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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집단 따라 파룬궁 박해한 쉬차이허우, 악보당해

[밍후이왕] 2014년 6월 30일, 중공은 전 중공 군위 부주석 쉬차이허우(徐才厚)를 군 검찰에 보내 사법처리한다는 소식을 갑자기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쉬차이허우는 직권을 이용해 승진, 이익에 관여한 뒤 가족을 통해 뇌물을 받은 수뢰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 그의 범죄행위는정절의 엄중함에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3월 15일, 무장경찰 수십 명이 베이징 301병원 병상에서 쉬차이허우를 연행하면서 또한 그의 아내, 딸과 비서도 함께 연행했다. 71살인 쉬차이허우는 자신이 심었던 악과를 거둔 것이다.

랴오닝 와팡덴(瓦房店)에서 출생한 쉬차이허우는 1999년 9월부터 2004년까지 중앙 군위위원, 총 정치부 상무부주임, 중앙 군위규율위원회 서기, 총 정치부 주임을 역임했고, 2004년 후에는 중공중앙 서기처 서기, 중앙군위 부주석 등을 역임했다. 그는 당시 집권자 장쩌민의 유능한 간부였고 ‘장쩌민의 군에서 가장 총애’ 받았으며, 군에서 장쩌민의 대변인이었고,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의 정변에 말려든 사람이었다.

쉬차이허우

쉬차이허우는 군대에서 가장 높은 부패공무원 중 한 명이었다. 또한 군대에서 장쩌민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었고, 저우융캉, 구위산, 보시라이 등과 이권이 개입되어 갈라놓을 수 없는 사이였다. 곳곳에서 장쩌민을 추종하는 것 말고도, 쉬차이허우는 장쩌민의 발걸음을 따라가면서 파룬궁 박해정책을 에누리 없이 집행하였고, 군대에서도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했다.

군대의 특수성과 기밀성으로 인해 그가 저지른 파룬궁박해는 지방보다 더욱 외부에 알려지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어떤 것은 폭로되어 나왔다. 쉬차이허우의 범죄 행위는 아래와 같다.

1. 군대 내부의 파룬궁 박해에 책임 있어

중공 군대조직은 장 씨 정치 깡패 집단의 파룬궁 박해 중, 아주 사악한 배역을 맡아서 했다. 위로부터 아래로 층층이 610 체계를 조직하여 박해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른바 ‘610사무실’은 중공 장쩌민 일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1999년 6월 10일에 설립한 전문적인 불법조직으로 파쇼의 게슈타포와 비슷하다.

해방군 총 정치부는 중공군인의 사상을 통제, 세뇌하는 것을 책임진 중공 군대 몸에 붙은 부체로서, 정치적으로는 장 씨 집단의 박해 명령을 관철하여 집행했다.

중공군 상층에서는 중앙급 두목이 앞장서 총 정치부에 610 사무실을 설립하고, 보위부에서 구체적으로 일체 일을 처리한다. 그밖에 그 기구는 또 몇 개 팀을 건립하여, 저질 정치문인을 고용하여 전국 각지 군대에 근무하는 파룬궁 수련생을 지역별로 나누어 정신적인 박해와 사상기만을 감행했다. 뿐만 아니라 파룬궁을 모함하는 서적을 만들어 출판했다. 육, 해, 공, 2포병, 무장경찰 등, 각 부대와 서로 협력하여 박해기구를 건립하고, 파룬궁과 연관되는 일체 일들, 특별히 급한 것은 특별 처리했고, 필요한 사람, 재정, 물건은 정치 임무로 전력을 다해 해결하는 데 누구도 소홀히 하지 못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각 군, 사단에서도 상응된 610 조직을 건립했으며, 장쩌민의 박해 지시를 구체적으로 실시했다.

정치 졸개들은 크고 작은 전체 관병 회의에서 파룬궁을 모함하는 거짓말을 주입했다. 파룬궁을 모함하는 데에는 서구 반화세력의 지지가 있었고, 파룬궁에 대한 관병들의 적대정서를 선동했으며, 파룬궁을 모함하는 사진을 만들어 전시했고, 이른바 적발 비판회를 열어 관병들이 이와 관계된발언을 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이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독해당하여 미혹 됐는지 모른다. 기만되고 미혹된 관병은 파룬궁을 박해하는 도구로 이용되어 나쁜 일을 적지 않게 저질렀고 파룬궁에 적지 않은 죄악을 지었다.

610 조직은 파룬궁 수련생에게 가할 수 있는 박해는 다 했다. 이 테러 조직은 또 층층이 명령을 하달하였고, 전역하여 지방에서 사업하는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2년 안에 대법수련을 계속 견지하면 여전히 원 군사 단위와 지도자에게 책임을 추궁하였다. 그래서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관직을 지키기 위해 군 내의 사악 집단의 각급 두목은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박해에 모든 힘을 다 동원했다. 군대와 지방의 610은 서로 연합하여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판결, 노동교양, 세뇌반, 노임중지, 주택몰수, 심신박해, 위협, 공갈, 유혹, 강제 소란 등 쓰지 않은 것이 없을 만큼 박해가 극에 달했다.

2. 중공 중앙군위는 직접 박해정책을 제정한 것에 책임져야

쉬차이허우가 중공 군대를 주장한 기간 동안, 각지 군병원이 생체장기 의식에 대량 참여한 죄악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밍후이왕 종합보도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6년 5월까지 중공중앙군위는 6차례나 되는 외국 관련 종교문제 처리 전문회의를 열었는데 주요하게는 파룬궁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 후, 중공 군대 병참부를 위주로 군부는 조직적으로 층층이 가동했다. 중공이 정권을 건립한 이래 만들어진 생체장기적출 계통을 만들어, 박해 원흉 장쩌민의 의향에 따라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를 적출하기 시작하였고, 그의 ‘육체를 소멸하는’ 박해 목적에 도달했으며, 장기 판매는 장쩌민의 묵인으로 군대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중공이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를 생체에서 대규모로 도둑질하기 시작하여 2003년~2006년까지는 절정기에 달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중공군대는 독립적인 병참계통, 무장보위, 교통운수, 정보 비밀, 의료 설비를 동원해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와 이식 산업을 주도했고 중국의 98% 장기 이식 근원을 통제했다.

해방군 총 참모부는 파룬궁 박해에 직접 참가해 군대의 지휘계통이 되었고, 파룬궁 박해 중 마찬가지로 극히 나쁜 작용을 일으켰다. 그는 소유한 정보, 간첩과 군사 기술을 파룬궁 박해에 운용하였는바, 모든 ‘파룬궁 정보‘를 수집하고 국제 통신을 도청했으며, 파룬궁 창시자인 리훙쯔 선생에 대한 암살 활동 조직을 포함해서이다.

3. 쉬차이허우는 뤄주화(羅祖華)를 반드시 체포하고, 살았거나 죽었어도 반드시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뤄주화 노인은 원래 구이양 여중 학생이었다. 1950년에 지원군에 참가한 적이 있으며 난징군구에서 사업을 했는데, 일이 바쁘다보니 지쳐서 온 몸에 병이 들어 어쩔 수 없이 고통 속에서 매일 매일 생활했다. 1993년 파룬궁을 수련한 후 온 몸의 병이 다 나았다. 그런데 그녀가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다하여 2001년 1월 불법 노동교양 2년을 당했고, 또 꾸이저우성의 이른바 ‘법제양성 센터’(즉 란니꺼우 세뇌반)에 압송돼 2년간 불법 수감된 뒤 풀려났다.

2008년 6월 28일 오후, 난징 군구 바이샤구 제1군구 2간부휴양소 퇴직 간부 뤄주화(여)노인이 행인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 모습을 본 구이양 중중파출소 악경이 그녀를 체포하고는, 화시 군구 간부휴양소에 뤄주화를 집으로 압송했으니 거주지를 감시하라고 했다. 구이저우 군구 화시 소장 숭밍량, 레이밍은 특대 자물쇠로 뤄주화를 집에 가뒀으나 그녀는 다시 도망쳤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 일은 구이저우 군구와 중앙군위를 노하게 했다고 한다. 중공 중앙 군위 부주석 쉬차이허우는 뤄주화(羅祖華)를 반드시 체포해야 하고, 살았으면 사람을 봐야 하고, 죽었으면 시신을 확인해야한다는 명령을 내렸다고 내부에 전해지고 있다. 그들은 첨단 장비로 구이양의 거리 골목, 그리고 그녀의 친척 집을 두 달 동안 계속 수색했다고 한다.

9월 2일 저녁, 뤄주화 노인은 병원에 입원한 남편에게 전화를 건 후 납치당해 구이저우 군구 화시 간부휴양소에 불법으로 갇혔다. 6명의 군인이 24시간 휴양소 2층에서 그녀를 지키고는 자립생활을 할 수 없는 80여 살의 남편과 갈라놓았다. (구이저우 군구는 또 그녀의 남편에게 이른바 심사박해를 감행했다고 한다) 또 악당의 일행은 그녀의 집 담장(원래 3m)을 6m로 높이고 담장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한다. 출입할 때 당직자가 뒤따랐고 인신의 자유가 없었다.

2010년 3월 30일의 밍후이왕 소식을 따르면, 구이저우에 사는 칠순 노인 뤄주화는 가택연금을 당한지 이미 1년 반이 되었다고 한다.

장쩌민의 공모자들인 보시라이, 저우융캉, 쉬차이허우…… 저마다 파룬궁 박해의 길에서 선한 말을 듣지 않고, 앞 다투어 함께 분주히 달리면서 두 손에 선혈이 낭자하더니 결국엔 악과를 따냈는데 진정으로 화를 자초한 것이다.

한 평론가는 중공 고관의 부패는 표상이고, 사악한 것이야말로 근본이라고 말했다. 통계에 따르면, 중공 18대 이래 부패 척결로 낙마한 고관의 절대 다수는 모두 장쩌민 집단과 주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파룬궁을 잔혹하게 박해한 자들이다. 민간의 여론은 이 역시 선악에는 응보가 따른 것이라고 한다.

아직도 파룬궁을 박해하는 길에 선 사람들은 제동을 걸어라, 그렇지 않으면 정말이지 기회가 없다!

문장발표 : 2014년 7월 3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7/3/2942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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