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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베이성 사악협회 부이사장 우톈샹, 악보를 받다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후베이 보도) 우톈샹(吳天祥)은 후베이성(湖北省)의 이른바 ‘반사교협회’ 부이사장이다. (사실 중공이야말로 틀림없는 사교이다) 10여 년래 중공과 함께 함부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비방하다 뇌에 어혈이 심하게 되자 (자신이) 악보를 받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될까봐 두려워 수술을 남몰래 했다. 수술이 끝난 뒤, 간호사가 놀라며 말하기를 “뇌에 어혈이 이렇게 많은 경우는 처음 보았다”라고 했다. 아마 나쁜 일을 많이 하여 나쁜 세포가 신체 속에서 이제까지 쌓였을 수 있을 것이다.

중공 사당은 우톈샹을 소위 ‘도덕적인 모범인물’이라고 선전했다. 사실은 중공사당이 납세자의 세금으로 우톈샹을 종용하여, 상방(上訪)할 길이 없는 몇 명의 가난한 친척을 구제한 것을, 대변자 역할을 하는 통제된 매체를 통하여 멋대로 치켜세운 것이다. 우톈샹은 1944년생이며 군에서 퇴역하여 지방간부가 된 사람으로 우한(武漢)시 우창(武昌)구 민원담당간부(信訪幹部)였으며 구(區)의 부 구장, 구 정부 순시원이었다. 1999년 7월 중공의 파룬궁 박해 이후에는 일명 민원담당간부(신방간부)가 상방하는 군중을 박해하는 사악한 무리로 변하였다. 2001년 3월 29일, 후베이성 ‘사악협회’가 성립된 때부터 우톈샹은 내내 소위 부이사장을 맡았으며 2004년 1월 8일부터는 또 우한시 ‘관애협회(關愛-사랑과 관심)’ 부이사장을 겸하였다.(역시 파룬궁 박해를 덮어 감추기 위해 조직한 사악협회이며 다만 규칙이 다를 뿐임.) 이로써 볼 수 있는바 오늘날 높은 관리는 크게 탐오하고 작은 관리는 작게 탐오하며 관직이 없어 탐오하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중공사당이 우톈상과 같은 전형적이고 사악한 모습을 세우는 목적은 중공의 수치를 가리려고 백성을 미혹시키는 것이다.

파룬궁을 박해하던 초기부터 중공사당은 줄곧 우톈샹을 이용하여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강제세뇌를 실시했으며 소위 ‘전화’를 진행했다. 2000년 설 전후 우창구 파룬궁수련생들은 자신의 심신에 이익을 가져다 준 파룬따파(法輪大法)와 대법 사부님의 정의를 되찾기 위해 베이징에 가 상방하였는데 그 인원이 우한시 각 구에서 제일 많았다. 이로 인해 우창구위원회 사당 서기 양샹링(楊向玲)은 사당의 비평을 받았고 양샹링은 시 ‘610’에 대해 군령장을 내려 일체의 강제수단을 써서라도 파룬궁 수련생을 전화시키기로 결심하였다. 2000년 3월 20일, 우창구 파룬궁 중점 전화대상 학습반을 세웠는데 (외부와 단절된) 폐쇄된 세뇌반이었다. 우톈샹은 세뇌반에 가서 두 차례 보고를 했는데 온갖 요언을 퍼뜨리고 매도하기 일쑤였으며 악독하게 중상하고 대법을 비방했다. 우한구 파룬궁 수련생 펑민(彭敏)과 리인슈(李銀秀) 모자 두 사람은 바로 이즈음에 박해당해 죽었으며 그 중 리인슈는 직접 우한구 세뇌반에 의해 박해당해 죽었다.

그 후 우톈샹은 연이어 여러 차례 우한시 허완(何灣)노교소와 후베이사양(湖北沙洋)노교소 및 판자타이(範家台)감옥 등지에서 보고를 했고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세뇌 전화를 진행했으며, 여러 차례 성시 ‘610’과 사악의 활동에 출석하였다. 2007년 11월 13일, 우한시 ‘610’사무실, 우한과학기술관과 우한시 관애협회(관심과 사랑협회)에서는 우한과학기술관에서 17대 대보고와 교육, 전화 학습강좌를 열었는데 우톈샹은 이른바 전국 10대 ‘도덕 모범인물’이 되었고 또 17대 대표가 되었는데 시 관애협회 부이사장의 소개로 참가하여 계속 파룬궁을 무함하였다.

2008년 겨울 큰 눈이 내리던 날, 우톈샹은 공공버스 역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다쳤고 큰 혹이 났는데 이때부터 그는 점차 머리가 건전하지 못한 지적 장애자로 변했다. ‘모범 노동자’란 형상을 유지하기 위해 우톈샹은 여태껏 병원에 가서 치료도 하지 않았다.

2009년 1월 15일 우톈샹은 후베이성 ‘사악협회’에서 소집한 소위 전문가학자 ‘봄맞이좌담회’에 출석했다. 1월 28일, 음력 12월 3일 우톈샹과 성 사악 협회 직원들이 사양(沙洋) 판자타이 감옥에 가서 소위 이미 전화되었다는 파룬궁수련생들을 문안하면서 어떻게 하면 진일보로 수련생들을 박해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상의하였다. 2009년 11월 28일, 후베이성 610사무실과 사악협회가 연합하여 우한에서 후베이 10년 소위 반사교(중공이야말로 진정 사교집단 임) 논단을 열었는데 우톈샹이 발언하였다.

2011년 12월 20일, 우톈샹은 현기증이 점점 심해져 병원에 가 검사한 결과 뇌에 어혈이 심하여 즉시 수술해야 했다. 이렇게 우톈샹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악보를 받았다는 걸 알까봐 은밀히 병원에 입원하였지만 누구에게 알리지도 못했다. 12월 26일 오전, 동제병원에서 수술을 했는데 머리를 열자 어혈이 간호사의 온몸에 튀겼다. 사람은 하고 있고 하늘은 보고 있으니 세인은 막을 수 있지만 신의 눈만은 막을 수 없었다. 우톈샹은 결국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천리대로 되는 수밖에 없었다.

문장발표:2011년 1월 29일
문장분류: 천인사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29/2524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