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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지지해 온가족이 복을 받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 가족 세 식구는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잇따라 파룬따파수련에 들어섰다. 나의 여동생 가족은 대법을 수련하지 않지만 우리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모두 적극 지지했다. 특히 1999년 ‘7.20’ 이후 중국공산당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발동한 후 우리 가족은 모두 현 ‘610’의 ‘중점’대상이 되어 여러 차례 집을 수색당하고 소란을 당했다. 경찰과 ‘610’이 어떻게 사악하게 굴어도 여동생 가족은 우리의 대법 수련을 반대하지 않았다.

한 번은 내 아들이 경찰에 납치되어 구치소에 감금됐다. 여동생과 매부는 농사일도 제쳐놓고 친구와 인맥을 찾아 ‘610’두목에게 내 아들을 풀어주게 했다. 또 한 번은 ‘610’ 경찰이 우리집에 와서 나를 납치할 때 여동생이 나를 보호하다가 경찰에게 구타당했다.

우리 온 가족이 유랑하는 그 몇 년 동안, 여동생은 우리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매부는 삼륜차로 물품을 운반해 생활비를 번다. 우리가 여러 곳으로 전전하면서 유랑할 때 매부가 우리를 도와주었다. 많이 바쁘고 길이 멀어도, 부르기만 하면 달려왔는데 심지어 왕복 100㎞, 200㎞나 떨어져 차를 운전하기도 매우 힘들었지만 한 번도 불평이 없었다.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살벌한 그 몇 년간 해마다 우리 현의 대법 수련생은 농촌에 있는 대법수련생 집에 가서 대형 법회를 열었다. 교통이 불편했기에 매부가 삼륜차로 수련생들을 데려다주었으며 그는 또 자발적으로 우리 법회에 참가했다. 그는 법회가 끝나면 또 수련생들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는데 그는 아주 기뻐하면서 자랑스럽게 “제가 오늘 신선을 모시고 가요!”라고 말했고 여러 사람들은 모두 즐겁게 웃었다.

매부는 또 나와 함께 진상자료를 배포했고 여동생은 친척과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한 번은 ‘610’경찰이 우리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면서 소란을 피웠으나 나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경찰은 계단을 내려가다가 여동생과 마주쳤다. 여동생이 그들에게 무슨 일로 왔는지 묻자 그들이 말했다. “당신 오빠를 찾아왔는데 오빠가 집에 없군요. 당신 오빠의 전화번호를 우리에게 알려주세요.” 여동생은 그들의 음험한 목적을 알기에 엄숙하게 말했다. “저는 오빠의 전화번호를 당신들에게 알려줄 의무가 없어요.” 그들은 무안해서 곧 떠났다.

특히 여동생의 딸인 조카딸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자료를 나누어 주고 진상을 알렸다. 조카딸은 학과 성적이 좋지 않아 중학교를 졸업한 후 외국어 학교에 가서 공부해 대학졸업장을 받았다. 졸업 후 광저우 대기업에 출근하는데 이 업체에서 제작한 조명 장식은 전 세계에 판매되고 있다. 조카딸이 주관하는 업무는 업무 실적이 해마다 우수했으며 외국에서 전시회를 열 때면 회사에서 조카딸을 파견해 참가하게 했다.

조카사위는 회사에서 가장 젊은 사장으로 여러 부서를 관할하고 있다. 두 사람의 연봉은 수십만 위안(한화 수천만 원)이나 된다. 결혼해서 3년 만에 집을 두 채나 샀고 자가용도 샀다. 2016년 그들의 승용차 뒤 범퍼 위에 우담바라가 수십 송이나 피었다. 그들 온가족은 너무 기뻐서 재빨리 사진을 찍어 우리들에게 보내주었다.

온가족은 대법이 준 복에 감사하고 있다!

 

원문발표: 2017년 12월 7일
문장분류: 천인지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2/7/3575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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