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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을 비방한 선전부 공무원 100여명이 보응을 받다

[밍후이왕] 중국에는 민요가 한 수 있다. ‘나는 당의 한 마리 개, 당의 큰 문 앞에 지키고 있으면서 당이 누굴 물라고 하면 누굴 물고 몇 번 물라고 하면 몇 번 문다.’ 이 민요는 아주 정확하게 중국공산당 선전 매체의 불량한 본질을 개괄했다.

1999년 7월 20일 당시 중국공산당 우두머리 장쩌민은 권력으로 법률을 압도하고 중국공산당이 통제하는 국가기관을 이용해 파룬궁에 대한 전면적인 박해를 발동했다. 역대 정치운동과 마찬가지로 먼저 매체에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비방, 먹칠, 죄를 덮어씌운 다음 파룬궁[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불법(法輪佛法)이라고도 함]을 잔혹하게 박해했다. 장쩌민은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하며 육체를 소멸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중앙선전부가 통제하는 2천여 개 신문사와 수백 개 중앙 및 지방 방송국을 모두 가동해 거짓말을 꾸며내 파룬궁을 모함하고 비방했으며 증오를 선동했다. 각종 거짓말을 꾸며낸 후 정부 측 신화사, 중국신문사, 중통사와 해외 중국공산당 매체를 통해 해외에 퍼뜨리고 사람들이 진상을 알지 못하게 파룬궁 출판물을 마구 몰수, 분쇄, 소각했다.

통계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이 당시 파룬궁을 먹칠하려고 가동한 매스컴에서 파룬궁에 대한 모함 보도와 비판 문장은 짧은 반년 내에 30여만 편에 달했다. 중국공산당 각급 선전부는 전 국민을 세뇌시키고 거짓말을 날조하고 비방, 모함하고 죄명을 날조하고 가해자를 미화하고 피해자를 모함하면서 잔혹한 박해를 선동하는 살인 도구가 됐다. 중국공산당 선전부의 각급 책임자는 모두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다.

하지만 거짓말은 천 번 반복해도 여전히 거짓말인지라 얼마 가지 않아 드러날 것이다. 박해를 계속하기 어렵게 되자 2001년 중국의 설 명절 전에 장쩌민, 뤄간 일당은 중국과 해외를 놀라게 하는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극을 꾸며내 파룬궁에 죄를 덮어씌우고 먹칠했으며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이 파룬궁을 증오하도록 선동했다. 파룬궁은 명확하게 살인, 자살하는 것은 죄가 있다고 설명했는데 파룬궁 수련인이 어찌 자살이나 살인을 할 수 있겠는가? 이 소위 ‘분신 자살’에는 허점이 많다. 국제교육발전기구는 ‘천안문 분신자살’ 동영상을 분석한 후 유엔 회의에서 이는 중국공산당 정부가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날조한 조작극이라고 지적했다. 중국공산당이 정보를 독점하고 봉쇄했기에 이 가짜 사건은 여전히 무수한 중국인을 속였다. 중국공산당은 이 거짓 사건을 초등학교 교과서에 편입해 식별 능력이 없는 어린 학생들을 세뇌했다.

지금까지 지속된 박해는 모든 파룬궁수련인과 그들 가족에게 고통스럽고 어려운 곤경에 처하게 했고 무수한 사람이 박해받아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게 했다. 이는 이런 비방 선전이 일으킨 작용과 갈라놓을 수 없다.

예부터 지금까지 불법(佛法)을 비방하고 수련인을 박해한 죄악은 아주 커 반드시 천벌을 받아왔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인간세상의 응보는 세인에게 주는 경고일 뿐 지옥의 응보야말로 악업을 갚는 과정이고 또 자자손손에까지 피해를 미칠 수 있다. 가장 가련한 사람은 파룬궁을 비방하고 먹칠하는 데 참여하고 조종한 소인배들이다.

본문은 세인을 깨우쳐주려고 99명의 중국공산당 선전부장과 선전부 공무원이 파룬궁을 먹칠하는 일에 참여해 업보를 받은 사실을 수록했다. 그들 어떤 사람은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박해 초기 선전부에서 직무를 맡았을 때 박해에 ‘공을 세워’ 발탁됐고 어떤 사람은 파룬궁 박해에 소위 ‘정치 성적’이 뛰어나 선전부로 발탁됐다. 업보 형식은 각양각색이다. 자살한 사람, 피살된 사람, 정신 이상이 된 사람이 있고 교통사고 및 각종 재난으로 죽거나 상처 입은 사람, 암 및 각종 질병에 걸려 죽거나 중병으로 앓고 있는 사람, 징역형, 입건 조사, 강등 강직된 사람이 있었고 처자식에게 피해를 끼친 사람이 있었다.

다음은 백 명의 중국공산당 선전부 공무원이 받은 업보의 실제 상황이다.

1. 암 및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1) 광둥성 광저우 시위원회 선전부 부부장 양잉우, 심장병으로 돌연사

양잉우는 2011년 7월에서 2014년 5월까지 ‘광저우일보’ 신문사 당서기, 관리위원회 주임, 광저우일보사 사장, 광저우매체주식유한회사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5년 10월에서 2011년 7월까지 광저우 시위원회 선전부 부부장, 상무위원회 부부장을 맡았다. 2014년 5월 16일 심장병 발작으로 50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사망했다.

통계에 따르면 2014년 12월까지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비방한 보도는 ‘광저우일보’ 및 그 산하의 다양왕에서 2,690편을 발표했고 ‘양청 석간신문’ 및 그 산하의 진양왕에서 425편을 발표했으며 ‘난팡일보’ 및 그 산하의 난팡왕에서 206편을 발표했다.

2) ‘양청 석간신문’ 사장 량궈뱌오, 파룬궁을 비방하여 업보 받아 폐암에 걸리다

‘양청석간신문’ 사장 량궈뱌오는 광둥 자우칭시에서 선전부장 겸 610에서 박해를 맡았을 때 장쩌민 집단의 명령을 집행하여 선전 영역에서 전면적으로 파룬따파 박해 활동을 벌였다. 대법을 비방하고 모함하는 문장을 늘 써서 사람들을 해쳤다. 2002년 ‘양청 석간신문’ 그룹 사장이 된 후에도 ‘양청 석간신문’에 대법을 비방하는 관련 문장을 전재해 많은 사람이 거짓말에 속았다.

그의 아내는 1998년에 법을 얻었고 딸도 2003년에 법을 얻었다. 그 기간 모녀는 여러 번 그에게 그렇게 하면 자신을 해치니 그만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대법을 매우 증오하면서 이혼, 직장일, 경제적 압박 등으로 아내에게 수련을 포기하라고 협박하고 대법 서적을 몰수하며 늘 아내를 무자비하게 때렸다. 그는 십여 년의 외도를 감추고 내연녀와 결혼하기 위해 대외에 공공연히 모녀가 파룬궁을 수련해 가정에 해를 끼쳐 가정이 파탄됐다면서 화근을 처자식에게 덮어씌웠다. 량궈뱌오는 이후에 폐암에 걸렸다.

3) 전 중앙텔레비전 뉴스평론부 부주임 천망, 위암과 간암에 걸려 사망

전 중앙텔레비전 뉴스평론부 부주임이고 중앙텔레비전 ‘동방시공’ 주관 천망은 2008년 초 위암과 간암에 걸려 9개월 동안 시달림을 받다가 너무 고통스러워 응급처치를 포기하겠다고 했으며 2008년 12월 23일 베이징 종양병원에서 47세에 사망했다.

천망은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사건의 프로듀서다. 중국공산당은 황당한 거짓말로 파룬궁에 대한 사람들의 증오를 자아냈고 이 세기적인 조작사건을 이용해 더 잔혹하게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각 지역 감옥, 노동교양소, 세뇌반 등 검은 소굴에서 파룬궁수련생이 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요했고 억지로 분신자살 사건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천망의 죄는 용서할 수 없다. 게다가 천망은 공개적으로 해외에서 천안문 분신자살 가짜사건은 조작한 것이라고 시인했고 뻔뻔스럽게 누가 나에게 돈을 주면 나는 그를 위해 조작극을 꾸미겠다고 말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할 때 거짓말로 박해를 발동했다. 중앙텔레비전은 파룬궁을 비방하는 거짓말을 계속 방송했다. 당시 중앙텔레비전방송국 신원롄보(新聞聯播: 뉴스 연합) 사회자 뤄징도 업보를 받았다. 2008년 뤄징은 림프종에 걸려 골수를 이식한 후 2개월 후 재발했고 구강궤양이 생겨 혀가 헐어 말을 할 수 없었으며 물 마시기도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6월 5일 베이징 307병원에서 48세에 사망했다.

4) 내몽골자치구 당 선전부 부부장 천바오취안 질병으로 사망

내몽골 자치구 당 선전부 부부장, 자치구 대외 선전지도팀 사무실 주임 천바오취안은 2017년 5월 16일 후허호트에서 질병으로 54세 나이에 생을 마쳤다.

천바오취안은 1968년 7월 내몽골 커쭤중치에서 태어났고 1986년부터 장기간 내몽골자치구에서 일했다. 1991년 11월에 자치구 당위 선전부에 전입해 잇따라 선전처 주임과원, 뉴스 출판처 처장, 자치구 당위 선전부 부순시원을 역임했다. 2016년 7월엔 자치구 당 선전부 부부장, 자치구 대외 선전지도팀 사무실 주임, 정청장을 맡았고 2016년 11월엔 자치구 기율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천바오취안은 내몽골 지역에서 파룬궁을 비방한 주요 책임자다.

5) 쓰촨성 쑤이닝시 ‘쑤이닝일보’ 총편집 천양룽 부부가 모두 암에 걸려 한 달 사이에 잇따라 사망

전 쓰촨성 쑤이닝시 ‘쑤이닝일보’ 총편집 천양룽은 1999년 ‘7·20’ 때 쑤이닝시 중부 구위원회 선전부장을 맡았다. 그는 전 구의 파룬따파 비방 선전을 책임졌고 2002년에는 ‘쑤이닝일보’ 편집장을 맡았다. 그의 아내 펑××는 쑤이닝 시위 선전부에서 일했다.

2004년 청양룽과 그의 아내는 모두 암에 걸려 잇달라 한 달 사이에 고통 받다 약 40살의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6) 산둥 자오저우시 선전부장 후진메이 암으로 사망

밍후이왕은 2004년 4월 21일 자오저우시 전 시위서기 샤오스청도 회의에서 파룬궁과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는데 결국 얼마 되지 않아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지만 목숨을 건지지 못한 사실을 보도했다. 자오저우시 선전부장 후진메이는 파룬궁 박해에 여론을 조성한 대장이다. 이런 구호를 외쳤을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을 직접 지키면서 파룬궁을 모함하는 가짜 뉴스를 지휘하고 꾸며냈다가 얼마 되지 않아 암에 걸려 고통스럽게 사망했다.

7) 허베이성 구청현 현 선전부장 쉬칭린, 암에 걸려 사망

허베이성 구청현 현선전부장 쉬칭린은 여러 차례 현(縣) 텔레비전에서 대법을 함부로 모함해 2002년 암에 걸려 3, 4월 사이에 사망했다.

8) 헤이룽장 팡정임업국 당위 선전부 부부장 류샤오화, 사당의 미혹에 이용되어 목숨을 잃다

류샤오화(여, 약 40세)는 전 팡정임업국 당위 선전부 부부장으로, 정치자금을 얻으려고 명리를 위해 전력을 다해 사당에 충성하면서 함부로 파룬궁을 비방했다. 2001년 3월 중순 팡정임업국 사당은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대회를 열고 파룬궁수련생 장야친을 비판했다. 대회 사회자가 바로 류샤오화였다. 이어서 류샤오화는 대법을 비방하는 현수막을 만들어 대회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서명하게 했다. 이것은 대법에 지은 가장 큰 범죄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녀는 업보를 받아 저승으로 갔다.

9) 전 광둥성 마오밍시 선전부장 쉬무융, 업보 받아 후두암으로 사망

광둥성 마오밍시 선전부장 쉬무융은 장쩌민 집단의 파룬궁 박해에서 선전부장을 맡으면서 악한 짓을 했다. 1999년 쉬무융은 마오난구 위원 서기에서 마오밍시 정부 부시장, 시 선전부장으로 승진됐다. 그가 재임한 십여 년 동안 전시 각 선전 간행물, 게시판, 주민센터, 진 위원회는 그의 명령대로 끊임없이 파룬궁을 먹칠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쉬무융은 파룬궁에 먹칠한 ‘정치 성적’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2015년 9월 21일 업보를 받아 후두암으로 68세에 생을 마쳤다.

10) 쓰촨성 루저우시 구린현 선전과 과장 천밍취안 새벽에 질병으로 돌연사

천밍취안은 구린현 선전과 과장을 맡은 기간에 적극적으로 파룬따파 박해에 참여해 많은 파룬궁수련생을 불법적으로 붙잡고 징역 판결하고 정신병원에 가두었다. 법정 심판 혹은 억울한 판결을 선고했고 심지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여 살해했다. 천밍취안 두 손에는 파룬궁수련생의 피가 가득 묻었는데 신이 그를 가만둘 수 있겠는가? 2013년 9월 8일 새벽 질병 돌발로 처자식, 손자를 두고 업보를 받아 죽었다.

11) 지린성 이퉁현 선전부 정젠, 파룬궁 비방으로 급사하다

지린성 이퉁현 정젠(42)은 1987년 동북사법대학 정치법률과를 졸업하고 초기에는 이퉁현 현위원회 선전부에서 일하면서 사당 이론 연구에 여러 해 종사했다. 2003년에서 2004년 이퉁현 기율위원회에 부임했고 2001년엔 사당이 현 위원 공산당학교에 만든 대법제자를 전향하는 세뇌반에서 여러 차례 공산당 사악한 이론을 말하고 법을 비방하면서 대법제자를 전향하려 시도했다.

2005년 2월 18일(음력 정월 초사흗날) 아버지 집에 설을 쇠러 갔다가 아버지 집에서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다며 현 병원에 가서 응급치료를 받았다. 또 그날 밤으로 성소재지 창춘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병원에서 사과를 먹다가 기침을 한 번 하고 선혈을 토하더니 바로 죽었다. 의사는 검사한 후 심장부위를 연결하는 동맥혈관에 종양이 생겨 치료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병이 발작해 하루 사이에 급사했다. 그의 가족은 그는 설이 지난 후 출근하면 문화국장으로 승진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않고 급살을 맞았다.

12) 지린성 자오허시 쑹장진 선전부 주임 위샤오둥, 폐암으로 사망

2010년 8월 지린성 자오허시 쑹장진 전 선전부 주임 위샤오둥은 파룬궁 비방 선전에 참여하여 업보를 받아 폐암으로 죽었다.

13) 산둥 자오저우시 라디오 텔레비전국 기자 옌보, 갑자기 폐암에 걸려 30세에 사망

옌보는 원래 산둥 자오저우시 라디오 텔레비전국 기자였다. 이후에 선전부 뉴스 보도과 기자로 옮겼고 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610’(파룬궁 박해를 일삼는 중국공산당의 불법 조직)을 추종해 대법을 모욕하는 문장을 집필한 후 얼마 되지 않아 폐암에 걸려 30세 나이에 사망했다.

14) 중국공산당 안후이성 정치법률협상회 부회장 차오정하이, 병으로 사망

중국공산당 안후이성 정치법률협상회 부회장 차오정하이는 이 직무를 맡은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아 2017년 5월 20일 오후 57살의 나이에 질병으로 사망했다. 홍콩 매체는 이전에 장기간 내몽골에서 직무를 맡았던 차오정하이가 장쩌민의 내몽골 정치근거지 류윈산의 ‘흰장갑’(白手套)이었고 파룬궁을 잔혹하게 박해했다고 밝혔다.

15) 헤이룽장 탕위안현 전 ‘610’ 주임 류샤오싱, 대퇴골두 괴사에 걸리다

류샤오싱은 탕위안현 현위원 선전부 직무를 맡았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하자 탕위안현은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사무실을 설립했는데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610’ 사무실이다. 류샤오싱은 주임을 맡았었다. 재임기간 장쩌민 정치 불법집단을 따라 적극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했고 파룬궁수련생 박해에 참가해 수많은 파룬궁수련생이 불법적으로 벌금을 받고 수감됐으며 어떤 수련인은 10년 중형을 선고 받았고 어떤 수련인은 공직에서 해고됐다. 지금 류샤오싱은 치료할 수 없는 대퇴골두 괴사에 걸렸다.

16) 산시 린펀시 싼웨이그룹 선전부장 탕샤오취안, 악독하게 파룬궁을 비방하다 암에 걸려 사망

탕샤오취안은 린펀시 싼웨이그룹 선전부장이다. 40여세에 여러 차례 그룹 방송을 이용해 악독하게 파룬궁을 비방해 2003년 여름 암에 걸려 사망했다.

17) 동북대학 선전부장 쑨레이, 신장 결석에 걸리다

2005년 12월 3일 밍후이왕은 최근 랴오닝 동북대학에 대법을 비방하는 사악한 홍보판이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직접 대법 박해 소위 ‘실시 방안’까지 나타났는데 이 모든 것은 당위 선전부장 쑨레이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사악한 중국공산당의 소위 ‘바오셴(당원 선진성 유지 교육활동)’을 한 후 쑨레이는 곳곳에서 사당 이론을 선양했다. 동북대학에 세 차례 가서 전력을 다해 공산당 ‘바오셴’ 운동을 해서 한때 전 학교가 사당의 홍색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는 처음 ‘바오셴’을 마친 후 신장 결석에 걸렸고 크고 작은 다른 질병도 잇따라 나타나 지금은 건강과 활력이 예전보다 못하다.

2. ‘의외의’ 사고 및 자살자

1) 간쑤성 성 선전부 부부장 겸 ‘간수일보’ 사장 스싱광, 형기 마치고 돌아온 사람에게 살해돼

스싱광은 1945년 7월 간쑤성 민친현에서 태어났다. 1999년 1월에서 2005년 3월까지 간쑤성 성(省) 선전부 부부장 겸 ‘간수일보’사 사장을 맡았다. ‘간수일보’는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박해 기간 거짓말을 날조하고 퍼뜨리는 기구가 되어 세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극히 나쁜 작용을 했다. 2005년 11월 16일 오전 10시 란저우에서 형기를 마치고 석방된 사람이 난입해 스싱광을 살해했다.

2) 허베이 청더시 선전부장 왕훙빈, 신문 텔레비전을 이용해 파룬궁을 비방하다 교통사고로 사망

왕훙빈은 전 바오딩 시 상무위원회 선전부장이다. 청더시에서 부장을 맡은 기간 신문, 텔레비전을 이용해 파룬궁을 모함, 비방하다 2009년 11월 16일 고속도로 바오딩시 입구에서 교통사고로 52세 나이에 사망했다.

3) 랴오닝성 펑청시 선전부장 스구이핑, 세뇌반을 운영한 지 9일 만에 급사

스구이핑(32)은 랴오닝성 펑청시 선전부장이다.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세뇌반에서 두 차례 비방 연설을 했고 텔레비전에서 악독하게 파룬따파를 공격했다. 2001년 4월 펑청 제2회 세뇌반을 연지 9일째 되는 날 스구이핑은 세뇌반에 가는 도중에 시 통계국 승합차와 부딪혀 사망했다. 참상은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여서 지금까지도 많은 공무원들이 무서워하고 있다.

4) 톈진시 닝허구 정치법률위원회 서기 장푸취안, 집에서 목 매어 자살

전 톈진 닝허구 정치법률위원회(정법위) 서기 장푸취안은 닝허구 정치계에서 국면을 좌우지할 수 있는 ‘인물’이다. 2016년 11월 부정부패 등 문제로 정직 처분 조사를 받았다. 그는 종일 불안에 떨다가 2017년 2월 13일 집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장푸취안(당망 당시 55세) 닝허구(원래는 현이었음) 사무실 주임을 다년간 맡았고 구상무위원회 위원이었다. 2016년 2월 닝허구 정법위 서기를 맡았고 동시에 구선전부장, 구노조 위원장을 맡았었다. 장푸취안이 구선전부장, 정법위 서기를 맡은 기간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 정책을 바짝 따르면서 파룬궁을 모욕하고 비방했으며 공안, 검찰, 법원을 통제해 불법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수감하고 억울한 판결을 내리게 했다. 잔혹한 수단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고 지역사회 시민과 초, 중등학교에 해를 끼치고 기만했다. 현장회의, 게시판, 공개편지, 강제 서명 등 활동을 이용해 파룬궁에 대한 증오와 수련인 박해를 사회 각지에 퍼뜨려 많은 악랄한 결과와 죄악을 초래했다. 장푸취안이 정법위 서기를 맡은 기간에 5명의 파룬궁수련생이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5) 충칭 라디오 텔레비전국 국장 장샤오취안, 17년 징역을 선고받았고 형제에게 화가 미쳐 12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아들은 마약 복용으로 사망

장샤오취안은 충칭 시위 선전부 전 부부장, 충칭 라디오 텔레비전국 전 국장(정청장급)이다. 2015년 7월 13일 시안시 중국 법원은 1심에서 뇌물수수죄, 거액자산불명죄 및 직권남용죄로 그에게 17년형을 선고하고 재산 5만 위안(한화 약 820만원)을 몰수했다. 그의 남동생 장톈성은 뇌물수수죄 및 탈세죄를 범해 유기징역형 12년을 선고받았고 재산 3만 위안(약 492만원)을 몰수당했으며 벌금 35만 위안(약 5,737만원)을 부과 받았다.

1999년에서 2003년 장샤오취안은 충칭 라디오 텔레비전국 국장을 맡았다. 충칭 라디오 텔레비전국 직원의 말에 따르면 장샤오취안의 아들은 원래 충칭 텔레비전방송국에서 일했는데 마약 복용으로 사망했다.

张小川(右)、张天生兄弟一同受审
장샤오취안
(), 장톈성 형제가 함께 심판 받다

충칭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국의 크고 작은 공무원, 방송국, 텔레비전 기자, 편집자, 프로그램 사회자, 온라인 회사의 크고 작은 공무원들은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 본인들의 양심을 어기고 여러 차례 회의를 열고 거짓말을 꾸미는 구체적인 방법을 조작해 파룬궁 박해를 심화시키는데 사악한 여론 환경을 만들었다.

매체 보도에 따르면 전 충칭 온라인회사 매니저 딩지위안, 부매니저 두훙즈는 거액을 횡령해 2003년에 옥살이를 하게 됐다.

6) 허난성 샹청시 선전부장 천칭이가 교통사고로 사망

허난성 샹청시 선전부장 천칭이는 승진하려고 적극적으로 악을 따랐다. 그는 여러 차례 샹청 뉴스매체를 동원해 대법을 악독하게 모함하고 비방하도록 계획했고 파룬궁수련생을 ‘전향’하는 세뇌반을 지휘했다. 대법 박해에 ‘공을 세워’ 그는 사당 조직의 환심을 사 ‘중임’을 맡으려 할 때 천에게 죽음이 닥쳤다.

2004년 추석 전야, 천칭이와 샹청 시위서기 리밍팡의 아내가 베이징에 개인적인 일을 보고 돌아올 때, 승용차가 경주고속도로 왼쪽 차선에서 남쪽으로 질주하다가 왼쪽 차선에서 역방향으로 달리던 트럭의 한쪽 바퀴가 날아와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마침 천칭이 좌석 위 천정에 떨어져 천칭이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7) 산둥 웨이팡시 린추현 선전부장이 중상을 입다

1999년 ‘7·20’ 전후 산둥 웨이팡시 린추현 정법위, 조직부, 선전부 등의 부서는 웨이팡에서 회의를 열고 파룬궁 박해를 안배했다. 당일 돌아오는 길에 업보를 받아 중대한 교통사고가 발생해 정법위 차는 폐차됐고 조직부장 런위칭은 며칠 혼수상태에 빠졌으며 선전부장은 중상을 입었다.

8) 내몽골 둬룬현 문서 보관국 국장 류보가 익사하다

내몽골 둬룬현 류보는 선전부에서 일했다. 파룬궁을 비방한 후 문서보관국 국장으로 승진했다. 2004년 9월 직장 수련생을 세뇌반에 납치해 20일 수감하는데 참여하고 각종 이유로 그 수련인의 월급 5,000여 위안(약 82만원)을 공제하고는 현 ‘610’에 내는 학비라고 말했다.

류보는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고 공산사당과 함께 좋은 사람을 박해해 결국 2005년 7월 8일 헤엄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류보의 아내 인리메이는 둬룬현 공안국에서 일했는데 불법가택 수색에 참여하고 사부님 법상을 빼앗아갔다. 대법을 박해하면 하늘이 용서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당을 따라가 가정에 업보를 끼친 결과다.

9) 허난 웨이현 현위 선전부 부부장 자즈빈, 도둑이 휘두른 도끼에 얼굴에 상처 입다

전 중국공산당 허베이 웨이현 현위 선전부 부부장이었고 이후에 쑹자좡진 진장을 맡았던 자즈빈(여)은 파룬궁 박해에 참여해 2004년 가을 도둑질하러 집에 뛰어든 도적이 휘두르는 도끼에 얼굴에 상처를 입어 몇 바늘을 꿰맸다.

10) 헤이룽장 치치하얼시 교육국 선전부장 충보가 업보 받아 사망

2008년 10월 24일 오후 5시가 넘어 치치하얼시 교육국 선전부장 충보는 혼자 차를 운전하고 싱하이 단지 길을 달리다가 모래를 실은 큰 지게차와 부딪혀 현장에서 사망했다.

42살밖에 되지 않은 충보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2주 전, 그녀의 어머니는 꿈을 꾸었다. 꿈에 사랑하는 딸이 더러운 물구덩이에 빠졌는데 온몸에 흙이었고 이미 가슴까지 물이 차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불길한 징조라고 여기고 불안해 딸에게 알리지 못했는데 2주 후 부보를 듣고 아주 비통해했다. 가족들도 젊은 나이에 일찍 죽은 그녀 때문에 슬퍼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충보가 사망한 진정한 원인을 누가 알랴?

사실 중국공산당 악당이 충보를 살해한 원흉이다. 치치하얼시 교육국 선전부장 충보는 2008년 10월에 적극적으로 사당의 중앙 및 성교육부 등 부서의 명령을 집행했다. 치치하얼 교육계에서 내려 보낸 중국공산당의 사악한 문서는 악독하게 파룬따파를 비방했고 계속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극’으로 초, 중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을 속이고 해를 끼쳤으며 파룬궁 및 창시자를 모함하는 각종 활동을 열었다. 예를 들면 룽사구 공원로 초등학교에서는 11월에 ‘반×교’(중국공산당이야말로 진정한 사교임)에 관한 학급회의를 열고 대법을 비방하고 왜곡하는 무용프로그램을 연출했고 치치하얼시 34중학교 화학 시험지에는 파룬궁 및 창시자를 비방하는 문제를 냈으며 각 학교는 각종 상금으로 고등학생을 유혹해 사당에 가입하게 했고 가짜를 선전하는 벽보를 만들도록 조직했으며 룽사초등학교 1학년 학생은 학부모에게 불법을 비방하는 편지를 갖다주었다. 어떤 학교는 학생에게 표를 작성하도록 강요해 가족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이런 활동은 파급된 범위가 넓어 치치하얼의 많은 도시와 농촌의 교사와 학생을 깊이 해쳤다. 충보도 중국공산 악당의 사주를 받아 천법(天法)을 어겼기에 업보를 받아 비참한 결과를 빚어 악당의 희생양이 됐다.

11) 광둥 퍼산 싼수이구 구위원회상무위원 선전부장 정윈안이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

불법(佛法)을 박해한 사람들의 말로는 모두 아주 비참하다. 2015년 5월 21일 오전 7시경, 퍼산시 싼수이구 구위원회상무위원 선전부장 정윈안은 아침 운동을 할 때 4층 발코니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12) 헤이룽장 다칭시 훙강구 구위원회 선전부 팡보라이가 파룬궁을 박해하다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

파룬궁을 박해하던 헤이룽장 다칭시 훙강구 구위원회 선전부 팡보라이가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13) 장시 이춘 징안현 현위 선전부 부부장 위칭화가 교통사고로 사망

江西宜春靖安县委42岁宣传部副部长余清华
장시 이춘 징안현 현위
, 42살의 선전부 부부장 위칭화

2017년 3월 28일 7시 2분 장시성 이춘시 징안현에 교통사고가 발생해 한 남성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중국 장시 왕 기자는 이 남성은 올해 42살인 징안현 현위 선전부 부부장 위칭화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고가 발생할 때 위칭화가 운전한 간C30629 승용차는 징안현 가오후진 철 방지턱이 있는 길을 달리다 도로에서 벗어나 산비탈 아래에 뒤집혀져 현장에서 사망했다. 교통경찰은 단독 사고라고 했다. 위칭화는 징안현 파룬궁을 박해하는 책임자였다.

14) 허베이 추이징화가 시(詩)를 지어 대법 및 창시자를 공격하고 비방하다 차에 치여 시신이 길거리에 효시되다

추이징화는 생전에 허베이 랑팡시 다청현 인민은행, 현 선전부, 현 인대위원회, 현 수도 전기 관리국, 성수리공사청, 다청현 정부, 인대위원회, 정치협상회 등 기관에서 직무를 맡았었다. 퇴직 전 랑팡시 수리공사국 정처장급 조사 연구원이었다. 그는 일관적으로 시대에 따랐기에 사람들은 그를 관직에서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시대를 따르기 위해 시를 써 공을 청하고 상금을 받았다. 파룬궁이 사악한 박해를 받은 후 이 사람은 시 형식으로 대법 및 창시자를 비방했다. 2002년 1월 자비로 시집 1천 권을 출판하고 곳곳에 팔고 배포해 많은 사람을 해쳤다. 2003년 설 기간 친구를 널리 사귀고 악영향을 끼치는 책을 배포하다 돌아오는 길에서 차에 치여 시신이 길거리에 효시됐다.

15) 구이저우 경공업 직업기술학교 학생회 선전부장이 살해되다

구이저우 경공업 직업기술학교 교장 옌쉬는 공산당의 선전을 듣고 늘 대회에서 파룬궁을 비방하고 일부분 교사와 학생을 지휘해 학교 종합건물에 파룬궁을 비방하는 선전 그림을 붙이게 했다. 이런 사악한 악행 때문에 많은 본교 학생들이 연루되어 업보를 받았다.

2005년 12월 21일 이 학교 학생회 선전부장과 기타 몇몇 학생은 함께 교외에서 다른 사람에게 생일파티에 갔다가 새벽 3시경 학교로 돌아오는 도중에 누군가에 쫓겨서 살해됐다. 선전부장이 술을 먹었기 때문에 뛸 수 없어 살해됐다. 대동맥의 피가 너무 많이 흘러 병원으로 이송 도중에 죽었고 다른 몇몇 학생도 상처를 입었다. 그밖에 이 학교는 학생들을 유혹해 입당하게 했다. 이유는 졸업할 때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고 일자리를 찾아주기도 좋다는 것이다.

3. 가족에게 화가 미치다

1) 산시성 사법청 청장 왕수이청, 업보 받아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

왕수이청은 산시성 사법청 청장이다. 1999년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할 때 왕수이청은 중국공산당 산시 원시현 현위 서기를 맡았고 이후에는 중국공산당 윈청시 시위상무위원, 선전부장을 맡았다. 원시현과 윈청시는 모두 파룬궁 박해가 아주 심한 지역이다. 파룬궁 비방과 모욕으로 발탁된 왕수이청은 2008년 4월 산시성 사법청 당서기, 청장, 성 감옥 관리국 제1정치위원이 됐다.

산시성 여자노동교양소, 산시성 여자감옥, 산시 타이위안 신뎬노동교양소, 산시 치현 감옥은 산시성에서 파룬궁을 박해하는 4개의 검은 소굴이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치가 떨리는 박해 사건이 발생했다. 왕수이청은 제일 책임자로서 미룰 수 없는 책임이 있다.

왕수이청은 파룬궁 박해로 노년에 자식을 잃는 고통을 겪었다. 왕수이청 아들은 20여 살에 미국에 유학 갔다가 귀국해 친척을 방문하는 중 여자 친구를 데리고 음주 운전을 하다 새벽 2시경 도로가에 부딪혀 사망했다. 그 참상은 눈 뜨고 볼 수 없었고 여자 친구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2) 간쑤성 성위 부서기 마시린, 파룬궁 박해로 연속 업보를 받다

마시린은 간쑤성 칭양시 시펑구 셴성향 사람으로 2001년 전 간쑤성 성위 선전부장을 맡았고 2002년 4월 이후 간쑤성 성위 부서기, 성(省) 문명위원회 주임, 성(省) 문학 예술계 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마시린이 성 선전부장을 맡은 기간 언론매체를 통제해 대법을 박해했다.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수련생을 불법적으로 많이 붙잡고, 노동교양, 징역 판결할 때 그는 간쑤성 성위 부서기를 맡으면서 악인을 조종, 협박해 적어도 48명의 대법제자를 살해했다.

마시린이 대법을 박해한 죄가 아주 크기에 결국 업보를 받은 것이다. 그의 악행은 그를 해쳤을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피해를 끼쳤다. 마시린의 아내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딸은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되고 한쪽 팔이 부러졌으며, 아들은 원래 간쑤성 재정청에 출근했는데 친구와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간이 파열되어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죽었다.

3) 허베이 웨이현 현위 선전부장 장즈유, 아내에게 화가 미쳐 아내가 목매 자살

허베이성 웨이현 현위 선전부장 장즈유는 장쩌민 집단을 적극적으로 추종하다 파룬궁을 박해했다. 2003년 가을 그가 책임진 선전부는 현 과학기술협회와 함께 전 현에서 대법을 비방하는 사진전을 열었고 현 영화관에서 대법을 비방하는 영화를 방영했다. 2005년 초 선전부가 제정한 업무 요강에는 파룬궁과 투쟁하겠다는 조목도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음력 정월 초이레 그의 아내는 집에서 전기밥솥 전선으로 목매 자살했다.

4) 헤이룽장 허강시 선전부장 한수구이, 파룬궁을 비방해 화가 딸에게 미쳐 백혈병으로 사망

밍후이왕은 2014년 2월 6일 한수구이가 허강시 선전부장(시 610박해자)을 맡은 기간에 전체 시 방송국, 텔레비전, 신문 등 매체에 파룬궁을 모함하고 비방하도록 배치해 증오심을 선동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그 악행으로 업보를 받아 한수구이는 얼마 되지 않아 질병으로 사망했고 죄악이 딸에게까지 미쳐 딸도 백혈병으로 죽은 사실을 보도했다.

5) 랴오닝성 칭위안현 선전부 간부 장지런, 파룬궁수련생을 악의적으로 고발해 화가 아이에게 미쳐 사망

밍후이왕은 2016년 5월 29일 장지런 사건을 보도했다. 장지런은 지금 칭위안현 선전부에서 근무한다. 장지런이 악의적으로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파룬궁수련생을 고발해 그 화가 가족에게 미쳐 업보를 받았다. 그가 공안에 파룬궁수련생을 고발한 뒤로 그의 아이는 3년 동안 자라지 않았고 결국 사망했다.

6) 랴오닝 펑청시 란치진 선전부장 궈리화, 남편에게 화를 끼쳐 암에 걸리다

랴오닝성 펑청시 란치진 선전부장 궈리화는 파룬궁을 비방하는 선전을 책임졌다. 궈 씨의 남편 스촨성(중심초등학교 교사)은 대법을 적대시했고 늘 대법을 공격하고 욕했다. 2002년 봄, 스촨성은 암에 걸려 베이징에 치료하러 갔는데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7) 허난 유전 전 지질조사소 선전부장 런화이쥔, 악인을 도와 나쁜 일을 해 아내에게 화가 미치다

런화이쥔은 허난 유전 전 지질조사소 당 선전부장이고 조사소 610책임자 중 한 사람이다. 적극적으로 대법 및 대법제자를 박해하는데 참여했었다. 그의 아들은 정신병이 점점 심해져 전국을 다니며 치료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고 이후에 그의 아내가 또 유방암에 걸려 큰 수술을 했다. 2003년 7월 8일 그는 인과응보를 알았는지 지질연구원 서기로 이직했다.

8) 허베이 건축공정대학 전 선전처 처장 한청왕, 업보 받아 아들이 암에 걸려 이혼한 후 사망

한청왕은 허베이 건축공정대학(장자커우에 위치함) 전 선전처 처장이고 ‘건축공업신문’ 편집장이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이 전면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그는 파룬궁 박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당시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파룬궁 서적을 몰수하고 소각했다. 그 사이 여러 명의 대법제자가 그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다.

그러나 한청왕은 줄곧 대법을 적대시했고 결국 가족에게 화가 미쳐 그의 외아들은 대학을 졸업한 후 현지에 남아 공무원이 됐지만 암에 걸린 후 이혼하고 2013년 12월 5일에 사망했다.

4. 징역 판결, 입건 심사

1) 공안부 부부장, 중국공산당 610두목 리둥성 징역15년형을 선고받다

李东生
리둥성

리둥성은 1955년생이다. 공안부 당 부서기, 부부장이고 이전에 중국선전부 부부장, 국가 라디오 텔레비전 총국 부국장을 역임했다. 2000년 7월 원흉 장쩌민이 거짓말을 꾸며 파룬궁을 가장 심하게 박해할 때 방송국 영화 텔레비전 총국 부국장을 맡았다. 파룬궁 박해에 증오를 선동해 2002년 5월 원흉 장쩌민은 그를 중국공산당 중앙 선전부 부부장으로 승진시켰다. 그 후 공안부 부부장, 당 부서기(정부장급), 경찰 부국장, 중국공산당 중앙 610지도팀(독일의 나치 게슈타포나 중국공산당 문화혁명소조와 유사함) 부조장, 중앙 610사무실 주임 및 중앙텔레비전 부국장 등 직무를 맡고 전국의 반파룬궁 선전과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책임졌다.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불법적으로 체포되고, 수감, 징역 판결을 받은 데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천안문 분실자살’ 조작극 연출을 맡았던 사람 중 한 명인 리둥성은 2016년 1월 12일 뇌물수수 안건은 1심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고 불법적으로 얻은 1백만 위안(한화 약 1억6,400만 원)을 몰수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2) 중국선전부 부부장 루웨이가 심사를 받다

鲁炜
루웨이

2017년 11월 21일 중국공산당 선전부 전 부부장(정부부장급)인 루웨이는 엄중하게 기율을 위반한 혐의가 있어 심사를 받았다.

1960년 1월생인 루웨이는 안후이성 차오후 사람으로 2001년 10월부터 신화사 부비서장, 비서장 겸 총지배인실의 총지배인, 신화사 부사장을 역임했다. 그 후 베이징 시 선전부장, 베이징 부시장을 맡았다. 중국선전부 부부장, 중앙온라인 안전과 정보화 지도팀 사무실 주임 등 직무를 맡았다. 루웨이는 원흉 장쩌민의 글쟁이로 주목을 받고 아주 빨리 승진했다.

파룬궁을 박해하면서부터 신화사 및 신화망은 대규모로 파룬궁을 비방하고 모독하는 문장을 썼다. 2000년 1월에서 2003년 10월까지 파룬궁을 비방하는 문장을 522편 꾸며냈다. 루웨이가 뉴스정보센터 주임을 맡은 초기 2002년에는 비방 문장이 전 해보다 뚜렷히 늘었다. 3월이 되기만 하면 매달 10여 편의 가짜로 꾸며낸 문장이 나왔다.

재임기간에 박해를 계속 유지하기 어려울 때 루웨이는 3대 악성 비방 사건을 꾸며냈고 증오를 선동해 박해 심화에 성공했다. 바로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극, ‘정신병 환자 푸이빈 살인 사건’, ‘저장성 거지 독살 사건’이다, ‘분신자살’ 조작극은 신화사와 CCTV가 연합해 꾸며낸 것이고 후속 2개는 모두 신화사에서 단독으로 꾸며낸 것이다.

2017년 11월 14일 미국 비정부기구 프리덤하우스는 ‘2017년 온라인 자유 보고’를 발표했다. 보고에는 중국이 연속 3년, 전 세계 인터넷 자유 정도가 맨 마지막 순위에 머문 것으로 드러나 전 세계에서 인터넷 정보 통제가 가장 심한 나라로 됐다. 이 보고에는 “많은 파룬궁수련생은 위챗 혹은 QQ에서 이 단체(파룬궁)와 인권 침해에 관한 정보이거나 금지된 인터넷 주소를 올리면 감금됐다”고 지적했다.

3) 중국공산당 과학기술협회 부회장 선웨이천이 파룬궁 박해로 업보를 받아 무기징역 선고를 받다

선웨이천은 중국공산당 과학기술협회 당소조 서기, 부회장(정부장급), 서기처 제1서기다. 2014년 4월 12일 낙마되어 조사를 받았고 2016년 1월 18일 재판을 받았다. 선웨이천이 산시성 성 선전부장, 타이위안 시 서기를 맡은 기간에 적극적으로 파룬궁을 비방하고 박해해 2016년 10월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4) 중앙 기율위원회 재정부 주재 기율검사조 조장 모젠청이 업보를 받아 심사 받다

중앙 기율위원회 재정부 주재 기율검사조 조장 모젠청은 2004년 12월에서 2006년 11월까지 내몽골자치구 구위원회 선전부장을 맡는 기간에 목숨 걸고 장쩌민 집단을 따라 파룬궁 박해에 참여해 2017년 8월 27일 ‘엄중한 기율 위반’ 혐의가 있어 심사를 받았다.

모젠청은 내몽골에서 문예선전계를 조종해 대법을 비방하고 세인을 해쳤다. 2005년 3월 24일 내몽골자치구 후허호터에서 자치구 선전부장 모젠청, 정법위 서기 뤄샤오톈 등은 대법을 비방하는 대형 전시회를 주관했다. 이 전시회는 후허호터시에서 이틀 전시하고 다음 각 연맹 도시에 전시하려고 계획했다.

2006년 12월에서 2010년 4월 모젠청은 자치구 당위 상무위원, 바오터우시 시위서기를 맡았다. 바오터우에 있는 근 4년 사이 여전히 미친 듯이 파룬궁 탄압을 승진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다.

모젠청은 퉁랴오 지역에서 많은 억울한 사건을 만들었다. 2000년 2월 그는 내몽골 퉁랴오시 시 부서기를 맡았다. 전 퉁랴오시 커구역 공안국 부국장 장리밍은 매번 시위에 회의하러 갈 때면 당시 사당 시 서기었던 모전쳉은 늘 사람들 앞에서 장리밍을 욕하면서 파룬궁 박해에 부진해 퉁랴오시에 파룬궁 진상 전단지, CD, 진상 전화가 아주 많다면서 반드시 박해에 박차를 가하라고 했다. 중국공산당은 이렇게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층층이 억압하면서 나쁜 일, 우둔한 일을 했다. 장리밍은 본인 지위를 확고히 하면서 이익을 얻기 위해 국내안정보위국에 압력을 가했다. 그리하여 부하 왕보, 사오쥔, 바오지르무투 등의 경찰은 이지를 잃고 파룬궁수련생을 광적으로 박해했다.

이들은 상사를 위해 악행을 했지만 본인과 자손에게 영원히 갚지 못할 죄를 지었다. 50여 세의 장리밍은 업보를 받아 2011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주위 사람은 장리밍은 죽기 전에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감지 못했는데 몰골이 극히 고통스럽고 두려워했다고 밝혔다.

5) 중앙편집국 국장 이쥔칭이 면직되다

이쥔칭은 전 중앙편집국 국장이다. 2013년 1월 17일 ‘풍기 문제’로 면직됐다. 다년간 이쥔칭은 줄곧 목숨을 걸고 장쩌민 집단에 협조해 파룬궁을 모함하고 날조했다. 장쩌민의 글쟁이가 되어 파룬궁 박해를 응원했다. 조기 이쥔칭은 연이어 헤이룽장대학 철학과 주임, 헤이룽장대학 부총학장, 총장, 당 부서기를 맡았다. 재임기간 전 헤이룽장대학 철학과 학생 다이루이는 베이징에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간 이유로 제적당했다.

2007년 3월 이쥔칭은 헤이룽장성 성위 선전부장을 맡은 후 더욱 기를 쓰고 장쩌민 집단에 협조해 여러 차례 본인의 선전부장 신분을 이용해 곳곳에서 파룬궁을 공격하는 보고를 했다.

6) 베이징 하이뎬구 선전부 전 부부장 웨이화이중, 138만 위안의 뇌물을 받아 징역형을 선고받다

웨이화이중은 2008년 1월에서 2011년 8월까지 하이뎬구 선전부 상무 부부장을 맡으면서 문화사업도 관장했다. 그 기간 138만 위안(한화 약 2억2,700만원)의 뇌물을 받아 2016년 베이징 4중원 1심에서 뇌물수수죄로 그에게 유기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벌금 38만 위안(약 6,200만원)을 부과했다. 웨이화이중은 베이징 하이뎬구에서 파룬궁을 박해하는 주요 책임자였다.

7) 산시성 성위 부서기 허우우제, 뇌물수수죄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다

허우우제는 중국공산당 산시성 성위 부서기다. 1995년에서 2000년 9월까지 산시성 성위 선전부장을 맡았고 2000년 중국공산당 타이위안시 서기를 맡았다. 전력을 다해 파룬궁을 박해했기에 업보를 받아 2006년 9월 11년형을 선고받았다.

8) 산둥 지난시 서기 왕민이 징역 선고를 받다

王敏
왕민

왕민은 2005년 1월에서 2006년 10월까지 중국공산당 산둥성 성위 상무위원, 부비서장, 산둥성 사회 안정유지 지도소조 멤버이고 성 선전부장을 맡았다. 이전에 중국공산당 미디어 텔레비전, 신문 등 매체를 이용해 함부로 파룬궁을 비방하여 세인을 해쳤다. 전력을 다해 장쩌민 범죄 집단을 추종해 부처를 믿는 좋은 사람을 박해해 산둥에는 파룬궁수련생 박해 통계숫자가 줄곧 전국 수위를 차지했다. 결국 업보를 받아 2015년 부정부패 명의로 사형 집행을 받았다. 그 밖에 왕민은 지난시 시 서기를 맡은 기간 지난시에서 파룬궁을 박해한 주요 책임자다. 2016년 9월 왕민은 뇌물수수죄로 유기징역 12년을 선고받았고 개인 재산 200만 위안(약 3억2,900만원)을 몰수당했다.

9) 중국공산당 충칭 시위상무위원, 선전부장 장쭝하이가 징역 15년형 선고받다

장쭝하이는 중국공산당 충칭 시위상무위원, 선전부장이었다. 파룬궁 박해에 참여해 업보를 받아 2005년 5월, 15년의 유기징역을 선고받았다.

中共重庆市委常委、宣传部长张宗海
중국공산당 충칭 시위 상무위원
, 선전부장 장쭝하이

10) 중국공산당 푸젠성 성위 선전부장 징푸성이 무기징역을 선고받다

징푸성은 중국공산당 푸젠성 성위상무위원이자 선전부장이다. 중국공산당 닝더시 서기를 연임했다. 파룬궁을 박해해 업보를 받아 2007년 9월 14일 뇌물수수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평생 정치권을 박탈당하고 개인 전 재산을 몰수당했다.

징푸성은 1995년부터 닝더 지방위원회 서기를 맡았고 2000년 말 닝더는 지방에서 시로 승격되어 징푸성은 닝더시 서기로 됐다. 2002년에는 푸젠성 상무위원, 선전부장을 맡았다.

11) 전 하이난성 부성장 탄리, 업보 받아 무기징역 선고받아

전 중국공산당 하이난성 부성장 탄리는 2016년 10월 13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고 개인 재산 전부를 몰수당했다. 탄리는 쓰촨 피현 서기, 청두시 상무위원, 선전부장을 맡았었고 광닝시 서기, 몐양시 서기, 하이난성 상무위원, 선전부장을 역임했다. 탄리는 직권을 이용해 선전부,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등 부문을 지휘해 악독하게 파룬궁을 공격하고 비방했으며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12) 시안시 시위 선전부 부부장, 시안일보사 사장 왕창안, 뇌물수수죄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다

왕창안은 산시(陝西)성 시안시 선전부 부부장, 시안일보사 사장, ‘시안일보’· ‘시안석간신문’ 편집장을 맡았다. 2003년 뇌물수수죄로 징역7년형을 선고받았다.

13) 산시 양취안시 핑딩현 선전부장 량강핑, 징역 12년형 선고받다

산시 양취안시 핑딩현 전 현위상무위원, 선전부장 량강핑은 1998년 9월에서 2003년 7월까지 핑딩현 둥후이진 진장과 당서기를 맡았다. 둥후이진에 100명의 대법 수련자 및 가정이 박해 받은 데에는 량강핑이 주요 책임을 져야한다. 이후에 량강핑이 핑딩현 관산진 당서기, 핑딩현 현위상무위원, 선전부장을 맡은 기간에 계속 파룬궁에 대한 탄압 정책을 추진했다. 정말 묵은 빚을 갚지도 않았는데 또 새로 빚을 졌다.

2009년 6월 량강핑은 뇌물수수죄로 유기징역형 12년을 선고받았다. 진상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중국공산 사당을 추종해 파룬궁수련생을 탄압한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다.

14) 전 후난성 상무위원, 선전부장 장원슝이 조사 받다

张文雄
장원슝

전 후난성 상무위원, 선전부장 장원슝은 2017년 3월 10일 조사를 받았다. 장원슝은 2015년 8월 후난성 상무위원 선전부장을 맡았다. 장원슝은 후난성에서 파룬궁을 비방한 주요 책임자다.

장원슝이 낙마한 후에도 후난에는 또 여러 명의 문예 선전계 고위공무원이 낙마했다. ‘후난일보’ 전 사장 톈샤오광, 전 총지배인 피린, 전 사무(社務)위원 류수린, 전 당조직원 쉐보칭, ‘후난일보’ 인쇄 지사 전 책임자 쩌우샹위안 및 후난 라디오 텔레비전국 전 당위 위원, 부국장 뤄이다. 이것은 그들이 장기간 파룬궁 모함에 참여한 인과응보다.

15) 후난 천저우시 정치협상회의 전 당그룹 서기 겸 주석 류광밍(劉廣明)이 정처장급으로 강등되다

2017년 10월, 후난성 천저우시 정치협상회의 전 당그룹 서기 겸 주석 류광밍은 업보를 받아 강등되어 정처장급 퇴직 대우를 받았다. 류광밍은 1952년 12월생이고 후난 루청현 사람이다.

류광밍은 2000년 5월부터 2005년 4월까지 천저우시 선전부장을 맡았다.(2002년 5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국가 라디오방송국 임시 총편집실 부주임을 맡음) ‘천저우일보’는 ‘과학을 숭상하고 ×교를 반대한다’는 주제로 파룬궁을 비방하는 사악한 사진 전시회를 개최했고 TV, 신문에서 제멋대로 선전하고 거짓말을 퍼뜨려 세인들을 해쳤다.

천저우시 쑤셴구 목재회사 퇴직 노동자 탕쉐린은 올해 81세다. 1994년 7월, 인연이 닿아 리훙쯔 사부님께서 천저우에서 개최한 학습반에 참가했고 수련하면서 위장병, 치질탈항, 마른버짐 등 고질병들이 약을 먹지 않고 다 나았다. 2002년 5월, 노인은 천저우시 티즈링(梯子嶺) 구치소에 감금돼 연이어 70며칠 동안 고문에 시달렸고 이후에 또 후난성 신카이푸 감옥에 감금됐다. 극악무도한 정신·육체적 이중 박해에 시달려 오른쪽이 반신불수가 와 움직이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후 법공부를 견지할 결과 신체가 차츰 회복됐고 스스로 층계를 오르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2003년 6월, ‘천저우일보’는 그가 파룬궁을 수련했기에 병이 있어도 치료하지 않아 반신불구가 됐다고 사실을 왜곡해 보도했다.

‘천저우일보’의 비방 보도에 대해 파룬궁 수련자 탕쉐린은 천저우일보에 편지를 써 사실을 밝혔다. ‘2003년 6월 22일, 당신들의 주말간행물인 ‘주말 클릭’에 ‘파룬궁에 푹 빠져 원만을 구하려고 병을 치료하지 않다가 반신불수가 되다’는 문장이 게재됐습니다. 이는 엄중하게 사실을 왜곡하고, 저의 인격과 명예를 비방한 거짓 뉴스로서 신문사의 이미지를 손상하고 언론인의 직업도덕과 양심에 어긋납니다. 2002년 7월 전, 저는 신체가 건강했습니다. 제가 중풍에 걸려 반신불구가 된 진정한 원인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천저우시 티즈링 구치소와 후난성 신카이푸 감옥에 감금돼 심한 고문과 박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저는 당신 신문사, 편집장 및 언론인들이 즉시 조치를 취해 손실을 만회하고 저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며 사실 진상을 밝혀주기 바랍니다.’

16) 전 후난성 방송국 부국장, 성 방송사 부사장 탄샤오광이 업보로 조사받다

覃晓光
탄샤오광
(覃曉光)

2015년 12월 2일 ‘후난일보’ 신문사 당조직서기 겸 사장 탄샤오광은 중대한 기율위반 혐의로 조사받았고 이후에 입건되어 수사를 받았다.

그는 후난성 방송국 부국장, 성 방송사 부사장, 성위원회 선전부장을 역임했다. 2005년 10월부터 ‘후난일보’ 신문사 당조직서기 겸 사장으로 임명됐고, 2015년 5월 ‘후난일보’ 신문그룹유한회사 당서기 및 회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사악한 장쩌민 집단을 위해 방송, 신문 등 언론매체를 이용해 파룬궁을 모함했다. 그가 사장으로 있을 때 ‘후난일보’는 파룬궁을 비방하는 문장을 여러 차례 보도해 세인을 해쳤다.

17) 천저우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판자성(樊甲生) 부부가 중형 판결을 받다

樊甲生和妻子盘丽艺在法庭受审
판자성과 아내 판리이
(盤麗藝)가 법정에서 심문 받다

판자성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천저우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으로 있었다. 재임기간, 단독 혹은 아내 판리이와 함께 200여만 위안에 달하는 뇌물을 받았고 출처가 불분명한 비합법적인 재산이 400여만 위안 있었다. 그는 승진하기 위해 2000년 1월부터 2006년 1월까지 연속 아홉 번 천저우 시위서기 리다룬(李大倫)에게 뇌물을 바쳤다. 2007년 11월 5일, 천저우 법원은 일심판결에서 판자성에게 징역 19년, 판리이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그는 비리로 뇌물을 받는 한편, 장쩌민 집단을 바싹 따랐다. ‘천저우일보’를 이용해 TV 등 매체에서 파룬궁을 비방·모욕함으로서 진상을 모르는 시민들이 해를 입었다. 결국 업보를 받아 중형판결을 받았다.

2002년 7월 6일, 천저우시 ‘천저우일보’ 석간 신문에는 파룬궁을 비방한 거짓뉴스가 실렸다. 제목이 ‘파룬궁에 빠져 목숨을 잃다’는 글이고 작자는 펑웨이(彭衛)이다. 그는 문장에서 즈싱시 추커우진의 한 여성이 파룬궁에 푹 빠져 병에 걸려도 입원해 치료받지 않은 결과 6월 상순 집에서 죽은 사실을 보도했다. 문장은 사회에서 지극히 나쁜 영향을 일으켰다. 이 일에 연루된 추커우진 정부는 조사를 진행했고 결국 이 일은 펑웨이가 전부 날조해낸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 때문에 펑웨이는 어쩔 수 없이 ‘천저우일보’에 성명을 발표했다. 7월 8일 ‘천저우일보’ 종합뉴스코너는 ‘서신을 그대로 게재하다’라는 제목으로 펑웨이가 쓴 편지를 올렸다.

서신을 그대로 게재

천저우일보에

저는 7월 6일 ‘천저우일보 석간신문’에 ‘파룬궁에 빠져 목숨을 잃다’는 문장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사망자 한 친척의 얘기를 듣고 쓴 것으로 확인해본 결과 팡메이칭은 파룬궁을 수련해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함부로 이 일을 기사로 발표해 추커우진에 나쁜 영향을 조성한 데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펑웨이

2002년 11월에서 2003년 6월까지, 후난 천저우 610공포조직과 선전부는 각 회사, 향진(鄉鎭)에 문서를 보내 각 회사, 학교, 향진과 마을에서 상하이 영화사가 제작한 대법을 비방한 영화를 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선전부에서 조직한 20인 영사대(放映隊)는 각 마을에 내려가 방영했고, 향진은 한 편 당 600위안, 마을은 한 편 당 400위안씩 받았다. 여러 기관과 부서 및 학교에서 모두 참석해야 했다.

18) 창사시 선전부장 장샹타오(張湘濤)가 업보를 받다(부청장급)

2017년 3월 27일, 후난성 창사시 공산당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장샹타오는 기율을 어긴 엄중한 혐의로 입건 조사를 받았다.

장샹타오는 1957년 11월생이고 중국공산당 당원이다. 후난 치둥현 사람이고 창사시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창사시 정치법률위원회 서기, 비서장, 왕청현 현위원회 서기 등을 역임했다. 2008년 5월부터 2011년 9월, 창사시 위원회 상무위원, 정치법률위원회 서기직에 있을 때 관련 부서를 지휘해 적극적으로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박해를 기획했다.

2008년 올림픽 기간, 2009년 중국공산당 창건 60주년 기간, 2010년 상하이 엑스포 기간,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기간에 장샹타우는 직접 동사무소, 주민 위원회, 파출소 요원을 지휘해 창사시 파룬궁 수련자를 박해했다. 수많은 파룬궁 수련자를 불법적으로 감옥에 감금하거나 판결, 벌금, 해고당하거나 세뇌반에 납치하는 등 박해를 저질렀다.

밍후이왕 통계에 따르면 장샹타오가 정치법률위원회 서기로 있는 동안 창사시에서 파룬궁 수련자 1명이 박해받아 죽고, 3명이 불법 판결을 받았으며, 1명이 박해로 정신 이상이 되고, 18명이 감옥에 납치됐으며, 42명이 납치돼 세뇌반에서 박해받고, 1명이 직장에서 해고됐으며, 28명이 납치돼 구치소에서 박해받고, 46명이 납치됐으며, 2명이 박해로 집을 떠나 밖에서 떠돌아다녔다.

속담에 ‘나쁜 짓을 많이 하면 결국 죽음을 자초한다’는 말이 있다. 그가 창사시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정치법률위원회 서기로 있을 때 맹목적으로 장쩌민 깡패 집단을 따라 파룬궁 수련자에 대해 ‘명예를 더럽히고 경제를 무너뜨리며 육체를 소멸’하는 학살정책을 실시했다. 이로서 수많은 가정이 고통에 시달렸고 결국 그는 스스로 업보를 초래했다.

19) 천저우 시위원회 선전부장, 천저우일보 사장 랴오젠화(廖建華)가 심사받다

2017년 6월 21일, 후난성 천저우일보사 사장 랴오젠화는 기율을 엄중히 어긴 혐의로 심사를 받았다.

랴오젠화는, 1961년 8월생의 남성이다. 후난성 헝난현 사람이고 1998년 5월부터 2006년 2월까지 천저우 문명 사무실 주임(부청장급), 2006년 2월부터 2008년 3월까지 천저우 시위원회 선전부 부부장 및 문명 사무실 주임을 맡았다. 2008년 3월부터 2010년 5월까지 천저우 시위원회 선전부 부부장 겸 천저우일보사 사장을, 2010년 5월부터 2012년 8월까지 천저우일보사 사장을, 2012년 8월부터는 천저우일보사 당그룹 서기 겸 사장을 역임했다.

천저우 기율검사감찰기관은 랴오젠화가 조사받은 구체적인 원인을 밝히지 않았지만 과거 ‘천저우일보’를 펼쳐보면 그가 조사받은 진정한 원인을 알 수 있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집단이 파룬궁에 대한 잔인한 박해를 발동한 후 천저우일보는 적극적으로 장쩌민을 따라 파룬궁을 박해했고, 파룬궁 ‘명예를 더럽히라’는 장쩌민의 사악한 정책을 집행했다. 1999년 7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천저우일보’는 여러 편의 거짓뉴스를 발표해 파룬궁에 대해 근거 없이 날조하고, 사실을 왜곡하며, 거짓말을 퍼뜨리고, 죄를 뒤집어씌우면서 원한을 선동했다. 천저우 시위원회 선전부장, 천저우일보사 사장인 그는 천저우 지역에서 파룬궁을 비방한 주요책임자다.

20) 후난 천저우시 방송국 국장 뤄칭화가 조사받다

후난 천저우시 방송국 국장 뤄칭화(羅淸華)는 업보를 받아 2017년 4월 기율을 엄중히 어긴 죄로 조사를 받았다. 6월 19일에는 입건 조사받았고, 동시에 공직에서 파면됐다. 범죄에 연루된 그의 문제와 증거는 사법기관에 넘겨 처리를 받았다.

그는 장기간 중국공산당 선전부에서 요직을 맡았다. 1997년 9월부터 2005년 4월까지 천저우 쑤셴구 상무위원, 선전부장을 맡았고, 2011년 5월부터 2017년 4월까지 방송국 국장을 맡았다. 그가 출세한 시기는 마침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할 때였다. 그는 여러 차례 라디오, TV, 신문, 잡지 등 매체를 조직·지휘해 파룬궁을 비방했고 전시장, 학교, 동네에서 파룬궁을 모욕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천저우 민중이 해를 입었다.

2016년 6월 9일, 당시 천저우 방송국장으로 있던 뤄칭화는 천저우 방송국 ‘천저우 견해’ 프로그램에서 중앙방송국이 파룬궁수련자를 모함한 녹화프로그램을 재방송해 파룬궁을 비방하고 민중에게 해를 끼쳤다.

2010년 12월 13일부터 30일까지 당시 쑤셴구 위원회 부서기로 있던 뤄칭화는 쑤셴구 교육계를 통제해 일제히 파룬궁을 모함하는 게시판을 설치하게 했고 이를 연말 심사 목표로 삼았다. 이로서 쑤셴구의 수많은 교사와 학생들이 다시 한 번 해를 입었다.

그가 쑤셴구 위원회 부서기로 있는 동안, 수많은 파룬궁수련자가 감금돼 박해받았고 어떤 사람은 여러 차례 받해를 받았다. 밍후이왕에 보도된 일부 박해 사실에 근거하면 쑤셴구 파룬궁 수련자 랴오숭린, 랴오즈쥔, 샹화이샹, 천리쥐안, 왕취안롄, 우젠밍, 샤오쥐안화, 뤄신추 부부 및 몇 명 외지 파룬궁 수련자는 수년간 감옥에서 박해받고 있다. 어떤 사람은 박해받아 죽었고, 어떤 사람은 불구가 됐으며, 어떤 사람은 집을 떠나 밖에서 떠돌거나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또 어떤 사람은 금전 협박을 받았다. 구치소나 감옥에 갇힌 수련자는 더욱더 많았다.

21) 광둥 성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저우전훙(周鎭宏)이 업보로 조사, 처분받다

광둥성 마오밍 시위원회 서기 저우전훙은 힘껏 박해에 참여해 중국공산당 광둥성 상무위원, 선전부장으로 승진했지만 결국 업보를 받아 조사, 처분받았다.

22) 광저우 시위원회 선전부장 리위안장(黎元江)이 수뢰죄로 징역 12년을 선고받다

1991년 8월부터 2001년 6월까지 리위안장은 광저우 시위원회 선전부 부부장, 부장, 겸 ‘광저우일보사’ 편집위원회 편집장, ‘광저우일보사’ 사장, ‘광저우일보사’ 신문그룹 회장직을 역임했다. 2004년 광저우 중급인민법원은 수뢰죄로 그를 징역 12년에 처했다.

23) 광둥성 메이저우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저우장신(周章新)이 조사받다

2016년, 광둥성 메이저우시 상무위원, 선전부장 저우장신은 업보를 받아 기율을 엄중히 어긴 혐의로 조사받았다.

24) 광둥 양장시 정치법률위원회 서기 펑구이슝(馮桂雄)이 업보로 조사받다

2016년 12월 8일, 광둥성 양장 시위원회 상무위원 겸 정치법률위원회 서기 펑구이슝은 기율을 어긴 엄중한 혐의로 조사받았다.

펑구이슝은, 1959년 7월생의 남성이다. 광둥 양시현사람이고 광둥성 양둥 현위원회 서기, 양장시 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장청구 위원회 서기를 역임했고 2011년 11월에는 양장시 위원회 상무위원, 정치법률위원회 서기를 맡았다. 재임 기간 그는 적극적으로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 정책을 집행했다. 마음을 닦고 선을 지향하는 파룬궁 수련자를 불법적으로 판결한 후 감옥, 감옥에 감금하거나 마약 중독자 재활센터, 세뇌반에 보내 박해했다.

25) 광둥성 메이저우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저우장신(周章新)이 조사받는 등 업보를 받다

2016년 6월, 메이저우시 상무위원, 선전부장 저우장신은 기율을 어긴 엄중한 혐의로 조사받았다.

광둥성 메이저우시 자오링현은 인구가 23만 밖에 안 되는 산간 지대다. 저우장신이 현위원회 서기로 있었던 5년은 이 현에서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박해가 가장 엄중하던 시기였다. 그 동안 파룬궁 수련자 우신닝, 장루량, 량루이잉 등이 불법적으로 감옥에 갇혔고, 8명 파룬궁 수련자가 불법 판결을 받았다. 그들은 각각 라이자먀오 3년, 린싱루 3년, 쉬펑 9년, 탕차오위 8년 반, 리숭팡 4년, 추춘메이 6년, 린메이링 5년, 정샤오리 4년이다. 그 중 라이자먀오는 박해받아 세상 떴다.

26) 광둥성 사오관시 러창 공산당 간부학교 교장 겸 시위원회 선전부 부부장 저우궈위안(鄒國源)이 업보 받아 감옥에 감금되다

저우궈위안은 전에 러창시 공산당 간부학교 교장, 러창시 선전부 부부장 직을 맡았다. 방송국 국장으로 있을 때 그는 적극적으로 파룬궁 박해에 참여했고 선전기구를 이용해 파룬따파를 모욕했다. 현지 향진에서 진상을 모르는 사람이 대법 진상자료를 받은 후 악의로 파룬궁 수련자를 고발하자 저우궈위안과 610(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1999년 6월 10일에 세운 불법조직으로서 문화혁명 소조와 비슷함)은 파룬따파를 비방하는 거짓 뉴스를 조작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향진 주민들이 해를 입었다. 2015년 저우궈위안은 비리문제로 공직에서 파면되고 조사받았으며 결국 판결을 받았다.

27) 전 광둥 자오칭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천딩쿤(陳定坤)이 체포되다

2017년 3월 27일, 전 광둥 자오칭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천딩쿤(부청장급)이 체포됐다. 그는 ‘직권 남용죄, 수뢰죄’ 혐의로 입건, 조사를 받았다.

28) 전 광둥 선전시 푸톈구 위원회 선전부장 류핑리(劉平力)가 징역 5년 형을 선고받다

2014년 10월 15일, 옌톈 법원은 전 푸톈구 위원회 선전부장 류핑리 수뢰죄 안건에 대해 일심판결을 내렸다. 수뢰로 피고인 류핑리를 징역 5년에 선고하고 개인재산 11만 위안을 몰수했다. 2013년 선전시 푸톈구 선전부장으로 있을 때 그는 파룬궁 박해에 직접 참여했다.

29) 전 랴오닝성 정치법률위원회 서기 쑤훙장(蘇宏章)이 징역 14년을 선고받다

2017년 5월 19일, 전 중국공산당 랴오닝성 정치법률위원회 서기 쑤훙장은 징역 14년을 선고받았다. 파룬궁을 박해한 이 우두머리의 업보는 다른 직급의 관리들에게도 경고가 될 것이다. 파룬궁수련자에게 저지른 죄는 절대 흐지부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랴오닝성은 파룬궁 박해가 가장 엄중한 성(省) 중 하나다. 쑤훙장은 전 중국공산당 두목 장쩌민을 따라 파룬궁을 박해했다. 그의 가장 큰 ‘정치 업적’은 좋은 사람을 괴롭히고 착한 파룬궁 수련자를 박해한 것이었다. 그의 재임기간, 총 100여 명 파룬궁 수련자가 박해받아 사망했다. 그가 푸순 시위원회 부서기로 있는 동안, 푸순 지역 파룬궁 수련자 천쑤란, 추구이룽, 류위칭 등이 잔인하게 박해받아 억울하게 사망했고, 선양 시위원회 부서기로 있는 동안, 선양지역의 50여 명 파룬궁 수련자가 박해받아 죽었으며, 그가 랴오닝성 정치법률위원회 서기로 있는 동안 랴오닝성에서 60여명 파룬궁 수련자가 박해받아 사망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그는 랴오닝 성위원회 선전부 부부장 직을 맡았다. 이는 그가 장쩌민을 바싹 따라 파룬궁을 모함해 승진한 것이었다.

30) 랴오닝성 다롄시정부 상무 부시장 차오아이화(曹愛華)가 조사받다

다롄시 상무 부시장 차오아이화는 2016년 9월 2일에 정직 처분과 함께 조사를 받았다. 차오아이화, 여성이고 1968년 1월생이다. 랴오닝성 잉커우사람이고 2000년 11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랴오닝성 잉커우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으로 있었고, 2010년 8월부터 다롄시 부시장을 맡았다.

그녀가 잉커우시 선전부장, 공청단 랴오닝 성위원회 서기로 있을 때 적극적으로 장쩌민, 랴오닝성 정치법률위원회, 610을 도와 파룬궁을 박해했다. 그래서 고속 승진했는데 그녀는 랴오닝성에서 파룬궁을 박해한 주요책임자다. 2006년 6월 22일, 공청단 랴오닝 성위원회 주관 하에 랴오닝 신소년 잡지 출판사는 ‘신소년(新少年)’ 책을 발행했다. 책 16페이지에 파룬따파를 비방하는 내용이 있어 청소년에게 해를 끼쳤다. 이 책은 전국에서 공개 발행됐다.

2007년 6월, 공청단 랴오닝 성위원회는 ‘과학을 숭상하고 ×교를 반대’하는 활동을 개최해 파룬궁을 비방하고 학생들에게 해를 끼쳤다. 공청단 랴오닝 성위원회는 대학교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사람마다 태도 표시하는 ‘문화대혁명’식 방식을 추진했다. 선생님과 학생들을 강요해 파룬궁을 비방·공격하는 영화를 보게 했고, 학생과 선생님을 부추겨 파룬궁에 대해 대대적인 비판을 진행했다. 크고 작은 학급 회의, 학교 회의에서 사제를 선동해 파룬궁을 적대시하게 했다.

2013년 1월, 다롄시 상무 부시장으로 있을 때 그녀는 주로 공안, 사법, 민원처리, 정부 법제 등 사무를 책임졌고 다롄시를 전국에서 파룬궁 박해가 가장 엄중한 지역으로 만들었다. 2013년 한 해에만 23명이 불법 판결을 받았고(법정 심문), 여러 명이 박해받아 생명이 위태로웠으며, 4명이 박해받아 죽었다. 밍후이왕 ‘2013년: 박해와 업보’ 통계에 따르면 다롄 지역에서 납치된 파룬궁 수련자수는 대륙 도시에서 4위안에 들었고, 전국 610 가운데서 다롄 610은 10위 안에 들었다.

31) 전 랴오닝 톄링 시위원회 선전부장 왕즈융(王志勇)이 입건돼 조사를 받다

2017년 6월 26일, 전 랴오닝성 톄링 시위원회 선전부장 왕즈융이 입건되어 조사를 받았다.

간부선발 임용, 기업경영 등 방면에서 그는 직무 편의를 이용해 재물, 사례금을 받았고 타인과 부정한 성관계를 가졌다. 수뢰죄와 뇌물공여죄 혐의를 받았는데 이는 그가 파룬궁을 비방한 업보다.

32) 랴오닝성 다롄 방송국 당서기, 국장 왕웨(王衛)가 기율을 엄중히 어긴 혐의로 조사받다

王卫
왕웨

왕웨는, 1961년 9월생 남자로 2001년 12월부터 2010년 7월까지 중국공산당 다롄 시위원회 선전부장(정국급), 2010년 7월 다롄 방송국 당서기, 국장 등을 역임했다. 2017년 4월 19일 기율을 어긴 엄중한 혐의로 공직에서 파면된 후 사법기관에 넘겨져 처리됐다.

중국 영화상영배급회사는 베이징 과학교육영화제작사에 의뢰해 파룬궁을 악독하게 비방한 영화 ‘심연-사교의 본질’(파룬궁은 사람을 선하게 되라고 가르치고 중국공산당이야말로 진정한 사교임)을 제작하도록 했고 2002년 9월에 첫 상영했다. 상영에 다롄 시위원회 선전부, 시정신문명사무실, 시문화국 등이 참여했는데, 당시 왕웨는 다롄 시위원회 선전부장 자격으로 참여했고 주요책임자 중 한 명이다.

2012년 7월 6일 전후로 다롄 당국은 시민에게 NTD TV 수신기를 설치해준 79명의 파룬궁수련자를 납치했다. 납치된 파룬궁수련자 중 20명이 불법적인 노동교양처분을 당했고, 10여 명이 불법적인 재판으로 유죄판결을 당했다. 가혹한 고문박해를 받아 장구이롄(張桂蓮) 노인은 납치된 지 29일 만에 사망했다.

다롄시 공안국 내부안전 파견대는 2013년 8월 종합관리사무소 지휘하에 공상국, 문화방송국과 함께 6월부터 8월 16일까지 이른바 ‘전국운동회를 맞아 평안 지킴이’ 특별행동을 개시했다. 해외 위성TV전파 질서를 집중 단속한다는 명의로 합법적인 위성TV 수신시설과 안테나 등을 파괴했고 심지어 판매 상인을 불법적으로 압수 수색했다. 시민들 집에 설치된 TV 위성 수신기 1,989개를 철거해 갔다. 시 종합 관리사무소는 강제로 수신안테나를 철거 압수한 후 파쇄기로 압착시켜버렸다. 그들은 수신안테나가 벼락을 집안에 끌어들일 수 있기에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말해 시민들의 비웃음을 샀다.

33) 허난 푸양시 ‘관청부부’ 류칭쥐(劉慶聚)가 판결받다

刘庆聚被庭审现场
법정현장에서 류칭쥐

류칭쥐는 1958년 9월 28일생으로 푸양 시위원회 강사단 연구실 주임, 푸양 시위원회 공산당 간부학교 부교장, 푸양 시위원회 선전부 상무 부부장 등 직을 역임했다. 2004년 10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푸양시 교육국 국장, 공산당 서기 직을 맡았고, 2009년 3월 24일 푸양시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맡았다. 2010년 8월, 횡령·수뢰죄로 조사 처리를 받았고, 12월 9일 14년 형을 선고받았다. 류칭쥐 아내인 푸양시 부시장 왕샹링 역시 2010년 12월 23일에 수뢰죄로 11년형을 선고받았다.

류칭쥐는 여러 부서에서 각종 지도자 직을 맡았다. 적극적으로 푸양시 ‘610’과 협조해 푸양시 5개 현과 한 지역 교육국, 초등학교, 중학교를 협박했고 교육계에 있는 파룬궁 수련자를 박해했다. 파룬궁 수련자에 대해 불법 가택 수색, 세뇌반에 납치, 불법 감금, 노동교양 처분이나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의 재임기간, 푸양시 중학교, 초등학교 정치 교재마다 파룬궁을 비방하는 내용이 있었고, 학교마다 이른바 ‘과학을 숭상하고 ×교를 반대’하는 활동을 개최했다. 착하고 순진한 어린이들의 선생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이용해 수많은 아이들을 이 정치 소용돌이에 몰아놓고 그들을 해쳤다.

34) 스촨 청두 시위원회 선전부장 가오융(高勇)이 횡령·수뢰죄로 체포되다

청두 시위원회 상무위원 겸 선전부장 가오융은 장쩌민 집단이 수많은 선량한 파룬궁 수련자를 박해할 때 함께 가세해 파룬따파를 날조·비방했다. 2004년 8월 하순, 검찰기관은 거액의 뇌물을 받은 죄로 그를 체포했다.

35) 스촨 광안시 린수이 현위원회 서기 리룽시(李隆席)

리룽시는 남성이고 2001년 10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중국공산당 우성현 선전부장으로 있었다. 재임 당시 그는 소속 TV, 신문을 이용해 제멋대로 파룬궁을 모욕하고 공격했다. 2011년 8월부터 2015년 5월, 그가 린수이 현위원회 서기로 있을 때 또 파룬궁 수련자를 여러 명 불법 체포하고 판결했다. 2015년 기율을 어긴 엄중한 혐의를 받고 사법기관에 넘겨져 판결 처리를 받았다.

36) 스촨 더양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양젠밍(楊建明)이 체포돼 옥살이를 하다

1999년 그는 중장 현위원회 일개 상무위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에 적극 동참한 결과 징양 구위원회 부서기, 부구청장, 구청장, 구위서기 등 직무를 맡았다. 부임되자 징양구 인민들을 세뇌했다. 각 기관, 회사 직원, 주민센터 주민과 학교 재직자, 퇴직자 할 것 없이 사람마다 파룬궁 진상자료를 받지 않겠다는 태도 표시를 서명하게 했다. 2006년부터 2011년, 이런 회사 직원들은 강요로 세 번이나 서명했는데 이런 것들은 선진직원, 우수직원 선정과 상여금 복지, 심지어 월급과도 연결됐고 1표 거부제도를 시행했다. 특히 2008년 올림픽 기간, 각 향진에 명령을 내려 지표에 따라 사람을 붙잡아 감옥이나 세뇌반에 보내라고 했다. 밖으로는 이른바 ‘법제학교’ 간판을 걸고 사람들의 이목을 가렸다. 지표에 해당된 파룬궁 수련자는 세뇌반에서 각종 고문을 당했다.

2013년 그는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으로 임명됐고 더욱 적극적으로 장쩌민 살해집단의 사악한 명령을 따랐다. 2016년 8월 4일에 체포돼 철창 생활을 시작했다.

37) 산둥성 허저시 선전부장 왕융훙(王永江)이 업보를 받아 솽구이(雙規,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문제를 자백) 처분을 당하다

그는 허저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전 산둥성 허저시 단현 현위원회 서기로 있었고 기율을 어긴 엄중한 혐의로 조사받았다.

왕융훙은, 2017년 3월생 남성이다. 산둥 차오현 사람이고 허저시(현급) 부시장, 허저시 무단구 부구청장, 무단 구위원회 부서기를 역임했다. 2006년 12월에 단현 위원회 서기, 2010년 12월에 허저 시위원회 상무위원, 단현 위원회 서기, 2011년 12월에 허저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으로 있었다. 2017년 3월, 허저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에서 물러났고 2017년 6월 30일에 솽구이(雙規) 처분을 당했다.

그가 단현 위원회 서기로 재임당시 10여 명 파룬궁 수련자가 납치됐다. 2명이 불법 판결받고, 10명이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으며, 몇 명이 불법적으로 가택 수색을 당해 집에 돌아가지도 못했다. 이에 대해 왕융훙은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을 짊어지고 있고 현재 이미 솽구이 처분을 당했다.

38) 산둥성 린이대학 당서기 딩펑윈(丁鳳雲)이 업보를 받다

丁风云
딩펑윈

딩펑윈은 여성이고 전 산둥성 린이대학 당서기로서 현재 솽구이 처분을 당해 조사를 받고 있다. 그녀는 린이시 린수 현위원회 서기, 페이 현위원회 부서기, 린이 시위원회 선전부장으로 지내다가 린이대학 당서기로 임명됐다. 1999년 중국공산당이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전, 그녀도 파룬궁을 수련한 적이 있었고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 ‘진선인(眞善忍)’ 신앙을 포기하고 양심을 어기면서 파룬궁을 박해하는 사악에 동조했다.

2010년 8월에 치안종합관리사무실 주임으로 임명된 후 그녀는 린이시 각 현과 구 파룬궁 수련자에 대해 대대적인 불법 소란, 가택 수색, 납치, 구류, 감금, 벌금을 가해 소란과 불안을 확대했다.

2010년 7월 30일, 딩펑윈이 직접 책임진 도시문명건설사무실은 시민들에게 파룬궁을 비방하는 메시지를 발송했다. 6개월 사이에 린이시 83명 파룬궁 수련자가 불법 납치 혹은 가택 수색을 당했다.

파룬궁 박해에 적극 동조한 결과 정치법률위원회 두목 저우융캉의 신임을 얻어 시위원회 상무위원, 시 선전부장, 린이시 대학 당서기로 승진했다.(정시급)

그녀는 베이징에 갔을 때 호텔 목욕탕에서 넘어져 두 다리 힘줄이 끊어졌다. 몇 개월 동안 그녀는 줄곧 휠체어에 앉아 지냈다.

39) 산둥 허저시 챠오현 선전부장 왕링(王玲)이 수뢰죄로 10년형을 선고받다

2007년 3월, 산둥성 고급인민법원은 전 차오 현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왕링(여)의 수뢰죄 안건을 심사했다. 피고인 왕링의 항소를 기각하고 허저시 중급인민법원의 징역 10년을 그대로 유지했다. 또한 개인재산 5만 위안을 몰수했다.

왕링은 1962년 산둥성 차오현 사오좡진에서 태어났다. 1998년 말부터 2004년 구정 전까지 차오현 량티터우진 당서기, 자오 현위원회 선전부장을 맡았다. 그녀는 직무 편의를 이용해 관련 부서, 개인 공사건설, 간부 발탁, 인사이동을 돕는다는 명의로 44차례 타인재물을 불법 수령했다. 합계로 인민폐 23만 7953위안이다. 체포돼 재판에 회부한 후 그녀는 사법기관이 아직 장악하지 못한 38차례 수뢰 범죄사실을 고백했다. 그녀 역시 파룬궁 박해에 참여해 서글픈 종말을 맞이했으니 그야말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40) 리유구이(李有貴) 비방 안건을 조작해낸 푸저우성 정허현 선전부장 저우웨이(周偉)가 징역 11년을 선고받다

2005년 12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푸젠성 정허현 당서기 딩양닝(丁仰寧)은 1999년 장쩌민이 기를 쓰고 파룬궁을 탄압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승진해 부자가 될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사람을 파견해 정허현에서 전형적인 모델을 만들었다. ‘전 푸젠성 정허현 파룬궁 보도소 책임자’ 리유구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내 공공연히 사기를 치고, 사실을 왜곡해 제멋대로 파룬궁을 비방했다. 진상을 모르는 수많은 민중이 거짓말을 믿는 등 극히 나쁜 영향을 일으켰다.

얼마 뒤, 대법 비방에 참여한 고위관리들이 잇달아 업보를 받았다. 현위원회 부서기 천밍화(陳鳴華)는 징역 14년, 부현장 중창루이(鍾昌瑞)는 징역 12년 6개월, 선전부장 저우웨이(周偉)는 징역 11년을 판결받았다. 현 당서기 딩양닝(丁仰寧)은 직권을 남용해 사리사욕을 채운 부정부패 죄로 1999년 말에 고발됐다. 2001년 4월 일심판결은 딩양닝에게 무기 징역을 선고했다. 전 정허현 현장 예자러(葉家樂)는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41) 푸젠성 장저우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쉬룽융(許榮勇)이 수뢰죄로 10년 형을 선고받다

2017년 7월 20일, 푸젠성 장저우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쉬융룽(부청장급)은 수뢰죄로 유기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벌금 50만 위안을 부과했다. 겉으로 볼 때는 부정부패 죄목이지만 실은 파룬궁을 박해한 업보다.

그가 장저우시 당서기, 장저우시 부시장 겸 샹청구 당서기, 장저우 시위원회 상무위원 겸 룽하이시 당서기 등 직위에 있을 때 직무 편의를 이용해 타인에게 이득을 챙겨준다는 명의로 타인 재물을 불법 수령했다. 인민폐로 환산하면 510만 위안 되는데 이 행위는 수뢰죄에 해당된다.

42) 푸젠성 산밍시 메이례구 구청장 류전싱(劉振興)이 수뢰죄, 고리대출 나대죄(高利轉貸罪)로 4년형을 선고받다

2016년 10월, 전 산밍시 메이례구 구청장 류전싱(정처장급)은 수뢰죄, 고리대출 전대죄(高利轉貸罪)로 시 중급인민법원 1심판결에서 4년형을 선고받았다. 동시에 개인재산 25만 위안도 몰수당했다.

그가 산밍시 사현위원회 상무위원, 부현장, 사현 현위원회 부서기, 선전부장, 메이례구 부서기, 부구청장, 대리 청장, 청장 기간으로 있는 기간 인민폐 1519만 6017위안에 달하는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 또한 전대(轉貸) 목적으로 금융기구 신용대출자금 35만 위안을 높은 이자로 남에게 빌려주어 불법적으로 인민폐 1만 5075위안을 획득했다. 이는 수뢰죄, 고리대출 전대죄에 속한다. 파룬궁을 박해하면 조만간 꼭 업보를 받게 된다.

43) 하이난 링수이현 전 현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정원슈(鄭文秀)가 205만 위안 수뢰죄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다

2016년 12월, 하이난성 링수이현 전 현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정원슈는 총 205만 위안에 해당되는 뇌물을 받아 수뢰죄를 범했다.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고 인민폐 45만 위안을 벌금이 부과됐다.

44) 전 하이난 방송국 국장 루쑹린(鹿松林)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다

2005년 12월 29일, 전 하이난 방송국 국장 루쑹린은 수뢰죄로 하이커우시 중급인민법원 일심판결에서 유기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루쑹린은 1955년 9월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태어났다. 1989년부터 연이어 하이난 방송국 부국장, 하이난 방송국장, 하이난 방송국 당서기, 하이난 성위원회 선전부 부부장 직을 역임했다. 2005년 5월 23일 수뢰죄로 하이난성 인민검찰원에 체포됐다. 2002년에서 2005년까지 하이난 성위원회 선전부 부부장을 지냈고 하이난에서 파룬궁을 박해한 주요책임자 중 한 명이다.

45) 장쑤성 화이안시 선전부장 신리중(辛立忠)이 사람을 조직해 파룬궁 서적을 소각하고 유기 징역 7년을 선고받다

전 화이안시 선전부장 신리중은 사람을 조직해 파룬궁 서적을 소각했고 수뢰죄로 유기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1999년 하반기, 그는 화이안시 체육관 앞에서 사람을 조직해 대량의 파룬궁 서적을 소각했고 수뢰죄로 유기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46) 윈난성 정부 참사(參事) 겸 성 문화청 청장 황쥔(黃俊)이 입건, 조사받다

2017년 12월 15일, 윈난성 정부참사 겸 성문화청 청장 황쥔이 입건, 조사받았다. 그는 2005년에 윈난 성위원회 선전부 부부장, 2007년에서 2015년 5월까지 윈난성 정부 참사, 성 문화청 청장을 역임했다. 그는 윈난성에서 문화선전 시스템을 이용해 파룬궁을 박해한 책임자다.

47) 윈난 다리주 선전부장, 다리주 부주장 황융화(黃永華)가 10년 형을 선고받다

전 현위원회 서기 황융화는 파룬궁 박해에 ‘공을 세워’ 2003년부터 승진하기 시작했다. 연이어 윈난성 다리주 선전부장, 다리주 부주장으로 승진했다. 2009년 수뢰죄로 10년형을 선고받았는데 현지 주민들은 모두 그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말한다.

그는 재물을 탐냈을 뿐만 아니라 여색은 더욱더 탐냈다. 현지 백성들, 심지어 일부 관리까지 뒤에서 그를 ‘노란 당나귀(부패한 일만 하는 호색한)’이라고 불렀다. 예전에 파룬궁 수련자를 박해하는 회의에서 그는 주먹을 움켜지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소리를 질렀다. “단호히 영명한 당중앙 정책을 따라 파룬궁을 넘어뜨리고 더럽힐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영명한 당중앙’이 지금 그를 악명이 자자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48) 후베이성 쑤이저우시 전 상무 부시장 천촨건(陳傳根)이 징역 4년을 선고받다

2017년 9월, 후베이 징먼시 중급법원은 쑤이저우시 전 상무 부시장 천촨건의 수뢰안건에 대해 1심 판결을 내렸다. 천촨건에게 수뢰죄로 유기징역 4년 판결을 내리고 벌금 30만 위안을 부과했다. 그가 뇌물로 받은 돈 96만 129위안, 황금 512그램을 추징했다.

2006년 12월에서 2015년 7월까지, 그는 쑤이저우시 부시장, 쑤이저우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상무 부시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쑤이저우시에서 파룬궁을 박해한 책임자다.

49) 저장 정치협상회의 부주석 쓰신량(鑫良被)이 징역 13년을 선고받다

斯鑫良
쓰신량

2016년 12월 13일, 전 중국공산당 저장성 정치협상회의 부주석 쓰신량은 수뢰죄로 유기징역 13년을 선고받고 개인재산 200만 위안을 몰수당했다. 그는 1955만 위안을 수뢰한 죄로 고발당했다.

2001년부터 2014년까지, 그는 중국공산당 후저우 시위원회 서기, 저장성 상무위원, 선전부장, 조직 부장, 저장성 정치협상회의 부주석 등을 역임했다.

50) 전 저장성 타이저우시 선전부장 쑤젠궈(蘇建國)가 수뢰죄로 판결받다

2017년 8월 7일, 자싱시 중급인민원법은 공개법정을 열어 전 타이저우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쑤젠궈 수뢰사건에 대해 공개심판을 했다. 그는 수뢰죄 때문에 일심판결에서 유기 징역 13년을 선고받고 뇌물로 받은 돈 48만8천 위안을 추징해 국고에 상납했다. 타이저우시에서 파룬궁을 박해한 책임자로서 그 역시 법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51) 닝보시 전 선전부장 훙자샹(洪嘉祥)이 수뢰죄로 입건되다

2017년 저장성 닝보시 전 상무위원, 선전부장 훙자샹은 기율을 어긴 엄중한 혐의로 입건, 조사를 받았다.

52) 저장성 사오싱시 선전부장 허자순(何加順)이 조사를 받다

그는 2006년 1월에서 2014년 5월까지 신창현·사오싱현 현위원회 서기, 2014년 5월에 사오싱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을 맡았다. 2017년 11월 17일에 조사받았다.

신창현 현위원회 서기로 재임한 당시, 그는 여러 차례 루이허 휴양지, 메이주진 보얼 산장에 세뇌반을 세워 파룬궁 수련자를 강제 세뇌, 박해하고 대법과 대법 사부님을 비방했다. 신창현은 해마다 신창현 메이주진 보얼 산장에 세뇌반을 세워 대법제자를 박해했고 이른바 ‘삼서(파룬궁 수련 포기 각서)’를 쓰게 했다.

2012년 6월, 신창현 현지의 사악한 중국공산당 세력은 사교를 거부한다는 승낙카드를 대량 제작했다. 안에는 대법을 비방하는 내용들이 있었다. 진상을 명백히 안 사람들은 공산당이 수중의 권력을 이용해 민중을 서명하도록 협박한다고 욕했다.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선하게 되라고 요구하고 중국공산당이야말로 진정한 사교다.

53) 주장시 두창현 선전부장 사오허핑(邵和平)이 징역 5년을 선고받다

2014년 11월 13일, 쉰양구 법원은 1심 판결에서 수뢰죄로 사오허핑에게 유기 징역 5년을 선고하고 재산 5만 위안을 몰수했다. 그는 주장시에서 파룬궁을 박해한 책임자다.

54) 신장 하미시 전 선전부장 왕장화(汪江華)가 1000만 위안 수뢰죄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다.

2017년 6월 21일, 신장 하미 시위원회 전 상무위원, 선전부장 왕장화는 현위서기,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등 직에 있을 때 직무편의를 이용해 수 차례에 걸쳐 1,111만 위안에 달하는 뇌물을 받았다.

왕장화는 1963년생 남성이다. 2008년부터 2013년 사이 징현 현위원회 서기, 2015년부터 2016년 사이 하미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등 직을 맡았다. 그 역시 신장에서 파룬궁을 박해한 책임자다.

55) 닝샤회족자치구 정보건설사무실 부주임(부청장급) 저우진주(周金柱)가 입건, 조사받다

저우진주는 1968년 6월생 남성이다. 닝샤 링우 사람으로서 중국 링우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스쭈이산 시위원회 부서기, 닝샤회족자치구 정보화건설사무실 부주임(부청장급) 등 직무를 역임했다. 2015년 1월 그에 대해 조사를 하고 2월에 수뢰죄 혐의로 입안조사 한 동시에 강제 조치를 취했다. 그는 닝샤에서 파룬궁을 박해한 책임자다.

56) 네이멍구자치구 우란차부 시위원회 서기 왕쉐펑(王學豐)이 입건, 조사받다

2016년 9월 21일, 밍후이왕은 그 해 53세 되는 왕쉐펑이 입건, 조사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는 네이멍구자치구 어얼둬쓰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둥성구 위원회 서기, 우란차부 시위원회 부서기, 시장 등을 역임했다. 2011년부터 줄곧 우란차부시 위원회 서기직을 맡았다. 재임 기간, 끊임없이 승진하기 위해 직무상 편의를 이용해 재임 소재지에서 진일보 파룬궁 박해를 추진했다.

57) 네이멍구 우란차부시 시장 타오수쥐(陶淑菊)가 조사받다

네이멍구 우란차부 시위원회 부서기 겸 시장 타오수쥐는 2016년 4월 28일에 기율을 어긴 엄중한 혐의로 조사받았다.

올해 55세 되는 천수쥐(여)는 직무 승진을 위해 과거 적극적으로 장쩌민 집단을 따라 파룬궁을 박해했다. 두 손에 파룬궁 수련자의 피가 가득 묻었고 결국 업보를 받았다.

2001년 9월, 그녀는 네이멍구에서 츠펑으로 전근했다. 때는 장쩌민 집단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던 시기였고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박해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천수쥐는 츠펑지역에서 요직을 맡았고, 츠펑 정부는 박해수단과 세뇌 경험을 전국에 보급했다. 2001년 9월부터 2005년 3월까지, 그녀는 츠펑 시위원회 상무위원, 선전부장 직을 맡았고, 2010년 4월까지 츠펑에서 연이어 조직부장, 츠펑 시위원회 부서기를 역임했다. 그녀가 재임한 이 9년 동안, 츠펑 지역의 박해는 줄곧 아주 잔인했다. 수많은 가정을 고통에 빠뜨렸고 가족들도 연루돼 감당하기 힘든 멸시를 받았다. 어떤 집은 노인이 세상을 뜨고, 어떤 집은 아이 학업이 영향 받았으며, 어떤 집은 경제수입이 담보받지 못해 생활이 궁지에 빠지고, 어떤 집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2011년 4월부터 2011년 2월까지, 그녀는 네이멍구 시린궈러맹에 전근돼 상무위원, 얼롄하오터시 시장직을 맡았다. 2011년 3월에는 우란차부시로 전근돼 시위원회 부서기를 맡았고, 2012년 1월에는 우란차부시 시워원회 부서기, 시장을 맡았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박해가 발생하고 억울한 사건이 끊임없이 생겼다.

지금 그녀는 두려움 속에서 판결을 기다리며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58) 간쑤성 진창 시위원회 선전부장 창자유(常家有)가 조사받다

2016년 12월 13일 밍후이왕은 최근 진창 시위원회 선전부장 창자유가 조사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창자유의 한 자녀는 베이징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일한 지 6년 됐을 때 600만 위안에 달하는 집을 구매했는데 시가로 따지면 싸게 산 것이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것은 이 집은 어느 탐관이 급히 팔아버려 현금화하려고 암암리에 싸게 판 것이었다. 결국 이 탐관을 조사할 때 이 건물이 이미 팔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구매자를 조사해보니 이제 겨우 6년 일한 공무원이었다. 6년 일한 공무원이 어찌 600만 위안에 달하는 건물을 구입할 수 있겠는가? 계속해 그의 집안배경을 조사해보니 아버지가 간쑤성 진창시 선전부장, 시위원회 상무위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로 인해 창자유는 조사받기 시작했다.

그가 진창시 진촨구 구청장, 구청 위원회 서기로 있을 때는 융창현에서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가 가장 엄중하던 시기였다. 대법제자에 대해 공개재판, 조리돌리기, 중형 선고를 했고 수많은 집안이 참혹하게 불행을 당했다. 이에 대해 그는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2016년 7월 15일, 진창 시위원회 선전부장 창자유와 부시장 멍유주(孟有柱)의 주관 하에 파룬궁을 모욕하는 집중선전 월(月) 의식을 가졌다. 그는 각 부서에 다양한 매체, 각종 모욕하는 내용과 형식을 이용해 파룬궁을 비방하는 전단지를 배포하고 서명을 조직하며 공공장소에 파룬궁을 비방하는 게시판을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 그 후 7월 20일, 진상을 알리는 파룬궁수련자를 고발하라고 주민센터마다 각 파출소 전화번호를 붙였고, 게시판에 파룬궁 및 창시자를 모욕하는 포스터를 붙였다.

2016년 8월 25일 오후, 진창시 치안종합관리 안정유지회의에서 그는 각 급 관련 기관이 파룬궁에 대해 엄격히 단속할 것을 강조했다.

59) 전 철도부 홍보처 처장 천이한(陳誼菡)이 수뢰죄로 유기징역 8년을 선고받다

천이한은 전 철도부 홍보처 처장이다. 2015년 4월 수뢰죄로 유기 징역 8년을 선고받고 개인재산 20만 위안을 몰수당했다. 압수기관은 그가 뇌물로 받은 돈 40만 위안을 국고에 바쳤다.

천이한은, 1963년 5월 21일생의 여성이다. 2006년 6월부터 2009년 7월까지 전 철도부 정치홍보처 처장(정처장급), 2009년 7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중국철도기업관리협회 비서장 보조 겸 사무실주임(정처장급), 이후에는 중국철도문학예술인 연합회 부비서장(부국장급)을 맡았다.

 

원문발표: 2017년 12월 23일
문장분류: 천인지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2/23/3582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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