1억 3000만 원)을 수수한 사실을 파악했다. 포산중급인민법원은 1심에서 뇌물수수로 징역 8년형 및 40만 위안 벌금형을 선고했다.

마웨이링과 천위컹이 악행을 결탁, 두손에 선량한 파룬궁수련자들의 피를 가득 묻혔다. 마웨이링이 광둥성 공안청 610사무실 부주임으로 재직하던 때는 광둥성에서 파룬궁수련자 박해가 절정이던 시기다.

(5) 후베이 판자타이 교도소장 펑웨이궈

후베이 판자타이(範家台)감옥은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주요 소굴이다. 장기간 이곳의 수많은 교도관이 파룬궁 박해에 참여해 사익과 승진 기회를 얻었다. 2004~2011년 펑웨이궈(馮衛國)는 이 감옥 소장으로 재직 중 ‘교도소법’과 감독관리규정을 어겼다. 교도관과 형사범에게 지시해 파룬궁수련자를 구타하고 괴롭힌 직접적 책임이 있다. 2015년 업보를 받아 감옥체계 내 반(反) 부패 과정에서 낙마했다.

판자타이감옥에서 그는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도록 교도관과 범인을 방임하고 부추겼다. 또 감옥 내에서 자행되는 박해 사실을 장기간 덮어 감추고, 파룬궁수련자가 감옥에서 박해가 일어나는 사실을 알려도 외면하며 줄곧 처분하지 않았다.

그는 후베이성 사법청을 배경으로 2011년 다쥔산(大軍山) 소년원(후베이성 소년원과 소년범죄 교도소) 소장(부국장급)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호황도 잠시, 2015년 업보를 받아 해직됐다.

(6) 전 후베이성 스옌시 시정부 부비서장 저우지퉁

저우지퉁(周紀童)은 전 후베이성 스옌시 시정부 부비서장이다. 그가 스옌(十堰)전자 정부지도자사무실 주임이었을 때 ‘평안센터 영상감시 통제시스템’, ‘네트워크 사회관리 시스템’ 프로젝트(주로 파룬궁수련자와 민주인사에 대한 미행 및 감시 용도)에 적극 참여했다. 스옌(十堰)지역 거리, 주택단지, 사무실마다 대량의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

둥치(東汽)회사 디자인연구소 파룬궁수련자 장(張) 모 씨는 2016년 5월 장완(張灣)공원에 진상 관련 현수막을 건 것이 감사카메라에 찍혀 불법적으로 감금돼 세뇌 박해를 받았다.

저우지퉁은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에 동조해 가해자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직권 남용을 도와 악행을 일삼아 업보를 받았다. 2014년 5월 비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80만 위안 뇌물수수 혐의를 지목받았으나 근본원인은 업보) 현재 10년형을 선고받았다.

(7) 전 후베이성 스옌시 마오젠구 법원장 친진젠

친진젠(秦金建)은 전 후베이성 스옌시 마오젠구법원 원장이다. 뇌물수수 혐의로 2015년 12월 조사받았고 2016년 1월 해당 안건이 법원으로 넘어갔다.

그가 법원 재직 당시 파룬궁수련자를 모함해 형을 선고한 사건이 수차례 발생했다. 예를 들어, 천쉬윈(陳緒雲), 우밍진(武明金), 천리화(陳立華) 등 파룬궁수련자들이 모두 무고하게 몇 년씩 형을 선고받았다. 천리화가 무고하게 형을 선고받은 후 2015년 2월 이 법원 법관 친밍청(秦明承)의 악성 구타 사건이 인터넷에 폭로됐다. 연말 이 법원 책임자 친진젠은 조사 후 판결받았다. 표면적인 죄는 뇌물수수이나 심층원인은 마오젠구 법원에서 파룬궁수련자를 모함해 형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친진젠은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8) 랴오닝성 전 정법위 서기 쑤훙장

2017년 5월 19일, 전 중국공산당 랴오닝성 정법위 서기 쑤훙장(蘇宏章)이 징역 14년을 선고받았다. 파룬궁을 박해한 이 간부의 업보는 타 직급 관리들에게도 경고가 될 것이다. 파룬궁수련자에게 행한 죄는 결코 흐지부지 사라져버리지 않을 것이다.

랴오닝성은 파룬궁 박해가 가장 엄중한 성(省) 중 하나다. 쑤훙장은 중국공산당의 수장이던 장쩌민을 따라 파룬궁을 박해했다. 장쩌민의 최대 ‘정치업적’은 좋은 사람을 괴롭히고 선량한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한 것이다. 쑤훙장의 재임기간, 총 100여 명 파룬궁수련자가 박해로 사망했다. 그가 푸순 시위원회 부서기였을 때, 푸순 지역 파룬궁수련자 천쑤란(陳素蘭), 추구이룽(鄒桂榮), 류위칭(劉玉清) 등이 잔인하게 박해받아 억울하게 세상을 떴고, 선양 시위원회 부서기였을 때는 선양 지역 파룬궁수련자 50여 명이 박해로 사망했으며, 랴오닝성 정법위 서기 때는 랴오닝성에서 파룬궁수련자 60여 명이 박해로 사망했다.

악행을 많이 하면 죽음을 자초한다. 타인을 해치는 것이 곧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 여전히 박해에 가담하는 이들이 하루빨리 깨어나기를 희망한다.

(9) 전 닝샤 공안청 부청장 자펀창

전 닝샤 공안청 부청장 자펀창(奮強等)은 뇌물수수 및 고리대금죄로 16년형을 선고받았다. 동일 안건의 닝샤건축공정 질량안전감독본사 쉐하이보(薛海波)는 뇌물로 받은 1000여만 위안을 상납해 4년형을 선고받았다. 현재 자펀창은 닝샤감옥훈련센터에 수감 중이다.

이는 그가 수년간 파룬궁을 박해해 초래한 업보이다. 그는 1999년부터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으며, 2014년 12월 피조사 전까지 스주이산(石嘴山)시 공안국 부국장 겸 다우커우(大武口)구 공안지국 국장, 스주이산시 공안국 정치위원· 당위원회 서기, 구위안(固原)시 정법위 서기·공안국 국장, 인촨(銀川)시 정법위 서기, 닝샤(寧夏) 공안청 부청장으로 있었다. 파룬궁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10여 년 박해 중에서 그는 박해정책을 적극 추진했고 장쩌민 깡패집단의 앞잡이가 되었다. 양심을 버리고 좋은 사람을 박해했을 뿐더러 부하를 조직하고 지시해 박해를 실시했고 직접 고문해 자백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가 전임해갈 때마다 수많은 파룬궁수련자가 박해받았다. 부임하는 곳마다 재앙을 불러왔다.

(10) 산둥 지난시장 겸 서기 양루위 등

전 산둥성 지난(濟南)시 시장 양루위(楊魯豫)와 전 시위원회 서기 왕민(王敏)은 모두 부도덕한 부류였다. 2017년 5월 5일 양루위는 2300만 위안의 뇌물수수죄로 14년형을 선고받았다. 왕민은 2016년 9월 30일 1800만 위안이 넘는 뇌물수수죄로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양루위와 왕민은 재직기간 장쩌민 파의 사악한 정책을 따라 줄곧 파룬궁수련자 박해에 적극 참여했다. 이들은 한때 안하무인이었으나 현재는 형을 살고 있다. 하늘의 이치가 인간세상에서 드러났다. 충고를 듣지 않고 현재도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각급 관원들은 깨어나야 한다.

(11) 전 쿤밍시 정법위 서기 두민

2017년 5월 4일 중국공산당 매체는 전 쿤밍(昆明)시 공안국 국장·정법위 서기 두민(杜敏)의 ‘회개서’를 게재했다. 두민은 ‘제가 조사받자 모친은 화병으로 세상을 떴습니다. 올해 86세인 부친은 출소 때가 되면 아마 돌아가셨을 겁니다. 제가 남동생을 잘 돌보지 못해 우리 둘이 함께 투옥됐습니다. 우리는 두씨 가문의 치욕입니다. 제 과오로 아들까지 연루돼 하마터면 아들도 인생을 망칠 뻔했습니다.’라고 했다.

낙마해 조사받기 전 그녀는 윈난 경찰학교 중국공산당 당위서기였다. 1992년부터 쿤밍시 공안국 부국장, 국장, 성 공안청 형사본사 총대장, 쿤밍시 정법위 서기를 지냈다. 40여 년을 정치법률계통에 있었고 최장기간 쿤밍시 공안국 국장이었다. 재임기간 파룬궁 박해에 대해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다. 2016년 9월 27일, 윈난성 추슝저우(楚雄州) 검찰원은 두민을 뇌물수수 혐의로 입안조사하고 강제조치를 취했다.

표면적으로 두민은 뇌물수수죄로 낙마한 것이나, 실상은 파룬궁을 박해한 업보를 받은 것이다. 밍후이자료실 2016년 1월 18일까지의 통계 데이터에 따르면 밍후이왕이 보도한 윈난성 내 파룬궁 박해 사례는 총 1105건, 직접 박해받은 파룬궁수련자가 1149명, 이 중 박해 사망자는 17명이다.

(12) 충칭 공안국장 허팅

허팅(何挺)은 1962년 2월 산둥 허청(榮成)현에서 태어났다. 2007~2012년 간쑤(甘肅), 칭하이(青海)성 공안청 청장이었다. 2012년 3월말 보시라이의 낙마 후 그는 충칭 부시장 겸 공안국장으로 부임했다. 매체 보도에 따르면 허팅은 2017년 6월 16일 충칭시 부시장, 충칭 공안국장에서 해임됐으며 이로써 그의 4차례 시인민대표 자격도 박탈됐다.

그는 장기간 중국공산당 정치법률계통에 복무했다. 저우융캉이 가장 아끼는 ‘문하생’ 중 하나로 저우융캉에게 뇌물을 상납해 파격적으로 발탁됐다. 그는 중국공산당 장쩌민 파를 따라 파룬궁을 적극 박해했고, 해외 단체인 ‘파룬궁박해추적조사국제기구(WOIPFG)’의 조사 리스트에도 이름이 올라 있다. 표면적으로는 비리로 인한 면직이나 실상은 파룬궁을 박해해 업보를 받은 것이다.

권고를 듣지 않아 결국 업보를 받고 있는 그가 이 글을 본다면 어떤 심정일런지, 파룬궁 박해에 앞장선 이들의 심경이 궁금하다.

우리는 타인이 재앙을 당하는 것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파룬궁 박해에 적극 가담한 중국의 사악한 경찰 등의 현재는 확실히 ‘자신이 초래한 재난은 피할 수 없다(自作孽,不可活)’는 중국 속담과 일치한다.

(13) 산시성 공안청 610사무실 관계자들의 업보 사례

산시성 공안청 610사무실 책임자(부청장급), 부책임자 및 주요 관계자 4명이 1년 전 비리 혐의로 체포됐다. 산시성 공안청 610사무실 요원 10명 중 60%가 체포돼 현재 마비상태다. 이들이 공금 100여 만 위안을 공동 횡령한 사실을 누군가 적발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이곳은 책임자가 최소 3번 교체됐다. 이전 책임자 두 명은 불치병으로 일찍이 물러났지만 밍후이왕에 폭로되는 것이 두려워 소식을 극구 덮어감췄다. 하지만 민중은 파룬궁을 박해해 업보를 받았다고 공공연히 담론하고 있다.

(14) 중국 사법부장 우아이잉

2017년 10월 14일 중국공산당은 전 사법부장 우아이잉(吳愛英)의 낙마를 발표했다. 우아이잉은 파룬궁 박해 원흉 저우융캉과 마찬가지로 장쩌민이 직접 발탁했다. 그는 ‘법률 문외한’이었으나 12년간 사법부를 책임지며 장쩌민과 저우융캉을 적극 추종했다. 전국의 감옥, 교도소 계통의 수장으로서 파룬궁수련자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악을 행했다. 박해해 죽이거나 고문을 가하며, 파룬궁수련자를 무죄변호한 변호사 단체를 탄압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15) 충칭 시위원회 서기 쑨정차이

쑨정차이(孫政才, 남)는 2009~2012년 지린(吉林) 성위원회 서기, 2012~2017년 충칭 시위원회 서기였다. 지린성과 충칭시 재직 기간 수차례 파룬궁수련자 박해에 가담했다.

2009년 11월 왕민의 후임으로 부임한 지 채 1년이 안 돼, 2010년 지린성에서 파룬궁수련자의 피박해 사망 사례가 최소 29건이 발생했다. 이 중 창춘 유선TV에 방송을 삽입해 민중에게 진상을 알린 파룬궁수련자 량전싱(梁振興), 변호사 가오즈성을 인터뷰한 파룬궁수련자 쑨수샹(孫淑香)이 포함된다.

쑨정차이는 충칭 시위원회 서기였을 당시 충칭시 공안국장 허팅을 부추겨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게 했다. 쑨정차이는 현재 업보를 받아 입안 조사받고 있다.

5) 업보로 인한 자살

업보를 받아 자살한 사람은 14명이다. 간쑤 3명[닝위안바오(寧遠堡)진 공무원 1명, 저우창(周強), 뤄밍(羅茗)], 산둥 1명[양춘런(楊春仁)], 허난 1명[리융성(李永勝)], 헤이룽장 2명[펑훙빈(馮洪濱), 루젠밍(陸建明)], 랴오닝 1명[천리강(陳立剛)], 산시 2명[진융(金勇), 왕쉐궁(王學功)], 쓰촨 2명[칭샤오쥔(青小軍), 천중수(陳忠恕)], 톈진 1명[장푸촨(張付川)], 신장 1명[천커창(陳克強)]이다.

(1) 간쑤성 발전개혁위원회 주임 저우창

저우창(周強, 55세)은 간쑤성 웨이위안현 출신이다. 2008년 3월~2012년 8월 연이어 칭양(慶陽)시 시장과 시위원회 서기를, 2012년 8월~2015년 5월 간난저우(甘南州) 서기, 2015년 5월부터 발전개혁위원회 주임을 맡았다. 2017년 4월 기율검사위원회의 담화 조사 후 죄악이 폭로돼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5월 4일 황허에 투신해 죄악의 일생을 마쳤다.

저우창은 시장, 시위원회 서기 당시 장쩌민 파를 따라 파룬궁수련자를 적극 박해했다. 여러 명이 박해로 사망하고 노동교양처분, 형 선고, 공직 해고 등을 당했다. 수많은 죄값 때문에 그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됐다.

(2) 허난성 핑딩산시 전 정법위 서기 리융성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이래 허난성 핑딩산(平頂山)시 파룬궁수련자의 납치·불법 노동교양 처분·형 선고·세뇌 등 박해는 정법위 서기 리융성(李永勝)이 주요 책임자 중 하나다. 관련 박해 사례들은 밍후이왕에도 보도됐다.

그는 선량한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박해정책을 집행해 현재 업보를 받았으나, 중국공산당은 민중이 그가 업보받은 것을 알지 못하게 하고자 이 사건을 은폐했다. 리융성은 우울증이 나타나 2017년 9월 13일 자택에서 투신자살했다.

(3) 전 간쑤 칭양시 사회보험센터 주임 겸 보증센터 회장 뤄밍

뤄밍(羅茗, 50대 중반)은 칭양(慶陽)시 출신으로 전 칭양시 보험센터 주임 겸 회장이다. 2017년 5월 하순 기율검사위원회 면담 후 자신의 죄업이 큼을 인지하고는 즉시 저축은행 11층에서 뛰어내려 그 자리에서 숨졌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뤄밍은 박해에 적극 가담했고, 이로써 여러 파룬궁수련자가 납치, 불법 노동교양 처분 또는 형을 선고받았다.

(4) 잉커우(營口)시 바위취안(鮁魚圈)구 전 구위원회 서기·610책임자 천리강

천리강(陳立剛)은 수년간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박해와 납치를 기획한 주모자로, 수많은 수련인이 그로 인해 심한 박해를 받았다. 온갖 악행을 다한 천리강은 귀신에 홀린 듯 자살해 사망했다.

(5) 전 광둥성 마오밍시 마오난구 구청장 양춘런

1999년 7월 20일 장쩌민 파가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이래, 마오밍(茂名)시 마오난(茂南)구 구청장 양춘런(楊春仁)은 관할 구역을 통틀어 대대적으로 파룬궁수련자 수백 명을 붙잡아 수사했다. 메이화(袂花), 뉴터우(牛頭), 전성(鎮盛)은 재앙의 지역으로 여러 명이 죽거나 다쳤다.

양춘런은 파룬궁을 박해해 마오밍시 노동국장으로 승진했다. 2011년 비리혐의로 조사받은 뒤 감옥행을 면하고자 2015년 12월 자가용을 몰고 대형 트럭 밑으로 돌진해 자살했다. 당시 58세였다.

(6) 헤이룽장 허강시 중급법원 부원장 루젠밍

헤이룽장성 허강(鶴崗)시 중급법원 부원장, 전 난산(南山)구 법원장 루젠밍(陸建明)은 과거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는 파룬궁수련자를 모함하고 무고하게 형을 선고했다. 업보를 받아 들보에 목을 매 자살했다.

루젠밍은 2017년 5월 하순 비리 혐의로 조사받기 전, 꽌시(關系)를 통해 아파트를 하나 얻어 그곳에서 들보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들은 ‘우울증’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그가 자살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루젠밍은 부정부패는 물론 장쩌민 깡패집단을 따라 파룬궁을 박해했다. 허강시 난산구 법원에서 한 파룬궁수련자를 법정심문할 때 베이징의 변호사가 사실과 도리에 맞게 무죄 변호를 했고, 파룬궁을 수련함에 죄가 없다는 것을 법적으로 증명했다. 이 수련자는 즉시 무죄로 석방돼 귀가했어야 함에도 루젠밍이 이끄는 난산법원은 법을 짓밟고 무고하게 형을 선고, 이 수련자는 3년간 감옥에서 박해받았다. 타인을 해치는 것은 곧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 루젠밍이 자신의 복덕을 마구 소진했을 때 업보는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7) 산시 화이런현 기상국 주민위원회 주임 하오스중

하오스중(郝世忠, 남)은 화이런(懷仁)현 기상국 주민위원회 주임이다. 2017년 6월 12일 음독 자살했다. 당시 만 51세였다.

그는 10여 년의 재직 기간 줄곧 610과 국보 및 정부 요원을 이끌고 파룬궁수련자 자택에서 소란을 피우고 진상 관련 스티커를 찢었다. 200위안에 현지인을 고용해 파룬궁수련자를 감시했고 파룬궁수련자가 수차례 진상을 알려도 듣지 않았다. 2006년 파룬궁수련자 왕리핑(王利平)이 교도소에서 나왔을 때 하오스중, 류싱(劉興), 왕즈강(王志剛, 현 610 책임자), 리슈잉(李秀英), 윈둥(雲東)파출소 쉐샤오페이(薛小飛) 등은 위문이라는 구실로 왕리핑과 가족에게 소란을 피웠다. 그는 불법(佛法)을 박해한 악행을 함으로써 그 자신이 업보를 받았을 뿐더러 가족에게까지 화가 미쳤다.

(8) 산시성 원시현 공안국 부국장 진융

산시성 원시(聞喜)현 공안국 부국장 진융(金勇)은 2016년 12월 상급부서의 요청으로 면담한 뒤 어느 날 아침 출근 후 자신의 사무실에서 쥐약을 먹고 병원에 이송됐다. 그는 재직기간 파룬궁 박해를 주관했고 이전에 관할구역 내 파룬궁수련자를 여러 명 감금했다. 현지의 한 파룬궁수련자가 불법적으로 체포됐을 때 그는 정치문제라며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법 집행자로서 법에 따르지 않고 맹목적으로 장쩌민을 따라 좋은 사람을 박해한 결과 자신도 해치고 남도 해쳤다.

(9) 전 쓰촨 미이현 610 책임자 천중수

천중수(陳忠恕, 남, 한족, 1962년생)는 쓰촨 쯔궁(自貢) 출신으로 2003년 3월 ~2005년 3월 미이 현위원회 부서기, 정법위 서기, 610 책임자를 거쳤다.

그는 610 책임자로 재직하면서 미이현 파룬궁수련자들을 심각히 박해했다. 그중 류룽윈(劉龍雲, 9년반), 주자오제(朱召傑, 9년), 주밍춘(朱明春, 9년반), 췌파슈(闕發秀, 8년), 궈광슈(郭光秀, 7년), 양순파(楊順發, 5년) 등 6명이 불법적으로 형을 선고받았다.

올해 1월 4일, 쓰촨성 판즈화(攀枝花)시 국토자원국장 천중수는 총을 들고 판즈화시 전시센터로 난입, 회의 중이던 시위원회 서기 장산(張剡)과 시장 리젠친(李建勤)에게 연속 여러 발을 발포했다. 천중수는 전시센터 빌딩에서 도망쳤으나 즉시 신원불명의 인물에게 붙잡혀 빌딩으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2층 작은 방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숨이 멎은 채 발견됐다. 중국 매체는 그가 자살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10) 톈진시 닝허구 정법위 서기 장푸촨

전 톈진시 닝허(寧河)구 정법위 서기 장푸촨(張付川)은 닝허구 관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인물’이었다. 2016년 11월, 규정과 기율을 어기고 비리 등 혐의로 정직처분되고 조사받았다. 매일 불안과 두려움에 떨다 2017년 2월 13일 저녁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장푸촨(남, 당시 55세)은 다년간 닝허구(이전의 현) 사무실 주임이자 구상무위원회 위원이었다. 2016년 2월, 동시에 닝허구 정법위 서기, 구(區)선전부 부장, 구노조 위원장을 맡았다. 구선전부 부장 및 정법위 서기 당시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 정책을 적극 좇아 파룬궁을 모함·비방했고, 공안·검찰·법원을 제어해 불법적으로 파룬궁수련자를 수감하고 무고하게 형을 선고하도록 지시했다. 잔혹한 수단으로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했고 지역사회 시민과 초·중등학교에 해를 끼치고 그들을 기만했다. 현장회의, 게시판, 공개서한, 강제서명 등 활동을 이용해 사회 각지에 파룬궁에 대한 증오를 선동해 수많은 죄악을 초래했다. 장푸촨이 정법위 서기였던 기간 마위민(馬玉敏, 3년3개월), 모웨이추(莫偉秋, 4년반), 천위안화(陳元華, 4년), 양푸징(楊福靜, 3년반), 왕춘란(王春蘭, 4년) 등 파룬궁수련자 5명이 불법적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1) 신장 스허쯔시 정법위 서기 청커창

청커창(程克強)은 2002년부터 신장 스허쯔(石河子)시 정법위 서기를 맡았다. 2017년 추석 전, 부정부패로 추궁받을 것이 두려워 자택에서 흉기로 자살했다.

청커창은 수년간 신장 스허쯔시 파룬궁수련자 박해에 직접 참여했다. 당시 시장 쑹즈궈(宋志國, 이미 업보로 4년형 피선고)와 함께 파룬궁수련자 박해용 세뇌반을 수차례 꾸렸고, 이후 신장 감옥 책임자로 승진했다. 신장 스허쯔시 동열전기회사의 여성 파룬궁수련자 저우하이샤(周海霞)를 3층에서 굴러 떨어지게 해 척추 여러 곳이 틀어지고 한 곳이 골절됐고, 복사뼈도 부러졌다. 저우하이샤는 정상적인 노동력을 상실했고, 현재까지 귀가하지 못하고 있다.

2004년에는 동열전기회사의 뉴멍링(牛夢玲)이 핍박에 의해 6층에서 떨어져 병원에 이송됐으나 2시간 만에 사망했다. 청커창은 뉴멍링의 사망 후 그의 부모를 기만· 협박해 유가족은 어쩔 수 없이 시체를 해부한 후 즉시 화장하는 데 동의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증거 인멸을 꾀했다.

3. 맺음말

불완전 통계에 따르면, 2017년 밍후이왕에 폭로된 피업보자 329명은 모두 권고를 듣지 않고 줄곧 장쩌민을 적극 추종해 파룬궁을 박해했다. 이를 통해 거짓 속에 사는 이들의 두려운 결과를 볼 수 있다. 자신의 미래와 생명을 망치면서도 전혀 모르고 있으나, 업보가 닥쳤을 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돌아갈 길이 없이 오직 비참하게 마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죽으면 다시 태어날 수 없다.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때 이런 이들에게 여전히 이처럼 제멋대로 악행을 하겠는지 묻는다면 절대 이렇지 않을 것이다. 현재 그들의 전철을 밟는 이들에게 본 사례들이 경고가 되기 바란다.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겨야 타인의 목숨도 소중히 여길 수 있으니, 스스로를 위해 잘 처신하기를 희망한다.

 

원문발표: 2018년 1월 11일
문장분류: 천인지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1/3594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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