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밍구(明古) 푸저우 푸칭현(福州福清县) 대평향 수인리에 석주산이 있다. 남송 때 이 산은 현성과 15리 떨어져 있었다. 남송 효종 건도 2년(기원 1166년) 3월 3일 밤, 인근에 사는 정주연은(郑周延) 쩌렁쩌렁한 천둥소리를 들었는데 그 소리는 하늘땅을 진감하다가 한참 후에야 멈추었다. 밖은 번개처럼 번쩍였고 천둥소리가 나는 곳은 석주산 위라고 생각되었다.
둘째 날 아침 그곳 사람들은 석주산 봉우리 동남향 9장 높이에 있던 거석이 산중턱으로 날아간 것을 발견했다. 거석이 스쳐 지나간 곳은 네 척 좌우의 산길로 변했는데 기타의 나무, 바위는 크게 피해를 받지 않았다. 현의 선비 리괴(李槐)가 이르기를 석주산 아래에 본래 석패 하나가 있었는데 당대 산절 묘응대사의 예언이 조각되어 있다. 후에 큰 물난리가 나서 패석이 쓸려갔다. 천둥이 울린 후 현대교 아래에서 이 석패를 찾았는데 석패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산보석이 장원래기, 용조화홍, 장원서동’ 본래 현 경내에 돌 비탈이 있었는데 당대 천보년간(기원742-755년)에 건축하였으므로 천보비탈이라고 했으며 석주산과 10리길 밖에 안 된다.
거석이 날아간 그 달, 영복인 소국량(萧国梁)이 장원에 합격 했는데 바로 ‘장원래기’이다. 당시 소국량이 살던 인근에 마침 용조의 용조화가 가득 자라났는데 ‘용조화홍’도 들어맞는다. 영복현(후에 영태현 이라고 고쳤음)은 바로 복청현의 서쪽이다. 또 삼년이 지나 흥화 정모가 장원에 합격했다. 흥화는 복청현의 동쪽에 있다. 묘응대사의 ‘장원서동’에 관한 예언은 전부 맞았다.(자료출처는『영태현지』,『이견지』)
당대 석패가 수백 년 후 남송 장원의 상황을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신기하다! 이것은 만사는 하느님의 안배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어두운 저승에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 사실 석패에 예언이 조각된 것이 맞아 떨어진 것이 이 역사상에는 매우 많다. 뿐만 아니라 어떤 바위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필적이 있다. 예를 들어 진시황 말년에 운석이 동부지역에 떨어졌는데 그 위에는 ‘시황제 사이지분’이라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문자가 있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시황은 정말 죽었다. 수년이 지나 진말에 대봉기가 일어나 진왕조는 멸망하고 초나라가 쟁패하여 나누어 가졌다.
지금도 이러한 자연 장자기석이 있는데 2002년에 구이저우(贵州)에서 발견된 천연기석이다. 그 위에는 자연적으로 새겨진 ‘중국공산당망’이라는 여섯 글자가 약 한자 평방에 배열되어 있는데 마지막 ‘망’자는 조금 크다. 구이저우성(贵州省) 핑탄현 장포향에서 이 바위를 이용하여 국가지질공원을 개발했다.(물론 해외 자원 바위 위에 다섯 자의 큰 글이 있다). 이 기석을 발견하게 된 것도 바로 하늘의 뜻인 것이다. 거석이 떨어져 장원이 출현할 것을 예시했고, 지금 장자기석의 발견은 하늘이 사람들에게 중공의 운명이 끝난다는 것을 분명히 알리는 것이다. 이것은 천의로서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하늘은 호생지덕(好生之德)이 있어 당, 단, 대에 가입했던 사람들이 모두 속히 천의에 따라 퇴출 성명할 것을 바라고 있다.(가명으로도 가능하다.) 삼퇴하지 않으면 미래에 필경 재앙이 있을 것이다.
문장발표: 2010년 7월 9일
문장분류: [천인사이]
원문위치:
http://zhoubao.minghui.org/mh/haizb/170/A08/7156/%E5%94%90%E4%BB%A3%E7%9F%B3%E7%A2%91%E9%A2%84%E8%A8%80%E5%8D%97%E5%AE%8B%E7%8A%B6%E5%85%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