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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행 일삼던 中고위관리들, 결국 희생양 되어 줄줄이 감옥행(1)

-중국 고위관료 100여 명 보응 기록

글/ 린친허(林沁和)

[밍후이왕] “저는 농민의 아들입니다.” 중국대륙 어느 언론매체에 현재까지 적어도 53명의 관리들이 공개 참회했는데 그 중 14명이 이 말을 서두로 꺼냈다. 이는 그들이 정계에 오르내리면서 흥망성쇠의 인생 비극을 서술한 것으로, 역사적 배경은 장쩌민이 1999년부터 개인적인 이기심으로 1억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면서 시작됐다. 장쩌민은 분신자살 사기극 등 하늘을 속이는 거짓말로 사람들이 파룬궁을 증오하도록 부추겼고, 그 속에서 이익만을 추구하도록 선동했다. 농민의 아들이든 보시라이 같은 관리 2세든 모두 사리사욕에 정신이 팔려 자신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아랑곳하지 않고 한 걸음 한걸음 장쩌민과 공산당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시작했다. 16년간 납치, 세뇌, 학살, 고문, 생체장기 적출, 불법적인 징역형을 포함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이미 수만 명이 불법 징역 판결을 받았고, 10만 명 이상이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당했으며, 수십 만 명이 세뇌반으로 납치돼 고통을 당했으며, 수천 명을 강제로 정신병원에 보내 강제로 약물을 주입했다.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수백 가지 고문을 가해 몇 천 명이 박해 고문에 시달려 사망했고 수많은 파룬궁수련생들이 강제로 생체 장기적출을 당한 후 살해됐다. 중국공산당의 이 같은 만행을 두고 국제사회는 ‘지구상 유례없던 죄악’이라고 한다.

천리를 위배한 이 박해를 유지하기 위해 이미 장쩌민은 관리들을 부패하게 했고 악행을 저지르는 표준 양식이 되게 했다. 사람들은 돈과 지위의 유혹에 양심을 어기고 적극 장쩌민을 따라 파룬궁을 박해했다. 그렇게 출세했고, 출세해서 더 큰 권력을 가졌고, 권력을 가졌기에 탐오하고 부패할 기회를 노렸다. 결국 박해 때문에 출세하고 승진한 관리들은 탐오부패 죄명으로 낙마되고 투옥됐다. 사람들은 파룬궁을 박해한 관리들이 모두 부패한 자들이라고 말하는데 오늘날 그들이 낙마한 것은 바로 이전에 파룬궁을 박해했기 때문에 받은 업보다.

업보가 오면 낙마도 빠르다. 쌍규(雙規: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당원을 조사함)는 보통 심사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많은 언론에서는 ‘초살(秒殺)’이라는 표현으로 이런 고위관리들의 낙마 통보가 빠름을 묘사하고 있다. 그 중 윈난성위 부서기 처우허(仇和)를 체포해 통보하기까지 2시간이 좀 더 걸렸고, 인촨 우두머리 바이쉐산(白雪山)도 4시간밖에 안 걸렸다. ‘초살’은 갑작스럽지만 전혀 우연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낙마는 빠르지만 심사시간은 상당히 길다. 중국공산당 성 정부 이상 관리들은 낙마한 후 일반적으로 두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통 먼저 기한이 없는 쌍규이고 그 후 비로소 사법 과정에 들어간다.

이런 고위관리들은 심사받는 기간에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겪으며 하루를 1년처럼 보낸다. 자신이 지른 불에 자신이 타 죽게 된 리둥성(李東生)은 2013년 12월 20일에 체포돼 2016년 1월 12일 일심을 받기까지 2년 이상 걸렸다. 박해 앞잡이 저우융캉(周永康)은 2014년 7월 29일에 입건 심사했고, 2014년 12월 5일에 사법기관으로 이송돼 2015년 6월 11일에 무기형 판결을 받기까지 1년 반 정도 걸렸다. ‘군대의 호랑이’ 쉬차이허우(徐才厚)는 2014년 3월 15일 낙마해 조사받았지만 암으로 고통 받다가 2015년 3월 15일에 사망했다.

업보를 믿지 않는다고 업보가 없는 것은 아니며 업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서 업보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박해하기 시작했으면 반드시 업보가 따른다. 데이터가 말해 주듯 파룬궁을 박해한 고위관리들이 업보를 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다.[본문 사례 42에서 무쑤이신(慕綏新)은 2000년 12월에 낙마했음] 최근 ‘호랑이를 잡고 파리를 때리면서’ 업보는 가속화되어 박해에 참여한 대량의 장쩌민 무리 고위관리들이 잇달아 낙마했다.

정부 측 통계에 따르면, 2012년 12월 2일 리춘청(李春城)이 중국 기율 검사위원회 심사를 받기 시작해 2015년 11월 11일 뤼시원(呂錫文)이 조사받기까지 133명의 부성부급(副省部級·차관급) 위원들이 조사 처분을 받았다. 31개 성(省)·시(市)에서 입건한 청국급(廳局級 국장급) 이하 간부는 656명에 달했다. 파룬궁을 박해한 대량의 장쩌민 무리가 낙마했는데 이 역시 그들이 파룬궁을 박해한 업보로 인과응보의 천리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중국공산당 고위관리들의 낙마 추세는 장쩌민 고소의 서막으로 ‘최후의 큰 호랑이’ 장쩌민을 사법처리할 시기가 이미 성숙했음을 의미한다.

2016년 1월 18일까지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민간인을 통해 밍후이왕에 발표된 박해 사례는 88,513가지에 달하고 박해받은 숫자는 97,436명에 달한다. 그중 공식적으로 확인된 파룬궁수련생 3,925명이 박해로 사망했다. 장쩌민, 뤄간(羅幹), 저우융캉, 보시라이, 쩡칭훙(曾慶紅) 등은 30여 개 국가의 파룬궁수련생들로부터 ‘집단학살죄’, ‘고문죄’, ‘반(反) 인류죄’로 국제 법정에 고소돼 국제적인 규탄을 받았다.

2015년 5월부터 중국대륙의 파룬궁수련생들은 장쩌민을 고소하는 붐을 일으켰다. 2016년 1월 16일까지 적어도 202,943명(172,006 사례)의 파룬궁수련생과 가족이 중국 최고인민검찰원에 실명으로 고소장을 접수했고, 최고 인민 검찰원이 장쩌민을 기소해 최고 인민법원에서 영장을 발부하도록 요구했다. 게다가 수십 만(파룬궁수련생을 포함한 가족과 정의로운 인사) 사람들이 장쩌민이 파룬궁에 자행한 범죄 행위를 중국 최고인민법원과 최고 인민검찰원에 고소하는 형사 고소장을 보냈다.

분문에서는 중국공산당 부성부급 이상 106명의 관리들이 낙마한 상황을 간단히 소개한다. 파룬궁 박해에 참여한 중국공산당 각급 관리들은 이를 교훈으로 즉시 박해를 중단하고 장쩌민을 고소하는 대륙 민중에 대한 교란을 즉각 중지해 화근을 멀리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선택하기 바란다.

1. 낙마 후 심사받아 투옥된 국가급 고위관리

1) 저우융캉(周永康) – ‘정법(政法)조직’ 두목, 파룬궁 박해의 ‘앞잡이’이자 ‘총지휘자’

저우융캉, 1942년생으로 중국 17기 중앙정치국 위원, 상무위원회,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공안, 사법 담당) 서기, ‘610’ 지도팀 팀장이다. 박해 원흉인 장쩌민이 뤄간의 후임으로 앉힌 파룬궁 박해 총지휘자다. 2014년 7월 29일 낙마 후 입건 조사 받았고, 12월 5일 사법 기관으로 이송됐다. 2015년 6월 11일 수뢰죄, 직권남용죄, 고의적 국가기밀 누설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정치 권리를 평생 박탈당했으며 개인재산을 몰수당했다. 저우융캉은 중국공산당 정법계통을 장악하고는 광적으로 파룬궁 박해를 추진했고, 파룬궁수련생들의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등 파룬궁을 박해한 장쩌민 일당의 주요 흉악범이다. ‘세 조직(정법, 쓰촨성, 석유)’의 우두머리 저우융캉이 낙마해 투옥되자 그의 비서 여러 명과 정법위 계통, 쓰촨성과 중국 석유천연가스 그룹의 수많은 부하, 패거리들이 줄줄이 조사 처분 받았다. 각자 영역에서 필사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했던 그들은 금생에 받은 업보로 저우융캉의 순장품이 됐다.

대륙사이트에 따르면, AFP통신은 저우융캉이 쓰촨성 서기를 할 때 강경한 방식으로 ‘명성’을 세웠는데 강제로 ‘파룬궁 정신 운동 단속’ 집행 정책을 포함한다고 보도했다. 파룬궁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저우융캉은 파룬궁 박해를 통해 승진의 길을 닦으려 했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서는 저우융캉이 1949년 이래 처음으로 부패 문제로 정식 조사받고중국공산당 당적을 박탈당하고 사법 재판을 받았다. 또한 1978년부터 지금까지 조사 처분을 받은 최고급 관리이기도 하다.(4인방 구성원이자 전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왕훙원과 장춘차오가 반혁명집단을 조직 지도했다는 혐의로 1977년 7월 당국으로부터 관리 통제를 받았다) 저우융캉의 낙마에 대해 외부에서는 중국공산당 당내 ‘상무위원은 형사 처벌하지 않는다’는 잠재적 정치 규칙을 깨트린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2) 궈보슝(郭伯雄) – 가장 큰 ‘군대 호랑이’

궈보슝, 1942년생으로 상장계급(上將軍銜)이다.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역임했고 2015년 4월 15일에 낙마했다. 그해 7월 30일, 최고 검찰원으로 옮겨져 군사 검찰원에서 그를 처리하게 했다. 궈보슝은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한 군대 내 주요 공범자 중 한 명이다.

2015년 4월 9일, 중국공산당 중앙에서는 중국공산당 기율 조례에 따라 궈보슝을 조직적으로 조사하기로 했지만 공개하지는 않았다. 7월 30일, 중국 기율 사이트에서는 정식으로 궈보슝의 뇌물 혐의를 선포했고,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에서는 그의 공산당 당적을 박탈하기로 했다. 최고 인민검찰원에 옮긴 후 군사검찰기관에 권리를 부여해 법에 따라 처분하게 했다. 궈보슝은 쉬차이허우와 마찬가지로 군사위원회 부주석이지만 그가 해방군 내에서의 자격과 경력은 쉬차이허우보다 높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까지 군대에서 조사받은 사람 중 직무가 가장 높고 자격과 경력도 가장 많은 군관이다.

3) 링지화(令計劃), 해외까지 박해를 넓힌 조직자

링지화, 전 중국공산당 정치협상회의 부주석, 중앙 통전부(統戰部, 중국공산당 중앙통일전선 업무부의 약칭) 부장으로서 2014년 12월 22일에 낙마했다. 링지화가 통전부 부장 재직 시 해외를 겨냥해 파룬궁을 박해하는 정책을 강화했고 특무조직을 장악해 홍콩, 대만, 미국에서 파룬궁 탄압을 강화했다.

링지화는 1949년 이래 처음 조사 처분 받은 중앙사무실 주임이자 유일하게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담임하지 않은 중앙사무실 주임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2년 3월 18일 새벽, 링지화의 아들 링구는 페라리 스포츠카에 여자 친구 두 명을 태우고 베이징 바오푸사교(保福寺橋) 동보로 지점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현장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4) 쑤룽(蘇榮), 10년 전 도망 다니다가 법망에 걸려들다

쑤룽, 전국 제12기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이다. 2014년 6월 14일 낙마 후 조사받아 25일에 면직을 당했다. 2015년 2월, 수뢰죄 혐의로 입건 조사하는 동시에 강제 조치했다. 쑤룽이 중국공산당 지린성위 부서기 직에 있을 때 1999년 7월부터 지린 ‘성위 파룬궁문제처리 영도팀’(즉 ‘610’) 팀장을 맡았다. 쑤룽은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모함했고 직접 세뇌와 박해에 참여했다. 2004년 11월 중국공산당 간쑤성위 서기를 하던 쑤룽이 잠비아를 방문할 때 파룬궁수련생들로부터 소송을 당한 상태였는데 그는 법원 호출장을 받고 놀라 어쩔 줄 몰라 허둥대며 열흘간 도망 다니며 은둔생활을 하다 겨우 중국대륙으로 돌아갔다. 10년 후, 쑤룽은 가장 처음 낙마한 ‘국가급’ 관리가 됐고 ‘부패’ 명의로 당국에 체포됐다.

5) 쉬차이허우(徐才厚) – 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부터 ‘국가 요괴’로

쉬차이허우, 중국공산당 제17기 정치국 위원이자 전 군사위원회 부주석, 상장 계급이다. 2014년 3월 15일 낙마 후 조사받다가 6월 30일 중국공산당 당적에서 제명당했고, 최고 인민검찰원에 이송된 후 군사검찰기관에 권한을 부여해 처리하게 했다. 7월 30일 그는 상장계급을 취소당했고 군인 신분도 박탈당했다. 쉬차이허우는 중국공산당 군 계통에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생체장기 적출에 참여한 주요 책임자이자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한 주요 공범자 중 일원이다. 2014년 12월 11일, 중국공산당 군 신문은 평론 문장을 발표해 쉬차이허우를 ‘국가 요괴’라고 비판했다. 2015년 3월 15일, 쉬차이허우는 암에 걸려 사망하면서 군사위원회 부주석에서 ‘국가 요괴’의 인생을 끝마쳤다.

홍콩 신문 ‘난화 조간신문’은 2015년 3월 군부 쪽 정보인사의 말을 인용해 쉬차이허우와 궈보슝은 장쩌민이 자리에서 물러난 후 계속 결책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리인이라고 보도했다. 군사위원회 주석을 맡은 후진타오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고립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군사위원회 부주석인 궈보슝에게 “시진핑을 5년만 하게 하고 꺼지게 합시다!”라고 말했다. 쉬차이허우는 장쩌민의 의지를 집행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고 파룬궁수련생과 죄수들의 장기를 생체 적출한 주요 책임자로서 그가 장악한 군대 총 후방 지원부에서 협조하고 집행했다. 시진핑 재임 중인 2014년, ‘해방군 신문’은 쉬차이허우를 ‘국가 요괴’, ‘반역자’라고 지칭하며 그는 정치 기회주의 양면성을 가진 인물로, 과시하기 좋아하고 가식적이며 “거짓 가면으로 극히 더러운 영혼과 추악한 행위를 덮어 감추고 있다”고 크게 비판했다.

6) 보시라이(薄熙來) 파룬궁 박해 주범, 생체장기 적출 주모자

보시라이, 전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중앙위원, 충칭시위 서기다. 2012년 3월 15일 면직됐고 4월 10일에 잠시 직무 해제, 10월 26일 입건돼 강제조치 당했다. 2013년 9월 22일, 보시라이는 무기징역 판결을 받아 감옥에 있다. 랴오닝성 다롄시장, 서기, 랴오닝성 성장 및 충칭시위 서기 등 직위에 있을 때 보시라이는 장쩌민을 바싹 따라 파룬궁을 박해했다. 파룬궁을 박해한 주범이자 생체 장기적출의 주모자이고 다롄에 ‘시체가공 공장’까지 세웠는데 잔인하기 그지없다.

2012년 프랑스 통신사, 홍콩 ‘빈과일보(蘋果日報)’는 보시라이, 구카이라이(谷開來)가 다롄에 있을 때부터 장기와 시신을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에서는 여기에 대해 일찍이 장악하고 있었기에 왕리쥔 사건이 터진 후 신속히 다롄의 인체표본 공장을 압류했다. 이 사건을 통해 수천 가지 생체장기 적출 안건과 보시라이와 공안, 무장경찰 계통을 장악했던 중앙정법위 저우융캉과의 이익 쇠사슬이 드러났다.

7) 천량위(陳良宇) – 장쩌민 ‘후임자’의 비극적 결말

천량위, 중국공산당 제16기 정치위원으로서 중국공산당 상하이 시위 서기를 역임하기도 했다. 장쩌민 무리의 주요 멤버이자 장쩌민이 ‘후계자’로 선택해 키우려 했던 중요 인물이다. 장쩌민이 중국공산당 상하이 시위 서기에서 직접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됐을 때 천량위도 그의 뒤를 따르려고 망상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장쩌민을 따라 파룬궁을 박해했다. 하지만 사람이 제아무리 잘나도 하늘의 이치는 따라가지 못한다. 너무 거만하고 난폭해 중국공산당 당내의 많은 사람들도 그의 악행을 눈꼴사나워했다. 2006년 9월 24일, 천량위는 면직됐고 입건돼 조사를 받았다. 2008년 4월 11일, 천량위는 수뢰죄, 직권 남용죄로 18년 유기징역 판결을 받았고 개인재산 30만 위안을 몰수당했다. 천량위는 상소하지 않고 일심 판결에 따라 감옥에 들어갔다.

8) 류치(劉淇) – 미국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다

류치, 중국공산당 제16기 정치국 위원이자 중국공산당 베이징 시위 서기로 파룬궁을 박해한 범죄행위로 해외에서 고소당했다. 2004년 12월 8일, 파룬궁수련생의 고소에 근거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 법관 윌킨(Wilkin)은 지방법관의 심의 결정을 확인한 후 류치에게 유죄판결을 내렸고, 그의 담당 경찰은 파룬궁을 박해한 고문과 반(反)인류 범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 외에 류치 자체가 바로 큰 부패 관리다.

2. 부(部) 위원회에서 낙마해 투옥된 고위 관리들

백여 명의 고위관리 중 두 개 이상의 성‧시(省市), 부(部) 위원회, 성‧시와 부(部) 위원회 사이에서 근무한 뒤 박해에 참여한 한 사람은 적어도 18명이 된다. 이들은 경계를 뛰어넘어 박해에 참여해 진급했고 지금은 낙마했다. 지방에서 필사적으로 박해해 장쩌민 집단으로부터 공을 인정받아 부위원회로 진급했고 장소와 업무를 바꾼 후에도, 중앙에서 지방 관리를 맡은 후에도 계속해 박해를 추진했는데 부 위원회 사이에서 전임하거나 어느 한 무리 세력이 필요해서였다. 예를 들어 국가 상공업(工商) 국장 순훙쯔(孫鴻誌)는 원래 지린에서 박해를 주관했고, 국토자원 부장 톈펑산(田鳳山)은 예전에 헤이룽장에서 악행을 저질렀으며, 인민대표대회 환경보호 위원회 부주임 바이언페이(任白恩培)는 원래 윈난 ‘전향(파룬궁 수련을 포기시킴) 기지’의 추진자였다. 그들의 공통된 인생궤적은 파룬궁 박해에 동참했고 낙마 후 투옥됐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더욱더 그들의 과거와 현재까지 파룬궁을 박해해 업보를 받은 연계를 보아낼 수 있다.

9) 공안부 부(副) 부장 리둥성(李東生), 톈안먼 분신자살 조작 날조 연출, 15년형 받아

리둥성, 1955년생이다. 2000년 7월, 장쩌민이 분신자살 사기극을 만들어 파룬궁 박해가 창궐했을 때 영화방송 TV총국 부국장으로 있었다. 2002년 5월, 파룬궁에 대한 원한을 선동하고 박해해 장쩌민은 그를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부부장으로 진급시켰다. 그 후 장쩌민 잔여세력이 의지하는 간부 중 한 사람이 됐고, 공안부 부(副)부장, 당위 부서기(정 부장급), 부 총경 교육감 경찰계급, 제18기 중앙위원회 위원 등 직위에 올랐다.

2013년 12월 20일 리둥성은 체포됐고, 2016년 1월 12일 톈진시 제2중급법원에서는 리둥성 수뢰안건에 대해 일심판결을 내렸다. 15년 유기징역에 불법소득 100만 위안(약 1억8천만 원)을 몰수했고 리둥성은 법정에서 상소 포기를 선언했다.

리둥성은 중국공산당 중앙 ‘610’ 영도 소조 부소장, 중앙 ‘610’ 사무실 주임 및 중앙TV 방송국 부국장 등을 역임하면서 전국적으로 파룬궁을 반대하는 선전과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책임을 졌다. 대량의 파룬궁수련생들이 불법으로 체포, 감금되어 판결을 받고, 심지어 강제로 생체장기 적출을 당한 데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톈안먼 분신자살’ 조작극을 만든 감독 가운데 한 사람이므로 비유적으로 리둥성에 대해 ‘자신이 지른 불에 자신이 타 죽었다’고 말한다.

대륙 사이트에 등재된 바에 따르면 리둥성은 1955년 12월생, 남, 한족, 산둥 주청 사람으로 중국 공산당원, 상하이 푸단(復旦)대학 뉴스학과 졸업, 대졸학력이다. 과거 공안부 부(副)부장, 당위 부서기(정부장급), 부총경 교육감 경찰계급,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위원을 한 적이 있다. 2013년 12월 20일 중국기율위원회는 리둥성이 엄중히 기율을 어기고 법을 어겨 조사받고 있음을 공개했다. 2013년 12월 25일 중앙에서는 그를 중앙 방비·처리 사교 문제 영도팀 부팀장, 사무실 주임, 국무원 방비·처리 사교 문제 사무실 주임, 공안부 부(副)부장, 당위 부서기 직무에서 해임했다. 지금은 절차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

리둥성[공안부 부부장]은 중앙방송국에서 근무하다 이후에 부국장으로 임명됐다. 그 기간에 ‘초점방담(焦點訪談)’ 프로그램을 주관했다. 공안부 부부장으로 있을 때 그의 활동은 대부분 부서 이미지 홍보와 만들기에 관련된다. 조직 조사를 받은 그 날 그의 이름은 공안부 사이트 ‘지도자 정보’란에서 삭제됐다.

10) 공안부장 보조 정사오둥(鄭少東)이 조사 처분 받다

정사오둥, 전 공안부 당위위원, 부장 보조로 필사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했다. 2009년 1월 쌍규 당한 후 파면됐고, 2010년 8월 24일 수뢰죄로 사형판결을 받고 2년 집행유예를 당했다. 평생 정치권을 박탈당했고 개인재산은 전부 몰수됐다.

11) 해외 파룬궁수련생을 몰래 감시하고 조사했던 국안부 부부장 마젠(馬建) 낙마

2015년 1월 16일, 중국공산당 국가안전부 부부장, 당위 위원 마젠이 낙마했다. 마젠은 국가안전부 제10국을 책임지고 해외 파룬궁수련생들의 활동을 남몰래 감시하고 조사했다.

12) 사법부장 가오창리(高昌禮)는 전국 변호사에게 일률적으로 파룬궁 고소안을 받으면 안 된다는 명령을 내린 바 있다

가오창리, 전 사법부장으로서 1999년 7월 20일부터 적극적으로 파룬궁 박해활동에 참여했다. 우선 마싼자 여자노동교양소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전형으로 세우고, 여성 대법제자 18명의 옷을 벗긴 후 남자 감방에 가두어 인륜을 파괴하고 양심을 깡그리 저버렸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전국에 널리 보급했다. 사법부는 그의 지시로 전국 변호사에게 일률로 대법제자 신고 안건을 접수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선악에는 보응이 있기에 가오창리는 2000년 말 입건 조사받은 후 면직됐다.

13) 철도부, 정치부 주임 허훙다(何洪達) 14년 유기징역 판결

허훙다, 철도부 당 조직 멤버이자 정치부주임(부부장급)으로서 이전에 하얼빈 철도국 국장직에 있었다. 파룬궁을 박해하는데 참여해 보응을 받았는데 2009년 11월 24일 유기징역 14년형을 받았다.

14) 철도부 부장 류쯔쥔(劉誌軍) 사형집행 유예를 선고받다

류쯔쥔, 전 철도부 당 조직 서기이자 부장으로서 장쩌민 집단의 주요 구성원이다. 2011년 2월 조사 처분 받고 낙마했고, 2013년 7월 8일 수뢰죄, 직권 남용죄로 사형판결을 받았고 2년 집행 유예했다. 동시에 개인재산을 전부 몰수당했다.

15) 국토자원부장 톈펑산(田鳳山), 헤이룽장에서 악행을 저지르다 무기징역 판결을 받다

톈펑산, 국토자원부장, 중앙위원으로서 헤이룽장성 성장에 있을 때 필사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했다. 2005년 12월 업보를 받아 수뢰죄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다.

16) 인민대표대회 환경보호 부주임 바이언페이(白恩培)는 원래 윈난 ‘전향기지’ 추진자였다

바이언페이, 중국공산당 인민대표대회 환경과 자원보호 위원회 전 부 주임위원(정부급)으로서 2014년 8월 29일에 낙마돼 조사를 받았다. 2015년 1월 13일 수뢰죄 혐의로 입건 조사를 받은 동시에 그에 대해 강제 조치를 취했다. 바에언페이가 칭하이, 윈난성위 서기직에 있을 때 적극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했는데 윈난성 파룬궁 ‘전향기지’는 그의 임직 기간에 만든 것이다.

17)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 류테난(劉鐵男) 무기징역 판결 받다

류테난, 전 중국공산당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 국가에너지국 국장이다. 2013년 5월에 조사받았고 2014년 12월 10일에 1심에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다. 파룬궁 박해에 참여해 밍후이왕에 명단이 오른 적이 있다.

18) 중국공산당 중앙 출판 번역국장 이쥔칭(衣俊卿) 면직되다

이쥔칭, 전 중국공산당 중앙 출판번역국 국장으로서 2013년 1월 17일에 면직됐다. 이쥔칭은 장쩌민 무리의 글쟁이로서 헤이룽장 대학 총장으로 있을 때부터 적극적으로 파룬궁 박해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19) 국가공상국 국장 순훙쯔(孫鴻誌)는 애초에 지린에서 박해를 주모했다

순훙쯔, 전 중국공산당 국가 상공행정관리총국 부국장이다. 2014년 12월 26일에 조사받았고 2015년 1월 29일에 면직됐다. 지린성 쑹위안시 부서기, 시장직에 있을 때 파룬궁수련생들이 불법적으로 체포되고 판결 받거나 박해받아 죽은 데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20) 중국공산당 과학기술협회 부주석 선웨이천(申維辰), 파룬궁을 모함해 보응을 받다

선웨이천, 중국공산당 과학기술협회 당 조직 서기, 부주석(정부장급), 서기처 제일 서기다. 2014년 4월 12일 낙마해 조사처분을 받았고 2016년 1월 18일 재판에서 심문을 받았다. 선웨이천은 산시성 선전부 부장, 타이위안시 서기직에 있을 때 적극적으로 파룬궁을 모함하고 박해했다.

21) 화룬집단 회장 쑹린(宋林), 파룬궁을 박해해 업보를 받다

쑹린, 화룬집단 회장, 당위 서기로서 장쩌민 무리다. 박해에 참여했고 2014년 4월 낙마해 조사 처분을 받았다.

22) 국유자산감독관리 위원회 주임 장제민(蔣潔敏) 유기징역 16년 형을 받다

장제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 국유자산감독관리 위원회 주임으로서 2013년 9월 1일에 조사를 받았다. 2015년 4월 13일 장제민 안건에 대해 개정했는데 기소장에는 장제민이 저우융캉의 부탁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주고 직권을 남용했다고 했다. 2015년 10월 12일, 유기징역 16년형을 받았고 개인재산 100만 위안(약 1억8천만 원)을 몰수당했다. 장제민은 석유 계통에서 40년 가까이 일했는데 그 전에 중국석유 천연가스그룹 회장직에 있었고 저우융캉의 ‘석유방’ 주요 멤버였다. 그가 중국석유 천연가스 그룹 고위관리로 재직하는 동안 전반 석유계통에서 파룬궁수련생 박해는 아주 심각했다. 불법적으로 박해, 판결, 노동교양, 감금하거나 이른바 ‘법제훈련센터’로 납치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사례는 수없이 많았다.

23) 중국석유 천연가스그룹 부사장 왕융춘(王永春), 20년 유기징역형

왕융춘, 전 중국석유천연가스 그룹 부회장, 중국공산당 중앙 후보위원이자 ‘석유방’ 주요 멤버로서 적극적으로 파룬궁 박해에 참여했다. 2013년에 조사 처분을 받았고 2015년 7월 20일에 일심 심사를 받았다. 2015년 10월 13일 수뢰죄, 거액자산 수입원이 불투명하고, 국유회사 인원으로서 직권을 남용했다는 죄로 유기징역 20년을 판결 받았고 개인재산 200만 위안(약 3억 6천만 원)을 몰수당했다.

24) 중국 제1자동차 그룹 회장 쉬젠이(徐建一)는 예전에 공개적으로 ‘파룬궁에 대해 호되게 때려야 한다’고 떠벌였다

쉬젠이, 전 중국 제1자동차 그룹 회장으로 2015년 3월 15일 조사를 받았다. 2004년 말부터 2007년 말까지 쉬젠이는 지린시 시위 부서기, 시장, 시위서기, 시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주임직을 맡았다. 공개적으로 ‘파룬궁에 대해서는 호되게 때려야 한다’고 떠벌였는데, 재직 기간에 현지에서 불법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체포하고 박해한 상황이 매우 엄중했다.

25) ‘생체장기 적출’에 참여한 총 후방 지원부 부부장 구쥔산(谷俊山), 사형 집행 유예 판결

구쥔산, 전 중국공산당 해방군 총 후방 지원부 부부장이고 군대 중장 계급이다. 장쩌민, 쉬차이허우를 따라 파룬궁을 박해했고 ‘생체장기 적출’ 범죄에 참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2년 5월에 조사받았고 2014년 3월 31일 고소당했으며 2015년 8월 10일에 탐오, 수뢰 등 죄로 사형판결을 받았는데 집행 유예 2년을 받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