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대륙인 세연(世緣)
[밍후이왕] 나는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지만 ‘진선인(眞·善·忍)’의 혜택을 입었다!
나는 대법제자의 가족으로 34세이며 허베이성에서 살며 자영업자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몸이 허약했고 특히 어머니가 메니에르 병으로 항상 침대에 누워서 출근하지 못하셨기에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파룬궁을 알게 됐다. 1997년 여름부터 어머니는 파룬궁을 수련하게 됐다. 처음으로 연공하고 돌아온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오늘 서서 연공하는데 또 머리가 혼미해지면서 머릿속에서 선풍기가 도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다. 그때 어머니는 아직 대법지침서를 보지 않으셨기에 그것은 파룬이 어머니의 몸을 조정해주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는 건강이 회복됐고 활력도 생겼다. 지금까지 20년 동안 병에 걸리지 않았고 십 몇 만 위안의 병원비를 절약했다.
어머니는 항상 나에게 사부님 설법을 듣게 했으며 연공도 가르쳐주었다. 나는 연공만 하면 온몸에서 땀이 나고 더워서 견디지 못했다. 당시 공부 부담이 많고 노는 것을 탐해 견지하지 못했으나 꼭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매주 한 번 집으로 돌아왔다. 한 번은 주말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베이징에 청원을 갔다가 베이징 주재 요원들에게 납치돼 구치소에 감금됐다고 아버지께서 알려주셨다. 나는 이때까지 어머니와 떨어져 본 적이 없었기에 마음속에서 무엇을 잃은 것 같았다. 학교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선생님에게 조퇴신청도 하지 않고 학교 담장을 뛰어 넘어 버스를 몇 번 환승하면서 구치소에 가서 어머니를 만나보려 했다. 문을 지키는 경찰에게 아무리 애원해도 그들은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 오랫동안 서있으면 그들이 감동해 나에게 어머니를 만나보게 해줄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다. 날이 어두워지자 실망하고 학교로 돌아왔다.
한 달 뒤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나는 너무 반가웠고 어머니에게 나는 구치소로 어머니를 보러갔었는데 경찰이 면회를 시켜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아버지에게는 이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말을 듣고 내가 다 컸다고 하셨다.
대법은 십 몇 년 동안 줄곧 모함을 당하고 있고 좋은 사람이 되기에는 너무나 어렵다! 어머니도 많은 고생을 하셨다. 나와 아버지는 모두 대법을 지지하고 어머니를 지지했다.
졸업 후 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베이징 판자위안(潘家園)에서 본전이 적게 드는 작은 장사를 했다. 노천시장이라 여름에는 그래도 참을 수 있었으나 겨울이면 추워서 견딜 수 없었다. 하루하루 힘들게 버텨도 수입이 없었고, 신참이라 물건을 잃어버리고 물건을 적게 가져오는 등의 일이 자주 있었다. 한 해 겨울은 며칠 동안 장사를 못하다가 다시 열었는데 100위안(한화 약 16,500원)짜리 위조지폐를 받았다.(경험 부족임) 이후에 또 위조지폐 세 장을 받았다. 공짜로 물건을 남에게 주었을 뿐만 아니라 돈도 잃은 것이었다. 당시 내 머리는 폭발할 것 같았고 아주 괴로웠다. 당시 한 달 수입이 300위안도 안 됐다!
그래도 나는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고 줄곧 좋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으로 처사했기에 위조지폐로 다른 사람을 다시 속이는 일은 절대 할 수 없었다. 이후에도 잇따라 위조지폐를 받았으나 나는 담담했고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대법 사부님의 설법을 듣지 않았다면 나도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온갖 방법을 다해 받은 위조지폐를 다시 사용했을 것이다.
몇 년 후 나는 베이징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결혼을 했지만 현지에서 직장을 얻기 힘들었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돈을 좀 얻어 친구와 함께 가게를 얻어 동업하게 됐다. 나는 기술과 베이징에서 영업하던 상품을 대고 친구는 자금을 대기로 약속했다. 당시 어머니는 동의하지 않으셨지만 우리는 자금이 부족했기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개업하니 매우 기뻤고 우리들은 매일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면서도 지치는 줄 몰랐다. 몇 달이 지나 친구는 나에게서 상품을 식별하는 기술을 전부 배우게 되자 열정이 식었고 하루 종일 어중이떠중이 친구들과 어울렸다. 또 이혼까지 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한 여자를 데리고 와서 외지에서 사는 소꿉친구라고 소개했으며 며칠 후 재혼했다.
그는 딴 속셈을 품고 나에 대해 불신을 나타냈다. 어머니는 나에게 동업을 그만두라고 했다. 당시 가게에 투자된 돈과 물품을 합산하면 10여만 위안(약 1,600만원)에 달했다. 매달 수입으로 두 가정의 생활이나 유지할 수 있었고 저축이 없어서 아주 힘들게 가게를 유지했다. 사실 이 장사는 한 사람이 경영해도 가능했다. 며칠 고민 끝에 헤어지기로 했다.
당시는 경기도 좋지 않고 그는 문외한이며 시력도 좋지 않았다. 만약 내가 물러나고 그에게 경영하게 한다면 그를 해치는 것과 같았다.(상품의 품질 감정은 눈과 경험에 의지하기 때문임) 그러나 나는 그를 존중해서 그에게 ‘경영권을 가진 사람이 물러나는 사람에게 3만 위안(약 500만원)을 주는 조건’을 그에게 제시했다. 그는 자기가 경영하겠다고 했고 또 나의 잘못을 수없이 열거하면서 나에게 물러나라고 했다. 그는 한 푼도 줄 수 없으며 물건도 갖고 가지도 못한다고 했다.
아내는 받아들일 수 없어 그에게 따지려 했고 나도 마음속으로 그가 좋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원망했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득과 실의 관계와 인과 관계를 기억하고 있었고 나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아무것도 갖지 말자고 권했다. 이렇게 우리는 떠났다.
나는 작은 장사를 했고 몇 년 안 되어 결혼했기에 적금도 없었다. 어머니는 1990년에 해직됐기에 수입이 없었고, 온 가족은 아버지 한 사람의 봉급으로 살아갔다. 우리에게 있어 몇 만 위안이란 돈은 큰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너무 연약하고 무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다. 나는 그를 위해 생각했다. 물품 대부분은 나의 것이고 만약 내가 다 갖고 나온다면 그는 가게 문을 열 수 없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길에서 그를 만나면 나는 자발적으로 그와 인사를 나눈다.
두 손이 텅텅 비었지만 나는 낙심하지 않았다. 나는 새로 오픈한 상가에 자리가 있어 물건을 팔면 조그마한 수입이라도 있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친척과 친구들에게서 돈을 빌려 매장을 임대했다. 결국 장사가 잘 되어 빚도 갚고 자동차도 샀다. 나에게 복을 준 대법에 감사드린다.
또 한 가지 일이 있다. 한 물건을 대리 판매하게 됐는데 표시 가격은 11만 5천 위안(약 1,900만원)이었다. 그런데 직원이 가격표를 잘못 보고 1만 5천 위안(약 250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았다. 몇 년 치 수입으로도 갚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머리가 띵했다. 그래도 나는 직원을 나무라지 않고 산 사람의 연락처를 적었는지 물었다. 정말 물건을 사간 사람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전화해 5천 위안(약 82만원)의 물품으로 보상해주겠으니 물건을 반품해 줄 것을 간청했다. 상대방은 동의했다. 나는 5천 위안을 손실 보았고 직원은 나에게 몇 백 위안을 보상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받지 않았고 앞으로 좀 더 조심해 일하면 된다고 했다.
현장에 있던 다른 직원들도 모두 감동했다. 내가 돈이 많아서 이렇게 한 것이 아니고 나는 일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도 고의로 한 것이 아니고 월급도 많지 않은데 한 달을 공으로 일해도 손실을 보상할 수 없었다. 내가 직접 그런 일을 겪은 것처럼 생각했다.
어떠한 일도 나의 기준을 바꿀 수 없었다. 나는 비록 작은 장사를 하지만 경영 이념은 성실과 신뢰였다! 나의 진실한 마음은 많은 고객들의 인정을 받아 그들은 나와 좋은 친구가 됐다. 그들이 나에게 도움을 청하면 나는 있는 힘껏 도움을 주었다. 다른 매장에서는 일손이 모자랄 때면 직원 모집 광고를 내지만 우리 매장은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 연락처를 남겨 놓고 직원이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이 상가에서 우리 매장의 평판은 아주 좋았다.
나는 평소 생활에서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일마다 우선 타인을 위해 생각했다. 주차할 때에도 차를 바르게 세웠는지, 다른 사람의 차도를 막지 않았는지 살펴본다. 우리 주택은 오래된 건물이기에 주차 공간이 없어 주차할 때면 다음 사람의 주차에 영향주지 않는지 항상 살펴봐야 한다.(아침 일찍부터 차를 빼달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음) 때로는 다른 사람의 차가 내 차를 긁어 차 주인이 배상하겠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으면 나는 돈을 받지 않았다. 누구도 고의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욕이 흘러넘치는 사회 속에서 나는 주견 없이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이익에 유혹당하지 않으며, 세속에 파묻히지 않으니 나의 심신은 유쾌하고 매일 상쾌한 기분이다.
나는 여기에서 내가 얼마나 훌륭하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생활하려면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하면 심신이 유쾌할 뿐만 아니라 수혜가 무궁하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사람마다 모두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일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한다면 각종 범죄와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국가와 국민에게 백가지 이로움이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을 것이며, 사람마다 ‘진선인’의 수혜를 받아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
나에게 무한한 복을 준 대법에 감사한다! 대법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에 감사드린다!
원문발표: 2017년 12월 8일
문장분류: 천인지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2/8/3575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