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7년 3월 5일】 청나라 때 금릉(金陵 지금의 남경)에 진석거(陳石渠)란 노인이 있었다. 그는 수재(秀才 향시 합격자) 출신으로 사람이 단정하고 언행이 신중했다. 집은 비록 매우 가난했지만 훈장노릇을 하며 수십 년간 200금을 모았다.
가경(嘉慶 1796-1820) 갑술년 금릉 지역에 아주 심한 기근이 들어 쌀 한말이 천냥을 넘었다. 이는 가난한 백성들로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비싼 가격이었다. 진석거는 자신이 모은 전 재산인 200금을 꺼내 보이며 자식들에게 말했다. “이것은 내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아껴 모은 것이다. 본래 너희들에게 물려주려 했지만 올해 기근이 심해 쌀값이 폭등했다. 가난하고 어려운 고향사람들이 힘겹게 사는 것을 보니 나로서는 차마 견딜 수가 없구나. 나는 이 돈을 가져다 쌀을 사서 그들에게 싼 값에 팔고자 한다. 만약 너희가 이 일이 옳다고 여기면 그렇게 하도록 하고 원하지 않는다면 그럼 뜻대로 하거라.”
다행히 그의 아들들은 모두 아주 선량했기에 다들 부친의 뜻을 잘 따랐다. 이렇게 하여 그는 자신이 모은 돈을 전부 가져다 쌀을 산 후 자기 집 앞에서 아주 낮은 가격에 되팔았다. 진석거는 아들들에게 직접 밖에 나가 살펴본 후 확실히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에게만 쌀을 팔도록 했다. 아들들은 부친의 분부에 따라 전력을 다해 쌀을 팔았다. 그들은 더 이상 남은 돈이 없을 때까지 이렇게 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도움을 얻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진석거는 자신이 가난한 처지였음에도 다른 사람들이 곤란을 당하는 것을 보고는 뜻밖에 평생 모은 재산을 꺼내 그들을 구했다. 이런 선한 마음과 선한 행동은 실로 탄복할 만한 것이다. 진석거 일가의 선행에 대해 하늘도 복을 내렸다.
그의 아들인 진유병(陳維屏)이 계유년에 향리의 추천을 받아 향시를 면제받았고 또 다른 아들인 진유원(陳維垣)은 향시에 합격했다. 두 형제는 기묘년에 나란히 진사(進士)에 급제했고 손자들도 크게 성공해 가문이 번창했다.
문장발표 : 2007년 3월 5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문사만담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3/5/15012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