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육진(陸真)
【명혜망 2007년 2월 25일】《한서-우정국전(于定國傳)》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한(漢) 선제(宣帝) 때 우정국의 부친이 있었는데 우공(于公)이라고 불렸다. 우공은 현의 옥리(獄吏 감옥을 담당하는 관리)와 군(郡) 결조(決曹 역주: 소송을 주관하는 관리)로 있으면서 송사를 결정했다. 우공의 판결은 공평무사해 누구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다. 군 백성들이 그의 공적을 기려 사당을 세우고 우공사(于公祠)라 불렀다.
당시 동해군(東海郡)에 주청(周青)이란 이름을 지닌 효부(孝婦)가 있었는데 시어머니를 아주 공경하게 모셨다. 하지만 그녀의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나를 봉양하느라 너무 고생이 많구나! 나는 이미 늙었으니 굳이 생을 아쉬워하며 젊은 사람에게 오랫동안 누를 끼칠 이유가 있는가?”라고 하면서 목을 매달아 자살해버렸다.
당시 시누이가 시댁에서 친정에 돌아와 모친이 죽은 것을 알고는 동해군 태수에게 “주청이 모친을 살해했다.”고 고발했다. 관아에서는 주청을 체포해 엄하게 다스리며 모함 받은 죄명을 인정하라고 강요했다.
당시 우공이 옥리(獄吏)로 있었다. 그는 “이 부인은 10여 년동안 시어머니를 봉양했습니다. 그녀의 효심은 사방에 널리 전해졌는데 하필 시어머니를 살해할 이유가 있겠습니까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태수는 그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고 주청을 죽여야 한다며 고집을 피웠다. 우공이 거듭 권고해도 효과가 없자 그는 어쩔 수 없이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며 관아를 떠났다.
이때부터 동해군에는 3년간 큰 가뭄이 들어 한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다. 나중에 전에 있던 태수가 면직되어 물러났다. 새로운 태수가 부임한 후 우공에게 물었다. “왜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는가?” 우공은 “효부를 죽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전임 태수가 억울하게 사람을 죽여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라고 설명했다.
신임 태수는 곧 효부의 묘를 직접 찾아가 제사를 지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아울러 그녀의 묘에 효절(孝節)을 기리는 패방을 세우며 표창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곧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해에 동해군에는 큰 풍년이 들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지방 장관이 백성을 억울하게 죽이고 잘못을 고집하며 회개하지 않으며 신이 진노해 재앙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본다면 자연재해의 발생은 우연한 것이지만 사실 원인이 있는 것이다.
신은 이런 재해를 이용해 현지에서 일을 주관하는 사람에게 잘못을 고치고 악을 버리며 선을 따르도록 경고한 것이다. 동시에 현지의 나쁜 사람들에게 허물을 고치고 새로운 사람이 되라고 경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주청을 무고한 그 여인에 대해, 주청을 억울하게 죽이고도 아무런 반성도 없거나 심지어 재앙을 즐긴 사람들에게 일조의 두려움과 징계를 가한 것이다.
이것을 오늘날 중국의 현실과 연계해본다면 중공은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파룬따파 제자들을 잔혹하게 박해해 뭇신들의 진노를 샀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수년 동안 각종 재난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재난이 모두 악당의 폭정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며 폭정에 마비되어 악당을 도우면서 아무 느낌도 없는 그런 사람들도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신은 나쁜 사람이 영원히 포악하게 사람을 해치도록 허용하진 않을 것이다. 악에는 악보(惡報)가 따르기 마련이며 다만 시간이 닥치지 않았을 뿐이다. 악을 저지른 자들은 빨리 회개해야 하며 사당 관련 조직에 가입한 자들은 빨리 탈퇴해야 한다!
문장발표 : 2007년 2월 25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문사만담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2/25/149517p.html