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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 박해에 참여한 중국공산당 610주임과 흉악한 경찰이 당한 응보

[밍후이왕](밍후이 통신원 중국보도)

지린성 퉁화시 얼다오장구 전 610주임이 응보 받아 사망

다이구이이(戴貴義)는 지린성 퉁화(通化)시 얼다오장(二道江)구 정법위 부서기, 610사무실 주임을 역임했으며 적극 장쩌민 깡패집단을 따라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데 참여했다. 그의 임기 동안 얼다오장구 파룬궁수련생은 판결, 노동교양, 세뇌반에 붙잡혀 가 박해받은 사람이 많다. 어떤 파룬궁수련생은 노동교양 기간이 끝났는데도 당국은 가족에게 보증금 1만 위안(약 178만 원)을 내놓으라고 하고 내놓지 못하면 3천 위안(약 53만 원)만 내놓으라고 하며 그렇지 않으면 노동교양소에서 데려갈 수 없다고 했다. 또 다이구이이는 가도주임을 노동교양소에서 나온 수련생 집으로 자주 보내 괴롭히게 했다.

2015년 4월 다이구이이는 응보 받아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다. 가족도 그가 응보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조용히 후사를 처리했다.

허베이성 탕산시 카이핑구 수이우좡 파출소장 창싱타오가 응보 받다

2015년 6월, 허베이성 탕산(唐山)시 카이핑구 수이우좡(稅務莊) 파출소장 창싱타오(長荊濤)는 사위와 식사하러 가는 길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1999년,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를 시작할 당시 싱타오는 탕산시 카이핑구 웨허샹(越河鄕) 파출소의 민경이었으며 적극적으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데 참여했다. 이후에 탕산시 카이핑구 수이우좡 파출소로 전속됐다. 정치 자본을 얻기 위해 장쩌민 집단을 따라 파룬궁 박해 정책인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상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하라’를 실행했다. 2006년 세 번이나 대법제자 집에 가서 불법적으로 가산을 몰수했고 2007년 수이우좡 파출소 소장으로 임명됐다.

그 후 몇 년간 싱타오는 몇 차례 대법제자를 납치하고 가산을 몰수하는 데 참여했으며 대법제자 몇 명을 불법적으로 노동교양, 판결 받게 했다. 대법제자가 그에게 진상을 알려도 듣지 않았다.

인과응보는 천리(天理)다. 싱타오는 장년이고 막 50세인데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해 응보 받았다. 자신의 생명을 바쳤을 뿐만 아니라 가정에도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박해에 참여한 박해자는 빨리 멈추기를 바라고 자신과 가족에 좋은 미래를 선택하기를 바란다.

더후이시 성리 파출소장 위후이가 응보 받아 급사

더후이(德惠)시 성리(勝利)파출소 소장 위후이(于輝)는 남자이며 38세다. 이전에 더후이시 성리파출소 소장을 맡았고 더후이시 전싱(振興) 파출소 소장이며 이후에 더후이시 성리 파출소 소장으로 임명됐으며 3개월이 되기 전 사망했다.

재직 기간위후이는 여러 차례 맹목적으로 상부의 명령에 따라 파룬궁 박해에 참여했다. 2015년 3월 21일 더후이시 헬스클럽에서 급사했다. 위후이는 생전에 신체가 건강하고 몇 차례 베이징 309병원에 가서 검사받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그는 이전에 응보가 걱정되곤 했다.

이 일은 더후이시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젊고 40세도 넘지 않았으며 신체는 상당히 튼튼했다. 아버지 위촨쥔(于全軍)은 검찰원에 있고 아내는 교사다. 그날 위후이의 둘째 아이를 출산하려 했다. 그날 그는 집에서 밥을 하고 아내를 병원 수술실로 보냈으며 헬스클럽에 운동하러 갔다. 하지만 아이가 출생하기 전에 그는 급사했다.

이것은 파룬궁수련생과 선량한 민중이 보기 싫어하는 것이다. 인연 있는 사람과 박해에 참여한 사람이 파룬궁 진상을 알고 박해에 참여하지 않으며 삼퇴하고 생명 보호를 택하는 것을 바라고 610사람도 이를 교훈으로 삼아 손을 멈추고 장쩌민 고소 열풍을 가로막지 말기를 바란다. 장쩌민이 비로소 이 일체의 주범이다. 더는 그를 위해 생명 바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지위와 명예도 잃고 몸과 재산도 잃는다.

문장발표: 2015년 10월 20일

문장분류: 천인지간>인과>업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0/20/3176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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