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태산(秦山) 정리
[밍후이왕] 강희제는 ‘정훈격언(庭訓格言)’에서 이런 말을 했다. 대략 뜻은 이러하다.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땅히 관용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남이 득의양양한 일이 생기면 그를 위해 기뻐하고 남이 실의에 빠진 것을 보면 연민과 동정을 표해야 한다. 사실 이런 심태는 자신에게도 아주 좋은 점이 있다. 만약 한 사람이 남의 성공을 질투하기만 하고 남의 실패에 대해 즐거워한다면 어찌 남들과 함께 일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마음만 어지럽힐 뿐이다. 옛말에 ‘남이 어떤 소득이 있으면 자신이 소득을 얻은 것으로 여기고, 남이 어떤 것을 잃으면 자신이 잃은 것과 같이 대하라’고 했다. 이런 마음과 생각을 가진 사람은 하늘이 반드시 그를 보호할 것이다.”
사람과 어울릴 때 타인이 어느 방면에서 자신을 초과했다고 해서 마음이 불편해지고 평형을 잃는데 심한 자는 질투로 인해 악념이 생기고 악한 짓을 하여 타인을 해친다. 질투로 인해 생긴 결과는 엄중해 남을 해치고 자신도 해친다. 타인을 박해하는 동시에 자신의 말로도 정해버린다. 옛사람들은 늘 이런 말을 했다. “팔자에 결국 있어야 할 것은 반드시 있는 것이니 팔자에 없는 것이면 억지로 구하지 말라.” 남들이 얻었는데 자신은 얻지 못했다고 해서 이로 인해 마음이 불편하면 안 된다. 노력해서 품성을 닦고 선한 일을 많이 하면 반드시 선한 보응이 있게 된다. 하필 개인 이익의 득실을 위해 마음이 평형을 잃고 악한 짓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역사는 우리에게 질투로 인해 악행을 해 얻은 결과가 아주 침통하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우리 함께 역사 이야기를 참고하도록 하자.
방견이 손빈을 질투하다 결국 패하여 죽다
춘추전국시대의 장수 손빈(孫臏)은 이전에 방견(龐涓)과 같이 병법을 배웠다. 방견은 일 때문에 위나라에 간 후 위혜왕의 장군이 되었지만 자신이 손빈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견은 손빈이 자신보다 현명한 것이 두려워 비밀리에 손빈을 데려와 거짓 죄명을 씌워 그의 두 발을 잘랐다. 아울러 얼굴에 글씨까지 새겼는데 손빈이 숨어서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게 하려 한 것이다. 제나라의 사신이 위나라 수도 대량(大梁)에 왔을 때 손빈은 죄수의 신분으로 비밀리에 제나라 사신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제나라 사신은 그가 얻기 힘든 인재임을 알고 그를 수레에 태워 남몰래 제나라로 데려왔다.
이후에 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할 때 조나라는 형세가 위급하자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제나라의 위왕은 손빈을 대장으로 세우려 했지만 손빈은 사양했다. “혹형을 당해 불구인 사람이 대장을 맡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전기(田忌)를 대장으로 명하고 손빈은 군사(軍師)를 맡아 장막이 있는 수레에 앉아 전투를 지휘했다. 전기는 병사를 거느리고 바로 조나라로 가려 했지만 손빈은 이렇게 말했다. “엉킨 실타래를 풀려면 이 두 주먹을 억지로 잡아당기면 안 됩니다. 싸움을 말리려는 사람은 격투 속에 말려 들어가면 안 됩니다. 싸움을 건 자의 급소를 알아야 합니다. 싸움을 건 자는 형세의 제한을 받기에 스스로 힘이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위나라와 조나라가 서로 공격하고 있다면 위나라의 정예부대는 반드시 국경 밖에서 기진맥진하고 있을 것이고 늙고 약한 잔병들만 국경 안에서 있을 것입니다. 대장은 군대를 이끌고 불같은 속도로 위나라 수도로 들어가 요충지를 점거하고 텅 빈 그곳을 공격하십시오. 위나라는 반드시 조나라를 포기하고 병사를 거두어 자신을 구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단번에 조나라를 구할 수 있고 또 앉아서 위나라를 대패시키는 효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전기는 손빈의 의견에 따랐다. 위군은 과연 한단을 떠나 계릉 지방에서 교전을 벌였고 위나라는 결국 크게 패했다. 이것이 바로 중국 역사상에서 유명한 ‘위위구조(圍魏救趙: 위나라를 포위해 조나라를 구하다)’이다.
13년 후 위나라와 조나라가 연합해 한나라를 공격했고 한나라는 제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제왕은 병사를 이끌고 구원하러 갔고 직접 대량까지 들어갔다. 위나라 장군 방견이 이 소식을 듣고 한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돌아왔고 제나라 군대는 이미 변경을 넘어서 서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손빈은 전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위군은 본래 용맹하여 제나라 병사를 늘 깔봅니다. 제나라 병사는 담이 작고 나약하다고 하는데 작전 지휘자들은 이러한 추세에 순응하면 됩니다. 병법에서는 급행으로 100리를 걸어 적과 상대하면 상장군(上將軍)을 잃을 수 있고 급행으로 50리 길을 걸으면 사병 절반이 낙오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군대가 위나라 변경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10만 명 분의 밥을 지은 솥 자리를 남겨 놓고 다음 날에는 5만 명 분 밥 지은 솥 자리를 남겨놓고 3일째는 2만 명 분의 자리만 남겨놓으십시오.”
방견은 3일간 행군하고 아주 기뻐서 말했다. “나는 제나라 병사들이 담이 작고 나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나라에 들어온 지 3일이 되자 벌써 낙오한 병사들이 절반이나 되는구나!” 그는 보병을 포기하고 가벼운 차림을 갖춘 정예부대만 데리고 제나라 군사들을 추격했다. 손빈은 그의 행적을 예상하고 그날 밤으로 마릉에 도착했다. 마릉의 길은 협소하고 양쪽은 아주 가파로워 군대를 매복시키기 적합했다. 손빈은 나무껍질을 벗기고 하얀 나무에 이렇게 적었다. ‘방견이 이 나무 밑에서 죽는다.’ 그리고는 활을 잘 쏘는 궁수들을 마릉 길 양 옆에 매복시켰다. “저녁에 나무 밑이 등불로 밝아지면 만개의 화살을 동시에 쏴라.”
방견은 과연 나무껍질을 벗겨낸 큰 나무 밑에 도착해 글이 적힌 것을 보고 불로 글을 비췄다. 글자도 보기 전에 매복한 제나라 병사들이 화살 만 개를 일제히 쏘았고 위군은 크게 혼란에 빠졌다. 방견은 달아날 어떤 수도 없자 자결을 결심했고 죽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 “아, 내가 결국 그 놈의 명성을 날리게 만드는구나!” 제나라의 군사는 이 승리를 계기로 추격을 가해 위군을 철저히 격파했고 위나라 태자 신(申)을 붙잡았는데 손빈도 이로 인해 명성을 크게 날렸다.
방견은 군사면에서 손빈보다 못하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질투로 인해 동문을 해쳤다. 손빈의 두 발을 잘라냈고 또 그의 얼굴에 글씨까지 새겼는데 방견의 음험함과 악독함을 보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이 일체의 근원은 바로 그의 질투심 때문으로, 그는 질투로 인해 원한이 생겼고 원한으로 인해 악념이 생겼으며 악념으로 인해 결국 악한 짓을 저질렀다. 이후에 발생한 계릉, 마릉의 교전에서 손빈은 그의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발휘했다. 방견은 손빈의 계략에 패해 죽었다. 그렇지만 방견은 죽기 전에도 깨닫지 못하고 손빈이 천하에 이름을 날리는 것을 못마땅해 했는데 죽기 전에도 질투심이 아주 깊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방견이 죽은 원인은 군사적 재능이 부족한 것 외에 바로 그 자신의 질투심 때문이었다.
‘순자·불순(荀子·不苟)’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군자가 재능이 있으면 도량이 넓어 직접 남을 인도할 수 있다. 재능이 없다면 공손하고 겸손하게 시중을 들 수 있다. 소인이 재능이 있으면 교만하여 남을 깔보고 무시한다. 재능이 없으면 질투하고 원한을 품어 남을 비방하고 무너뜨린다.” 방견과 손빈의 이 한 단락 역사적 사실은 소인의 질투심이 결국 자신과 남을 해쳐 비참한 말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 정정당당한 군자가 되어서 광명정대하게 생활해야지 질투로 인해 어두운 구석에서 남을 해치려는 음험한 소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계속)
문장발표: 2016년 7월 3일
문장분류: 천인지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7/3/3307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