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송(宋)나라 고종 건염(建炎) 원년에 상서(尙書) 부국화(傅國華)는 서주 태수로 부임하였다. 당시전쟁으로 어수선하여 내우외환을 겪고 있었다. 그는 무창에 도적들이 창궐한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무창은 서주(舒州)와 아주 가까운데, 그 도적들이 만약우리 서주로 쳐들어 온다면, 내가 수년간모아놓은 재물을 단번에 다 빼앗아 갈 것이다. 특히고려에 사절로 가서얻은 진기한 보물은나라에 바치지도 않고 내가 착복했는데,이 재물은 너무 진귀해서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래서, 그는 온 집안 식구들과 함께 재물을 가지고는 배를 타고 강녕으로 피난하려고 하였으며, 그렇게 큰 서주의 위험은 모른 체하였다. 강녕에 도착해서 배를 장강에 세워두자사공이 말했다. “성밖에는 도적이 아주 많으므로배를 성 안으로몰고 들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당시 강녕에 주둔하던 관리 우문중달(宇文仲達)은 부국화와 개인적인 친분이 깊었다. 연락을 거쳐 우문중달이 갑문을 열고 부국화의배를 강녕 성안으로 들여 놓았다. 부국화는 온 집안 식구들과 재물이 모두 배에 있고 또한 배는 성 안의 강에 있으므로몇 겹의 보험에 든 것과 같이느껴졌다! 뜻밖에도, 그날 밤, 주덕(周德)이라는 자(者)가 폭동을 일으켜, 부덕화의 배를 강탈했는데, 온 집안 식구를죽이고, 늙은 하녀 한 명만 살려 주었다. 하지만,부국화가 관할하던 서주 지역은 오히려평온 무사하였다.
사실 세상 일은완전히 우연한 것이 없다. 부국화에게발생한 우연한일들이여러 가지 인과관계로연결되지 않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일념지차(一念之差)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오고, 그 결과가 또 더욱 많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당시 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름은 고언성(顧彥成)이라고 불렀다. 그는 절강성에서 조운관(漕運官)을 지냈고, 집은 항주에 있었다. 평시 일을 처리함에 늘 성실했으며, 또 신불을 믿고 공경하였다. 또한 항주에 진통(陳通)이라고 부르는병사가 있었는데, 관리와 군자를매우 증오하였다. 그는 당시 전쟁으로 어수선한틈을 타서,군사를 동원하여 반란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고언성이 절강 일대에 순시를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기에,분노를 억지로참으면서, 고언성이 돌아오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한 달이 넘게 기다려, 고언성이 항주에 돌아오자, 현지의 많은 관리와 백성들은 모두 가서 그를 영접했지만,진통은 그날 밤 반란을 일으키려고 계획하였다.
그러나, 고언성은 항주로 돌아온바로 그날,온 가족을 전부 데리고 성밖에 있는절에 부처님께 예를 올리러 갔다. 하지만 그의 행차가아주 소박하여많은 사람들이 그가 외출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그날 밤 진통이 사병을 거느리고 그의 집을 침입하였으나, 그를 해칠 수없었고,관원에 있던 관리들만 모두 살해했다. 진통은 누군가 정보를 흘려 고언성에게 몰래 기밀을 누설했다고 여겼다.
고언성은 성 밖의 절에서 불사(佛事)를 마치고서야, 성 안에 반란이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그는 밤새 호주(湖州)로 가서난을 피했다. 고언성의집안 사람들은 모두 신불이 그들을 보우하여 이 난을 피했다고 여겼으며,그의 친척 친구들도 이 일을 전해 들은 후 모두 신불을 공경하기 시작하였다.
부국화는 화를 피하려고 했지만 도리어 온 가족이 살해 당하였다. 반면, 진통이 한달 넘게고언성을 살해하려고 준비했지만, 도리어 고언성 일가는모두 무사하였다. 이로 볼 때 세상사가 사람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견지(夷堅志)에서]
문장발표: 2008년 3월 1일
문장분류: 천인사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3/1/1733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