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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하고 소박한 古風’

1. 순박하고 소박함

명산빈(明山賓)은 입신출세하기 전에 살림이 너무 빈곤해 부득불 수레를 끄는 소를 팔려고 했다.

구매자가 돈을 지급했는데 명산빈은 구매자에게 “이 소는 다리는 헛디디는 병이 있었는데 이미 치료된지 긴 시일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재발할까 봐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구매자는 듣고 급히 소를 물리고 돈을 찾아갔다.

완효서(阮孝緒)는 이 일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감탄하며 말하기를 “명산빈은 성실하구나. 그의 언행은 사람 마음을 순박하고 너그럽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관청에서도 그를 본보기를 삼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2. 주머니를 털어 친구를 구제

호숙(胡宿)은 송대 진릉[晉陵.현재 장쑤성 우진(武進)]사람이다. 호숙은 호주(湖州) 군아에서 사무를 볼 때 어린 시절 친구 정위(丁謂)가 호주로 찾아와 만나려 했다. 호숙은 열정적으로 그를 초대했다.

이후 정위는 살림 형편이 빈곤해 시(詩)로 쌀을 바꾸어 가면서 또 호주에 왔다. 호숙이 재차 그를 접대할 때 쓴 그릇들은 모두 투박한 도자기였다. 정위는 호숙이 그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여기고 작별을 고하고 떠나려 했다.

호숙은 급히 함에서 은을 꺼내 정위에서 주면서 말하기를 “지금 우리 살림도 넉넉히 못해 조금 밖에 없는 은으로 자네를 송별하려네”라고 말했다. 정위는 이때야 비로소 무엇 때문에 그릇이 모두 투박한 도자기 그릇인줄 알게 됐다. 나중에 정위는 조정의 명관으로 승임해 임동중서(任同中書) 문하평장사, 진나라 국공으로 봉해졌다.

호숙은 당년에 주머니를 털어 친구를 구제하고 보답을 받으려 하지 않았으나 도리어 선한 보응을 받았다. 정위는 그에게 감격해 그를 도와 높이 승진시켰다.

3. 왕의방(王義方)의 의로운 행동

왕의방은 당대(唐代) 시기 연수(漣水.오늘날 장쑤성 롄수이현) 사람으로서 시어사(侍禦史)를 지냈다.

왕의방이 일이 있어 혼자 말을 타고 수도 장안으로 급히 가게 됐다. 중도에서 한 사람이 길 가에 누워 있는 것이 아주 피곤해 보였다. 그는 앞으로 가서 상황을 물었더니 그 사람은 말하기를 “제 아버지께서 먼 곳에서 관직을 맡고 계시는데 지금 병이 아주 심해 나는 즉시 가야합니다. 그런데 지금 너무 힘들어 걸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왕의방은 듣더니 자기가 타는 말을 그에게 타라고 주었다. 그리고 자기의 이름도 밝히지 않고 몸을 돌려 걸어갔다.

4. 도둑을 감동시킨 방경원

방경원은 북위시기 청하[淸河.오늘날 허베이성 딩허(定河)현] 사람으로서 주부(主簿)를 지냈다. 방경원은 신용을 지키고 선한 일과 다른 사람 돕기를 좋아했으므로 현지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평원현(平原縣) 사람 유욱(劉鬱)은 연주(兗州)경내를 지나다가 강도를 만났다. 그들은 이미 10여명 사람을 죽이고 유욱도 죽이려 했다. 유욱은 “나와 너는 이웃 마을 사람인데 무엇 때문에 나를 죽이려 하느냐?”고 말했다. 강도는 “네가 내 이웃이라고 하는데 그럼 너는 누구의 친척이냐?”라고 물었다. 유욱은 “방양(房陽)은 나의 외사촌 형제다”라고 말했다. 방양은 방경원의 별명이다. 강도는 “나는 방양이 구제한 죽을 먹고 비로소 살아났다. 어찌 그의 친척을 죽일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당시 유욱에게서 빼앗은 재물을 모두 돌려주고 그를 풀어줬다. 다른 20여명 사람들도 “방양을 알고 있다”고 말해 모두 목숨을 구했다.

5, 충의로 하늘을 감동시킨 노복

이선(李善)은 동한시대의 육양(淯陽) 사람이다. 본래 부호 이원(李元)의 집 노복이었는데 나중에 태수를 지냈다.

이선은 본래 이원의 집 노복이었다. 이원 일가 사람은 역병에 걸려 모두 죽고 출생한지 10일 되는 영아만 살아남았는데 이속(李續)이라고 불렀다. 이원의 집에는 억만 가산이 있었다. 그의 집 노복들은 이속을 죽이고 유산을 나누자고 논의했다.

이선은 소식을 들고 급히 이속을 안고 밤새 하구현(瑕丘縣) 산속에 도망가서 스스로 이속을 길렀다. 음식물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알뜰하게 그를 길렀다. 자신은 늘 습기 있는 침상에서 자고 이속을 건조한 곳에 재웠다. 이선은 이속이 비록 어려도 그를 전 주인 이원을 대하듯 했으며 늘 무릎을 꿇고 매우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이속이 열 살이 될 때 이선은 그를 데리고 집에 돌아와 가업을 다시 일구었다. 그리고 관청에 가서 당년에 이속을 죽이려던 노복들을 고발해 그들은 엄벌에 처하게 했다.

이때 하구 현령 종이의(鍾離意)는 이선을 황제에게 추천했으며 황제 유수(劉秀)는 그를 태수로 임명했다. 이 일을 아는 백성들은 “이것은 이선의 충의가 하늘을 감동시킨 결과다!!”라고 말했다.

이선이 취임하려 가는 도중 이원의 묘지를 지나게 됐다. 묘에 도착하기 1리 전에 이선은 관복을 벗고 무릅을 꿇고 배례를 했다. 그는 묘의 풀을 캐고 가꾸며 향을 사르고 제사를 지내며 울며 축원했다. “주인, 부인, 편히 쉬세요!” 그는 제사를 지내고 수일 후에야 묘를 떠나 임직처로 갔다.

(명대 정선(鄭瑄)의 『작비암일찬(昨非庵日纂)』에서 발췌)

문장발표: 2010년 7월 16일
문장분류: 고금논담
문장위치: http://zhoubao.minghui.org/mh/haizb/171/A05/71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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