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神傳文化】 모욕을 당해도 다투지 않고 덕정을 베푼 탁무

글/청언(清言)

[밍후이왕] 탁무(卓茂)는 자(字)가 자강(子康)이며 서한(西漢)시대 남양(南陽) 완현(宛縣)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시(詩)와 예(禮) 및 역법을 배웠고 학식이 넓고 깊었다. 그러나 사람됨은 어질고 조신해 모두들 그를 좋아했다.

탁무는 처음에 승상부(丞相府 지금의 총리실에 해당)의 사(史 실무를 맡은 관리)를 맡았다. 한번은 그가 말을 타고 외출을 했는데 어떤 사람이 그의 말을 가리키며 자신의 말이라고 우겼다. 탁무가 그에게 물었다. “말을 잃어버린 게 언제입니까?” 그러자 그는 “한 달 가량 지났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탁무가 이 말을 탄 지가 이미 몇 년이 되었으니 분명 상대방이 착각한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말을 건네주고는 빈 수레를 끌고 돌아갔다. 그러면서 “만약 이 말이 당신 말이 아니거든 승상부로 찾아와 제게 돌려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얼마 후 말을 잃었다던 사람이 다른 곳에서 자신의 말을 찾은 후에야 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승상부를 찾아와 탁무에게 말을 돌려주고는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하지만 탁무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

사서(史書)의 기록에 따르면 탁무는 이처럼 평생 남과 다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지만 탁무는 오해를 받을 때조차도 남과 다투지 않았다. 단지 기꺼이 굴욕을 참았을 뿐만 아니라 본래 자신의 것까지 남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평소처럼 조용할 수 있었으니 이는 평소 수양이 있고 덕행을 닦은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탁무는 나중에 덕행과 능력을 겸비한 인물로 인정받아 시랑(侍郞)으로 추천되었고 하남군 밀현(密縣)의 현령으로 부임했다. 그는 관직에 있으면서 충성스럽고 근신하며 성실히 임했다. 백성들을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했으며 예를 중시했고 직접 나서 선행을 베풀어 백성들을 교화(敎化)시켰으며 어떤 경우에도 나쁜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러자 속관(屬官)들과 백성들이 모두 그를 좋아했고 그를 속이지 않게 되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교화가 크게 행해져 길가에 물건이 떨어져도 줍는 사람이 없었다.

평제(平帝) 때의 일이다. 누리떼가 광범위하게 기승을 부려 하남 지역 20여개 현이 모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누리들이 유독 밀현 경계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지방 관리들의 감찰을 맡은 독우(督郵)가 하남군 태수에게 이 일을 보고하자 태수도 이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밀현에 가서 조사한 후에야 비로소 이 말이 사실임을 알았고 탁무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독자들이 짐작했다시피 밀현이 누리떼 피해가 없이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현령인 탁무가 선정을 펼쳐 백성들에게까지 교화가 미쳤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도덕이 회복되고 선을 향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에도 부합하는 까닭에 하늘이 복을 내리고 보우하여 재앙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탁무가 승진하여 서울로 부임하기 위해 밀현을 떠날 때 밀현의 남녀노소들이 모두 울며 그를 전송했다. 하지만 얼마 후 왕망(王莽)이 제위를 찬탈하고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 탁무는 병을 핑계대고 관직을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왕망 정권이 망할 때까지 더 이상 관직을 맡지 않았다. 그는 개인의 공명과 이익을 위해 관리가 된 것이 아니었기에 덕정을 펼칠 수 없고 나라와 백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이런 행동을 통해서도 그의 지조를 알 수 있다.

나중에 후한의 광무제(光武帝)가 즉위한 후 진작부터 탁무의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는 가장 먼저 사람을 파견해 탁무를 초청했다. 또한 조서를 내려 다른 사람이 따르기 힘든 그의 덕행과 굳센 지조를 찬미했다. 광무제는 또 그의 명예가 천하의 으뜸이니 마땅히 세상의 찬사를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이는 무왕이 폭군 주왕을 토벌하고 은나라의 옛 충신 비간의 묘를 새로 수리하고 상용(商容)의 옛집을 표창한 것과 유사하다. 광무제는 탁무를 태부(太傅)에 임명하고 포덕후(褒德侯)에 봉했으며 식읍으로 2천 호를 하사했다. 또 많은 기물(器物)과 재산을 주었을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을 발탁해 중책을 맡겼다.

(English Translation: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7/4/19/84708p.html)

문장발표 : 2007년 4월 5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문사만담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4/5/15207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