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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심은 남도 해치고 자신도 해친다 (하)

글/ 태산(秦山) 정리

[밍후이왕]

현명함과 재능을 질투한 ‘구밀복검(口蜜腹劍)’ 이임보, 결국 가문이 멸망

이임보(李林甫)는 마음속에 쌓은 담이 아주 높아 사람들은 그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는 면전에서 아부를 잘했고 암암리에 음해하면서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무릇 당현종과 관계가 밀접한 사람과 처음에는 사이좋게 지내려고 애쓰다가 권위가자신에게 접근하기 시작하면 온갖 수단으로 그를 제거하려 애썼다.

개원24년(736년) 당현종은 우선객(牛仙客)을 겸령상서(兼領尚書)로 책봉하려 했다. 장구령(張九齡)은 우선객의 학식이 높지 않다며 극력 만류하다가 현종의 기분을 건드렸다. 이임보는 사적으로 현종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재능이 있으면 되지 경륜이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천자가 사람을 쓰는데 안 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당현종은 이후 결당을 이유로 장구령, 배요경(裴耀卿)의 재상 직위를 파면하고 이임보, 우선객을 재상으로 임명했다. 이임보는 중서령으로 현전 대학사를 모집해서 국사를 수정했다. 이후에 감찰어사 주자량(周子諒)이 우선객이 재상의 재목이 아니라고 말하자 현종은 그에게 곤장형을내려 죽여 버렸다. 이임보는 또 기회를 타서 진언하기를 주자량을 장구령이 추천했다고 했다. 결국 장구령은 형주장사로 좌천됐다.

이임보는 또 권위가 날마다 올라가는 양신긍(楊愼矜)에 대해 의심이 일었다. 이임보는 왕홍(王鉷)을 어사중승으로 추천하고 그를 심복으로 삼았다. 왕홍은 양신긍의 멸시를 당해 그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임보의 이간질에 유언비어를 만들어 양신긍이 수양제의 현손(玄孫-손자의 손자)이고 술사들과 결탁해 몰래 수나라를 다시 세우려고 한다고 했다. 당현종은 화가 나서 양신긍을 하옥시켰고 심문하게 했다. 이임보는 모함해 전중사어사를 시켜 참서(讖書-예언서)를 소매 속에 넣고 양신긍 집에서 수색해낸 것이라고 말하게 했다. 결국 양신긍은 가문이 멸족됐다. 천보(天寶) 8년(749년) 함녕(鹹寧) 태수 조봉장은 이임보의 죄상 20여 가지를 폭로하려 했지만 상소문이 올라가기도 전에 이임보가 한발 앞서 태수를 체포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했다는 죄로 곤장을 쳐서 죽였다.

‘자치통감 당기(唐紀)31’에는 이렇게 기재했다. 이임보는 재상으로서, 조정에서 재능과 공로가 자신 위에 있거나 당현종의 신임을 얻어 권세가 자신을 능가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안간힘을 다해 그를 제거했다. 문학적 재능이 있어서 관직에 오른 사람에 대해서는 더욱 경계하거나 혹은 겉으로는 사이좋게 지내고 좋은 말을 하면서 뒤에서는 음해한다. 이런 이임보를 ‘구밀복검(口蜜腹劍-입에는 꿀, 배에는 검)’이라고 했다.

당현종은 이전에 근정루에서 풍악을 울리고 가무를 즐겼다. 병부시랑 노현(盧絢)은 현종이 자리에 없는 줄로 알고 성루 아래서 말을 타고 채찍을 때리며 유유히 지나갔다. 그의 늠름한 모습에 현종은 찬탄을 금치 못했다. 이임보는 이를 알고 노현이 현종의 중용을 받을까 봐 노현의 아들을 불렀다. “자네 아버지는 워낙에 명망이 있고 영남도의 교주(交州), 광주(廣州) 등지에서 능력 있는 관리가 모자라서 폐하께서는 자네 부친이 그곳에 가기를 원하네. 만약 자네 아버지가 영남으로 가려 하지 않으면 관직에서 강등될 것이네. 내가 방법을 알려줄 테니 그에게 낙양에 가서 태자의 빈객이 되거나 태자를 도와 일하는 것도 좋네. 이것도 높은 관직이니까.” 노현은 과연 영남으로 가려 하지 않았고 이임보의 건의대로 스스로 낙양에 가서 관직을 맡았다. 이임보는 또 그를 화주(華州) 자사(刺史)로 임명시키고 얼마 안 가서는 또 현종에게 이를 알리면서 그가 병에 걸려서 일을 할 수 없다고 모함해 첨사(詹事)로 강등시켰다.

당현종이 이전에 이임보에게 물었다. “엄정지(嚴挺之)는 현재 어디에 있느냐. 이 사람은 계속 쓸 수 있다.” 엄정지는 이전에 조정에서 쫓겨나서 강주(絳州)에서 지방 관리로 있었다. 이임보는 그가 다시 중용될까 두려워 그의 동생 엄손지를 불렀다. “폐하는 자네 형을 아주 중용시키고 싶어하는데 자네 형에게 상소하여 풍질(風疾)이 있어서 경성에 돌아와 치료해야 한다고 하게. 이렇게 되면 그가 조정으로 돌아올 수 있다네.” 엄정지는 이것이 계략인 줄 모르고 상서를 써서 현종에게 올렸다. 이임보는 그의 글을 들고 현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정지가 나이가 이미 많은데다가 근래에 또 풍질에 걸렸습니다. 그에게 한가한 관직을 주어서 안심하고 병을 치료하게 해야 합니다.” 현종은 오랫동안 한숨을 쉬면서 엄정지를 낙양에 보내 첨사로 있게 했다.

이적지(李適之)는 재상이 된 후 이임보와 권력을 다투었다. 그러나 성격이 거칠어서 늘 이임보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 이임보는 전에 이적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화산에 금광이 있는데 개발해서 국가를 부강시킬 수 있는데 황제께서 아직 모르고 계십니다.” 이적지는 다음날 당현종에게 금광 얘기를 했고 현종은 또 이임보에게 물었다. 이임보가 말했다. “신하는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화산은 폐하의 본 명맥이라 왕기가 있어서 개발하기 적합하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현종은 이적지가 일처리를 잘하지 못한다고 여기고 노해 말했다. “자네는 이후에 보고할 때 먼저 이임보와 상의하고 제멋대로 하지 말라.” 이적지는 이후부터 점차 황제와 소원해졌다.

양국충(楊國忠)은 이후에 크게 득세했다. 이임보는 또 기회를 이용해 양국충을 제거하려 했다. 그러나 당현종은 양국충을 더욱 신임했고 이임보는 이를 알고 화가 나서 병들었고 이후에 죽어버렸다. 천보 12년(753년) 양국충과 안녹산이 밀모하여 이임보와 돌궐족인 아부스(阿布思) 부자가 모반을 꾀했다고 모함했다. 안녹산은 또 아부스 부락에서 강등된 장군을 조정에 보내 입증하게 했다. 당현종은 조사를 명했다. 이임보의 사위 양제선은 자신이 연루될까 두려워 양국충에게 아부했으며 본인도 나서서 증언했다. 당시 이임보는 아직 매장하지 않았는데 관직과 재산도 몰수당했다. 아들들은 전부 영남, 금중으로 유배되고 친한 무리 50여 명이 좌천됐다. 당현종은 또 이임보의 관을 열어 입안의 구술을 꺼내고 관복을 벗겼으며 서민식으로 매장하게 했다.

이임보가 재능 있는 사람을 질투한 것은 극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에 의해 좌천되거나 살해당한 관리들이 무척 많기 때문이다. ‘선에는 선한 보답, 악에는 악의 보응이 있다’ 이임보의 말로는 이 말이 진실임을 체현했다. 이임보는 그의 말로가 이렇게 처량하고 비참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이임보의 질투심, ‘구밀복검’도 중국 역사책에 악명으로 남았는데 질투심은 정말로 사람을 심하게 해친다.

‘주자치가격언(朱子治家格言)’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남에게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질투심이 생기지 말아야 하고 남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즐겁고 요행의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된다” 역사를 참고로 하면 질투심은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질투로 인한 대가는 아주 크다. 권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질투가 초래한 대가는 더욱 크고 미치는 영향력도 더욱 악랄하다. 남도 해치고 자신도 해치는데 이런 사람의 말로 역시 뻔하다.

맺음말

질투심은 남도 해치고 자신도 해친다. 역사는 한 차례 또 한 차례 우리에게 참고하라고 알려준다. 사람은 질투심을 제거하고 정정당당하고 광명정대해야 하며 하늘은 선한 사람을 반드시 보호한다. 권력 갖고 놀고 사기를 치며 타인을 모함하는 사람은 좋은 결말이 없다. 평형의 심태로 남과 화목하게 지내고 자신의 수양을 닦는데 노력해야 하며 일시적인 득실로 이성을 잃고 악행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인생은 더욱 평화롭고 성공적일 것이다.

문헌 참고 및 출처

1. 강희황제 애신각라·현엽 ‘정훈격언’,청

2. 사마천,‘사기·권65·손자오기열전’,서한

3. 류후등,‘구당서·이임보전’,후진

4. 사마광 주편,‘자치통감·당기’,북송

5. 주백로,‘주자치가격언’, 명말청초

문장발표: 2016년 7월 4일

문장분류: 천인지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7/4/3308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