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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문화】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해친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글/육문(陸文)

【밍후이왕】 송 흠종(欽宗) 정강(靖康) 말년(1127년)의 일이다. 한 달관(達官 역주: 고위관리)이 청주(青州)와 제주(齊州) 일대―지금의 산동성 치박(淄博)과 제남(濟南) 일대―를 관할하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아주 비정상적으로 사망했다.

10년이 지난 후 그의 아들이 꿈을 꾸었다. 꿈에 큰 길을 걸어가는데 길가에 느릅나무와 버드나무가 우거져 그늘을 이뤘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갑자기 앞에서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는데 마치 수백개의 큰 북이 울리는 것 같았고 점차 가까워졌다. 그는 대군(大軍)이 밀려오는 것으로 여겨 재빨리 길옆에 있던 토옥(土屋)으로 몸을 숨겼다. 창문을 통해 살며시 밖을 내다보니 원래 수백의 귀신들이었다. 그들은 큰 맷돌을 메고 있었는데 맷돌은 끊임없이 돌고 있었다.

이때 맷돌 구멍으로 한 사람의 머리가 보였는데 유혈이 낭자했다. 자세히 바라보니 바로 자신의 부친이었다. 그가 두려움에 떨며 비통해 할 때 큰 북소리가 또 울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또 큰 맷돌이 나타났다. 맷돌 구멍에 한 사람의 머리가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그의 모친이었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 달관의 아들은 부모가 지옥에서 이런 혹형을 받는 것을 보고는 몹시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급히 엄주(嚴州)로 달려가 많은 돈을 들여 초제(醮祭)를 올렸다. 신령(神靈)에게 자기 부모의 징벌을 사면해달라고 청하기 위해서였다.

초제를 치르는 과정 중에 달관의 아들 형제들과 가족들은 모두 한 작은 신인(神人)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는 몸에 자색 도포를 입었고 허리에는 금으로 된 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키는 겨우 1척이 넘었다. 하지만 이목구비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었다. 그는 제사를 올리는 깃발 아래 서 있었다. 초제가 끝난 후 이 작은 신인은 사라졌다. 초제를 주관한 사람이 달관의 아들들에게 말했다. “당신들 부친의 일은 내 입으로 차마 밝힐 수 없으니 당신들이 직접 보는 것이 좋겠소.”

그러면서 큰 상자를 하나 가져다 안에 재를 채운 후 상자를 단단히 밀봉했다. 그는 형제들에게 상자를 주면서 하루가 지난 다음 열어보게 했다.

이튿날 아들 형제들이 상자를 열자 재 위에 글자가 씌어 있었다. “모 사람은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해쳐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某人蠹國害民,罪在不赦)”

이것을 본 형제들이 통곡하면서 몹시 슬퍼하며 떠났다. 이 일은 《이견병지(夷堅丙志)》에 나오는 일화이다.

여기서 ‘나라를 좀먹는다’는 말은 나라를 부패하게 만들어 갉아먹었다는 뜻이다. 그 달관은 생전에 관운이 아주 좋았지만 마음씀씀이가 바르지 못했다. 직권을 이용해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해쳤으니 결국 비명에 횡사했고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지옥에서 혹형을 받은 것이다. 그 자식들이 도량을 설치하고 신령에게 도움을 빌었으나 효과가 없었고 죄를 용서받지 못했다. 이는 하늘의 이치가 지극히 공정함을 나타냈다. 그 모친은 생전에 부친과 함께 죄를 범했기 때문에 사후에 함께 벌을 받은 것으로 이 역시 당연한 이치이다.

지금 중공 고관 중에는 비정상적으로 사망한 자들이 아주 많다. 이들이 사후에 엄중한 징벌을 받는 것도 필연적이다.

(English Translation: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7/4/5/84226p.html)

문장발표 : 2007년 3월 18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문사만담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3/18/151035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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