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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사자에 대한 깨달음

글/ 경지(敬紙)

[밍후이왕] 석조는 일종 조각예술로서 중국에서 이미 몇 천 년의 역사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돌사자 조각이다. 고대에서 돌사자는 절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제왕이나 재상의 관저에서 혹은 관청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원나라 이후부터 백성들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왜냐하면 돌사자는 사(邪)한 것을 물리치는 작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더욱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있는데 점차 동(銅)으로 주조된 사자도 생겨났다.

중국의 돌사자 모양은 진짜 사자와 매우 큰 차이점이 있다. 현실에서의 사자는 뭇짐승의 왕으로써 분노하지 않아도 위엄이 있으나 조각된 돌사자는 형태가 각각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이전에 베이징에 관광을 간 적이 있었다. 이화원(頤和園) 정문으로 들어가면서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이 티베트 교 건축물인데 건축물 앞 광장에 두 마리의 돌사자가 있었다. 돌사자의 발을 만지고 돌사자의 두 눈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갑자기 이 돌사자가 매우 익숙한 느낌이 들면서 마음속에 두 글자가 나타났다. ‘노신(老臣).’ 몇 백 년이 흘러갔어도 이 두 노신은 비바람을 맞으면서 여전히 이곳을 충실히 수호하고 있었다. 일월(日月)이 증명하는 이 충심은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뒷문을 나서니 또 한 쌍의 젊은 돌사자가 있었다. 젊다고 하나 정문의 돌사자와 역사가 똑같았다. 몇 백 년을 거쳤다고 하나 여전히 위풍을 감출 수 없었으며 눈에서는 총명과 유능함이 뿜어져 나왔다.

베이징의 팔대처(八大處) 공원에 이르니 8개의 큰 절이 있었다. 비록 역사 유적지이긴 하나 현대에 이르러 여러 차례 수건해 옛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곳 돌사자가 사람에게 주는 느낌은 매우 좋지 않았다. 산뜻한 외모에서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교활한 눈길이었다. 겉 표면은 위엄이 있어 보이나 사실 교활한 느낌이 드러나는데 이 역시 조각자의 심태가 표현된 것이다. 조각된 작품은 신앙에 중대한 의의가 있는 것으로 조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명리와 재물이라면 그 조각된 작품에서도 무의식중에 교활한 이미지가 배어들게 된다. 이화원과 팔대처 공원 두 곳의 돌사자를 비교해보면 고대와 현대 기술과 내포가 완전히 다름을 알 수 있다. 고대가 확실히 현대에 비해 재능이 한 단계 높았다.

그리고 또 한 곳의 사자가 있었는데 이 사자를 현대인들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오래 전에 한 친구가 베이징 고궁(자금성)에 있는 한 쌍의 돌사자를 극구 칭찬했으나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천하에 조각된 돌사자가 그렇게 많은데 고궁의 돌사자라고 별난 것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건청궁(乾淸宮) 앞 광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먼 곳에 있는 한 쌍의 동(銅)사자가 눈에 들어오면서 여태껏 느껴본 적 없는 영기(靈氣)가 동사자 몸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그 친구가 왜 그렇게 이 동사자를 좋아하는지를 알게 됐다. 결국 나도 매우 좋아하게 됐다. 내가 그것들을 보게 된 순간부터 영원히 그 사람에게 강요하다시피 뿜어져 나오는 영기를 잊을 수 없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이 한 쌍의 돌사자는 더욱 대단했다. 머리는 높게 추켜들었으나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고 머리 갈기는 왕성했으며 천하를 노려보는 위세가 있어 사면팔방을 진동케 하는 왕자의 풍모가 있었다. 이곳은 황제가 조정에서 집무를 보는 곳으로서 물론 그에 걸맞는 풍채가 있어야 했는데 천하의 중심을 굳건히 지키는 사자 중의 사자, 왕 중의 왕이어야 했다.

세 곳의 사자는 서로 다른 특색이 있으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돌사자의 역사와 문화도 이처럼 유구해졌다. 이번 경험이 있은 뒤로 나는 비로소 돌사자의 표정은 눈길이 좌우지함을 알게 됐다. 어떤 것은 장엄하고, 어떤 것은 흉악하며, 어떤 것은 노련하고, 어떤 것은 바보 같아 보였는데 이 모든 것은 조각자의 심태와 경지에서 비롯됨을 알게 됐다.

석가모니 부처는 “불법(佛法)수련은 수사자와 같이 용맹정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절의 대웅전 양편에 모두 두 마리의 용맹한 돌사자가 수련인에게 수행을 고무격려하고 있다. 불교에서 많은 사자는 모두 부처와 보살의 호법(護法)신 또는 탈 것으로 되어 있다. 그 형상은 아마도 수련자가 수행 중에서 다른 공간에서 법을 수호하고 있는 사자를 본 형상일 것이며 장인을 통해 인간 세상에 표현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인간세상의 사자 형상과 차이점이 매우 클 것이다. 이는 신계(神界)의 짐승으로 인간세상의 평범한 산물이 아니다. 중국 전통문화에 매우 많은 신계의 짐승이 인간 세상에 표현되는데 예를 들면 용이나 봉황이다. 평소에 볼 수 없는 것들이나 형상은 인간세상 짐승의 장점이 집결되어 있다. 이 또한 전통문화는 신전(神傳)문화라는 간접적인 증거가 되며 신계의 각종 사상과 이념을 지니고 있다.

전통문화에서 늘 “글은 그 사람과 같으며, 글자도 그 사람과 같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한 사람이 해낸 일은 모두 이 사람의 심태를 반영하며 성격과 인생경험도 포함된다.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한 사람이 해낸 모든 작품 속에는 모두 그 사람의 정보가 배여 있다. 때문에 조각된 수사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또 장인의 심태를 엿볼 수 있는 것으로 고궁의 사자왕을 조각한 장인도 장인 중의 왕인 셈이다. 왜냐하면 그런 왕자의 경지가 아니라면 이런 왕자의 풍모를 갖춘 작품을 조각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각종 형태의 사자상을 감상할 때 우리는 사자상의 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자에서 풍겨 나오는 신운(神韻)을 즐기는 것으로 이는 사자상 밖에 있으며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것이다. 아마 이것이 전통문화에 현묘함이 깃들어 있는 점일 것이다.

돌사자가 대표하는 내포는 그것의 위풍당당한 형상을 훨씬 초월한 것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대표하고 있는 역사와 수행의 요소를 일깨워줌이며, 사람들에게 부처를 수련하고 선(善)을 닦아 반본귀진(返本歸眞)함을 잊지 말라고 일깨우며 인간의 불성(佛性)을 계발하고 있음이다. 불교 중에는 “불성이 나오면 시방세계를 진동한다”는 말이 있다. 현재 1억에 달하는 사람의 파룬(法輪) 불법수련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고 무량한 우주를 진동시켰다. 1억에 달하는 사람의 불법수련은 반드시 인간 세상에 기적을 가져올 것이다. 그 마음을 선하게 하고 반본귀진하게 하는 기적은 바로 당신 곁에 있다.

문장발표: 2012년 6월 18일
문장분류: 천인지간>신전문화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6/18/2590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