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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둥성 통전부장 저우전훙이 악보를 당해 사형유예 선고를 받다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광둥보도) 저우전훙(남, 광둥성 푸닝 거주)은 2002년 4월 마오밍시위 서기, 시인대 당소조 서기로 임명되었고, 2002년 11월에 마오밍시 인대 상무위원회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2007년 5월에 광둥성위 상무위원, 성위 통전부 부장으로 승진했다. 2012년 1월 16일, 조사를 받고 2014년 2월 28일에 부정부패 혐의로 사형유예 선고를 받고 전 재산을 몰수당했다.

저우전훙은 표면적으로 업무상 뇌물횡령죄로 사형유예 선고를 받았지만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마오밍에서 근무하는 동안 장쩌민을 적극 추종하면서 선량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기에 악보를 받은 것이다.

1. 장쩌민을 적극 추종해 파룬궁수련생을 잔혹하게 박해하다

저우전훙의 승진은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장쩌민 일당의 고관들이 승진하고 부자가 되는 숨은 규칙이다. 저우전훙이 광둥성 마오밍시위 서기로 근무하는 동안 공개회의에서 수차례에 걸쳐 증오를 부추기고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할 것을 지시했다. 마오밍시위가 주도한 ‘610사무실’(장쩌민 일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설립한 전문 불법조직)은 ‘마오밍시 법제교육 학교’라는 이름으로 세뇌반을 설립해 신념이 견정한 파룬궁수련생을 세뇌반에 감금하고 의문의 약물을 주사해 많은 수련생에게 정신적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히거나 사망하게 했다. 저우전훙은 파룬궁 박해에 적극 참여해서 장쩌민 일당의 눈에 들어 리창춘에 의해 중공 광둥성 통전부 부장으로 기용되었다.

저우전훙은 마오밍시에서 근무하는 동안 장쩌민을 적극 추종해 뤄인궈와 함께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조직인 마오밍시 ‘610’(두목 궁자오원, 2016년에 추밍주로 바뀜)과 그의 관할인 마오난구 ‘610’(두목 저우원), 마오시구 ‘610’, 마오강구 ‘610’(두목 리캉룽, 위안시핑), 신이시 ‘610’, 가오저우시 ‘610’(두목 잔제), 화저우시 ‘610’, 뎬바이구 ‘610’(두목 궈수이안, 2016년 7월 천창싱으로 바뀜), 마오밍스화 ‘610’(장청린, 리웨이쑹, 뤄지) 등 9개의 사악한 ‘610’ 기구를 설립했다.(‘610’은 ‘안정’, ‘종합치안’, ‘방범’, ‘국보’ 등으로 명칭하기도 함). 마오밍시 ‘610’은 상부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그의 관할에 속하는 8개의 사악한 ‘610’조직을 사주해 마오밍 지구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의도적으로 계획된 ‘집단 멸종’의 잔혹한 박해를 진행했다.

저우전훙과 뤄인궈는 먼저 검은 감옥과 같은 ‘법제반’을 적극적으로 개설해 마음대로 법률을 유린하고 임의로 기간을 연장했으며 반복적으로 감금하면서 파룬궁수련생을 잔혹하게 박해했다. 마오밍시 세뇌반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잔혹한 박해는 전국에서 2위이다.(밍후이왕 2017년 2월 보도 ‘광둥마오밍 세뇌반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 총론’ 참고)

저우전훙은 마오밍시에서 근무하는 동안 공검법 계통을 조종해 마오밍지구의 많은 파룬궁수련생을 불법감금하고, 노동교양을 시켰으며 형을 선고받게 했다. 이로 인해 쉬언성(徐恩生), 뤄페이밍(羅飛鳴), 양밍펀(楊明芬), 리메이(李美), 왕위란(王玉蘭), 정바오(鄭保), 우밍옌(吳明燕), 황셴펑(黃仙鳳), 톈후이잉(田惠英), 스슈핑(施秀萍), 리원전(李文珍), 리량(黎亮), 린추윈(林秋雲) 등 10여 명의 선량한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받아 사망했다.

저우전훙이 근무하는 동안 세뇌반에 불법 감금되어 박해당한 파룬궁수련생이 얼마나 되는지는 집계할 방법이 없다. 불법적으로 노동교양을 당한 파룬궁수련생이 적어도 57명(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115명에 달함)에 이르고, 불법적인 형을 선고 받은 파룬궁수련생이 적어도 23명(총 65명)에 이른다. 예를 들어 허징(賀敬) 5년, 천샤오샤(陳小霞) 5년, 량진춘(梁錦春) 7년, 리쿤(李坤) 14년, 리신화(李鑫華) 5년, 우진청(吳金城) 14년, 류젠쭝(劉劍宗) 12년, 허겅칭(何耿慶) 11년, 천샹첸(陳向前) 13년, 덩사오쑹(鄧少松) 6년, 리캉푸(李康福) 10년, 량러우투(梁樓圖) 8년, 정바오(鄭保) 9년(이미 박해로 사망), 커정지(柯鄭基) 7년, 우즈치(吳志岐) 7년, 주스슝(朱石雄) 3년형 등이다.

2. 박해사례

1) 루슈칭, 독침을 맞아 불구가 되다

中共酷刑示意图:注射药物
 중공의 고문 그림(약물 주사)
 

마오밍시 세뇌반 ‘610’의 악인이 사람을 사주해 루슈칭(盧秀清)에게 독침을 놓았다. 중추신경이 파괴된 류슈칭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고 산소마스크로 호흡하면서 4일 동안 응급처치를 받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기억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전신을 움직이지 못했으며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2003년 7월, 세뇌반에서는 루슈칭의 가족에게 그를 데려가라고 했다. 가족들이 루슈칭을 만났을 때 루슈칭은 이미 박해를 받아 정신이 희미했고 사리 분별을 하지 못했으며 사지가 무력하고 몹시 허약했다. 루슈칭은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스스로 생활을 하지 못했다. 두 다리를 움직이지 못했고 두 손으로 기어 다녔다. 정신이 들면 세뇌반에서 단식할 때 강제로 의문의 주사를 맞았다고 말했다가 다시 기억을 잃었다.

2) 리젠, 여러 차례 마오밍세뇌반과 싼수이노교소에 감금되다

리젠(李建)은 헌법이 부여한 권리에 따라 2001년에 베이징에 가서 청원했으나 이로 인해 1년의 노동교양을 당했다. 2002년에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중공은 ‘16대(16차 당대표대회)’를 이유로 리젠을 또다시 세뇌반으로 납치했다. 리젠은 신념을 포기한다는 보증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후에 또다시 불법적인 노동교양을 당했다.

싼수이 노동교양소에서도 리젠은 불의에 굴복하지 않았다. 노동교양 기간이 만료되자 마오밍 ‘610’은 리젠을 세뇌반에 감금하고 계속 박해했다. 후에 리젠은 10여일 넘게 단식하면서 박해에 항의했다. 마오밍 ‘610’은 인명 사고가 우려되고 그의 가족에게서 돈도 갈취할 수 없게 되어서야 리젠을 업어서 집으로 데려가게 했다. 2009년 9월, 리젠은 마오밍 ‘610’에 의해 납치되었다. 마오밍 ‘610’과 공검법은 한 통속이 되어 리젠에게 12년 형을 선고했다.

3) 천빙강, 15차례나 박해받다

천빙강(陳炳剛)은 가정형편이 아주 어려웠고 그의 집은 매우 낡았다. 그는 집에서 주요 노동력이었는데 15차례나 박해 받았고 여러 차례 세뇌반에 감금되어 박해를 받았다. 그가 박해받는 동안 집에 있던 밭갈이 소 두 마리를 도둑맞았다. 2002년, 다시 마오밍세뇌반에 납치되어 2년 넘게 잔혹한 박해를 당해 노인의 건강은 심각해졌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어서야 풀려났다. 그동안 집에 있던 물소를 도적맞아 1만 위안(한화 약 165만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을 보았다. 젊은 아들은 병에 걸렸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어 홀로 집에서 사망했다.

4) 차를 타고 베이징에 청원 갔던 양밍펀, 세뇌반에서 박해로 사망

杨明芬
 양밍펀
 

양밍펀(楊明芬, 여, 58세, 마오밍 파룬궁수련생)은 1998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여 건강을 되찾았다. 2002년 7월, 그녀는 마오밍 ‘610’에 의해 ‘마오밍 법제학교’로 납치되어 세뇌 박해를 당했다. 세뇌반은 인간지옥이었다. ‘전향’을 거부한 그녀는 비인간적인 박해를 당했다. 악인들은 폭행하고, 얼굴에 끓인 물을 끼얹고, 수갑을 채워 창문에 열 시간 이상 매달아 놓았다. 1년이 넘게 잔혹한 박해를 받은 그녀의 몸은 나날이 쇠약해지고 악화되었다. 마지막에는 음식을 넘기기도 어려워졌고 3개월 동안 계속해서 대변을 보지 못했다. 사람은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2004년 3월, 양밍펀이 거의 숨이 넘어갈 때 악인들은 가족에게서 5천 위안(약 82만원)을 갈취한 후 풀어주었다.

酷刑图:吊铐
 고문그림(달아매기)
 

양밍펀이 석방될 때 몸이 이미 아주 허약했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계속 악화되었다. 혈변을 보았고, 장기적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다가 6개월 후인 2004년 10월 26일 아침 7시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5) 리메이, 세뇌반에서 독살당하다

리메이(李美, 마오밍시 마오강구 포신진 중포촌)는 2001년 정월 초하루 마오강구 ‘610’과 포신파출소의 경찰에 의해 집을 수색 당했다. 녹음기와 대법서적을 강탈당하고, 뎬바이 제2구치소로 납치되어 박해 당했다. 1년이 넘도록 ‘전향’ 하지 않은 리메이는 2002년 7월에 바오밍세뇌반으로 이송되어 계속 박해를 받았다. 마오밍세뇌반에 감금된 1년 동안 그녀는 비인간적인 박해를 당했고, 강제로 신경파괴 약물을 주사당해 정신이 이상해지고 흐리멍덩해졌으며 두 다리가 마비되었다.

2003년 7월 5일, 리메이는 석방되었지만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다. 그는 2004년 6월 24일에 사망했다. 당시 나이는 48세였다.

6) 리원전, 세뇌반에서 박해로 정신이상이 되고 물에 빠져 사망하다

리원전(李文珍, 화저우시 중둥진 파룬궁수련생)은 2001년 말, ‘610’의 불법 인원에 의해 마오밍의 ‘법제교육학교’에 감금되어 강제세뇌를 당했다. 리원전은 장기간 마오밍세뇌반에 불법 감금되어 정신과 육체적으로 온갖 비인간적인 시달림을 당했다. 혹독하게 맞아 중태에 빠지고 정신이상이 되었다. 2004년 2월, 집으로 돌려보내질 때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정서가 아주 불안했다. 가족은 걱정되어 중둥파출소와 ‘610’을 찾아 정황을 알아보려 했으나 그들은 모두 책임을 회피했다.

리원전은 집으로 돌아온 후 줄곧 몸이 극도로 쇠약했고 정신이 심각하게 비정상이었다. 결국 2006년 6월 말, 물에 빠져 사망했다.

7) 왕위란, 세뇌반에서 한 달 만에 박해로 사망

왕위란(王玉蘭)은 마오밍시 석유회사 노동자로 석유회사 중구 기숙사에서 살았다. 2001년 9월 25일 저녁, 마오밍 ‘610’은 왕위란이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소위 ‘법제학교’인 세뇌반에 납치해 협박과 고문을 했다. 왕위란은 한 달 동안 잔혹한 박해를 당하다가 병원에 이송되어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

왕위란은 붙잡힐 때 몸이 건강했지만 세뇌반에서 한 달 동안 박해를 당하다가 66세의 나이로 억울하게 사망했다.

8) 커랑성, 세뇌반에서 고문당해

커랑성(柯朗生, 남, 당시 약 서른 살, 마오밍 거주)은 2000년 12월 19일, 선전에서 파룬궁수련생과 심득 교류를 하던 중 푸톈 공안분국 정보과에 의해 체포되어 선전공안에 구속되었다. 커랑성은 사악한 ‘610’에 굴복하지 않고 ‘3서’를 쓰기를 거부했다. 악인들은 커랑성을 마오밍세뇌반에 보내 계속 박해했다.

中共酷刑示意图:吊背铐
 중공의 고문(뒤로 수갑 채워 달아매기)
 

커랑성은 이른바 ‘학교’에서 온갖 박해를 당했다. 혹독하게 때리기, 매달아 놓기, 무거운 쇠고랑 채우기, 박해하고 무시하기 등의 잔혹한 박해를 당했는데, 매달아 놓기 고문은 100차례 넘게 당했다. 한 번은 매달아 놓고 이틀이나 밥을 주지 않았다. 추호의 인간성도 없는 마오밍 ‘610’은 심지어 보안을 사주해 커랑성을 아주 높게 매달았다. 커랑성은 보안에게 “만일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이 책임져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보안은 이 말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먹을 휘둘러 커랑성의 허리와 복부를 구타한 후 벽에 머리가 부딪히게 밀었다. 커랑성은 즉시 기절했고 보안은 커랑성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며칠 후 박해로 몸이 매우 허약해진 커랑성은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 가서 응급치료를 받았다. 응급치료가 끝난 후 ‘610’직원이 의사에게 생명에 위험이 있는지 물었다. 의사가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자 ‘610’은 보안 두 명에게 커랑성을 ‘법제학교’로 압송시켰다. 정말 잔인무도하다!

한번은 커랑성이 ‘610’ 직원에게 왜 함부로 사람을 붙잡는지 물었다. ‘610’은 말했다. “상급에서 우리에게 당신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파룬궁을 때려도 책임지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610’ 직원은 말했다. “당신들을 때려죽이는 것은 개 한 마리를 때려잡는 것과 같다.” “내가 바로 법이다. 내가 한 말을 당신들은 들어야 하고 듣지 않으면 처벌할 것이다.” 2003년 12월, 커랑성은 마오밍 ‘610’, 파출소, 주민위원회 사람들에 의해 광둥성법제소(즉 싼수이 세뇌반, 싼수이 부녀교육소 옆에 있음)로 이송되어 계속 박해 당했다.

3. 마오밍 서기로 임명된 장쩌민 추종자 3명이 모두 악보를 받다

이번 박해는 선량한 사람에게 있어 본적이 없는 가장 악랄하고 비열한 박해이다.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하라’는 장쩌민의 지시로 공산당은 악랄한 수법으로 아무런 정당한 법률적 절차와 사실의 근거도 없이 ‘610’이 자료를 작성해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형을 선고하고, 노동교양을 시키고, 납치해 세뇌반에 감금하고, 벌금을 부과하고, 해고시키고, 월급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살아있는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적출해 폭리를 취했다. 장쩌민 무리는 이미 ‘집단학살죄’, ‘고문죄’, ‘반인류죄’ 등 여러 범죄를 저질렀다. 그들은 국제인권법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 헌법과 법률을 엄중하게 위반했다.

광동성은 장쩌민이 여러 해 전부터 지방 세력을 양성한 가장 중요한 지방 중 하나이다. 장쩌민 파벌인 리창춘과 장더장은 잇따라 손아귀에 광둥의 정무를 틀어쥐었다. 장쩌민파 상무위원 장가오리는 석유부 마오밍 석유공업회사의 부사장, 마오밍시 부서기, 광둥성 부성장 등에 임명되었다. 마오밍은 광둥성에서 파룬궁 박해가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였다. 마오밍 지역의 파룬궁 박해는 시위 서기와 정법위 서기가 두목이며, ‘610’이 주모자이고, 공검법(公檢法)은 이에 야합했다.

속담에 ‘선악에는 응보가 그림자처럼 따른다.’라고 했다. 중공은 비록 파룬궁을 박해한 체제 내 인사들이 악보를 당한 소식을 극구 봉쇄했지만, 해외 언론에서 파룬궁을 박해하고 악보를 받은 사례를 수록한 건만 해도 1만 건에 달한다. 형을 선고 받아 투옥되고, 자살하고, 병으로 죽고, 벼락 맞아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돌연사로 죽는 등 악보의 형식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2002년부터 2014년까지 마오밍의 시위 서기로 4명이 임명되었는데 3명이 나 떨어졌다.

1) 저우전훙(2002년부터 2007년까지 마오밍시위 서기로 임직) 역시 극력으로 파룬궁 박해에 참여하여 악보를 받았다. 2012년 1월에 조사를 받고, 2014년 2월에 사형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개인 재산을 전부 몰수당했다.

2009년 10월 20일, 저우전훙은 중공 광둥성 상무위원, 광둥성 통전부장의 신분으로 대표단을 인솔해 타이완을 방문할 때 타이완 파룬궁 수련생들의 공개적인 규탄을 받았다.(밍후이왕 2009년 10월 22일 보도, ‘광둥 통전부장 타이완 도착, 파룬궁수련생들이 중공의 박해를 규탄’ 참조)

2) 뤄인궈(1998년 10월, 중공 광둥성 마오밍 시위 상무위원, 시위 비서장으로 임직, 2001년부터 마오밍 시위부서기, 2002년 시위당교 교장 겸직,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마오밍 시위 부서기, 마오밍 시장, 당소조 서기, 2007년 4월 마오밍 시위 서기로 임직)는 임직 기간에 장쩌민 무리를 따라 적극적으로 파룬궁 박해에 참여했다. 직무범죄 혐의로 사형유예 선고를 받았고 감옥에서 암에 걸렸다. 2016년 7월 22일 오후, 양강감옥에서 사망했고 다음날 화장했다.

3) 량이민(2011년 2월 마오밍시 시위 부서기, 마오밍시 부시장, 대리시장, 당소조 서기, 2011년 3월 마오밍시 시장, 당소조 서기, 2013년 2월부터 마오밍 시위 서기, 시인대 주임)

2014년 10월 31일 중공중앙기율위원회 홈페이지에 중공 광둥성 마오밍 시위서기이자 시인대 상무위원회 주임인 량이민이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2016년 12월 7일, 량이민은 이미 ‘솽카이(중공 당적과 공직을 박탈함)’되었다. 량이민의 안건은 량이민이 낙마해서부터 ‘솽카이’될 때까지 전후해 조사기간이 무려 2년 2개월이 걸렸는데 이는 사건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음을 말한다.

맺는 말

18년 동안 파룬궁 박해 진상이 널리 전해졌다. 특히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생체 적출해 폭리를 취한 중공의 죄악이 국제독립조사기구에 의해 확인되고 폭로 된 후, 많은 중공의 공무원들은 중공이 청산될 날이 멀지 않았고 앞으로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 이미 박해에 참여했던 공검법사의 직원들도 파룬궁은 사람을 선하도록 가르치고 사회에 유익하다는 진상을 알게 되었다.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더는 파룬궁을 박해하는데 참여하려 하지 않고 양심적인 선택을 하고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멈추었으며 탈당하여 자신을 구하는 길을 선택했다.

현재까지 중공의 당, 단, 대의 조직에서 탈퇴한 ‘3퇴’ 국민이 이미 2억 6천만에 달한다. 이미 20만이 넘는 파룬궁수련생과 가족이 파룬궁을 잔혹하게 박해한 장쩌민의 죄행을 실명으로 고소 고발했다. 2017년 3월 15일 밍후이왕 보도에 따르면 최근에 파룬궁수련생을 무죄 석방한 사례가 10건에 달하고, 17명의 파룬궁수련생이 이미 무죄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하늘은 이미 죄악이 하늘에 미치는 장쩌민 무리와 극악무도한 중공의 멸망을 결정했다. 전 세계에서 장쩌민 심판이 초읽기에 돌입했다. 정과 사의 대전에서 사람마다 모두 하늘의 심사와 검증을 받고 자신의 구체적인 표현에 따라 최종적인 자리를 확정하게 된다.

사실 죄를 용서받을 수 없는 장쩌민 무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오직 당신이 이 세상에 살아 있고 아직도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자신을 위해 악을 버리고 선을 선택할 기회가 있다. 박해에 참여해서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오직 진상을 더 많이 알고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멈추며 파룬궁수련생을 선하게 대하면서 속죄하고 사악한 당에서 탈퇴해야만 광명과 미래가 있을 수 있다.

마오밍 지구에서 여전히 파룬궁 박해에 참여하고 있는 공무원들은 저우전훙, 뤄인궈, 량이민, 궈즈링(화저우 정법위원회 부서기, 11년 형 선고 받음)의 전철을 밟지 말고 양심적인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소중히 여기자! 아직도 구도해야 할 중생이 있으며, 신불이 남겨준 시간은 정말 많지 않다.

원문발표: 2017년 3월 21일
문장분류: 천인사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3/21/344568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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