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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쉰(鄧訓)이 덕으로 강호(羌胡)를 감화시키다

동한시기, 북방소수민족 강인은 합병(合兵)을 하여, 한나라에 신하로서 무릎을 꿇은 소월씨 호인을 공격 정벌하려고 준비하였다.

조정은 이 소수민족지역을 책임지고 다스리도록 이 지역에 교위(校尉)(한나라 때 무관직)를 파견하였는데, 이름은 덩쉰이었다. 덩쉰은 호인들이 침범을 받지 않도록 보위하기 위해, 명령을 내려 강인들이 군대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했다. 어떤 사람은 덩쉰의 작전에 대해 동의하지 않으며, “오랑캐로 오랑캐를 공격하면, 한나라가 이득을 본다”고 여기면서, 강인이 호를 정벌하는 것을 금지해서는 안되고, 호인은 더욱 보호할 수 없다고 여겼다.

덩쉰은달래며 말했다. “당신들의 말은 틀린다. 장위(張纡)가 강인한테 신용을 잃어버린 후, 강인은 반란을 멈추지 않았다. 조정은 그런 까닭에, 이곳에 2만 병사를 주둔하였고, 군량과 급료를 운송하는데 비용이 아주 커서, 부고(府库)마저 비게 되었다. 현재 양주(涼州)의 호인들은,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그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가 그들을 보호해주고, 그들이 조정의 은혜를 감수하게 해야만, 그들을 조정에 충성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리하여 덩쉰은 명령을 내려, 성문 및 거주하고 있는 원문까지 모두 열어, 호인의 아내와 아이들을 전부 받아들였고 입주하도록 했다. 또 군대를 파견하여 엄밀하게 그들을 보호하면서, 어떠한 사람도 가서 교란하지 못하게 했다.

강인은 별다른 방법이 없어, 덩쉰의 권고로 철퇴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일을 통해 호인들은 모두 말했다. “덩사군(덩쉰)은 우리를 은혜와 신의로 대해주고, 우리의 아내와 아들딸을 보호해 주었다.” 그들은 모두 아주 기뻐하면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금후, 우리 호인들은 덩사군의 명령이기만 하면 따르겠습니다.”

당시 강, 호의 풍속은 병으로 죽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 중병에 걸리기만 하면 칼로 자살했다. 덩쉰은 강, 호의 각 지역에서 누가 병을 앓는다는 소식을 듣기만 하면 즉시 사람을 보내 환자를 묶어놓고, 그들이 칼 같은 도구를 얻지 못하게 했으며 또 의사를 파견하여 그들의 병을 치료해주었다. 병을 앓던 사람들이 치료된 숫자가 아주 많았다. 덩쉰이 병이 들어 죽은 후, 강, 호 두 곳에서 매일 수천 명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와서 조문하였다. 그들의 풍속은, 부모가 죽은 후 슬퍼해서는 안되며, 말 위에 앉아 큰소리로 부르고 마음껏 노래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 덩쉰이 죽은 소식을 들은 후, 큰소리로 부르고 마음껏 노래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칼로 자살하였고, 어떤 사람은 말했다. “덩사군이 이미 죽었으니, 우리 같은 사람도 살고 싶지 않다.”(후한서(后漢書)>>에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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